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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머무르다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29년 6월 10일 ~ 8월 1일
. 장소 : 두로, 시돈
156:0.1 6월 10일 금요일 오후에, 예수와 동료들은 벳세다 병원에서 환자였던 시돈의 한 부유한 여인의 집에서 멈추었고, 전도사와 사도들은 그 여자의 친구들 집에 투숙하고, 이곳에서 거의 2주 반을 지냈다.
이 6월의 안식일, 종교에 대한 주의 강론에 매우 몰두해 있었다. 모두가 예수의 말씀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지만,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다.
1. 시리아 여인
156:1.1 한 시리아 여인이 큰 치유자요, 선생인 예수의 소문을 듣고 이 안식일 오후에 어린 딸을 데려 왔다. 열두 살쯤 된 이 아이는 발작과 기타 비참한 증세의 심한 신경 질환으로 앓고 있었다.
예수는 쉴 것이라며 동료들에게 그가 카루스카의 집에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나 카루스카의 종은 시리아 여인 노라나의 집으로 가서 예수가 자기 여주인 집에 묵고 있다고 알려주고, 병든 딸을 데려와서 치료받으라고 재촉했다.
노라나와 딸이 왔을 때, 알패오 쌍둥이는 통역을 통해 주를 방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노라나는 주가 휴식을 마칠 때까지 아이와 함께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 베드로의 간청에도 소용없었다.
토마스도 그 여자를 보내려고 애썼지만 그 여자는 말했다: “ 그가 갈릴리에서 위대한 일을 하셨다고 소문을 들어 왔고, 나는 그를 믿습니다.”
열심당원 시몬이, “너는 그리스 말을 하는 이방인이요. 혜택 받은 집 아이들을 위한 빵을 주가 개에게 던질 것이라 기대함은 옳지 않다.” 라고 말했고, 노라나는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 대답했다. “예, 당신의 주에게 나는 믿는 개입니다. 당신 같은 선한 사람은 아이들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먹는 개의 특권을 빼앗지 않을 것입니다.”
156:1.6 이때 그 어린 여자아이는 격렬한 경련을 일으켰고, 그 어머니는 외쳤다: “보십시오, 내 아이가 귀신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아무런 관심을 끌지 않는다 해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이방인들까지라도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시는 분이라고 내가 들어왔던 당신들의 주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이 대화를 모두 들은 예수는 바깥으로 나와서 말했다: “여자여, 너의 믿음이 크니 바라는 것을 주지 않을 수 없구나. 평안히 가라. 네 딸은 이미 온전하게 되었다.” 어린 여자아이는 그 시각부터 나았고 예수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그 어머니와 아이는 온 시골에 병이 나은 사실을 외치고 다녔다. 너무 지나쳐서, 예수는 며칠 안에 숙소를 바꾸는 것이 상책임을 깨달았다.
이튿날 사도들을 가르칠 때 예수는 시리아 여인의 딸의 치유를 논평하면서 말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충분한 믿음을 보이지 못하면, 이방인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2. 시돈에서 가르치다
156:2.1 시돈으로 들어가면서, 예수와 동료들은 다리를 건너갔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단지 다리일 뿐이다. 다리를 건너가도 좋지만 그 위에 거처를 짓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스물네 사람이 시돈에서 일을 시작하자, 예수는 주스타와 그 어머니 버니스의 집에 머물러 갔다. 아침마다 예수는 이곳에서 24사람에게 가르쳤고, 그들은 오후와 저녁에 시돈에서 가르치고 전도하러 나갔다.
사도와 전도사들은 시돈의 이방인이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크게 기운을 얻었다. 6주 동안 페니키아에서 사람들을 많이 설득했지만, 후일에 복음서를 쓴 유대인 저자들은, 이방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다는 기록을 빠뜨렸다.
여러 면에서 이 이방인들은 유대인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했다. 시리아ㆍ페니키아인들은 예수가 하나님 같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예수 같음을 알게 되었다. 사도와 전도사들은 하나님이 사람이나 민족, 나라를 차별하거나 편애하지 않으며, 또한 우주는 전적으로 법을 지키고 어김없이 믿을 만하다는 주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예수는 스물네 사람에게, 적과 대결할 용기가 없어서 갈릴리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기존의 종교와 충돌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음을 이해했다. 이 회의 중에서 주는 처음으로 말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 내 진리의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56:2.6 시돈에서 머무르는 동안, 예수의 가르침의 주제는 영적 진보였다. “지난날에 있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하늘나라의 더 큰 현실을 붙잡기 위하여 앞으로 나가라”고 훈계했다. 신의 아들이 되는 영적 높이에 도달하기 위하여 애쓰라고 타일렀다.
