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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승천하심(3)
마가복음 16장 19-20절
- 예수님의 승천과 남아 있는 제자들 -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 할 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복음서 기자의 예수 승천에 대한 기록
본문에서 상반절(19절)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승천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땅에 계시면서 여러 번 사도들에게 나타나 친히 부활한 자신의 몸을 보이며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실한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행 1:4-5)
예수님이 승천하신 기록은 본문과 함께 두 군데 더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하늘로 올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눅 24:50-53)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6-10)
사도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하심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가 되어 자신을 사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베다니 근처에 있는 감람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모인 사도들은 마침내 예수께서 일을 시작하시려는가 보다 라고 하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 때가 지금입니까?” 사도들은 이때까지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무엇 때문에 있는 일인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일과 부활하신 일은 선지자들이 그분에 대해 예언한 모든 성경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일로서 있는 일이며,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 그러니까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고 돌아오는 사람은 죄 용서함을 받는다는 이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도들은 이 예언들이 이루어진 것을 목격한 증인들로서 이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어 그들과 함께 하시고 능력을 입혀주어 그들이 알고 있는 복음을 능력 있게 증거하도록 하여 모든 족속을 제자 만들도록 하겠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마 28:16-20; 눅 24:44-49). 이때까지도 사도들이 예수님께 고대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을 언제 로마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인가? 그래서 언제쯤이면 이스라엘이 자주 독립 국가가 되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 속에서 평화를 누릴 것인지, 거기에 자기들은 어떤 일을 맡아 종사하게 될 것인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의 질문에 “너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있는 일로서 아버지께서 정해두셨으니 아버지께서만 아신다. 그러니 그 문제는 너희가 알고자 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너희들이 알고 있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받게 하는 일이다. 이제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성령이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되어(성령의 능력의 입히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승천을 앞두고 전에 말씀하셨던 성령을 보내주실 것과 성령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을 다시 말씀해 주셔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 그래서 사도들이 어떠한 사람으로 살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주의 사자의 지시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사도들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보는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시더니 이내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그 모습을 사도들이 놓치지 않고 보려고 자세히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여기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가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너희들이 본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주의 사자의 이 말은 사도들이 보는데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그들이 본 바와 같은 동일한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이니 너희들이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 예수께서 주실 성령, 곧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의 오심이 있으니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령의 오심을 위해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 성령 받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성령의 오심을 위하여 찬양하며 기도하는 제자들
주의 사자의 이 말이 있자 사도들은 예수께 경배를 드린 후에 기쁨이 넘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령이 오시기까지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기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 12-15절에 의하면 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을 만큼 떨어져 있는 거리 - 안식일에 걸어갈 수 있는 여행 거리는 2,000 규빗이다. 한 규빗은 45cm이므로 900m 정도가 된다 - 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그들이 머물고 있던 다락(2층방)에서 열 한 사도, 그리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던 두 동생(참조. 막 3:21,31)과 그리고 이들을 포함하여 120명에 이르는 많은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령의 오심을 위해 기도에 힘쓰며, 이 모든 일을 섭리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있고서, 비로소 사도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성령의 오심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성령의 오심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데까지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 깨달아 아는 데는 좀 더 시기와 하나님의 섭리가 필요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아 흩어짐과 그들에 의한 각 지역의 전도, 집사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의 전도, 사울의 개종과 사도로 세움을 받음, 베드로의 환상과 고넬료 가정의 예수 영접 등입니다. 그러니 아직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의 구주 정도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자기들과 함께 계시면서 구원의 일을 하시며, 온 땅에 복음을 증거케 하신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은 상당한 발전이었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 인식하고 있는 기초적인 지식의 믿음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 후 성령강림에 의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해하는 단계까지 발전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한 이해는 그들로 하여금 성령의 오심을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나아가 성령이 오신 이후의 사도들의 복음 이해와 믿음은 성경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온전함’에 있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제자들
사도들은 다른 많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찬양하면서 성령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성령께서 하실 일에 대한 순종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 땅에, 사마리아 땅에, 온 땅에 복음을 증거케 하실 성령께 순종하여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서 복음을 증거 할 삶을 살고자 하는 찬양과 기도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과연 승천하실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자들을 모든 족속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로 만들고, 그에 대한 표적으로 세례를 주고,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가르침을 주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충성되게 살도록 하였습니다.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
예수님의 제자된 오늘의 우리는 사도들이 과연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온 땅으로 나가 성령의 은혜를 입고 그 인도하심을 좇아 증인의 삶을 산 복음과 그들이 믿은 믿음의 동질 수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사도들이 깨달아 알고 믿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사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1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요 15:26-27),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시리라”(요 16:13)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전에 말씀하셨던 모든 진리에 관하여 생각나게 하시며 깨달아 알게 하여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십니다. 그래서 진리 안에 있으며, 진리를 행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째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지를 알게 하시고 그에 대한 믿음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며 살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의 권능)에 있는 제자 - ‘그리스도의 교회’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기록을 보면서, 다시 오실 예수의 재림 신앙 안에서 사는데, 예수님이 언제 오실까 하며 그 고대 속에서 예수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서 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자로서 성령이 하실 일의 뜻을 좇아 받들어 성령이 하실 일을 하는 것에 의해서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성령의 함께 하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는 권능에 항상 충만하여 있는 우리입니다. 여기에 언제든지 충만하지 못할 수 있고, 그래서 성령께서 능력 있게 행사하지 못할 수 있는 우리가 아니라, 언제든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그 증거에 권능을 행사하시는 성령 충만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권능있게 일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구원받아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아 그분을 믿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합니다(요 4:31-36).
