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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라이프 재정상담가 이명기 보살
이강준 법사의 부인 이명기 보살의 불교인연과 활동
그리고 재정관리사로 살아가는 이야기
호랑이는 토끼를 잡는다고, 그 뜀박질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다.
동물의 왕, 호랑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여진 게 아니디. 그 늠름한 위용의 왕은 작은 사냥감, 토끼를 잡을 때나 큰 덩치의 곰을 쫓을 때나 매한가지로 죽을 힘을 다해 전력질주 한다. 업계의 진정한 프로들 역시 그렇다. 작은 어카운트의 고객이라고 가벼히 여기지 않고 큰 구좌의 고객이라고 머리 더 낮게 조아리지도 않고, 모든 고객들을 하나 같은 성실함으로 대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주인공, 이명기(62, 뉴욕라이프 재정상담가)씨가 그녀의 고객들을 대하는 철칙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고객은 다 소중하다. 작은 어카운트의 고객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녀의 오늘을 있게 한 가르침이다. 인과의 법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작은 붓다들에게 이 가르침은 굳이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범인들에겐 그 정도의 가르침이나마 따라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녀는 불법을 만날 수 있었던 귀한 인연을 남편 이강준 법사의 공덕으로 돌린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고 주일에는 성당에 나가 미사를 보면서도 어쩐 일인지, 영세를 받을 기회는 늘 그녀를 살짝 비껴나갔다. 이렇게 나일론 캐톨릭 신자 노릇을 계속 해오던 그녀는 결혼 후, 제대로 영세도 받고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만큼은 서로 터치하지 말자는 남편과의 쿨한 약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그런가. 한 이불 덮고 한 솥밥 먹으며 살면서 어찌 종교라고 서로 너 따로, 나 따로가 칼같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새댁 이명기는 아무 생각 없이 남편을 따라 한두 차례 법회라는 곳을 나가보았다.
당시 이강준 법사와 이명기씨 부부는 시절 인연이 닿아 탄허스님 밑에서 불법공부를 할 수 있었다. 영세 받고 제대로 된 캐톨릭 교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 속 결심과는 달리 그녀는 점점 탄허스님과 함께 하는 불법공부에 빠져들었다. 부처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이치에 딱딱 맞아떨어졌고 가슴팍에 콕콕 와 닿았다. 영세라면 언제라도 받을 수 있는 것. 우선은 만사 제쳐두고 이 불법공부란 것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열심히 불법을 공부하던 어느 날, 팝송 가사를 들으면서 한 소식 했답니다. 호호.”
당시 인기 절정이던 ‘The end of the world’라는 팝송을 듣는데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파고 드는 것이었다.
“왜 태양은 빛나고 있는 걸까요? 왜 파도는 해변으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요? 새들은 왜 계속 노래 부를까요? 별들은 또 왜 저 위에서 빛을 뿌릴까요? 세상이 끝났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요? 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었을 때 세상은 끝났다는 걸요. 왜 아직 내 가슴이 뛰는 걸까요? 왜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는 걸까요? 세상이 끝났다는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요? 당신이 작별인사를 했을 때 세상은 끝나버렸다는 걸요.” 귀에 사탕발림처럼 부드러운 멜로디를 들으며 그녀는 이 가사가 단순한 사랑타령이 아닌, 천상천아유아독존, 일체유심조의 심오한 깨달음을 읊은 시어임을 깨달았다.
“그렇잖아요?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는 거잖아요?”
그녀에게 일각을 준 ‘The end of the world’라는 팝송 가사는 그런 의미에서 선사들의 오도송(悟道頌)에 비할 만 한 명문이다. 요즘은 그녀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깨달음의 시 가운데는 가요도 상당수 된다고 한다.
“예전엔 들으면 귀 버린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정말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이 유행가 가사란 생각이 들어요.”
다소 염세적 경향이 있던 그녀는 불법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적극적이고 희망찬 생각을 하게 됐다. 공부에 대한 열망은 그녀의 발걸음을 법주사로 이끌었다. 당시 법주사에는 유달리 큰스님들이 많이 계셨다. 그녀는 며칠씩 머물면서 꿀 맛 같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불심을 키워나갔다.
