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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정용석교수실 인간(인류)의 수명(壽命)ㅡ 그 역사의 이모저모.....
상선거사 추천 1 조회 699 15.09.09 12:26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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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9.09 16:33

    첫댓글 전쟁과 질병, 재난으로 거의 단명하였는가 봅니다. 물론 1%들은 환갑까지도 갔을 거고요! 동의보감이니 황제내경이니 ... 모두 가진자들을 위한 것이었을 터이니....!

  • 작성자 15.09.09 17:49

    모두 고전한문을 잘아는 사대부나 귀족들의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이란 의약서 였습니다. 문맹들이 대부분인 세상에
    서 언론 출판의 자유가 있는들 뭘 하겟습니까? 시간이 나시면 '전염병의 역사'를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댓글 감사 합니다...

  • 15.09.09 18:53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상위 1%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양반들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죽 먹을 게 없어서 야채죽 먹고, 아내가 그것도 없으니까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비(婢)에게 고기를 사오게 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또 노비라고 해서 문맹으로 살지도 않았고, 양반에게 말대꾸하거나, 일침을 놓는 것도 많이 등장합니다. 신분이 천했을 뿐이지 주인 말에 고분고분 따르게만 하고, 교육도 안 시키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자기 나라 글을 읽지 못하는 걸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다 했고, 교육도 남녀를 불문하고 다 가르쳤습니다. 노비(奴婢)는 지금의 비서 개념이라고 보는 게 옳은 거 같습니다.

  • 작성자 15.09.10 15:16

    댓글 감사 합니다.글의 원의를 잘 파악하셔야 할 겁니다...
    문자 습득과 학문의 성숙이 있는자(양반)들의 독점 교양이었다는 것은 아시지요...
    비근한 예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도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여자들에게 신학교 교육 시키는 것을 왜 꺼렸는지를 생각해 보시면 이면 그림을 알수가 있습니다.그건 권력 분산을 꺼린 것이지요...깨이면 곤란 하니까.

  • 15.09.10 15:23

    @상선거사 문자와 지식은 상위권층의 독점이 맞지만, 배타적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우게 하도록 권장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의의(意義)도 글을 잘 배우지 못하고, 글자(漢字)를 쉽게 깨우치게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제정(制定)했다고 합니다. 교육하는 것도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남자를 먼저 배우게 했고, 집안 사정이 좋으면 남녀 불문하고 다 가르쳤습니다. 여자들에게 교육 시키는 걸 꺼렸던 건 그 집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 걸 겁니다. 퇴계(退溪) 선생도 양반이지만, 훈민정음 사용을 적극 권장했고, 고을이나 마을 내에서 천한 신분이 강도나 살인 같은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면 양반, 수령도 같이 책문이나 강등당했습니다.

  • 작성자 15.09.10 15:48

    @다누 세종실록을 잘 보세요. 한글은 창제 한것이 아니고 있는 언문(방언)들을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쓰여져 있지요.또 훈민정음이란 것은 말 자체나 목적이 한자 발음의 통일 이었으니 남자 여자의 구분이 있을수 없었지요.인류의 수명과 그 역사에 대한 필자의 본의를 잘 못 이해 하시는듯 하군요.생각과 의문이 교과서 적이란 생각도 드네요.아무튼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 15.09.10 16:02

    @상선거사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한글은 漢字구요. 그리고,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글의 音을 표현한 게 反切法입니다. 여러 설이 존재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창제가 아니라 옛 글자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했다고, 芝峰類說에 나오구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 글쓴분이 인간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듯하여 몇 글자 꺼내봤습니다. 세종 님금 시대 제도를 보면, 노비(奴婢)가 출산을 하면 의무적으로 60일에서 100일까지 출산 휴가를 줬습니다. 노비라 해도 인간적인 대우는 다 받고 살았다는 것도 아셔야 할 거 같습니다.

