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춘추시대를 산 공자(孔子)는 나이 40살을 불혹(不惑)이라 했고, 전국시대를 산 맹자(孟子)는 부동심(不動心)
이라고 했다.그리고 미국의 19세기 중후반 시대를 살면서 대통령을 지냈던 링컨은 '남자 나이 40살 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링컨의 이러한 일갈은 표현은 다르지만 동양의 불혹과 부동심 내용과 동일한
성격으로 그 나이가 되어서도 자기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정신세계)과 사회적으로 확고함이
없으면 별 볼일 없는 남자(인간)란 뜻이된다(무책임 한 남자),(사회의 기여 불충자),(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따라서 문제는 이들이 나이 40 살을 기준점으로 삼은 당시 유학 세력들의 정신문화(사회) 기준은 뭤이며,이들의
계급과 신분관계는 뭤이냐 다. 또한 링컨의 언행도 당시 미국의 상황에서 깊히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인간
수명의 장단은 결국 '섭생과 위생'에 깊은 관련이 있다.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에 전 세계를 휩쓴(지금도 여전한)
'환경오염과 공해' 문제도 인간수명 단축과 깊은 연관이 있고,21세기 지금은 사회적,경제적 문제도 인간 수명에
큰 영향(자살과 잠재적 자살자)을 준다.
2, 우선 공자와 맹자 그리고 링컨이라는 역사적 인물들은 해당시대 사회 구성원들 중에서 핵심인 0.1% 내에 들어
가는 귀족계급에 속한 사람들 이었다는 것을 잊지말자. 따라서 이들은 노예,또는 농노(일반인)신분이 아니였다.
이들이 먹고,입고,사는집과 같은 기초적인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다 해결해 주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다는
뜻이다.우선 공자가 논어에 쓴 내용을 보면 나이 40 살에 불혹의 경지에 오르려면 아무나 할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려 줬다.우선 15살에 학문에 뜻(志學)을 두어야 하고,계속 정진해 15년이 지난 30살이 되면 그동안 배운 학문
(유학에 의한 문리터득)의 성과가 어느정도 윤곽(틀)을 잡은(而立)후에 불혹 경지에 들어 선다고 했다.즉 유학을
공부 한다고 아무나 불혹이나 맹자의 부동심의 경지에 오를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이시대 유학공부를
아무나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소질과 풍요의 뒷 바침 없이는 학문의 성과를 낼수없는 학문이 유학공부다.
3, 따라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종일 일하는 농부나 노동자,그리고 노예들은 절대로 불혹(부동심)이 뭔지도 모른다는
것도 분명히 말해줬다.지금으로 부터 까마득한 옛날이자 노예제 사회였던 춘추전국 시대에 주(周)나라에서 탄생한
유학을 평생 공부해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하류 99% 부류나 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남의 일일 뿐이었다.지금으로
말하면 소수의 재벌계급에 해당한다.혹시 흉내를 낼려고 한다 해도 그 깊은 모션은 힘들다.이점은 유학경전을 궁구히
공부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안다.제대로 얘기 한다면 유학 경전들의 실제 내용이 3%의 귀족들을 보호하려는
의도적 학문이고,그속에서 공자 맹자를 팔고,그 후학적 성격으로 정이,정호,주돈희,장재,주자를 상품으로 제시한다.
세월이 한참 지난후 신유학 시대인 북송과 남송시대에도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귀족층 사람들 만이
할수가 있었던 공부가 바로 유학경전 공부라고 주자는 말한다.주자는 강서의 '자사(도지사급)'란 벼슬에 있었다.
그런데 그런 주자가 자사로서 관할 통치했던 지역이 지금의 한반도 면적보다도 넓었다는 것도 풍요에서 학문이 나올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4, 이런 계급들이 평생을 붙들고 하던 공부였는데 어떻게 농민(농노)들이 유학경전 과목의 암기로 부터 시작되는 공부를
해(말이좋아 주경야독이지 옛날에도 주경야독으로 출세한자는 없었다) 과거시험까지 보고 관직에 나갈수 있었을 것인가?