미국에 건너온 이명기씨와 남편 이강준 법사의 삶은 있는 그대로가 불사였다. 남편 이강준 법사는 조계종 포교원에서 포교사 양성을 시작했을 때 1기 포교사가 된 불교계의 열성분자. 그는 ‘생활불교인회’라는 모임을 결성, 불교 평신도 운동을 펴나갔다.
1992년에는 정토회 법륜스님과 이들 부부와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2년 뒤, 이들 부부는 문경 정토회 수련회장에서 열린 수련에 참가했다. 이 프로그램은 어렵게만 생각하던 불교를 쉽고 간단하며 이해하기 쉽도록 접근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쳇바퀴 돌듯, 하루 하루 살아가는 LA 동포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이들 부부는 1995년부터 동포들을 대상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한국 문경의 수련원과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를 찾아 헤매다가 빅베어의 조용한 별장을 구해 그곳에서 수련회를 실시하기도 했다. 좋은 일 하는 이들 부부를 돕고자 한국의 도반들도 큰 마음을 냈다. 수련에 참가할 이들이 사용할 방석을 직접 만들어 공기 빼고 압축 포장을 해 비행기에 싣고 온 것이다. 차를 빌려 참가자들을 실어나르기도 하고 야채로 만든 건강식을 준비해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공을 들인 결과, 첫 해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에 참가한 숫자는 약 45명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매년 2~3차례 동포들을 대상으로 수련회를 실시했다. 여기저기의 장소를 빌려 수련장으로 삼았다. 태고사에서도 한 차례 실시한 적이 있다.
쿠야마밸리 수련원 건축에 앞서 이명기씨는 한국 정토회에서 인도에 사립학교를 설립해주던 1999년,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도의 아이들이 얼마나 우리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지, 몸소 느끼고 온 그녀는 LA 동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2000년도에는 그녀에게 설득당한 24명이 인도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남가주 북가주를 아우르는, 보다 더 넓은 지역의 한인들이 수련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고 있던 이들 부부는 결국 2002년 쿠야마밸리의 수련원을 개원하기에 이른다. 수련원 자리를 찾아내고 구입하기까지 벌어진 기적 같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LA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의, 꿈에 그리던 그대로의 건물이 우연히 매물로 나온 것만도 신기한데 이를 융자 없이 구입하기까지 속성으로 진행된 모금운동은 더욱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 누구도 그처럼 단기간에 그토록 많은 펀드를 모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무런 융자 없이 매매금을 치르고는 힘을 합해 내부를 수련과 명상에 맞게 손보고 윤이 반들반들 나도록 청소를 했다.
개원식 때에는 한국, 미주 전지역, 그리고 LA 각지에서 올라온 500여 게스트가 수련원을 찾았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불사를 총지휘한 이명기씨 당사자는 개원식을 며칠 앞두고 차를 폐차시켜야 할 정도의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죠! 차는 폐차를 시켜야 했는데 저는 폐차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고 다음 날부터 운전을 다시 했고, 개원식, 수련회, 명상수련 등 한 달 동안 진행된 행사에 모두 참여할 수가 있었죠. 평소 스님께서 늘 되내이시던 ‘절은 절로 되는 거다.’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걸 확인한 시절이었어요.”
3년 임기의 정토회 회장직을 두 차례 맡는 동안 그녀는 쿠야마밸리의 수련원에서 1년에 4차례 정도의 수련회를 마련했다. 수련회를 할 때마다 그전에 참가했던 수련생들 한두 명이 공양 봉사에 마음을 내주어 새로온 수련생들을 섬기며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포교에 방송만큼 효과적인 매체가 없다는 생각에 10여 년 전부터는 LA 지역 불교방송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라디오코리아 채널을 통해 주말 저녁 2시간 동안 법륜스님의 법문, 찬불가와 함께 미주지역 불교계 소식들을 모아 방송했다.
