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는 현대적인 건물로 조성된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있다.
다수의 부산시민들은 센텀시티는 옛 수영비행장(부산국제공항)을 재개발한 것과 수영만을 매립하여 마린시티를 만든 것은
알지만 센텀시티가 비행장 이전에 골프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사진 1) 해운대골프장 표시 부산동래해운대안내도 (출처 : 부산관광안내도1939년 발행)
오래전 센텀시티는 수영강 북쪽 연변에 있는 평야지대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이곳에 도착한 스쯔키(鈴木) 성을 가진 일본인은 복숭아, 포도, 배 등을 재배하는 과수원을 개발하였다.
이 과수원은 하사마 후사다로(迫間房太郞) 등 부산의 일본인 거부들이 1934년7월15일 동해남부선 철도가 해운대까지 개통되면
서, 해운대지역이 관광지로 떠오르자, 이 지역을 구입하여 9홀을 갖춘 해운대골프장으로 개장하였다.
이곳은 해운대온천장과 가까운 거리이기에 휴양을 즐기는 일본인이 많이 찾아서 회원이 130여명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해운대 중동 와우산의 부산CC는 1956년10월24일 개장했으며, 부산CC는 AID아파트에 와우산부지를 양도하고, 현재의
노포동으로 이전하여 1971년7월3일 재개장 하였다.)
(사진 2) 해운대골프장 (출처 : 조선해운대온천 1936년 발행)
이곳에 비행장이 만들어진 것은 태평양전쟁의 시작으로, 1940년부터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일본육군 해운대비행장을 우동
과 재송동 일대 37만여평에 건설하였다. 1944년7월에 비행장이 준공되었으며, 종전전까지 일본육군48항공지구사령부와 예하
부대가 주둔하였습니다.
광복후 1946년부터 미군정의 주관하에 수영비행장으로 호칭하면서 민간인 수송을 시작했고, 1948년10월30일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대한국민항공사(KNA)가 서울-부산 노선을 운항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이 비행장은 미군의 관할하에 K-9의 부호를 받았고, 1950년8월부터 임시국제공항으로 운영되었다. 종전후인
1953년12웡부터 국내선을 재개했고, 1958년1월30일 부산비행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63년9월30일 부산국제공항이
되었다가, 1976년8월에 현재의 김해국제공항으로 민간항공 운항은 이전되었다.
(사진 3) 1970년대초 부산국제공항 모습 (1960년대 초중반 사진으로 보입니다)
수영비행장은 부지 면적이 1,094,1331㎡에 활주로의 길이 2,012m에 폭이 45m로 최대 B-727기종까지 이착륙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착륙시 바다방향인 동쪽에서 활주로로 진입할 때 안전상의 문제로 비행장 동쪽 외곽을 지나는 현재의 APEC로의 교통
을 일시 차단시켰다.
또 비행장 동쪽해안은 모래사장이 1Km의 해수욕장으로 이용했으며, 물속에서 조개가 잡혔다. (사진 3)의 모습인 1970년대초
부터 해수욕장은 황폐화되었으며, 사진 하단 오른쪽 현재의 시립미술관 지역에는 육군의 운전교육대가 야전교장으로 사용
하기도 했었다. (끝)
위글은 "다음 부경문해 카페" 미카3 161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아래 사진 추가)
연대미상 동래온천장과 해운대(수영강변)골프장을 소개한 일제강점기 사진
뒤편 산세가 위(사진3)수영비행장 뒤편 산세와 비슷합니다.
1934년 수영 골프장.(수영비행장 자리)
1930년대 수영 골프장 (수영비행장 자리)
1930년대 수영 골프장 (수영비행장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