향교 조차도 해당 지방의 호족들이나 향반,퇴직(현직)관료들의 자제들만 갈수가 있었는데 하루종일 일만하는 농민이란
상민들이 무슨 재주로 또 능력으로 주경야독을 하며 관직에 오를수 있나? 어떤 경우든 불가능 했다.
중세의 서양 기독교 시대의 상황도 비슷했다.당시의 성직자들이나 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예수를 신성화
했고 여기에 복종케 했으며,세부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강한 율법이나 교리를 구축했었다.어느시대 어디서나 권력자들과
부유한자들의 횡포는 비슷비슷 했었다.
5, 또 하나의 핵심적인 내용은 공자와 맹자 그리고 링컨이 기준점으로 삼은 나이 40살 이면 해당시대의 보통인간
들의 수명이 어떻게 되는 냐다? 공자와 맹자시대인 춘추전국 시대의 남자 평균수명은 '27세'였으며,년대가 비슷한
서양의 로마 귀족들 평균 수명은 '25살' 이었다.그러니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불혹이란 나이(40살)까지 살지를
못했기 때문에 불혹이 뭔지 몰랐었고,자기 얼굴에 책임질 나이까지 살지도 못했다.단지 유학자들 끼리의 공리공담
현학적 통용 단어였을 뿐이다.따라서 중국사를 치장하고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왕들이나 공(公)들의 수명은 지금
기준으로 볼때 모두 청년기에 죽는 단명일수 밖에 없었고,로마제국의 케사르나 장군들도 30살을 넘기지 못한 경우
가 허다 했다고 역사서는 쓰고 있다.따라서 당시 기독교의 개조(시조)가 된 예수가 30살을 살았다는 진실은 동서양
모두를 기준으로 할때 젊은들의 평균수명을 5년 이나 넘겨살다 죽은 것이 되니 예수는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된다.
그런데 공자와 맹자도 그렇지만 로마 장군들이나 케사르 예수,모세,마호메트의 죽음에는 아주 묘한 각색과 픽션적
얘기들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6, 또한 남자 나이 40 살이면 자기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 때인 미국의 링컨시대(1861~1865) 미국 남자들의
평균 수명은 '38살' 이하였다.실제 상황이 이런데,즉 미국의 남자들이 40살도 못 사는 경우가 태반인데 어떻게 나이
40살에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수 있다는 말인가.다 헛소리인 것이다.공자나 맹자나 링컨이나 살았던 시대의 간격은
무려 2천 5백년 가까히 되나 일명 지도자들이란 인생들의 허풍적 마타도어 표현은 늘 지속되어 왔다.이들은 인민들을
통치 하기에 골몰하는데 억제와 통제를 하기 위해서 그들은 권력(폭력)으로,재물로,어려운 학문으로,현학적인 말들로
(특히 그리스 철학 용어들과 기독교 성서의 시편에 사용한 용어들) 현혹해 왔다.링컨을 미화하기 위한 켄터키 통나무
오두막집이란 말도 당시 미국의 모든 주택환경이 통나무 집으로 같았을 때였기에 대단한 것도 유별난 가난의 상징도
아니였다.열심히 노력하면 링컨같은 인물이 될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있는자들의 유혹이었던 것이다.또한 링컨이 말한
인민(people)들이자 중심적인 미국 남자들에 대한 기준도 당시 세금을 낼수있는 미국 백인 남성들의 5%를 말하는
것이지 미국 인민 전체를 말하는 것도 아니였다.또한 링컨은 노예해방론자도 아니였다.
