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날씨가 몹씨 추워지던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 사냥을 나가는 바람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벌써 산타가 엄마, 아빠라는 걸 눈치채기 시작한 녀석은
친구들한테 들은 얘기가 있는지 연신 엄마가 산타지 묻곤 했는데... 선물을 받고는
잠시 흔들리는 눈치다. (녀석이 늦게 잠드는 바람에 꼭두새벽에 일어나 주차장까지
갔다와야했다) 일껏 믿을만한 녀석에게 할머니는 또 산타는 없어 아빠가 좋은 걸
사주시는 거란다 ㅋㅋ
날씨가 추워서 며칠 집에 꼼짝않고 있느라 그랬는지 오늘은 녀석이 친구네 가서 올 생각을 안하네.
에이 그럼 난 근처 서점에 가서 책이나 읽고 와야겠다. 나선 것이 서대문에 있는 레드북스였다.
버스타고 가다 빨간 글씨로 '레드북스'라고 씌여 있는 걸 보고 참 희한하다, 대학가도 아니고
맥주 집이 즐비한 서대문 대로에 레드북스라니... 궁금증이 일었는데...
얼마 전에 광화문에 나갔다가 좀 걷자 싶어서 걷다 걷다 우연히 한 번 들른 적이 있다. 피쉬앤그릴
이라는 술집 2층에 있었는데 서가는 아직 많이 비었지만 똑똑한 놈들만 골라놓았는지 읽을 만한
책들이 꽤 눈에 띄었다. 그 중 하나가 <잃어버린 숲>. 한쪽은 기증받은 헌 책들이 서가을 채우고 있었고
탁자 몇 개가 한 쪽에 있어 북카페도 겸하는 모양이었다. 커피 1500원. 대로가 내려다 보이는 창문을
보면서 눈 오는 날 와서 책 읽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
서대문에 사회과학 서점이라.. 장사가 될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처음 들렀을 때 생각보다 우중충한 느낌이 아니어서 좋았고 결국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몇 권 책을 사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두 번째 방문. 버들치님이
말한 <진보집권플랜>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예약자가 한 명 있었다. 대담집이라
빌려보면 될 것 같은데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이 서점에 책이 있을 것 같아 들러본 것인데...
아무래도 또 책을 사들고 올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간간이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찾은 서점은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라디오 소리가 왕왕, 먼저
온 두 사람이 얘기하는 소리에 전혀 책 읽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다 일단 커피를 시키면서 라디오를 음악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책을 살 지 안 살지 모르니까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밖에는 눈이 오다 말다..
마침 서가에 꽂힌 경향 위클리 지난호에는 사회과학서점 특집을 다루면서 레드북스를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다. 서점이 9월에 문을 열었고 10월 즈음에 나온 그 기사에는 공동대표인 두 사람이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다 서점을 열게 되었다는 뒷얘기를 전했다. 대학로에 이음아트, 통인동에
길담서원이던가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점도 소개하고 있었는데 후자는 나중에 시간을 내서 한 번
들러볼 생각이다. 아무튼 이렇게 일을 저지른 두 사람은 돈을 번다기 보다 10년을 버티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얘기가 길어졌다. 졸린 모양이다. 버들치가 흘리고 간 걸 내가 주워먹었으나 맛은 좋다. 되면 주위
사람들이랑 나눠 먹을 꿈도 꾸어본다.
첫댓글 책들도 똑똑한 놈들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ㅎㅎ
ㅋㅋ 여기도 폭설이라네~~ 쌀푸대 쌀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