예수는 말했다: “내 제자들은 악한 일을 멈출 뿐 아니라, 좋은 일 하기를 배워야 한다. 죄를 지었다는 느낌조차 마음에 품지 말아야 한다. 그런즉 죄짓지 않는 양심을 지켜야 한다.”
예수는 이방인들의 예리한 유머 감각을 기뻐했다. 시리아 여인 노라나의 믿음 뿐 아니라 유머 감각이 주의 마음을 움직였다. 예수는 한 때 토마스에게 있다. “내 민족은 자신들을 너무 심각하여 여겨 유머 감각이 없다. 바리새인들의 부담스런 종교는 유머 감각을 절대로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또한 일관성이 부족하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켜버린다.”
예수는 이 이방인들이 나타낸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크게 기뻐했다. 시리아 여인 노라나의 크고 집요한 믿음과 유머 감각이 주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의 자비에 호소했다. 한때 토마스에게 말했다: “내 민족은 자신들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 그들은 유머 감각이 거의 없다. 바리새인들의 고된 종교는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 사이에서 결코 비롯할 수 없다. 그들은 또한 한결같지 않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
* 사람 앞에서는 하루살이 하나까지 걸러 낼 정도로 깨끗하다는 자들이, 뒤로는 큰 짐승이자, 재산과 부(富)를 상징하는 낙타는 통째로 삼키는 위선을 꾸짖는 말.
3.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
156:3.1 6월 28일, 주와 동료들은 시돈을 떠나 헬두아까지 해안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방인들은 그들을 후하게 접대하였고, 가르치고 전도하는 이 주간에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더해졌다.
모두가 7월 6일 수요일에 시돈으로 돌아왔고, 일요일 아침까지 유스타의 집에서 머물렀다. 7월 11일 월요일에 두로(Tyre)에 도착했다. 이때가 되자 사도와 전도사들은 이방인 사이에서 일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 이방인들이 복음을 열심히 듣는 것을 지켜보고, 다수가 쉽게 믿음을 주목한 것은 사도와 전도사들에게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4. 두로(Tyre) 에서
156:4.1 7월 11일에서 24일까지 그들은 두로에서 가르쳤다. 사도들은 각자 전도사 한 명을 데리고 갔다.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고 하늘나라의 친교에 들어갔다. 예수는 요셉이라는 유대인 집에서 본부를 유지했다.
이 2주 동안, 날마다 사도와 전도사들은 알렉산더의 방파제의 길을 거쳐 두로로 들어갔고, 밤에는 대체로 남쪽에, 요셉의 집에 있는 야영지로 돌아오곤 했다. 주는 두로에서 한 번, 7월 20일 오후에 말씀했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하늘나라 복음에 너무 관심이 많아 멜카트 성전의 문이 그에게 개방되었다. 이 고대의 성전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기독교 교회 하나가 후일에 세워졌음을 기록하는 것이 흥미롭다.
두로의 많은 자주 물감 제조업자들이 하늘나라를 믿었다. 자주 물감은 두로와 시돈을 세계에서 유명하게 만든 물감이었다. 이들은 물감의 원료인 조개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람은 형제라는 소식을―하늘나라의 복음을―가지고 다녔다.
5. 두로(Tyre)에서 예수가 가르침
156:5.1 이 수요일 오후에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백합 이야기를 했다. “백합은 썩은 물질의 흙 속에 뿌리를 내리지만, 눈 같이 흰 꽃송이를 피운다. 이와 같이 사람도 동물적 기원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믿음으로 영적 본성을 끌어 올릴 수 있으며, 영의 고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예수는 자기 직업인 목수일과 관계있는 비유를 사용했다. “고귀한 성품의 영적 성장을 위한 튼튼한 기초를 세우라”고 훈계하는 과정에서 말했다. “영혼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영에서 태어나야 한다. 또한 영이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영의 가르침을 받고 영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벌레 먹어 안에서 썩은 목재를 측정하고 부드럽게 하여 건물의 기초로 쓰려는 어리영적 성품은 이처럼 필사 지성을 변화시키고, 다시 만들어진 그 지성과 결합하여, 불멸의 운명을 가진 혼을 생성한다. 너희의 영적 성품―합동으로 창조된 혼―은 살아 있고 자라는 것이지만, 개인의 지성과 도덕률은 그 토양이며, 그로부터 인간을 발전시키고 신성한 운명을 가진 이러한 높은 명시가 솟아나야 한다. 진화하는 혼이 담긴 그 토양은 인간답고 물질이지만, 지성과 영을 통합한 이 사람의 운명은 영적이고 신성한 것이다.”
