냉소’만’하는 건 아니라고요.
0.73%의 근소한 차이로 결정된 대통령이지만 “민주시민"으로서 결과를 인정하고 이 정부가 잘 되기를 바랐다. 당선자 개인의 성공과 성취를 바란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거기에는 시스템, 구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길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짧게는 군사독재 시절 이후의 정부로 구성되고 다듬어온 견고한 국가단위의 시스템 (aka 관료제), 사법, 입법, 행정 삼권분립에 의한 권력의 견제와 균형, ‘기본’적 민주공화국 원리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대통령 한 사람만 바뀐 거라는 자조가 교차하는 정권들을 거치며 단련된 맷집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고하다 여긴 시스템을 아무렇지 않게, 공공연히 때로는 악랄하게 우회하기도 하며 무시하는 정권을 맞닥뜨리고 나니 체념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꼈다. 어디까지 하려고요? 함께 읽을 책 [지금은 없는 시민,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제목을 보고 뜨끔했다. 늘 냉소하는 사람이라서. 게다가 2021년, 이전 정권 때 발행된 책이라 읽으면서도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유효할 ‘시민성’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는 지점이 많았다.
“우리 사회의 핵심 구성원리인 민주주의를 어떻게 급진적으로 사유할 것인가에 관한 얘기다. 민주주의를 급진적으로 사유한다는 말은 그 개념을 뿌리부터 다시 살핀다는 뜻이다. 민주, 즉 ‘시민이 한 사회의 주인’인 것이 민주주의 근본원리다. 자신의 집을 일부러 더럽히고 망가뜨리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처럼 우리가 사회라는 집의 주인이라면 이 사회를 유지 발전시킬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서로 돕고 연대하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시민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의의 행위’ 이면서 동시에 ‘당위적 책임’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입법자와 통치자를 선출하는 일이나 다수결의 논리로만 오해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함으로써 그 의미를 복원하고 확장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P9-10)
맞는 말인데……어떻게 냉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때때로 냉소하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시민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의 ‘선의의 행위’ 이자 ‘당위적 책임’을 자랑하고 격려해보는 건 어떨까. 비싼 거, 좋은 거 먹고 쓴다고 자랑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좋은 일 좀 하고 있다고, 발톱의 때만큼이나마 세상을 좋아지게 하고자 나름 무언가 하고 있다고 이야기해보는 거다. ‘자기 삶을 바쳐 일하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뭘.’ 이렇게 겸양 떨 것 없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자기 자리에서의 미미하고도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 서로 나눠보는 거다. 그리곤 “너무 잘하고 있습니다. 짝짝짝짝” 박수 쳐주는 거다. 정치권력은 때가 되면 바뀔 테고, 우리는 매번 기뻐하다 좌절하다 눈물 흘리다 난리부르스를 끝없이 춰대겠지만. 그래도 또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경쟁 위주의 교육이 아닌 삶을 위한 고민으로 사걱세 활동 및 후원합니다! (일동박수 짝짝짝!) 대중교통 안 아이들의 울음이나 칭얼댐을 의연하게, 때론 너그럽게 바라보기 훈련중입니다. 복잡한 거리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 살짝 잡아줍니다. 누군가 키오스크 앞에서 헤맬 때 같이 옆에서 헤매주기도 합니다(덜 민망합니다. 확실히). 우리말 서툰 외국인이 지하철 개찰구 못 나올 때 도와주기도 합니다(잔액이 부족하다고 카드가 아무리 외쳐도, 못 알아들으시더랍니다.) 치마자락이 스타킹에 껴버려 민망함을 연출할 이에게 얼른 달려가 알려줍니다. 가방 열린 채 걷는 학생의 어깨를 톡톡 쳐서 표시해줍니다. 무거운 짐 들고 계단을 오르는 이를 돕습니다. 산행하며 오가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해봅니다. 결혼, 출산한 직원에게 상습적 불이익을 주고, 대리점에 제품 떠넘기기를 일삼는 남양 불매하고요. 쿠팡맨이라는 좋은 직업을 만든다고 자랑하더니만, 점점 열악해져가는 노동조건의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하는 쿠팡 안(덜) 씁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에도 변화없는 SPC 빵, 커피, 떡 안(덜) 먹으려 합니다. 조선소 노동자 파업 때 응원하는 만원씩 십만인 모으기에 동참했습니다. 혐오와 배제 차별에 앞서는 큰 교회 말고 작은 교회, 윤리적 실천을 하고 있는 기독언론사 후원합니다. 포탈의 선정적인 기사들을 애써 외면합니다. 일간지/주간지 ‘좋은’ 언론사 기사 구독하거나 읽고 나눕니다. 디딤씨앗통장, 자립청년 지원사업에 동참합니다. 노란봉투법이 입법되도록 국회 입법 청원하는 것에 동참합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하거나 후원합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유가족 위로하는 기도회 참석합니다.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 읽으며 마음을 나눕니다. 장애인 이동보장 위한 시위에 후원하기/응원합니다. 지역서점, 작은도서관 지원금 축소, 폐지에 반대하는 서명합니다. 좋은 독립영화 찾아보며 공유하며 응원합니다. 비건까지는 못하더라도 고기를 줄입니다. 플라스틱 안(덜) 쓰려고 비누 바로 머리와 몸을 씻습니다. 텀블러를 항상 소지합니다. 노조에 가입, 활동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합니다. 정당에 가입하고 의견표명하며 뜻 맞는 의원에 적극 후원합니다.
두서없지만 나나 곁의 지인들의 소소한 일들, 활동들을 적어보았다. 아마 더 많은 일들을 더 많은 이들이 하고 있겠지. 모아놓고 보니 안 소소하다. 아. 갑자기 정신승리한양 마음이 뜨뜻해진다. 미미한 환대와 연대의 싹. 서로가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뒤늦게 발견하고 안도하며 서로가 있음을 고마워하는 작은 행동들. 세찬 비바람 같은 자본의 논리, 승자의 논리, 멈출 줄 모르는 개발 성장의 논리, 이길 수도 없고, 이길 길도 막막하지만 아직, 여전히 묵묵히 연대하며 살고 있음을 증명해내는 시민들. 서로가 서로의 곁이 되어가며 또 버텨내 봅시다. 우리.
첫댓글 '서로가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뒤늦게 발견하고 안도하며 서로가 있음을 고마워하는 작은 행동들' 이라는 글이 너무 인상적이에요!
그리고 저기 적힌 활동들 다 은경샘 혼자 하신 일인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거의 대부분 하고 계실 듯 하지만 일부러 지인의 것도 있는 것처럼 표현 하신 건 아닐지...^^;; 나열해 주신 걸 보며 저 스스로는 얼마나 하고 있나 돌아보게 되네요..^^;;
쌤… 너무 감동했어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늘 냉소하는 중이라서 정치뉴스만 보면 자꾸 화가 나고 혈압이 올라 요즘은 부러 외면하고 있는 중인데요. 우리가 어떻게 해도 변화없구나 괴로워했는데 “미미한 환대와 연대의 싹”을 나열해보니 뭉클해지네요. 부족하지만 멈추지 않고 살아갑시다. 살아냅시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노워리 기자단 고맙습니다.
와~ 제 취향저격인 글입니다. 이런 기필고 찾아내는 긍정이 좋아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이야기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