여리여리한 여자의 몸으로 사내들도 마음 내기 힘든 일들을 뚝딱 뚝딱 해내는 그녀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한 번 해보죠, 뭐.”
아! 그것은 절대적인 긍정의 힘이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 무조건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력도 강한 추진력에 큰 몫을 한다. 그렇게 도전을 계속하며 느낀 것은,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것이더란다. 인간승리가 따로 없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녀는 시간을 쪼개 CSUN(Cal State University Northridge)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사무실 책상 위, 사각모를 쓴 그녀가 졸업식장에서 환한 미소로 웃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정토회 일을 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사찰이나 단체 또는 개인이 지속적인 수입 구조를 갖고 자립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한 거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태반인 LA에서 보시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불사를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불교운동을 진행하려면 수입원의 확보가 시급했다. 그녀가 심리학을 선택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양로보건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심리학 학위가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정토회 회장 임기가 끝나고 시간이 생겼을 때는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정관리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제껏 늘 몸을 힘들게 움직여 일하는 것만을 보시로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돈을 벌어 보시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지난 세월 동안 크고 작은 불사를 추진했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 생업이 된 재정관리인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싶단다.
그녀의 직업 윤리는 성공한 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맨처음 재정관리 상품을 팔러 나갔을 때는 부끄러울 줄 알았단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거든요.” 이런 고매한 직업윤리로 무장할 때 수치심은 저만치 뒷걸음질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상품을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경쾌한 리듬과 거부할 수 없는 존귀함이 실리게 된다. 그녀는 일을 하면 할수록 부처님 법에 예외가 없음을 체득한다고 말한다. 심리학 역시 불법과 여러 면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그녀의 일에 도움을 준다.
지금도 새로운 고객을 만나면 결코 사인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몇 차례라도 설명해준다. 고객이 지금 현재는 필요없다고 하면 미련없이 문을 열고 나온다. 언제라도 다시 필요하다 생각된다면 어떤 에이전트에게라도 사인하시라고 말한다. 반대에 부닥쳐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까 그 사람들이 다시 그녀를 찾아오더란다. 재정관리라는 것이 결코 쉽잖은 일인데, 그리고 돈을 쫓는다고 돈이 잡히는 게 아닌데 필요한 만큼은 항상 채워지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고객들이 저를 편하게 생각할 때면 부처님 일에 열심히 봉사했던 것에 대한 복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 무엇보다, 누구보다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이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다. 남편 이강준 법사는 40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내를 위해 기도를 해왔다.
“처음엔 흉도 많이 봤어요. 같은 시간에 일어나 좌정하고 해야 그게 진짜 기도지, 제 마음 가는 데로 아무 시간에나 일어나 하는 게 무슨 기도냐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40년을 하루도 안 빠지고 기도한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사고가 날 것 같은 순간을 비껴갈 때마다, 우리 남편 기도 공덕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진작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40년을 무뚝뚝하게 살다 보니 낯 간지러워 남편에게 직접 얘기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녀가 재정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처음 이민 와 약 5개월 쯤 됐을 때였나. 그녀는 당시 우체국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함께 일하던 유학생이 프리웨이에서 차가 전복하는 사고들 당해 유명을 달리 하게 되었다. 그의 젊은 아내는 이미 두 딸이 있었고 뱃속에 또 한 아이가 세상 빛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아이들 줄줄이 달린데다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의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세상 떠난 애 아빠가 없는 형편 가운데에서도 10만 달러 짜리 생명보험을 들어놨던 것이다. 교통사고일 경우 보상금은 3배로 커진다. 30만 달러라면 당시엔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남편이 들어놓은 생명보험으로 그 아내와 자식들은 인생의 위기에 주저앉지 않고 파도를 헤쳐나갈 수가 있었던 것.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거의 안 하고 사는 편이다. 특히 이 일을 하면서 후회할 만큼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건 은퇴계획이다.