7, 링컨은 강도 귀족들의 앞잡이에 불과 했었다.링컨이 대통령이 될수 있었던 것도 그가 유태인으로 태어나 많은 유태인
들의 조력으로 가능했고,대통령 된후 그들의 말에 반기를 들고(자본가들) 독자 노선을 고집하는 조짐을 보이자 제거된
것으로 보면 정확한 분석이라 할수가 있다.링컨은 당시의 정국 상황으로 볼때 케네디 처럼 제거 될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아무튼 이후 세월이 안정되어 20세기 초에 이르면 미국 남성들의 평균수명이 겨우 '47세' 로
늘어난다.미국에 산업혁명 기술과 자본을 수출해 단기간 내에 미국에 큰 부흥을 일으키게 했던 당시의 선진국 이였다는
영국인들 중 노동자 계층 수명은 1820년대에 35살,1830년대에 29살,1850년대에 25살이었다.즉 산업혁명이 최 극성기를
달리던때 영국 노동자들은 공해와 오염으로 단명으로 치닫고 있었다.특히 1830년대 맨체스터나 리버풀 이란 공업지대의
노동자들 평균수명이 15세~19살 이었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또 한가지 서양의 예를 든다면 프랑스의 발자크
시대(1799~1850)에는 30대 여성도 노인(老人)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당시 서유럽의 최고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이지경 이었다면 이보다 상당히 열악했던 나머지 유럽 나라들의 인간 수명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해 볼 내용이 없다.
8, 그렇다면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공자와 맹자시대는 말할것도 없고 그후 2천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근세 조선의
세종시대(1418~1450)와서 조선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29세'가 겨우 됐었다.그러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33세' 로 늘고,
1940년대 초의 한국인 남자들 평균 수명이 42세~43세로 늘어나며 여성들은 남자들 보다 약간 긴 45세~46세가 된다.
그러니까 근세의 봉건주의 시대의 조선인들의 수명이란 것이 별 차이 없이 28세~32세를 겨우 유지 하고 있었으니 후손
얻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니 양자제도가 활성화 되고 있는자 리그에서 씨받이 관습등이 횡횡했던 것이다.
필자의 청소년기 때인 1960년대 초의 한국인들 평균수명은 '52세'였고,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겨우'58세'가 된다.
따라서 이때는 마을에서 환갑 잔치를 요란하게 했었고,환갑 자체가 장수와 복받은 사람과 집안의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에 '꼬마신랑' 이란 영화가 제작 상영되기도 했는데 이런 영화의 탄생 배경도 사람들의 단명과 조속한 씨족 번식의
어려움을 말해 주는 이면 언어를 깔아 놓고있다.
9, 그런데 근세조선 성종(1469~1494)때 만들어 졌다는 경국대전이란 책을 보면 노비의 해방이 '60세'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1960년대 말의 일반 한국인 들의 평균수명이 겨우 58세 인데,15세기 노예해방이 60세면 살아서 노비해방을
맞았을 노비는 과연 있었을 것인가? 아마도 없었을 것으로 보고 한번 노비는 영원한 노비로 죽었던 것이 된다.
또한 이때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백신이나 예방약,치료약이 있었던 시대가 아니였기 때문에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하면
한마을이나 고을이 전멸할 정도로 속수무책인 시대였고,한국,중국,일본이란 공동체의 인민들 사정은 모두 같았었다.
특히 도시란 곳은 인간이 모여사는 곳으로 인간 스스로가 병균을 만들어 내고 숙주노릇 까지 하기 때문에 전염병이 돌면
전 고을이나 도시가 전멸에 가까울 정도 몰살했다는 것을 역사 공부를 통해 알자.이럴때 괴질(전염병)등을 피해 보고자
격리된 산속 깊은 곳으로 도망가 살기도 했다.화전민 생성도 이런 과정에서 생긴 경우가 많았다.이럴때 병에 걸린 약자
들을 버리고 갈때가 있었는데 이것은 질병의 숙주가 되는 인간(환자)과 단절해 살아있는 생명이라도 보존케 하기 위해서
그랬다.
첫댓글 전쟁과 질병, 재난으로 거의 단명하였는가 봅니다. 물론 1%들은 환갑까지도 갔을 거고요! 동의보감이니 황제내경이니 ... 모두 가진자들을 위한 것이었을 터이니....!
