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계는 더 너른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수많은 한계와 씨름하다 지친 당신을 위한 책! “진작 우리 영혼에 전해졌어야 할 아름답고 깊고 진실한 초대다.” 김영봉·한병수·김명선 추천 묵상과 나눔을 위한 토의 질문, 기도문 수록
우리의 한계와 약점을 성공의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를 형통하게 하는 ‘선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자 애슐리 헤일스는 한계를 인정하면 삶의 외연이 오히려 더 확장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이 지어 주신 한계 안에서 사는 것이 인간 본연의 삶이자 예수가 본을 보이신 삶임을 드러내고 그 삶으로 초대한다. 자유와 의미를 다시 생각하라, 작아지라, SNS를 제쳐 두라, 안식하라, 주목하라, 공동체로 살라…. 저자는 총 열세 장의 초대장을 하나하나 내밀며 우리 삶의 통제권을 내려놓고 우리의 인도자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라고 말한다. 모든 초대장은 깊고 진솔한 기도로 끝을 맺어 홀로 하나님을 묵상하거나 작은 모임에서 함께 나누고 기도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
책 속으로
복음이란 바쁘게 쫓기는 삶으로는 결코 얻지 못할 것이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승천을 통해 다 이루어졌다는 기쁜 소식이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려고 억지로 한계를 뛰어넘을 필요가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가까이 오셔서 인간의 한계를 입고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다. 그분을 신뢰하면 그분이 우리의 죄와 수치를 가져가시고 대신 사랑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신다. 그 선(善)은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될까? 우선 대형 마트에서 나오고 출세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더 나은 이야기 속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1장 대형 마트 같아진 삶」중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여 육체를 선한 것으로, 물질세계를 하나님 나라의 일부로 보게 하신다. 지옥문이 하나님 나라를 이길 수 없을진대 우리의 한계는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 없는 장벽이 아니다. 오히려 한계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떠올린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것도 선물이다.
---「2장 한계를 지으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중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 주신다. 온라인을 헤매고 다닐 때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목적과 의미와 방향과 교훈인데, 결국 이 모두는 1세기에 유대인으로 오셔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고 말씀하신 예수께 있다. 우리가 갈구하는 것은 그분의 느긋한 주목, 치유의 손길, 예리한 지혜, 전복된 나라다. 그런데 부끄러워서인지 두려워서인지 우리도 인류의 시조처럼 오히려 숨는다. SNS 중독은 현대인이 하나님의 맹렬하고도 자비로운 임재를 몰아내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예수님은 없다.
---「3장 인스타그램에 예수님은 없다」중에서
우리 생각에는 환경이 계속 호전되어야만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다리느라 어지럽고 혼란스러워도 아픔을 견디라. 광야의 순간이 없이는 여유로운 삶도 있을 수 없으니 용기를 내라. 그 속을 통과해야 한다. 무감각해지거나 달아나거나 억누르거나 막아서는 안 된다.…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대단한 곡예가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다. 그분의 손안에 꼭 붙들려 있는 것이다.
---「4장 오이와 물수제비뜨기」중에서
안식일은 휴식으로 시작된다. 유대 민족은 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 질 무렵까지 안식일을 지키는데, 시작도 끝도 어둑어둑할 때라서 바쁜 일과를 마치고 쉴 수밖에 없다. “바쁜 삶은 영혼을 거칠게 대하지만” 쉼은 우리를 회복시켜 준다. 안식은 잠깐의 회복으로 그치지 않고 이야기까지 되살려 준다. 인간의 모든 한계를 지닌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들여놓는 것이다. 휴식의 여건과 습관은 우리가 기를 수 있으나 결국 안식 자체는 좋으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5장 영적 삶은 인스턴트팟이 아니다」중에서
몸자세, 어조, 잠깐의 시간 등 작은 것으로도 주목할 수 있다. 아이에게 말할 때는 몸을 낮춘다. 집안일이 팽개쳐져 있어도 격앙된 어조를 삼간다. 슬픔에 잠긴 가정에게 저녁을 사 주고, 내 삶이 버거울 때는 다른 사람이 챙겨 주는 음식을 기쁘게 받는다. 이런 작은 실천으로 이웃을 바라보면 주목의 근육이 튼튼해진다. 그래서 점차 우리 눈에도 예수께서 보신 사람들이 들어온다.
---「7장 사랑은 칵테일 파티가 아니다」중에서
하나님의 소금으로 모이려면 공동체의 제약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위해야 하며, 그러려면 종종 자신의 시간과 소원은 물론이고 소중한 부차적 정체성까지도 제한해야 한다.
---「8장 소금은 모여야 맛이다」중에서
하나님은 일부러 당신의 한계를 쓰실 수 있다. 한계를 통해 바짝 다가오셔서,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속삭여 주실 수 있다. 더 많이 성취하려고 잠을 안 자거나 자신의 정신 질환에 대해 거짓말하거나 몸의 호소를 무시하면, 이 초대를 놓친다. 사랑받을 자격을 얻고 싶어서 무리하면 그렇게 된다. 당신의 한계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다. 그분은 그 한계 속에서 당신을 만나기 원하신다.
---「10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에서
작은 일에 충실하자. 우리는 시트를 갈고, 일하고, 친구를 격려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신앙의 난간을 따른다. 자신의 이른바 자유를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을 형통하게 한다. 식사 준비, 설거지, 화초 물 주기, 세금 보고도 다 그에 해당한다. 소망이신 예수님이 거기서 우리를 만나 주신다. 이것으로도 또한 충분하다. 작은 일만으로도 충분히 소망이 들어설 여지가 있다.
---「11장 사랑의 난간을 따라」중에서
여기 자유가 있다. 멋진 삶이 있다. 그것은 크고 거창한 데 있지 않고 작은 것들 속에 있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여유로운 삶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안이 바깥보다 더 넓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 그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으면 된다. 성령께 맡기면 그분이 회복시켜 주신다. 자백하고 슬퍼하고 회개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여러 동사대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령이 역사하시기에 우리는 가서, 전하고, 세례를 베풀 수밖에 없다. 그분께 합류하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12장 변기를 청소하는 슈퍼히어로」중에서
멋진 삶이 결코 우리의 통제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작은 초대에 기인한다면 어떨까? 그 초대는 우리의 한계를 쭉 짚어 보고, 인간성을 느끼고, 그분 안에 숨으라는 초대다. 하나님의 날개에 안겨 있으면 한계 덕분에 오히려 우리와 우리가 있는 곳이 형통할 수 있다. 우리는 사명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사명에 동참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언할 뿐이다. 우리는 가서 전한다. 사람들이 회개하면 세례를 통해 그들을 언약 공동체 안으로 초대한다. 여유로운 삶 속으로 초대한다.
---「13장 대성당 그리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