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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뛰어난 재능과 아주 평범한 싸움
그때부터 모모의 형편은 좋아졌다. 어쨌든 그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정에 따라, 마을 사람들의 여유에 따라
넘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언제나 먹을 것이 있었다. 집이 있고, 침대가 있고, 쌀쌀한 날씨에는
난로에 불도 땔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긴 것이 가장 좋았다.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것은 모모에게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모모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마을 사람들 역시 모모를 만난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모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전에 그 아이 없이 어떻게 지낼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이 작은 소녀가
그들 곁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녀는 더욱 더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모모의 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모모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앉아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모가 필요하지만 직접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은 모모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아직 모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이 말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으레 하는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하시는 일이 모두 잘 되길 빕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지!” 같은 말을 하듯이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모모가 누구에게나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을 만큼 똑똑하기 때문에?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모모는 이 세상 모든 아이가 그렇듯이 그런 일을 잘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모모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어떤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이를테면 노래를 잘 한다든지, 악기를 다룰 줄 안다든지? 혹시
서커스단에 있었던 적이 있어서 춤을 추거나 곡예를 할 줄 알았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문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모모에게 말을 하다 보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도 어느덧 거침이 없는 대담한
사람이 되었다. 불행한 사람, 억눌린 사람은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내 인생은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모모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이웃이면서도 죽자 사자 한바탕 싸우고 난 뒤로 서로 말도 하지 않던 두 남자가 원형극장으로 모모를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이웃끼리 서로 원수로 지내는 것은 옳지 않으니 한 번 모모에게 가 보라고 권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마지못해 충고를 따랐다.
이렇게 해서 극장에 온 두 사람은 각각 원형극장의 돌좌석 다른 편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그들은 철천지원수마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하게 앞만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모모의 “거실” 에 난로를 놓아 주고, 예쁜 꽃그림을 그려 주었던 미장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미장이는 끝을
꼬아 올린 검은 수염을 기른 힘센 장정이었고, 이름은 니콜라였다. 다른 사람의 이름은 니노였다. 니노는 바싹
마른데다가 언제나 약간 피곤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도시 변두리에 조그만 술집을 세내어 운영하고 있었다. 고작 노인
몇몇이 포도주 한 잔을 시켜 놓고 밤늦게까지 앉아 지나간 추억을 이야기하는 그런 술집이었다. 니노와 그의 뚱뚱한
아내 역시 모모의 친구였다. 그들은 맛있는 것을 들고 종종 모모를 찾아오곤 했다.
모모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잔뜩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누구한테 먼저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모모는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두 사람에게서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석조 무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모모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일들은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화가 잔뜩 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니콜라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가 봐야겠다. 여기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의를 보여 준 거야. 하지만 모모, 너도 봤지? 저 사람은 끝내 자기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이런 판에 더 오래 기다릴 이유가 어디 있겠니?”
그러면서 니콜라는 정말 가려고 몸을 돌렸다. 니노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래, 갈 테면 가 봐! 자네는 여기 올 필요도 없었어. 난 사기꾼과 화해할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야.”
니콜라는 몸을 돌렸다.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으르렁대면서 다시 돌아왔다.
“도대체 누가 사기꾼이라는 거야? 다시 한 번 말해 봐!”
니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 주지! 힘이 세고 성질이 사나우니까 아무도 자네에게 바른 말을 못 할 줄 알지? 하지만 난 달라.
나는 자네에게, 또 들을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바른 말을 할 수 있네. 자, 어서 와서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내 목을 졸라 보지 그래!”
니콜라가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쳤다.
“내가 정말 그랬다면 아무 소리 안 해! 하지만 모모야, 저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거야. 완전한 중상모략이지. 난 그냥
저 친구 옷깃을 움켜잡아 술집 뒤에 있는 시궁창에 던진 것뿐이란다. 쥐새끼도 거기 빠져 죽진 않아.”
그러고는 니노 쪽으로 몸을 돌려 소리쳤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자넨 멀쩡하게 살아 있군 그래!”
한동안 거친 욕설이 오갔다. 모모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왜 서로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니노가 손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니콜라의 따귀를 때렸고, 그래서 니콜라가 니노를 시궁창에 메다꽂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니노 말로는, 니콜라가 먼저 니노의 그릇을 몽땅 박살내려고 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니콜라가 씩씩대면 반박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맥주잔 하나를 벽에다 던졌을 뿐이야. 게다가 어차피 그 잔은 금이 가 있었다고!”
니노가 대꾸했다.
“그래도 그 잔은 내 잔이야. 알겠어? 자넨 그런 짓을 할 권리가 없어!”
하지만 니콜라는, 니노가 미장이로서 그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권리가 있었다고 했다. 니콜라는
모모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아니? 글쎄, 내가 밤낮으로 술에 취해 있어서 담을 똑바로 쌓을 수 없다는구나. 우리
증조할아버지도 그랬다는 거야.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피사의 사탑 공사에 참여했을 거라나.”