이날 저녁에 나다니엘이 물었다. “주님,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실 분이 아님을 압니다.” 예수가 대답했다:
“우리 조상들은 항상 하나님을 선과 악, 양쪽을 연결 지었다. 하나님이 모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파라오의 마음을 모질게 했다고 생각했다. 선이거나 악이거나, 어떤 일을 강렬히 하고 싶을 때, 사람은 ‘주가 내게 이것을 하라 했다' 하거나 '주가 내게 어디로 가라 말씀하셨다’ 라고 자기 감정을 언급하며 설명하는 습관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너무 성급히 유혹에 빠지게 되었다. 너희에게 충고하고자 한다. 유혹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 정직하고 진지하게 인식하는 한편, 표출하고 싶은 영ㆍ지성ㆍ육체의 에너지를 더 이상적인 목표와 깊은 기도를 통해 방향을 전환해 보라. 필사자의 봉사를 가장 높은 형태로 유혹들을 전환시킬 수 있다.
“우월한 욕망으로 약한 의지의 인간을 다스리려는 어리석음에 대해 경고한다. 못되고 낮은 성질의 유혹을 참으로 이기고 싶으면, 너희가 유혹이라고 인식하는 행동, 낮고 이상적이지 못한 이 행동 버릇을 버리고 너희의 지성이 대신 얻고 싶어 하는, 높고 더 이상적인 행위 형태에 실제 관심을 갖고 영적으로 유리한 장소로 너희가 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진리의 사랑에 비추어진 아름다음이 강하다. 새롭고 진지한 영적 에너지에 강력한 힘이 있다. 악으로 극복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 그 악을 이겨야 한다.”
156:5.6 밤이 깊도록 사도와 전도사들은 계속 질문했고, 현대 표현으로,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강력한 야망, 지적 판단력, 노련한 지혜는 물질적 성공의 필수 요소이다. 리더쉽은 타고난 능력과 신중함, 의지력과 결단력에 달려 있다. 영적인 운명은 믿음과 사랑, 진리에 대한 헌신, 즉 의로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내고, 그와 같이 되려는 욕구에 달려 있다.
너희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것을 발견하고 낙심하지 말라. 인간의 본성은 악을 지향하지만 본질적으로 죄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 네가 잊지 못하는 잘못은 영원 속에서 잊혀 진다. 네 생애가 우주에서 장거리라는 관점을 빨리 인식하고 네 혼의 짐을 가볍게 하라.
불완전한 지성과 육체의 의지에 따라서 혼의 가치를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단 하나의 불행한 인간적 사건의 기준으로 그 혼과 운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너의 영적 운명은 오직 너의 영적 열망과 그 목적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종교는 하나님을 아는 진화하는 사람의 독점적인 영적 체험이지만, 도덕적 힘과 영적 에너지는 어려운 사회 상황에 대처하고, 복잡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힘이다. 이 도덕적ㆍ영적 자질은 모든 인간을 풍요롭고 더 의미있게 만든다.
156:5.11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너희는 옹졸하고 초라한 인생을 살도록 정해져 있다. 사람의 본질에 사랑이 적을수록 사랑의 필요는 커지고, 신의 사랑은 그것을 채우려고 더욱 애쓴다. 사랑은 결코 자아를 찾지 않으며, 자신에게 줄 수 없다. 신의 사랑은 스스로 억제할 수 없으며, 그 사랑은 사심 없이 남에게 주어야 한다.
하늘나라 신자들은 의의 승리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늘나라 건설자들은 영원한 구원의 복음의 진리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예배의 교통을 통해 영으로 새로워지고, 영감 받은 지성으로 혼을 새롭게 하면서, 급한 삶에서 벗어나 물질적 생활의 괴로움을 피하는 방법을 점점 더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불행에 닥쳐 낙심하거나 실망으로 기가 꺾이지 않는다. 영적 인생을 사는 자는 물질세계의 사건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참 신자는 날마다 바른 일 하기가 더욱 수월해짐을 발견한다.
영적인 생활은 참된 자존심을 키운다. 하지만 자존심은 자기 예절이 아니다. 자존심은 항상 동료들의 사랑과 봉사에 일치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을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날이 갈수록 모든 참된 신자는 영원한 진리의 사랑으로 동료들을 사랑하는데 더욱 능숙해진다. 너희는 어제보다 오늘 더 인류에게 선함을 드러내느냐? 작년보다 올해 더 의를 권장하는 사람이 되느냐? 갈급한 혼을 영의 나라로 인도하는데 너의 기법이 더 늘어나고 있느냐?
