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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477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용표(호롱불)
● 양 악 탑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전북)
명 칭 : 장수양악탑(長水陽岳塔)
지정일 : 1973.06.23일 지정
소재지 : 전북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 107
양악탑 전경
오늘은 조금멀리 출타하려한다 계북면에 있는 장수 양악탑을 답사할까 한다
떡본짐에 제사지낸다는 옛말이 있듯이 가는길 매산청풍의 시원한 바람 맞으며
주변에 장수의 인물 정인승박사 생가와 기념관도 둘러보고 토옥동 시원한 계곡에
발담아 심신을 힐링하고 송어로 유명한 양악송어장 들러 회포도 풀고 와야겠다
하늘은 푸르고 날씨가 넘좋다 그야말로 천고마비다 흥에겨워 어깨가 절로 흔들린다
달리는 차창으로 잠자리 날아들고 들꽃엔 벌들이 서로 경쟁하듯 향을 나르는구나
장계면 소재지를 지나서 무주, 계북 방향 19번국도로 달리다 보면 집재가 나온다
집재는 장계면과 계북면의 면계를 이루는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한다.
집재 : 집재는 장계면과 계북면의 경계선을 이루는 곳이다
해발 510M의 높은 지역이며 일명 호루룩재라고도 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재에 풍취라대(비단띠에 바람이 스치는 형국)라는 명당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루륵이란 이름을 붙인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달걀 장수가 달걀을 지고 이재를 넘다가 화적떼를 만났다 도망치려 했으나
화적떼에게 붙들려서 달걀을 빼앗기게 됐다 달걀 장수는 이 달걀은 원님에게 바쳐야
하는데 한개만 없어져도 곤장을 맞으니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으나 화적들은 막무가내로
달걀을 빼앗고 도리어 곤장까지 때려 쫓아 버리고는 달걀을 호루륵 거리며 깨어 먹었다 한다
또한 비탈길 옆에 사람모양을 한 도적바위에는 이런 말이 전한다
고려 공민왕 때 왕사였던 라옹화상이 팔도를 주유(周遊)할 때 남도를 들려서 개경으로 가는길에
한둘이는 넘기 힘든 집재를 넘는데 난데없이 숲속에서 화적떼가 나타나서 라옹화상을 협박하고
금품을 요구한뒤 꽁꽁 묶어놓고 어디론가 사라지려할 때 화상은 도술을 부려 화적떼를 바위가
되게 하고 재를 떠났다고 한다 그 뒤부터는 깁재에 도적이 얼씬도 못하고 행인들이 편하게
재를 넘었다고 하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집재를 넘어 조금만 가면 산촌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으로 매곡마을부터 월현마을까지
이어지는 멋들어진 계곡이 있다 이계곡을 월현천이라 부른다 바로 이곳이 장수8경중
제1경인 매산청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차에서 내려 장수의 절경을 먼발치에서나마
감상하고 선혈들의 채취를 흠뻑 취하고 싶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노랫말을
콧소리 흥얼거리며 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리고 달려본다.
매산청풍 : 장수에는 예로부터 경치가 좋은 8경이 있다 바로 이곳이 장수제1경인 매산청풍이다
매산청풍의 경관은 신선들이 신선바위에서 바둑을 두다가 풍욕대에서 목욕하고 사성정으로
건너와서 삼성오신 생각하고 영귀대에서 풍월읊다 바람타고 매산송대로 돌아와서 세연대에서
먹갈아 놓고 음풍영월 시한수 지어 매송정 높이 올라 고성방가로 읊조리다가 용바위 푸른물에
잉어 낚아 국끓여 놓고 벗과 같이 술을 따라 한잔 한잔 또 한잔에 해 저문 지 모르는 곳이라 한다.
계북면 소재지에 도착하니 아담하다 작다 그러나 멋지다 좌측엔 파출소 면사무소 중학교
우측엔 농협 유치원등 공공건물 몇개 상가 듬성듬성 몇집 오가는 사람들 드무는 한가로운
시골이다 젊은이들은 떠나가고 어르신들이 고향을 지키누나 요즘 시골은 살기가 좋다던데
이곳으로 귀농하시오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계북면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계북면(溪北面)은 면적 55.93㎢, 2013년 12월기준 인구2,200여명 정도이다
동쪽은 해발고도 1,000m의 산지로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과 도계(道界)를 이루고
서쪽은 천천면(天川面), 남쪽은 장계면(長溪面) 북쪽은 무주군에 접한 법정마을 7개리로
이루어진 작디작은 면이다 장수군이 전국에서 제일작은 군이다 장수군에서 제일작은 면이다
고로 전국에서 제일작은 면이라도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북동부에 남덕유산(南德裕山:1,507m)이
있어 덕유산 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루며 여기서 구리항천이 발원하여 금강의 상류이기도 한다
면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450m 이상의 산간부이며 구리항천 주변의 평지에서 쌀·보리가 생산된다
그 밖에 잎담배·표고버섯·인삼 약초 및 고랭지채소가 재배된다 현재는 장수트간품 오미자를 겁나게
재배하고 있다 이곳은 장수∼무주간 19번 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한다.