그러한 성령 충만한 우리임에도 우리네 교회의 모습을 보면 성령의 임재와 그에 따른 내주하심, 그리고 이로 인한 성령 충만을 이원화 하여서 분리함으로 성령께서 함께 하심에 있으면서도, 그래서 성령으로부터 오는 믿음 충만, 성령으로부터 오는 지혜 충만, 성령으로부터 오는 권능 충만, 성령으로부터 오는 은혜 충만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성령 충만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성령 충만해 달라고 몸부림쳐 구하는 기도에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함께 하시는데 그분이 충만하지 못하신 분으로 계신 때가 있을 수 있는지요. 그래서 그분으로부터 오는 믿음, 지혜, 권능, 은혜의 충만에 있지 못한 때가 있을 수 있는지요. 우리가 충만히 믿음 있게 살지 못했다고 해서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충만히 지혜 있게 살지 못했다고 해서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충만히 권능 있게 살지 못했다고 해서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충만히 은혜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고 해서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성령 충만해 있지 못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열심히 성경을 읽는 일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성령 충만해 있지 못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전보다 전도를 더욱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성령 충만해 있지 못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교회 이런 저런 일에 봉사하는 것에 예전만 못하다고 해서 성령 충만해 있지 못한 것이 아니며, 그와 같이 우리가 이런 저런 모습에 믿음 있게 있지를 못하다고 해서 성령 충만해 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것에 어느 때보다 더욱 열심을 내며 있든지 또는 그렇지 못하든지 간에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습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든지 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은 항상 충만하신 분이시며, 우리는 그 성령으로부터 오는 믿음, 지혜, 권능, 은혜 충만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상태와 그 모습 여하에 의해서 성령 충만하기도 하고 성령 불충만하기도 하는 등 성령이 그렇게 달라지는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항상 충만하신 분으로서 그 성령으로부터 오는 믿음에, 지혜에, 권능에 그들을 두고서 그들이 처한 어떤 여건 속에서도 그들을 위한 구원에 온전에 있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은 믿음이, 지혜가, 권능이 충만하여 우리를 믿음과 지혜와 성령의 권능의 도우심에 두시고서 온 세상에서 하나님이 택정하신 백성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불러 모으심으로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을 해 나가시는데 온전하십니다. 성령 충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성령은 모든 믿는 자들의 구원에 온전하신 분으로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아 맡은 복음을 증거함으로 전파해 나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이 있게 하고 지혜와 성령의 권능의 도우심이 그 말하는 것에 있어서 믿는 자들을 더하심으로 구원의 수에 충만케 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장성한 분량에 자라감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온전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의 상태 여하에 의해서 충만하여 있거나 전혀 그렇지 못해서 그럴 때마다 구하여 충만히 받아 채워야만 하는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상태 여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한 성령을 우리는 우리의 상태의 모습 여하에 의해서 충만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성령 충만하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은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을 부정하는 것이요 부인하는 행태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언제 충만하지 않은, 충만하지 못한 그런 분으로 계신 적이 없으며, 그런 분으로 계시는 적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이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을 지배하시는 성령의 권능 속에 두시고서 그들에게 권능을 행사하여 나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나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시작해서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가는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도들은 말이죠. 이 일의 증인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유대에서,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온 세상에 성령께서 어떻게 자신들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백성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르심으로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을 권능있게 행사하시며, 또한 멸망하기로 정하신 자들을 어떻게 죄에 굳게 가두어 두고서 이를 심판해나가심에 권능 있으신지를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권능을 행사하심을 자신의 권능 속에 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하십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세상의 마지막이 오는 그 날이 이르기까지 성령께서는 자신의 권능 속에 두시고서 그들을 다스려 가십니다. 성령의 지혜, 권능, 믿음, 은혜에 그들을 두시고서 그들을 능력 있게 이끌고 나가심으로 그들의 삶이 성령의 권능 속에 있게 하십니다.