156:5.16 너희의 영적 시민권은 하늘에 있지만, 육체를 입은 너희는 아직 땅의 나라의 시민이다. 물질인 것은 시저에게 돌리고, 영적인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
진화하는 혼의 영적 능력을 재는 척도는 진리에 대한 너의 믿음과 인간에 대한 너의 사랑이다. 그러나 인간 성격의 힘의 척도는 원한을 품지 않는 능력이요, 깊은 슬픔을 속 끓이지 않고 견디는 능력이다. 패배는 참된 자아를 정직하게 볼 수 있는 진정한 거울이다.
너희는 문제 있는 필사자를 다루는데 재치가 더 늘어나면서 완고한 동료들에게 더 관대해지느냐? 재치는 사회적 버팀목이요, 위대한 혼의 특징은 관용이다. 지혜로운 혼들은 정서적 적응의 결여로 고통 받는 사람들,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은혜로운 성장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피할 수 있다.
진리 전파와 복음 선포의 모든 노력에서 정직하지 못한 것과 공정하지 못한 것을 피하라. 땀 흘리지 않고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마땅치 않은 동정을 바라지 말라. 신과 인간의 자원으로부터 아낌없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라. 명예와 칭찬은 너에게 속한 것만 정직히 구하라.
하나님을 인식하는 필사자는 확실히 구원받는다. 그는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정직하고 한결같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알며,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칠 때 불평하지 않는다.
156:5.21 참된 신자는 좋은 일을 함에 있어 벽에 부딪칠지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어려움은 진실을 사랑하는 자를 돋보이게 하며, 한편 장애물은 하늘나라를 세우려는 용감한 자를 도전하게 할 뿐이다.
그리고 두로를 떠나려고 준비하기 전에 예수는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두로를 떠나기 전날에, 예수는 동료들을 불러 모으고 열두 복음 전도자들에게 열 두 사도들과 다른 경로의 길을 가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예수를 떠난 뒤에 전도사들은 결코 다시 그렇게 가까이 주와 함께 지내지 못했다.
6. 페니키아에서 돌아오다
156:6.1 7월 24일 일요일 정오 예수와 열두 사도는 프톨레마이스로 내려가서 하루를 묵었고, 다음날 저녁에 베드로가 신자들에게 설교했다.
화요일에 프톨레마이스를 떠나서, 티베리아스 길을 경유하여 요타파타 가까운 곳까지 내륙으로 동쪽으로 갔다. 금요일에 라마에서 모임을 가졌고 안식일 동안 남아 있었다. 31일 일요일에 스불론에 이르렀고, 그날 저녁에 모임을 열었으며, 이튿날 아침에 떠났다.
스불론을 떠나.. 갈릴리 호수의 서쪽 해안에 가버나움 남쪽에 있는 게네사렛으로 갔다. 거기서 다윗 세베대와 만나기로 전에 약속했는데, 거기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과제에서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에 관하여 의논할 생각이었다.
다윗과 회의하는 동안에, 호수 맞은편에 많은 유지가 모인 것을 알게 되었다. 주가 한때 5천 명을 먹인 곳에서, 사흘 동안 쉬고 회의를 열었다. 약 5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가버나움과 그 부근에서 살던, 한때 허다했던 신자 무리의 나머지였다.
예수가 페니키아에서 머무른 동안에, 적들은 그의 운동 전체가 소탕되었다고 보았다. 그의 가르침에 대한 반대도 거의 가라앉았고, 신자들은 다시 한 번 공개 모임을 열기 시작했다. 큰 시련을 통해 단련 받은 신자들끼리 점점 효과적 단결이 생기고 있었다.
156:6.6 헤롯의 형제 빌립은 건성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고, 주가 그의 영토 안에서 자유롭게 살고 일해도 된다는 말을 보내 왔다.
유대 민족의 회당 문을 예수에게 닫으라는 명령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많은 회당 지도자가 아브너와 동료들에게 몰래 회당을 열기 시작하고, 이 선생들은 요한의 추종자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헤롯 안티파스도 그가 갈릴리에서 예수를 체포하라는 영장에 서명했지만, 페레아에서는 그를 체포하라고 허가하지 않았다는 말을 보내왔다. 따라서 갈릴리 바깥에 남아 있으면 예수를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리켰다. 그는 바로 이 판결을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알렸다.
이것이 서기 29년 8월 1일 무렵의 형편이었다. 이때 주는 이 한 해 동안에 시험받고 흩어진 전도단을 다시 조직하기 시작했다.
주와 동료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의 종교 선언을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쟁의 쟁점은 명백하게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