오늘 답사하고자 하는 양악탑을 가려면 계북면소재지 지나서 무주, 안성방향 19번 국도따라서
자동차 기준으로 10여분 달리면 원촌마을이 나온다 원촌마을 끝자락에 원촌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에는 원촌 주유소가 있고 원촌주유소 정면 13시방향이다 우측엔 토옥동계곡, 양악마을
1.2㎞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우회전하여 2차선 시멘트 포장길따라 가다보면 좌우로 꽤 많은
비닐하우스에 농사를 짓고 있다 고냉지 오이와 토마토가 주작물인듯 하다
양악마을 입구에 다달하니 꽤나큰 건물 3동이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은 계북면 양악마을 180번지
장수군생태마을 "무병장수마을" 이라하여 2005년도에 농촌전통테마 마을로 선정되었고
2007년엔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건강형 시범마을로 선정되었다 각종체험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며 숙박도 가능하고 웰빙 농산물 판매도 한다
여러분께 고합니다 "건강하게 100세까지 장수하고자 하신다면 이곳으로 오십시요
저희와 함께 동고동락 하시지요" 장수군청 홈페이지 농촌체험관광마을 참고 바란다.
무병 장수마을
직전하면 양악저수지와 토옥동계곡 가는길이다 양악탑은 우측으로 가야한다 건물앞에서
우회전하여 양악탑 가는길 중간정도 200미터쯤에 정인승박사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단아하고 깨끗하게 조성된 정인승박사 생가, 기념관앞에서 잠시 머물러 셀프사진 한컷하고
두루두루 돌아보며 훌륭하신 고인께 예를 갖추고자 한다 이마을이 국어마을 이라고도 한다
정인승 생가에서 동쪽방향 물길따라 양악저수지 하구뚝 쪽으로 800M지점에 오늘 답사하고자
하는 장수양악탑이 있다 물론 자가용으로 갈수도 있다 분위기에 흠뻑 젖고자 선택했다
정인승생가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서 가련다 걸어가는길 청정지역 맑은공기 마시며 총천연색
야생초에 눈이 호강하구나 왼쪽엔 큰규모의 머루농장이 있다 찐한 머루향이 코를 자극하누나
오른쪽 계곡에서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피곤함을 잠재우는구나.
건재 정인승 박사 생가(生家)
정인승 박사
1897. 계북면 양악에서 출생
1925 ~ 1935 고창고보 조선어,영어를 가르침
1936 ~ 1940 "한글맞춤법 통일안" 수정 및 기초 위원
1953. 문교부 "국어심의회 위원"
1957. 국정교과서 편찬위원회 위원
훈민정음 연구,용비어천가 해제,동국정운 등을 연구
"눈의 글","31의 글"등 많은 저서를 남김.
1962. 건국공로훈장
일제강점기 한글사전을 편찬하다
옥고를 치른 건재 정인승(健齋 鄭寅承) 박사
건재 선생은 전북 장수 출신으로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뒤 조선어학회가 1936년부터 기획한
‘큰사전’ 편찬 사업에 참여하다 투옥됐고,
광복 후에는 전북대 교수와 총장을 지냈다.
“자유에 대한 나의 이해는 언어의 이해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일본 정부가 한글 사용을 금지했던 1940년대
한국 최초의 한글사전을 편찬하다 박해를 받았다.
그는 개인의 사상을 형성하고 교감하는
매개인 언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믿으셨다.
21세기의 자유는 나이 인종 성 지위 언어와 상관없이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며, 이런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양악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저멀리 보이는 백두대간
덕유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너무나도 운치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예로부터 양악마을은 3다(多)마을이라 하여 물(水), 돌(石)=자연석, 인심(人心)
그래서 더욱더 유명한 마을 일것이다
계북면 양악리에 있는 양악탑은 백제초기의 백이현 현터로 추정되며 현터 부근에
심방사(尋訪寺) 또는 수방사<壽訪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백제시대의
사찰이었는지 통일신라시대 후의 사찰이었는지 정확하지 않다고 전한다
비록 보기에는 초라할지라도 오래된 우리문화 자산이다 양악탑이 있는 양악마을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옛날 양촌(陽村) 즉 양악현 고을터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계북의 소재지가 여기에 있었다고 표현해도 무방 할 것 같다
동헌터, 옥터, 향고터(세금으로 거둔 곡식창고)라는 지명들이 지금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근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떤 학자는 도사가 학을 기르며 살았다는 곳이어서 양학(養鶴)이라고
하던것이 양악이 됐다고 한다 앞산을 학산(鶴山)이라 부르고 이웃마을로 가는
고개를 학고개로 부른다 하니 그도 그럴 듯하다
양악마을은 덕유산을 넘으면 삼국시대에는 신라 땅이었고 백제와 경계지역
이었던 탓에 격전지였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양악 저수지
장수양악탑은 원래 산기슭 논 가운데 있었다고 전한다 5층으로 된 양악탑은
높이가 2m로 소규모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현재는 양악저수지 하구뚝 밑
용연정(龍淵亭) 옆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양악저수지는 1996년 한국농어촌공사 에서 농업용수로 조성되었다 백두대간 덕유산에서
흘러내려 토옥동계곡을 이루며 양악저수지로 담수되어 옥토에 물뿌리니 좋은 농산물이
안나올수가 있겠는가 멀리서 낚시하는 사람들 몇몇이 보인다 나도 조만간 와야겠다.
