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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장애인 당당히 자립할 수 있도록…삶을 지원하다
인천뇌병변복지협회는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체험홈, 활동지원 사업 운영 등을 통해 정보제공, 권익옹호, 동료상담, 자립생활 기술 훈련, 탈시설 자립지원 등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이 밖에도 건강주치의 사업, 인식 개선 사업,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 등 뇌병변장애인의 일상을 의료·문화·사회 참여 전반에 걸쳐 폭넓게 지원한다.
협회의 뿌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유 초대 회장이 뜻을 모아 꾸린 자조모임이 씨앗이 됐고, 이듬해인 2006년 법인으로 정식 설립됐다. 그리고 2007년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한 서연희 현 회장과 함께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서 회장 역시 중증뇌병변장애인 당사자다. 그는 평생을 부모의 눈치,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살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대표직에 올랐다.
협회가 출범하던 당시 인천지역 뇌병변장애인들의 처지는 절박했다. 편의시설 부족은 물론이고, 교육·이동·직업·건강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 존재했다. 뇌병변장애는 언어장애를 동반한 중복장애가 많고, 개인마다 신체적 특성이 크게 달라 일반적인 장애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의 공백이었다. 2000년 장애인 등록 유형 분류에서 뇌병변장애가 지체장애로부터 독립 분류됐지만, 이에 상응하는 지원 체계가 뒤따르지 않았다.
협회가 가장 먼저 힘을 쏟은 것은 바로 제도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2008년, 협회는 인천지역에서 최초로 ‘인천시 연수구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 제정을 이끌어 냈다.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인천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조례가 마중물이 되어, 이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체험홈·장애인활동지원 사업 등을 차례로 위탁받아 운영하는 오늘날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이는 뇌병변장애인을 위해 제도를 바꾸고 사업을 키우며 한 걸음씩 나아간 협회의 20년이 고스란히 녹아든 결실이다.
자립 지원부터 의사소통까지
일상 바꾸는 이용자 중심 프로그램
초창기 협회는 말 그대로 ‘맨땅’에서 시작했다. 동료들이 힘을 합쳐 마련한 작은 사무실과 100명 남짓의 이용자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월 1회 이어진 ‘어울림 여행’과 역사 탐방 견학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협회는 협회원들과 후원자들의 헌신 속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지금, 협회와 함께하는 이용자는 400명을 넘어섰다.
협회는 장애인 자립생활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펼쳐 왔다. 장애인활동지원 사업, 미래장애인자립생활센터(미래IL센터), 미래휴자립생활주택 운영까지 사업 영역을 꾸준히 넓혔고, 이용자가 지역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가 4배나 늘었다는 숫자보다, 그 숫자 뒤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더 소중하다.”고 서 회장은 덧붙였다.
2019년부터 운영된 미래휴자립생활주택은 자립을 희망하는 장애인이 최대 2년간 주택에 거주하며 지역사회 적응과 자립 훈련을 지원한다. 이곳을 거쳐 지금까지 총 다섯 명이 성공적으로 독립 생활에 안착했다. 거주시설에서 나온 2명, 재가 상태에서 자립에 도전한 3명이다. 처음에는 혼자 잠을 자 본 적조차 없어 두려워하던 이들이, 단계적 훈련을 거쳐 공과금을 스스로 납부하고 체크카드로 생활비를 관리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고 서 회장은 설명했다. “처음엔 어려움을 겪던 이용자들이 몇 개월의 훈련을 거쳐 독립적으로 생활하게 됐을 때, 눈빛이 바뀌었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복지의 역할이라고 느꼈습니다.”
또 미래IL센터에서는 2017년부터 공예 체험, 보치아(중증장애인을 위한 실내 구기종목)‧슐런 등 체육 프로그램, 역사 탐방 프로그램, 동료 상담, 편의시설‧저상버스 모니터링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문화생활과 사회 참여를 넓히고 지역사회 자립 토대를 다지고 있다.
