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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그 벼랑 위에 집을 지으며... 돌이켜보면 내 삶은 몇 개의 편리들이 차곡차곡 겹쳐진 백운모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나는 저 선명한 켜들이 한 때는 뜨거운 불덩이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앞으로도 몇 개의 편리가 덧붙여질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안에는 여전히 끓어오르는 무엇이 있고 때가 되면 차게 벼려진 편암이 되리라는 운명을 감지하고 있다. 그깟 돌이야 보고 좋으면 그뿐이겠지만, 더러는 나 혼자 두고 보기에는 조금은 서럽다는 생각에 전시회를 열어 굳이 독백을 자처하곤 했다. 이제 그 내비침이 세 번째가 되었으니 서서히 중독이 되어가는 게 아닌지 싶다. 2008년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는 졸저를 출간하면서 밑도 끝도 없는 집이야기를 제법 큰 크기의 그림으로 그려 함께 전시하고 싶었지만 미처 준비를 다하지 못해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집에 대한 원형질 같은 꿈을 스케치 해왔다가 이제야 단지 위에 그림으로 그려 전시회를 열게 된 셈이니 나로선 심기가 다소 개운해졌다. 한 때 저 단지들이야말로 삶의 미학에 충실했던 고귀한 용기였으나 이제는 죄 내다버려지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 늘 가슴이 아파 기회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서 단지들을 사 모아왔다. 하지만 마암리 작업장에 단지가 수북해지자 여지없는 애물단지가 되었으니, 그 또한 보기 민망하였다. 하여 그 중에 몇몇을 골라 바탕칠을 새로 하고 그 벼랑 위에 그림을 그려 넣는 객쩍은 짓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인데, 기실은 그렇게 그려진 애물단지들을 다시 집안 어느 구석엔가 '그 자리, 그런 모습으로' 잘 들여놓기만 한다면 제법 두고볼만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거듭 태어나 기왕의 위상을 다소나마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래, 애물단지야! 내게로 와 자유를 얻어라!
2010년 9월 2일
김억중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건축과에 진학했지만, 거리에 화염병이 날아들던 시절 탓에 수업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엉겁결에 학사모를 쓰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찾아온 행운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고, 난생 처음 넓은 세상 속에 벌거벗은 듯 내던져진 자신을 바라보면서 부끄러움을 알았다. 손재주와 잔머리로 설쳤던 과거를 반성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보냈던 6년의 유학생활 동안 '생각을 짓는 것이 곧 건축'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문학이라는 새로운 창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벼랑 끝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한남대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행복을 얻었다. 오늘도 그는 책 내음 가득한 작업실에 앉아 책장을 뒤적이며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맺어주는 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건축을 이야기하기 위해 '김억중 전:공간-기호의 질서와 힘'(아주미술관, 2004), '건축가 김억중의 수작전'(대전KBS홀.이안갤러리, 2007)이란 제목으로 두 차례 건축 전시회를 대전에서 열었다. 지은 책으로는 <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 <건축가 김억중의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등이 있다. ------ "행복한 책가게"에서 발췌 김 억 중 먹물을 가막부리에 넣어 켄트지 위에 설계도면을 그리며 느낀 성취감이 건축가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신부화가인 김인중 형님에게 미술 수업을 받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센 강변을 거닐며 구석구석을 스케치하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눈을 단련하였고, 건축과 도시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면서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 건물마다 역사의 숨결을 호흡하던 파리를 떠나 정교한 기술과 웅대한 자연이 공존하는 레만 호의 도시, 스위스 로잔에서 건축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곳 연방공과대학에서 폰 마이스 교수와 라 뮈니에르 교수, 건축가 마리오 보타를 만나, 건축의 역사·이론·작품을 두루 탐험하였고, 설계사무소의 고된 견습생활을 거쳐 스위스 공인건축가 디플로마를 받았다. 지역의 건축교육을 위해 디자인 캠프를 10여 년 동안 주관하였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건축의 주제들을 대중의 관심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해 왔다. 스튜디오 에이 앤드 유(A&U)에서 제자들과 함께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대전고 52회 홈피에서
<나는 ‘건축과’에서 건축을 배우지 못했다> 오로지 책과 씨름할 수밖에 없었던 6년의 유학 생활 동안 그는 문학책에 푹 빠져 지낸다. 그리고 문학 속에 등장한 수많은 이들의 삶을 통해 ‘공간’이라는 존재를 접하면서 새로이 건축에 눈을 뜬다. 문학 속 주인공들이 공간에 대해 느꼈던 정직한 고백들은 무뎌졌던 건축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고, 건축이란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인지 몸소 깨닫게 했다. ‘건축과’라는 제도권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동떨어진 대상을 통해 건축을 배운 것이다.