모두 고전한문을 잘아는 사대부나 귀족들의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이란 의약서 였습니다. 문맹들이 대부분인 세상에
서 언론 출판의 자유가 있는들 뭘 하겟습니까? 시간이 나시면 '전염병의 역사'를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댓글 감사 합니다...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상위 1%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양반들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죽 먹을 게 없어서 야채죽 먹고, 아내가 그것도 없으니까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비(婢)에게 고기를 사오게 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또 노비라고 해서 문맹으로 살지도 않았고, 양반에게 말대꾸하거나, 일침을 놓는 것도 많이 등장합니다. 신분이 천했을 뿐이지 주인 말에 고분고분 따르게만 하고, 교육도 안 시키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자기 나라 글을 읽지 못하는 걸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다 했고, 교육도 남녀를 불문하고 다 가르쳤습니다. 노비(奴婢)는 지금의 비서 개념이라고 보는 게 옳은 거 같습니다.
댓글 감사 합니다.글의 원의를 잘 파악하셔야 할 겁니다...
문자 습득과 학문의 성숙이 있는자(양반)들의 독점 교양이었다는 것은 아시지요...
비근한 예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도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여자들에게 신학교 교육 시키는 것을 왜 꺼렸는지를 생각해 보시면 이면 그림을 알수가 있습니다.그건 권력 분산을 꺼린 것이지요...깨이면 곤란 하니까.
@상선거사 문자와 지식은 상위권층의 독점이 맞지만, 배타적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우게 하도록 권장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의의(意義)도 글을 잘 배우지 못하고, 글자(漢字)를 쉽게 깨우치게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제정(制定)했다고 합니다. 교육하는 것도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남자를 먼저 배우게 했고, 집안 사정이 좋으면 남녀 불문하고 다 가르쳤습니다. 여자들에게 교육 시키는 걸 꺼렸던 건 그 집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 걸 겁니다. 퇴계(退溪) 선생도 양반이지만, 훈민정음 사용을 적극 권장했고, 고을이나 마을 내에서 천한 신분이 강도나 살인 같은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면 양반, 수령도 같이 책문이나 강등당했습니다.
@다누 세종실록을 잘 보세요. 한글은 창제 한것이 아니고 있는 언문(방언)들을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쓰여져 있지요.또 훈민정음이란 것은 말 자체나 목적이 한자 발음의 통일 이었으니 남자 여자의 구분이 있을수 없었지요.인류의 수명과 그 역사에 대한 필자의 본의를 잘 못 이해 하시는듯 하군요.생각과 의문이 교과서 적이란 생각도 드네요.아무튼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선거사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한글은 漢字구요. 그리고,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글의 音을 표현한 게 反切法입니다. 여러 설이 존재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창제가 아니라 옛 글자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했다고, 芝峰類說에 나오구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 글쓴분이 인간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듯하여 몇 글자 꺼내봤습니다. 세종 님금 시대 제도를 보면, 노비(奴婢)가 출산을 하면 의무적으로 60일에서 100일까지 출산 휴가를 줬습니다. 노비라 해도 인간적인 대우는 다 받고 살았다는 것도 아셔야 할 거 같습니다.
@다누 그렇다면 이참에 인간과 인류에 대한 그리고 봉건왕조 시대 제도에 대한 다누님의 고견을 일갈 하시는 것은 어떠신지요...한수 부탁 드립니다..
@상선거사 저는 배운 바가 적고, 학문이 고루(孤陋)한 사람입니다. 한수까지 얘기하실 필요는 없구요.
일단 봉건 제도, 계급 사회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노비,노예들은 존재했고, 상위층을 위해 살았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동물이 아닌, 사람 대우는 해줬다는 겁니다. 서양에서는 하층민 다루기를 아주 동물 이하로 다뤘지만, 조선 사회에서 양반이라도 그런 짓을 하면 죽일놈, 쌍놈으로 취급을 받지요. 조선 시대에 장애인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봐도 그런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또한, 고전 문학 작품 중 60~70%가 작자 미상(未詳)의 작품입니다. 상층인이 글로 옮긴 것도 많지만, 중하층민도 문자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상선거사 말꼬리라뇨.. 그렇게 말하시면 곤란합니다 ^^; 다만,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식보다는 여러 면을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댓글을 단 겁니다. 기분이 편치 아니하면 제가 뭐라 더 할 말은 없으나, 역사라는 건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건데, 배타적으로 역사를 서술한다면 역사가 아니겠지요. 제가 이 글을 봤을 때 배타적인 것 같아 모든 우려를 감수하고 글을 쓴 겁니다. 해코지하려는 의도는 없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다누 기존 역사의 축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배타적인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미 아실 것으로 봅니다.지금이 민주주의 시대라면 민주 역사 창출과 발전에 어느 대상을 배타 대상으로 삼아야 겠습니까? 승자 중심으로 계속 갈까요? 다누님도 어느 편에서 역사를 볼것인가에 대한 독자적인 사론(저술)을 펴시길 바랍니다.지금의 자본가 계급은 서민들이나 절대 다수의 국민들을 배타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으로 봅니다.배타주의의 극점이 냉전에서 신자유주의 옮겨 왔다는 것도 아실 것으로 봅니다. 이것으로 끝...