협회 프로그램 중 이용자들의 호응이 특히 높은 대표 프로그램은 ‘미술 스케치’와 ‘보치아’다. 2016년 중증지체장애인 당사자가 재능기부로 시작한 미술 스케치 프로그램은 이듬해 보조금을 확보하며 정식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작품 전시회를 열어 지역 주민들에게 장애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장애 인식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보치아 동아리는 다양한 장애 유형의 이용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자조모임으로 운영되며 참여자들의 만족도 또한 매우 높다. 10년 전부터 운영된 협회의 대표 사업으로, 현재 14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활동을 점차 확대해 지금은 협회 자체 교육실에서 훈련하며, 센터 간 친선 경기에서 우승까지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협회는 뇌병변장애인의 의사소통 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인천시 보조금을 확보해 AAC(보완대체의사소통) 사업을 진행했으며, 올해도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뇌병변장애인은 언어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눈빛이나 몸짓이 소통의 주요 수단이 되며, 일상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활동지원사와 원활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협회는 PECS(그림교환의사소통체계)와 음성 녹음기기 활용 등을 통해 이용자가 자신의 의사를 스스로 표현하고, 활동지원사와 서로 의사소통 방식을 맞춰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만나야 바뀐다’…지역사회 연대로 더 큰 변화를
아울러 협회는 올해 인천지역 신경외과 병의원과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장애인건강주치의’ 사업을 본격화했다. 장애인건강주치의 제도 자체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충분한 홍보와 지원 체계 부재로 실제 수요는 저조했다. 특히 인천지역에는 몸이 불편해 구급차 없이는 병원 방문 자체가 어려운 중증장애인이 적지 않은 상황으로,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건강주치의 제도를 통해 의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하면 병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생활 환경까지 파악할 수 있고, 지속적인 건강 관리와 섬세한 상담이 가능해진다. 협회가 이 사업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료뿐 아니라 당사자의 생활 환경 전체를 살피는 의료 지원이 진정한 자립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업 시작 후 현재 20여 명이 참여 중이며, 신문 홍보를 통한 개별 신청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협회의 활동은 이용자 지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협회는 지역 학교와 기업 등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장애 인식 개선 교육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이동권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며, 참여자들이 뇌병변장애인을 직접 접하고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직접 교육에 나서고 있는 서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접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협회는 지역 내 다양한 기관 및 주민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장애인들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협회가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어울림 여행’이나 ‘명랑운동회’ 등 장애‧비장애인이 어울리며 자연스레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통합 프로그램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는 협회가 창립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이를 기념해 협회는 오는 10월 16일 창립 20주년 기념행사 ‘뇌병변장애인과 함께하는 어울림 한마당’을 연다. 1부 기념식에서는 그간의 활동에 헌신한 유공자 표창과 함께 뇌병변장애인의 비전을 선포하고, 2부에서는 공연과 명랑운동회로 참여자들이 한마음이 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서 회장은 “처음부터 함께한 동료들, 아무런 보상도 없이 협회를 후원해 주신 임원들과 후원자분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 행사는 협회의 더 먼 미래를 향한 다짐의 출발점이다.
협회는 20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언어치료·직업훈련·의료재활을 통합한 뇌병변장애 전문 복지관 건립을 위한 로드맵 수립 △건강주치의 사업 참여자 확대 △당사자 간 멘토링을 포함한 프로그램 다양화 △이용자 스스로가 조직하고 이끄는 자조모임 활성화 △학교·기업·지자체와 협력한 인식 개선 사업 강화 △탈시설 자립 지원 시스템 정비 △뇌병변장애인의 목소리가 지자체와 국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옹호 활동 등을 핵심 과제로 삼고 변화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서 회장은 협회의 궁극적인 비전은 ‘100년을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뇌병변장애인의 목소리가 사회에 더 널리 울려 퍼지고, 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협회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역설적이게도 ‘협회가 없어도 되는’ 사회다. 협회 없이도 뇌병변장애인이 사회에서 충분히 존중받고, 지원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날을 향해 협회는 뇌병변장애인의 곁에서 함께 걸어갈 것이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연희 회장은 명쾌하게 답했다.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어요. 2007년 제2대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단순히 자리가 바뀐 게 아니라 뇌병변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되던 제가 누군가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두렵고 부족했지만, 그 순간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 서 회장은 당시 연수구 기초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병행하며 ‘인천시 연수구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 제정에 직접 기여했다. 하지만 서 회장이 가장 값진 경험으로 꼽는 것은 거창한 성과가 아니다. “이용자들이 저를 보고 미소 지을 때, ‘회장님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그리고 지난 20년간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옆에서 응원해 준 동료들과 함께한 모든 순간입니다. 이 순간들이 저에게는 가장 큰 보상이자 앞으로도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20년간 수많은 뇌병변장애인을 만나 온 그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하나였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낮추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저도 그랬어요. 태어날 때부터 중증뇌병변장애인이었고, 부모의 차별적 시선, 사회의 편견 속에서 스스로를 최하층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협회 활동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장애는 능력 부족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뇌병변장애인의 다양한 특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에요. 장애는 당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서 회장은 모든 뇌병변장애인에게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술 스케치로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이용자, 보치아 경기에서 우승하는 이용자, 자립생활 주택에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입주자들을 봅니다. 뇌병변장애인도 일할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고, 누군가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협회의 20년이 증명하듯, 이는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함께하면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 100년도 함께 나아가요.”
출처 : 미디어생활(https://www.imedia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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