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6:11]"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은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이 말은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이나 특별한 인물들에게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모세,다윗, 선지자들 엘리야, 하나님의 사자들 등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호칭이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일반 신자들이나 디모데와 같은 복음 사역자들에게 사용되었다. 이것들을 피하고...좇으며 - '이것들'이란 4-10절에서 언급된 멸망의 요인들을 가리킨다. '좇으며'의 헬라어 '디오케'는 '추구하다'의 뜻으로 '피하고'의 반의어이다. 여기서 바울은 딤후2:22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특유의 대조법을 사용하여 권면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가 추구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열거한다. '의'는 법률 용어로 '공의'를 뜻한다. '경건'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경외심을 간직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믿음'에 대하여 혹자는 '이것은 주관적인 믿음으로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그런데 렌스키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즉 기독교에 있어서 '믿음'은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처음에 열거되지 아니하고 세번째 나온 것으로 보아 이것은 신앙적인 차원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믿고 신뢰하는 하나의 미덕(美德)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가 타당하다.
본절에서 바울은 일반적인 미덕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덕목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아가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핵심 요소이다. '인내'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온유'는 신약성경 중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온순'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자가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위를 제공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서 늘 여유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창 2: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인간의 전인격적인 창조에 관해 기술한 1:26, 27과는 달리 본절은 특별히 인간 육신의 창조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흙 - 직역하면 '땅의 티끌', 즉 '먼지'란 뜻이다. 이처럼 인간 육신의 구성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영혼을 떠난 인간의 가치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임을 교훈해 준더.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 생명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방법으로 부여하신 '생기'로 부터 유래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생기 - '영혼', '호흡', '기운'등으로도 번역되는 단어.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혼'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모든 생명체의 '기식'을 의미한다. 불어넣으시니. 숨을 내쉬다', '부풀리다', '불붙이다'는 뜻.
하나님께서 인간 육체에 생명의 근원되는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는 점에서 인간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라 할 수 있다생령 - '숨', '호흡'을 뜻하는 '네페쉬'와 '생존', '존재'를 의미하는 '하야'가 합해서 된 말로 '살아 있는 존재'란 뜻이다. 물론 '네페쉬'가 다른 곳에서 '혼' 또는 '영혼')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으나 여기서는 단순히 '호흡'이란 뜻으로도 쓰였다.
따라서 '생렬'이라는 말은 인간이 '영혼'을 지닌 존재를 증거하는 직접적 증거 구절은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오히려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말에 강력히 암시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 '네페쉬'가 단순히 '호흡'이란 뜻이며 또 '네페쉬 하야'가 일반적으로 모든 생물을 가리킬 때도 쓰였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 역시 모든 동물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왜냐하면 (1) 인간은 앞서 말한 대로 그 본질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며 (2) '네페쉬 하야'가 되는 동기와 과정 및 방법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직접적이고도 친밀한 개입, 즉 코에 직접 생기를 불어넣는 특이한 방법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본절을 정리하면 여기 '네페쉬 하야'가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직접 언급한 구절로 오해되어서도 안되지만, 동시에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같이 '네페쉬 하야'가 되었긴 하나 특별히 하나님의 독특한 방법에 의해 창조 되었다는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창 1: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주관하게 하시고 - 히브리어 '멤솰라'는 '다스리다', '관찰하다'란 뜻. 즉 큰 광명인 해와 작은 광명인 달이 낮과 밤을 구분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월 성신숭배 사상과 점성술적인 미신에 빠져 있던 고대인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월성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며 또한 이들의 역할은 단지 낮과 밤을 구분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일자와 연한을 식별케 하는 데 불과함을 교훈한다.