“누군가 예전에 저에게 은퇴계획에 대해 얘기한 분이 분명히 계셨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는 당장 사는 것이 힘들다보니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는 할 여유가 없었잖아요? 그때 조금씩 은퇴연금을 준비했더라도 당장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돼요.”
최근에는 라이언스 클럽 회원들을 앞에 두고 상속계획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한인들은 별다른 상속계획 없이 그저 자녀들에게 재산을 넘겨주면 되는 줄 아는데, 미국이 어디 그리 만만한 나라인가. 무조건 세금 안 내는 것을 능사로 여길 게 아니라 세금을 합법적으로 내면서도 더 많은 돈을 절약하고 미래를 지혜롭게 계획하는 방법을 그녀는 변호사 파트너와 함께 전문적으로 안내해준다. 이제 결혼해 출산을 계획하는 젊은 커플들에게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재정계획을 세워주면서 보람을 느낀다.
그녀는 LA와 캘리포니아주만은 부족하다는 듯 뉴욕주, 워싱턴주, 오레곤주, 네바다주의 라이센스까지 다 갖고 있다. 특히 한두 명 정성껏 안내해준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중가주지역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두터운 고객 층을 갖고 있다. 덕분에 경치 좋은 산타 마리아, 샌 루이 오비스포 지역에도 가끔 고객관리 나들이를 떠난다.
“중가주 사시는 분들은 미국 에이전트들 만날 기회가 있긴 하지만 제가 당신들 마음을 들여다본듯 이해해드리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기회가 된 분들을 한 자리에 모셔서 세미나 하는 것이 참 즐거워요. 세미나에서 처음 만난 분들은 저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런 부담감을 갖지 않으시니까 저도 더 편해요. 아는 분들은 만나면 괜히 사인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지 더 부담스러워 하시더라고요.”
설사 세미나 후에 거절을 당하더라도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며 원하는 답을 해주면 매우 편안해한다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남들의 불편한 관계조차 부드럽게 만드는 중간 역할을 담당하곤 한다. 심리학 공부로 인해 사람들의 행동엔 어떤 근원적 이유가 있는지를 볼 수 있는 혜안 덕분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볼륨이 작고 조분조분 부드럽다. 그저 왜 재정계획이 필요한지, 왜 꼭 한 번쯤은 재정계획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하는가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뿐이다. 탑 세일즈맨이라는 이들처럼 세미나라고 해서 순간의 결정을 리드하느라 목청을 드높이는 일은 없다. 그래도 고객들은 그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신뢰를 갖게 된다. 세미나를 마친 후 여러 재정보험상품들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것 저것 미래의 고객들이 질문을 해오면 그게 그토록 기쁘다니 그녀만큼 타고난 재정관리인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그녀가 관리하고 있는 어카운트는 500구좌 정도. 어떨 때는 새로운 어카운트 개발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서비스만으로 하루를 다 보낼 때가 있다. 새로운 어카운트 개발보다는 서비스를 우선순위로 처리하는 그녀의 직업강령 때문이다. 지속적인 서비스를 펼치려면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기본. 뉴욕라이프 같은 경우 일년에 새로 고용하는 직원은 약 15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나면 10명 정도가 남는다. 2~3년 후에는 5명, 어떤 해는 한 사람도 안 남고 모두 떠나기도 한다.
“에이전트에게 구좌에 관한 부탁을 하려 전화를 걸었는데 이제 그만두고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전 이제껏 10년간 이 자리를 지켰고요, 앞으로도 70세까지는 계속해서 이 일을 할 계획이니까, 언제든 믿고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실 벽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상장들이 그녀의 우수한 실적을 무언으로 말해준다. 외유내강이라는 덕목이 그대로 몸으로 화한 것 같은 이명기씨를 만나고 나오는 길,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삶이 조금은 더 살만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2010.11)
* Lic. # OE 98314 뉴욕라이프에서 그녀가 취급하는 상품은 생명보험, 건강보험, 장기간호보험, 은퇴계획, 상속계획 등이다.
▶ 3731 Wilshire Bl. #840 Los Angeles CA 9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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