"그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저 사는 대로만 생각할 것입니다." <폴 발레리>
그들과 함께 기뻐했으며 슬퍼했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어렸을 적 행복해 했던 추억의 집에서부터 찌들려 소외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고통의 집에 이르기까지 어디든 함께 하고자 했다. - ‘문학과 건축, 그 동상이몽’ 13쪽
김억중의 ‘문학 읽기’가 반가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문학 속 인물들의 삶에 몰입한다. 그들과 동감할 수 있는 삶의 기억들을 하나 둘 씩 꺼내다보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는 공간이라는 주제에 자연스레 다다른다. 임철우의 소설 <달빛 밟기>에 등장하는 ‘밤길을 걷는 주인공’들을 만났을 때, 김억중은 명절마다 어둔 밤길을 헤치고 찾아갔던 어린 시절 귀향길의 추억을 떠올린다. 밤새도록 함께 걸으며 복수심에 불타던 마음도, 오래도록 쌓인 증오의 감정도 용서로 승화시킨 소설 속 ‘달 밝은 밤길’의 오묘한 힘. 달이 빛나던 밤이면 도깨비에 홀린 듯 유난히 빨리 도착했던 귀향길의 추억은 소설 속 달빛의 힘과도 닿아있다. 그의 몸속에 공간에 대한 감각이 새로이 돋아나는 순간이다.
…… 달빛 때문이었을까? 신기하게도 그런 밤이면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길이 도깨비에 홀린 듯 어느새 동산골 어귀에 다다르곤 하였다. 지금도 나는 그 몽환의 길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가물가물했던 달빛의 여운을. -‘달빛 밟기’ 101쪽 알고 보면 우리 모두 불쌍한 인간들이니 모두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깨달음과 함께 어느덧 밤골에 다다른다. 달빛의 위대한 힘이요 화엄의 세계다. -‘달빛 밟기’ 102쪽 <행복한 책가게에서...>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의 골자가 전통 건축은 무위사상과 자연을 소중히 한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 자리, 그런 집"을 지으려면 "사유의 집"에서 "언어의 집"을 끊임없이 오가며, 매 순간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고민하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주변과 소통하는 공간의 여닫음 외에 주택의 모든 다른 요소는 그 흐름을 보조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집에서 소중한 것은 방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에 있어요. 하늘과 구름, 빛과 그림자는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풍경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바람에 흩어지거나 물속으로 스며든다… 넘치고 차고 흩어지고 휘도는 모든 것에 편히 쉴 것을 권하는 건축”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를 일요일인 9월 5일 이안갤러리에서 운 좋게 만났다. 추상화로 처음 대통령 상을 탔다는 친형인 김인중 신부와 많이 닮았다. 아주 미술관에서 그의 작업장 모형도를 보았고 그의 건축물인 아주 미술관과 공주의 어사재를 보고 김억중이란 건축가를 만나고 싶었던 참에 신문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도록을 살 때 막 들어오던 참이었고 인사를 청한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2년 후배이고 그의 큰형인 김인중 신부님은 우리 형님하고 고등학교 동기이다. 건축과 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얘기를 피력하였다.
수집한 옹기나 사발 등에 하얀 배색을 칠한 후 검정색으로 미니멀하게 드로잉한 작품을 선 뵈고 있었다. 한 때는 삶에 충실했던 용기들이 버려진 것이 안타까워 수집했던 것이 수가 많아지자 애물단지로 변하였던 것이었다. 무릇 그릇이란 것들은 무엇을 담거나 채우는 것인데 그 기능이 용도폐기된 채 세월의 공허한 무게에 어깨가 짓눌려진 것들에 보내는 건축가의 시선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 것들에 하얀 분칠 화장을 시키고 새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안 가던 시계가 다시 가는 것 같이 생명을 얻어 깜빡거리고 있었다. 건축은 예술의 어머니라던가.
눈빛을 그려 넣어 다시 인테리어 소품으로 변환시켜 다시 우리 곁으로 끌어 당긴 작품들이다. 아날로그적인 옹기나 사발들이 이제 디지털 노마드로 변한 우리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 때론 이중섭의 동화 같은 그림같이, 때론 김환기의 몽환적인 우수 같이, 때론 도시 위에 뜬 달 같은 현대화된 수묵화나 禪적인 그림같이 단아하고 담백한 뜻을 외포하고 있었다. 김소월, 고은,이성선,정현종,퇴계의 시까지 곁들여 그림에 뜻을 덧붙이면서.....
애물단지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여 우리에게 보내며 무위자연으로 돌아오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건축물에 들여놓을 소품들로서 새 임무를 부여 받고 대기하고 있는듯하였다. 愛物단지, 보물단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시간이 없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지만 이 인연으로 다음에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 可 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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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시 위에 뜬 달 같은 현대화된 수묵화 ' 공감되는 표현이네요. 근데요~ 선생님은 문학 ,사진, 그림,음악 ...어떻게 그리 넓게 깊게 아시는지 선생님의 해박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멋진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했는데, 가던 길도 잃어버린 듯 헤매는 중입니다. 사람 사이사이 관계에 대해 깊이 누우치고 갑니다. 체크 셔츠가 넘 멋지내요~~
"그대의 집이 궁전입니다" 라는 글과 함께 유아틱한 그림이 눈에 들어 오네요.저울 위에 놓인 초라한 집 한 채와 궁전같은 집!무게 중심은 작은집 한 채쪽에 있네요~~ "산을 보고,물을 보고,사람을 보고,세상을 본다.나는 그 사이 사이를 본다" NQ 높으신 분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