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에 들어오는 설악의 전모 (2015.6.2 설악산 서부능선 귀때기청봉 산행기
위치: 강원도 인제군 북면 내설악
코스: 한계령~귀때기청봉(1580m)~서북능선~대승령~장수폭포~장수대
이 코스는 8~9시간 걸리는 긴 코스
한계령 입구에 도착한 건 9시.50분쯤 산악회 관광버스가 몇 대 있다.
초입부터 계단 길로 출발하여 지루한 깔딱 고개가 이어진다.
설악은 아무나 산에 들여 놓칠 않는 것 같다. 처음부터 힘을 빼내 인내를 실험이라도 하듯.
그래도 숲으로 우거진 산행 길은 햇빛이 들지 않아 거친 호흡을 시원하게 했다.
나무 사이로 군데군데 드러나는 설악 기암들은 흘러내리는 육수의 보람을 더했다.
능선 길까지는 물2통 중 1통을 비울 만큼 고행이었다.
산행의 진미를 모르는 신참들은 “이 더운 여름에 배낭 짊어지고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투정을 부린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며 산행은 곧 인생이다”라고.
산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땀 흘리며 올라가는 산행 길은 인생의 20대와 30대다.
능선상의 성숙한 관망의 산행은 삶의 절정에서 구가하는 인생의 40대와 50대다.
그리고 모든 기쁨을 누리고 꺾어질 수밖에 없는 산행 길은 삶을 마무리하면서 관조하는, 한번의 실패는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리는 인생의 60대와 70대다.
산행은 우리에게 인생의 자유와 평등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한없는 자연에 마음껏 파묻힐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주는 대신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기쁨과 행복은 없다는 냉엄한 평등을 가르쳐준다.
산행은 우리에게 겸손하게 살아갈 것을 혹독하게 경고한다. 마음이 급하거나, 허풍을 떨거나,
무소불위의 건방을 떨거나, 산을 자기의 잣대로 불경스레 우습게 보거나, 소기의 목적을 위해서
산을 이용하거나 하면 산은 우리에게 치명타를 날린다. 노자 도덕경의 ‘天地不仁’의 교훈 그대로다.
어느새 인내와 고행의 시간을 보내고 70대인 나는 능선에서 우뚝 올라섰다. 산정상 귀때기청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은 너덜바위 군락지다.
산은 눈에 보이는 정상도 호락호락 허락하질 않는다. 마치 연애도 없이 바로 여자를 탐하려는 성급한 사내한테
몸부림치는 처녀처럼. 이런 엄청난 바위덩어리들을 정상에서부터 들이부은 것이다.
길은 이 바위덩어리들을 하나하나 밟고 가는 길뿐이다.
나무 하나 없는 툭 터진 뙤약볕. 썬텐도 안 바른 뒷목이 따갑다.
그러나 강렬한 태양의 고행 속에 자연은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너덜바위 군락 길 우측을 보라. 아~! 한 눈에 들어오는 설악의 전모!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서서 합장하며 울고 싶었다.
설악 서북의 진면모를 그대로 웅변하고 있다. 저 멀리 중청과 대청봉, 기나긴 공룡능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용아장성! 위대한 조각예술가의 치밀한 손놀림으로 버무려놓은 장대한 테라코타!
능선 길 좌측은 고사 목 군락지. 나는 목이 아팠다. 좌측보고 우측보고. 가운데 능선을 중심으로
좌측 전경과 우측 전경은 정서가 판이하게 틀리다.
하나가 남성이라면 하나는 여성, 하나가 體라면 하나는 用, 하나가 白이라면 하나는 綠, 하나가 록이라면 하나는클래식.....
나는 사실 이걸 보러 여기 왔다. 나는 귀때기청봉 정상(1580m)에 한참 머물렀다.
카메라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의 영상에 이 전경을
조각질하여 새겨두자.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어도 이 영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정상을 한참 벗어난 나무그늘 밑에서 나는 도시락을 까 먹었다. 참으로 꿀맛이로다 꽁꽁 싸둔 물1병을 천천히 먹었다.
내 인생의 70대의 향유는 순탄히 지속되질 않는다. 대승령까지의 서북능선은 오르락내리락 또 한번의 시련이다.
그러나 정상을 밟고 난 여유의 시련이라 흠향과 달관의 여로다. 숲길 사이로 빼꼼이 고개 내민 설악 절경은
자유를 향유하는 나그네 길에 축하의 꽃다발 같은 것. 이 세상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죽고 마는 것.
어차피 내려갈 수밖에 없는 길. 산행 길은 많은 상념들을 되새기게 하며 나그네 뒷모습을 쓸쓸하기 그지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