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말씀 산책
현재의 한남대학은 초창기에는 대전대학이었고, 숭실대학과 합해서는 숭전대학, 그리고 후에 분리해서는 한남대학이 되었다. 나는 초창기의 대전대학에 1963년 3학년에 편입하였다. 이 대학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세운 대학으로 영문과, 화학과, 수·물과 그리고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성문과(Sacred Literature)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들어간 수·물과는 학생이 네 명인데 소속 교수는 5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수업에 빠지면 1/4이 빠지게 되어 수업에 빠질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다 한 사람은 성적 장학금, 또 한 사람은 실험조교로 일하고 있어 등록금을 제대로 내고 다니는 학생은 두 사람 뿐이었다. 이 대학은 전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세례교인이었고, 매일 아침 8시에 20분씩 채플을 보고 있었다. 또 나는 편입했기 때문에 졸업에 필요한 필수과목인 성서 과목을 2년에 압축하여 수강해야 했다. 따라서 나는 신·구약 개론, 선지론, 바울서신, 일반서신, 성서지혜문학, 성서계시문학, 교회사 등을 다 필수 과목으로 18학점을 이수해야 했다. 이 대학은 나에게는 신학교와 마찬가지였다.
이 대학은 미국 남장로교선교부 고등교육국에서 오랜 고민 끝에 세운 대학이었다.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의 충청·호남 지역을 맡아 선교를 해 왔는데 그들은 이 지방에 교육, 의료, 선교사업을 동시에 해 왔다. 그런데 각 지방에 중·고등학교를 세워 미션학교의 세력이 커지자 이제는 신앙으로 길러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불신 대학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기독교 대학을 세워주기를 간청했다. 따라서 이 대학은 기독교 지도자를 기르기 위해 세운 작은 규모의 대학이었다. 1954년 5월 6일 남장로교 전후 2차 정기 총회가 전주에서 열렸는데 그 때 대학의 위치선정이 있었다. 후보지 전주, 광주, 순천, 대전, 이 네 후보지를 놓고 투표를 했는데 투표방법은 하나씩 후보지를 탈락시키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 순천이 탈락되고 다음 전주가 탈락되었다. 그런데 결선투표는 하룻밤을 자고, 두 후보지 대전과 광주를 두고 기도 한 뒤 다시모여 투표했는데 그때까지 선교지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전이 후보지로 결정되었다. 허허벌판인 오정골에 대학의 건물이 세워질 때 시민들은 큰 기대를 가졌고 미국과 똑 같은 선진 교육기관이 이곳에 세워진다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대학이 세워지고 학생 모집을 하게 되자 그들은 실망하였다. 대학 입학 자격이 세례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위치를 선정하고 특수 목적 아래 세워진 대학에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하였다. 거기다 나를 데려온 한미성 교수는 광주 지역과 협력하여 대전에서 UBF를 창설해서 대학생들의 성경 연구모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을 전도하여 성경공부를 주선하고 시내에는 역전에 있던 대우당 약국 뒤편에 이 층 집을 세 내어 학생들의 활동 본부로 하고 그곳을 음악 감상실로 만들어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틀어주는 등 디스크자키 노릇도 해야 했다. 선교부 장학금으로 도미하려는 많은 목사들이 이곳에 와서 영어로 성경공부도 하였다. 나는 한미성 선교사의 조교로 당연히 그들을 도와야 했다. 또 겨울 방학 동안에는 학생들을 모아 대학생 수련회도 했는데 나는 그분이 준 돈 36,000원으로 이를 주도해서 리더들을 데리고 수련회 준비기도회를 했다. 이 돈은 내 생활비가 한 달에 2,000원인 것이 비하면 큰돈이었다. 이를 위해 2박3일의 준비기도회를 마치고 끝으로 돌림기도를 했는데 마치고 나니 기도 시간이 2시간도 더 걸린 한밤중이었다. 나도 이렇게 긴 기도는 해 본 일이 없었는데 그 때 충남대학에 재학하던 초심자인 한 리더는 어떠했겠는가? 그는 준비기도에 질렸는지 그 뒤로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광주에 있는 배 선교사를 돕고 있던 UBF 지도자 이 강도사는 신학을 마친 분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며 학생들을 모집하여 100 여명이 넘었다는데 우리는 겨우 10여 명이 넘은 정도였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절대 울지 말라고 했다 한다. 울면 카타르시스가 되어 의지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나도 이 말을 듣고 울고 싶을 때도 울음을 삼키며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청지기 사명을 다 하려고 기를 썼다. 후에 생각하니 참 하나님은 이상한 방법으로 나를 훈련을 시키셨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