우리가 알고있는 평균수명 그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모두 통계의 속임수 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었다는거 다 거짓입니다 조금은 늘었겠지만 영양섭취때문에 (기타이유조금)영아 사망율이 현저히 줄었는데 통계학적으로 평균수명이 대단히 늘어난 것으로 오도함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 귀족이나 평민이나 님이 사례로 들은대로 그렇게 짧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은것은 아님니다 전쟁사망자 포함되어 그렇고요 진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생을 마감했다면 역사가 문명이 좋은면이던 나쁜면이던 문명이 이렇게 발전해 왔겠습니까 과학 의학발달 인간수명 연장 이거다 그대로 믿을게 못됩니다
공감 해 봅니다.
댓글 감사 합니다.글의 원의를 잘 파악 하셔야 할듯 합니다..
문화와 문명이란 것도 있는자들의 정신세계를 현재화 한것이란 것은 아시지요...1차 세계대전의 이른 종결이 스페인 발 유행성 인플랜자로 수 많은 병사들과 시민(주민)들이 죽어 나가면서 일찍 서두른 큰 몫도 있었지요.아시지요..
89세까지 산 황희 정승이 있고, 지배 계급 사람들은 대개 오래 살았습니다. 영아 사망만 넘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지금보다 크게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배 계급 사람들이야 사고를 당할 일도 없고 전염병에 걸릴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피지배 계급의 수명을 기록할 일도 없지요. 알짝 쥭눈 왕들은 궁중암투로 인해 독살당하거나 양기를 빨려 죽거나 그랬을 겁니다. 조선 후기에 왕들이 다 죽어 나갈 때도 , 예를 들어 남연군은 당시로는 짧지 않은 48세, 남연군의 3남 흥인군 이최응은 67세까지 살았습니다 (영의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미 몸 상태가 확정된 40대 후반에 고종이 왕이 되었으니 그때까지는 별거 아닌 왕
댓글 감사 합니다...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족으로 그래도 남들보다는 훨씬 낫게 살았었지요)
그리고 이최응의 동생인 잘 알려진 이하응은 78세 (서양의학의 도움을 안 받음), 이하응의 장남 이재면은 말년에나 서양의학의 도움을 받앗을 텐데 67세까지 살았지요. 지배계급은 대개 그렇게 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옛날의 평균수명이 25세 30세라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중명된 사실인지 아니면 기록에 의한것인지 궁금합니다. 전쟁이나 질병으로 일찍 죽은 사람들을 빼면 실제 평균수명이 50세는 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5세라면 언제 애기들을 낳고 키웠을까요? 가령 15세에 애를 낳으면 25세가 평균수명이라면 애기나이가 10살밖에 안되는데 말이 안되지요.
댓글 감사 합니다.실험적 결과로의 과학이 없던 시대라 모두 동서양의 기록에 의한것 이겠지요(승자들의 기록). 평균이니까 아마도 오래 산 부류의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글의 목적은 수명과 연관된 인류의 역사를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를 다룹니다... 어디의 현생 인류든 그 사람들은 평균이상을 산 사람의 후손이나, 평균이상으로 운이 좋았던 인류의 후예로 봄이 타당하지요....시간을 허비 할수없는 평균 이상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감사 합니다.그런 기록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