니노는 대답했다.
“하지만 니콜라, 그건 농담이었어.”
니콜라는 화를 내며 말했다.
“멋진 농담이군 그래! 난 그런 농담을 듣고 웃을 순 없네.”
그렇지만 니노가 그런 농담을 했던 이유는 니콜라가 기분 나쁜 농담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곧 밝혀졌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니노의 집 대문에 선명한 빨간색 페인트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이 술집 주인이 된다.” 니노는 그것을 농담으로 생각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앙갚음을 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은 두 가지 농담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멋진 농담인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더니 다시 화가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싸움을 뚝 그쳤다.
모모는 눈이 둥그레져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그 눈길의 의미를 해독할 수 없었다. 저 아이가 마음속으로
우리들을 우습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슬퍼하는 걸까? 모모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갑자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 듯이 부끄러워졌다.
니콜라가 말했다.
“좋아, 자네 집 대문에 그런 말을 쓰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니노, 자네가 손수 포도주를 한 잔만 따라
주었어도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거네. 이치가 그렇잖아, 안 그런가? 나는 언제나 꼬박꼬박 돈을 지불했으니 말일세.
자네가 나를 그렇게 대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네.”
니노가 맞받아쳤다.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성 안토니우스 일은 잊어버렸나? 흥, 얼굴이 해쓱해지는군! 자넨 날 철저하게 속였어. 그런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니콜라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기 이마를 쳤다.
“내가 자넬 속였다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네가 날 속이려고 했잖아. 물론 성공하진 못했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사정은 이랬다. 니노의 작은 술집 벽에는 성 안토니우스를 그린 천연색 그림이 걸려 있었다. 니노가 언젠가
잡지에서 오려 내어 액자에 끼운 그림이었다.
어느 날, 니콜라가 마음에 든다면서 니노에게 그림을 사겠다고 했다. 니노는 솜씨 좋게 흥정을 해서 니콜라가 그림값으로
라디오를 내놓게 만들었다. 니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니콜라가 손해를 보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결국 거래는
성사되었다.
하지만 그림과 마분지로 된 액자 뒷면 사이에 지폐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니노는 전혀 몰랐던 돈이었다.
이제 그가 속아 넘어간 꼴이 되었다. 화가 난 니노는 니콜라에게, 돈은 흥정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 돈을 돌려달라고
단호하게 요구했다. 니콜라는 그 요구를 거절했고, 그 후 니노는 니콜라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야기가 사건의 발단까지 거슬러 올라가자 두 사람은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먼저 니노가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보게, 니콜라. 흥정을 하기 전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나, 몰랐나?”
“물론 알았지. 그렇지 않다면 어느 누가 그렇게 손해나는 흥정을 하겠나?”
“그렇다면 인정하게. 자네가 날 속인 거야.”
“왜? 정말 돈이 있다는 걸 몰랐나?”
“몰랐어. 맹세하지!”
“좋아. 그래도 자넨 날 속일 마음이 있었던 거야. 어떻게 그런 허섭쓰레기 같은 신문지 조각으로 내 라디오를
차지할 생각을 할 수 있나, 응?”
“그런데 자넨 어떻게 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나?”
“이틀 전에 한 손님이 성 안토니우스에게 바치는 헌금으로 그곳에 돈을 끼워 넣는 걸 보았네.”
니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많았나?”
니콜라가 대답했다.
“더도 덜도 않고 꼭 내 라디오 값에 상당하는 액수였네.”
니노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싸움의 진짜 원인은 내가 잡지에서 오려낸 성 안토니우스 때문이었군 그래.”
니콜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렇지. 원한다면 그림을 돌려주겠네, 니노.”
니노가 위엄 있게 대답했다.
“천만에, 그럴 필요 없네! 바꾼 건 바꾼 거야! 대장부끼리 한 약속은 지켜야지!”
여기서 두 사람은 동시에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돌계단을 내려와 풀이 웃자란 둥근 마당 가운데서
얼싸안고 상대방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고는 모모를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고맙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다. 모모는 오랫동안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모모는 자기 친구인 두 사람의
사이가 다시 좋아져서 마음이 정말 흐뭇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조그만 사내아이 하나가 모모에게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는 카나리아 한 마리를
가져왔다. 이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모모는 일주일 내내 카나리아에게 귀를 기울였고, 드디어
카나리아는 즐겁게 지저귀기 시작했다.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밤이면, 모모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옛 원형극장의
둥근 마당에 혼자 앉아 거대한 정적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곤 했다.
그러면 모모는 별들의 나라를 향해 열려 있는 거대한 귓바퀴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나직하지만 웅장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밤이면 모모는 유난히 예쁜 꿈을 꾸었다.
아직도 귀 기울여 듣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모만큼 잘 할 수 있는지
한 번 직접 시도해 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