이 성령의 권능에 의해서 예루살렘에서도, 온 유대에서도, 사마리아에서도, 그리고 온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린 사통팔달의 로마에서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로 심히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것이 말이죠. 구약성경을 통해서, 구약 선지자를 통해서 항상 예언하여 알게 해 주신 하나님의 뜻의 성취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닌 권능으로 세상 모든 나라를 멸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새롭고 영구한 ‘한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우뚝 세우시는 일을 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 의해서 세상 나라 모두는 완전히 무너져 멸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만이 우뚝 서서 그곳으로 불러내신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함께 하는 참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 나라’의 ‘그 날’이 오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인 성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 보내신 성령의 충만에 있습니다. 이 성령께서 어떻게 권능있게 일해 나가셨는지를 데살로니가교회는 잘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데살로니가에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곳에 있는 하나님이 택정하신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들이 죽어 있든지 살아 있든지 간에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닌 구원의 능력에서 알고 있는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지 않고 큰 관심을 가지고 듣고 또한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이 진리라는 강한 확신을 주시는 성령의 권능 속에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러함은 많은 환란 가운데서 되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환란 가운데서도 성령께서 주신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서 사도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며,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자신들이 섬겨왔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김에 있으면서 자신들이 이 일에 있게 된 것을 오히려 사도 바울과 그를 따르는 일행에게 말해 줄 정도였으며, 또한 이들은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다시 오실 날을 열망하며 그 열렬한 기다림에 굳게 있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자신들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하여 주실 유일한 구주이심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교회에 있는 믿음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으며 그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온 지방에 데살로니가교회가 전한 주님의 말씀이 전파되어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음의 소문이 사도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그의 귀에 들려왔습니다(살전 1:2-10).
데살로니가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진 이러한 모범적인 믿음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 충만에서였습니다. 성령께서 주신 기쁨으로 그들은 많은 박해와 그 거세어지는 위협으로 생명의 위험을 받는 등의 시련으로 큰 슬픔 속에서도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그동안 섬겨 왔던 우상 숭배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자신들이 섬기는 그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망함 속에서 기다림으로 있으면서 믿음을 지켜나가기가 참으로 힘든 자신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을 잘 이겨나갔습니다. 어떻게 데살로니가교회에 이러한 믿음이 있었는가요? 다른 교회와는 다른 뭔가 특별하기 때문이었는가요?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 이들의 주께서 하늘의 보좌에 앉으시고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교회를 성령의 권능에 두시고서 다스려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처럼 세상 끝날까지 성령 충만에 있으며 성령으로부터 오는 믿음과 지혜와 권능에, 성령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도우시며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은혜 속에 두시고서 음부 -죽음 - 의 권세가 결코 그들의 생명을 빼앗지 못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참되고 영원한 생명이 죽음을 삼킴으로, 그 ‘이긴 자’의 권능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이긴 자’와 함께 또한 ‘이긴 자’로 있게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교회의 운명, 곧 그리스도인의 운명은 성령으로부터 결코 떠나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힌 자로서 이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의 생명이 성령과 함께 하고 있는지를 말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믿는 자의 주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 세상에 선양(宣揚)할 것입니다.
승천하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있게 될 일인 성령을 보내실 것과 또한 자신이 다시 오실 것임을 알려줌으로 이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의 장래에 대한 소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자신들 또한 부활하여 예수님과 더불어 하늘로 올리우는 영광에 들어갈 것을 알기에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고 가는 성령께 다 맡기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자신들이 주께로부터 받아 맡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담대히 전하는 증거에 있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이죠.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곧 바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한 다락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많은 제자들과 함께 모여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마침내 약속으로 주신 성령 강림 후에는 온전히 복음을 증거하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대로 증인의 삶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