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취인이다] <1>20년 넘게 살던 축령산 우거를 서울에서 사업을 한다는 둘째 딸년내외
에게 사교장으로 빼앗기고 마석시내로 옮겨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꼭 한달 열흘이 됐다. 지긋
지긋하면서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던 자취생활이 또다시 시작됐다. 옛날 자취할 때는 양은
냄비밥에, 콩나물국, 연탓불에 구운 김한장, 어리울젓같은 것으로 한끼를 떼웠다. 그때에 비하면 지
금은 실버산업이 발달해서 자취하기가 아주 편리하고 재미도 있다. 가까운 마트에 가면 자취도구며
반찬이며 없는 것이 없다
학교시절 다른 친구들은 하교시간에 집이 있는 다운타운으로 몰려 가는데 나는 항상 공교롭게도 변
두리 자췻방으로 혼자 빠져나가는 형편이어서 외로웠다. 그러고 보니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자취생활의 살림도 항상 쪼들리고 옹색했는데 지금 시작한 자취생활 역시 옹색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
지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자취방이 마석시내 읍사무소 바로옆이어서 평생 처음으로 다운타운에
사는 셈이다. 읍사무소,김밥집,빵집,중국집,약국, 병원,세탁소, 은행모두 슬리퍼 끌고 가면 되는 거리다.
평생 처음 읍내에 사는 것 같다.
새로 시작하는 자취생활에 얼마나 쓰다가 죽을런지도 모르는 데 살림도구를 새로 장만한다는 것
이 몹시 망설여졌다. 마침 컴퓨터와 옷,이불보퉁이들을 싣고 자취방앞에 도착하니 자취방을 썼던
사람이 문간에 버리고 간 옷장들이 비교적 새것으로 남아 있었다. 옷장들에 붙어 있던 만원짜리
철거스틱커들을 살짝 떼어 버리고 내방으로 옮겼다. 큰 아쉬움을 덜었다. 탁자가 없어서 밥상을 탁
자로 쓰고 있었는데 마침 아침에 나가다 문앞에 판자로 대강 얼기설기 짠 식탁을 보았다. 역시 만원
짜리 철거스틱커를 떼버리고 내방에 들여 놓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일은 좁고 옹색한 방이지만 다정했던 친구들을 한 두사람씩 모셔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며 담소를 즐기는 것이다. 음식점에 가서 비싼 음식을 시켜 먹는 것 보다는 간단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경제적이면서 말년을 효과있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취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요즘은 친구
친구들의 얘가가 몹시 듣고 싶다.
자취방에서 가끔 밤잡을 설치는 때가 있다. 엽불을 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어느 선사가
읊었다는 글을 외운다.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마음만이라도 다짐하고 픈 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늘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내려놓고
산처럼 물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2017년 9월 20일 남양주 마석 자췻방에서 칠산>
첫댓글 팔순에 자취방이라 .... 낭만 가득하구만!!
식사가 아무래도 변변치 못할듯하여
우선 한상차려보내니 잘 드시게나....
칠산의 "나는 自炊人이다"^^^^반세기도 넘게 지난 세월, 어려웠지만 낭만이 있었던 학창시절을 회상하게 하는구려. 하지만 팔순에 이른 나이에 自炊生活이라니 좀 쓸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 탓인가 ?
자취라는게 식생활을 거르기 쉬운지라 건강도 잘 챙기시기 바라네.
칠산의 "나는 自炊人이다"^^^^반세기도 넘게 지난 세월, 어려웠지만 낭만이 있었던 학창시절을 회상하게 하는구려. 하지만 팔순에 이른 나이에 自炊生活이라니 좀 쓸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 탓인가 ?
자취라는게 식생활을 거르기 쉬운지라 건강도 잘 챙기시기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