용연정(龍淵亭)
저수지 뚝 밑으로 용연정이라는 정각이 있다 용연정은 양악리에 살았던 정존성씨 소유의
사유지다 그의 손자인 정기수씨가 세운 정자로서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중앙칸에 용연정(龍淵亭)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내부 벽면에는 한말의 우국지사인
연재 송병선이 지은 기문과 심석 최병심이 지은 제액이 걸려있다
용연정 바로옆에 보기에는 작고 초라하지만 몇백년 눈비바람 모진풍파 헤쳐가며
꿋꿋히 서있는 5층 화강암 돌탑이 보인다 이곳이 장수양악탑이다
1973년06월23일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된 양악탑은 규모가 크지않다
이런점으로 보아 불교가 들어오던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로써 심방사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몇차례 옮기면서 재건하는 과정에서 탑재가 손실되고 파손도 심하지만
원형의 특징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있었을 것 이다 후손들은 중요문화재 보살필 의무가 있다.
필자는 자료를 모으고 직접 탐방하여 나름으로 공부한 결과 한가지 의문이 생기었다
예전에 장수양악탑 부근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서 절터 흔적조차
없지만 분명 각종 문헌들을 보면 이곳에 절이 있었던것은 분명 할것이다
심방사(尋訪寺)란 사찰 또는 수방사<壽訪寺>란 사찰 이라한다 쉽게 이해가 안된다
이 좁은터에 심방사(尋訪寺)와 수방사<壽訪寺> 둘다 있었다는 것일까 ?
아니면 표기법이 틀린것인지 아리송하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수방사<壽訪寺>터로
나오며 다른 문헌 자료에는 심방사(尋訪寺)로 표기 되어있다 또한 마을 어르신들의
증언들 장수군자료등 모든것을 비교해봐도 의견들이 분분하다
필자 개인의견을 전재로 결론을 얻고자 한다 추측컨데 누군가 자료를 옮기면서
수(壽)와 심(尋) 한자가 비슷하여 헤깔려서 명확하게 구분 하지못한 오류로 보인다
지금처럼 컴퓨터로 자료를 옮기는것이 아니구 일일이 수기로 옮기다 보면
그럴수 있다고 사료한다 이것이 필자의 사견임을 밝히면서 나름 정리하고자 한다
수방사<壽訪寺> 또는 심방사(尋訪寺) 둘다 맞는말이다 국가고시에 나올 문제도
아닌지라 이쯤 정리하고 넘어가자 타임머신 타고 돌아갈수도 없지 않겠는가 ?
장수양악탑 모형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물론 자료를 토대로 한것이다
방형(方形)지대석(땅위에 네모 반듯한 모양의 돌-위↑사진참고)
그위에 그보다 너비가 조금 좁혀진 방형대석을 놓았다
그 위에 방주석을<方柱石>=(탑기둥, 몸체)
제1옥신<第一屋身>으로 하고
그위에 옥개석<屋蓋石>(탑에서 탑신의 위에 지붕 모양으로 덮는 돌)을 얹었다
옥개석 위에 방형 옥신을 놓았는데 우주<隅柱>(기둥)가 모각되었다
옥신 위에는 옥개석과 상층옥신을 하나의 돌로 새긴 탑신<塔身>을 얹었다
옥개석 추녀밑은 경사를 이루고 3단의 받침이 있다
그 위에 다시 제3층 옥개석과 제3층 옥신을 하나의 돌로 새긴 탑신을 얹었다
옥개석 아랫면에 3단받침이 있고 윗면에도 1단의 괴임이 있어 상층 옥신을 새겼다
옥신부도 형태는 하층과 같으며 이 위에도 제4층 옥개석과 제5층 옥신을
하나의 돌로 새긴 탑신부가 있는데 수법형태 모두 하층과 같다
이와 같이 옥개석에 상층 옥신을 하나의 돌로 조각한 예는 매우 희귀한 것이며
옥신의 상부 너비를 좁혀 형성한 것도 주목된다 고려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다른탑과는 차별되는 기법으로 유명한 장수양악탑 잘보존 하자고 강력히 주장한다.
초라해 보일지라도 오랜세월 파손되지 않고 지금껏 이어져 내려온 장수양악탑
천년만년 길이길이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자
교 통 편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 장수IC - 19번 국도(장계방향)
계북면소재지-원촌마을- 양악저수지 방향 우회전 →양악마을
기타방향 : 장계면 -계북면소재지-원촌마을- 양악저수지 방향 우회전 →양악마을
~~ 장수군문화재 답사기 호롱불(최용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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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477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용표(호롱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