[골 3: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본절은 이는으로 번역된 이유접속사로 시작하여 윗말의 첫째 이유를 보여준다. 신자들로 하여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인생의 유일한 소망인 영생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죽었고 - 신자들은 그들의 대표자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그와 함께 죽었으미,
그 죽음은 (1) 죄에 대하여 죽음이고. (2) 율법에 대하여 죽음이고(롬7:4), (3) 세상에 대하여 죽은 것이니, 그것은 곧, 땅엣 것을 애착하여 추구하고 의지하는 이 세상 생활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이다. 기독신자는 원칙적으로 땅엣 것에 대하여 전혀 시체적관계를 가진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영원한 집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오로지 그곳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노력해야 된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 그리스도에게 대표되어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참 신자들은,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으 지체)된 참 신자들의 부활도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는 신자들의 생명이 포함된 셈이다.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 "하나님 안에"란 말은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합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 승천하셔서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천졔에 감취어 계신 것과 같이, 그 안에 있는 신자들도 그러하다. 그리스도는 대신 원리에서 우리의 생며이니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사 감취었음과 함께 우리의 생명이다. 그렇게 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이다. 어떤 학설에,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하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는 말은 다만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의 영적 생명의 신비성을 가리킨다고 한다,
[시 41:3]"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 이의 문자적인 뜻은 '고통의 자리 위에 있는 그를 힘있게 하시고'이다. 여기의 '힘있게 하시고'에 해당하는 원어 '사아드' '지지하다','후원하다', '유지하다', '강하게 하다', '원기를 되찾다' 등을 의미한다. 문맥에서는 저자의 육체가 쇠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가 병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해주시거나 힘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를 앞서 언급된 바와 연결시켜 볼때 연약하 병들고 도움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는 그가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돝아보신다는 좀더 구체적인 적용을 도출해 낼 수 있겠다.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저가 병 중에 있는 그의 자리 모두를 바꾸셨다'이다.
여기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자리'인데 상반절의 '병상'이 단순히 침대를 의미하는 반면이 '자리'는 오랫동안 병들어 누운 환자의 상태를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한편,'고치다'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 전자는 단지 쿠션이 있는 벼개 같은 것을 환자의 머리 밑에 받쳐 주어 기분전환과 안락함을 공급하는 행위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그리고 후자는 하나님이 그 환자의 병을 완전이 고치셨기 때문에 더 이상 환자의 침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근거는 계속적으로 아파왔던 상황이 완전히 끝났음을 암시하는 바, 원어상 '고치다'의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제는 단순한 어떤 사건이 아니라 일반적인 경혐을 표현한다. 즉 저자는 본절에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우에서도 보았던,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병든 상태로부터 완전한 고침을 받은 사실들을 회상하며 이 같은 고백을 하고있는 것이다.
[고전 8:9]"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거치는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콤마'의 문자적 의미는 '길에 떨어져 있는 돌'로서 '장애물'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프로스콤마'는 믿음이 약한 형제의 양심에 상처를 준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우상과 타협함으로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행위가 나쁘게 생각되지 않더라도 이것이 초신자들의 양심(良心)에 반대된다면 그들을 실족케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을 나쁜 상태로 이끌 수도 있다.
[고전 11:30]"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 이 말은 본절이 앞절에 대한 증거임을 시사한다.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 '약한자', '병든자', '잠자는자'를 이해함에 있어서 혹자는 영적인 측면으로만 해석한다. 그러나 영적인 차원 에서라면 '약한 자'나 '병든자'는 의미상 같은 것이기에 꼭 그렇게만 해석되지 않으며 '잠자는 자'는 '죽은 자'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따라서 오히려 본절은 성만찬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함이 영적 병약함과 죽음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연약함과 죽음까지도 초래하게 됨을 시사한다.
[고전 11: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성경에는 '데'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에 대한 대조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 본문에서도 '판단을 받는 것'과 '징계를 받는 것'은 동일시 된다. 본절의 '하나님의 징계'는 잘못한 자식을 회개케 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수단이다).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징계하시는 목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그 징계는 영원한 심판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심판의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 한편 바울은 앞절과 본절에서 세 가지 용어를 통해 세단계의 '판단'에 대해 논증한다. 첫 단계는, '디에크리노멘'으로서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크리노메노이'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하여금 회개케 하고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다. 셋째 단계는, '카타크리도멘'으로서 마지막 심판때에 영원한 심판을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