  • 작성자 15.09.10 16:30

    @다누 그렇다면 이참에 인간과 인류에 대한 그리고 봉건왕조 시대 제도에 대한 다누님의 고견을 일갈 하시는 것은 어떠신지요...한수 부탁 드립니다..

  • 15.09.10 16:53

    @상선거사 저는 배운 바가 적고, 학문이 고루(孤陋)한 사람입니다. 한수까지 얘기하실 필요는 없구요.
    일단 봉건 제도, 계급 사회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노비,노예들은 존재했고, 상위층을 위해 살았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동물이 아닌, 사람 대우는 해줬다는 겁니다. 서양에서는 하층민 다루기를 아주 동물 이하로 다뤘지만, 조선 사회에서 양반이라도 그런 짓을 하면 죽일놈, 쌍놈으로 취급을 받지요. 조선 시대에 장애인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봐도 그런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또한, 고전 문학 작품 중 60~70%가 작자 미상(未詳)의 작품입니다. 상층인이 글로 옮긴 것도 많지만, 중하층민도 문자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 15.09.10 17:29

    @상선거사 말꼬리라뇨.. 그렇게 말하시면 곤란합니다 ^^; 다만,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식보다는 여러 면을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댓글을 단 겁니다. 기분이 편치 아니하면 제가 뭐라 더 할 말은 없으나, 역사라는 건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건데, 배타적으로 역사를 서술한다면 역사가 아니겠지요. 제가 이 글을 봤을 때 배타적인 것 같아 모든 우려를 감수하고 글을 쓴 겁니다. 해코지하려는 의도는 없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 작성자 15.09.10 18:03

    @다누 기존 역사의 축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배타적인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미 아실 것으로 봅니다.지금이 민주주의 시대라면 민주 역사 창출과 발전에 어느 대상을 배타 대상으로 삼아야 겠습니까? 승자 중심으로 계속 갈까요? 다누님도 어느 편에서 역사를 볼것인가에 대한 독자적인 사론(저술)을 펴시길 바랍니다.지금의 자본가 계급은 서민들이나 절대 다수의 국민들을 배타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으로 봅니다.배타주의의 극점이 냉전에서 신자유주의 옮겨 왔다는 것도 아실 것으로 봅니다. 이것으로 끝...

  • 15.09.10 00:29

    우리가 알고있는 평균수명 그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모두 통계의 속임수 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었다는거 다 거짓입니다 조금은 늘었겠지만 영양섭취때문에 (기타이유조금)영아 사망율이 현저히 줄었는데 통계학적으로 평균수명이 대단히 늘어난 것으로 오도함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 귀족이나 평민이나 님이 사례로 들은대로 그렇게 짧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은것은 아님니다 전쟁사망자 포함되어 그렇고요 진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생을 마감했다면 역사가 문명이 좋은면이던 나쁜면이던 문명이 이렇게 발전해 왔겠습니까 과학 의학발달 인간수명 연장 이거다 그대로 믿을게 못됩니다

  • 15.09.10 08:30

    공감 해 봅니다.

  • 작성자 15.09.10 15:18

    댓글 감사 합니다.글의 원의를 잘 파악 하셔야 할듯 합니다..
    문화와 문명이란 것도 있는자들의 정신세계를 현재화 한것이란 것은 아시지요...1차 세계대전의 이른 종결이 스페인 발 유행성 인플랜자로 수 많은 병사들과 시민(주민)들이 죽어 나가면서 일찍 서두른 큰 몫도 있었지요.아시지요..

  • 15.09.10 09:17

    89세까지 산 황희 정승이 있고, 지배 계급 사람들은 대개 오래 살았습니다. 영아 사망만 넘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지금보다 크게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배 계급 사람들이야 사고를 당할 일도 없고 전염병에 걸릴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피지배 계급의 수명을 기록할 일도 없지요. 알짝 쥭눈 왕들은 궁중암투로 인해 독살당하거나 양기를 빨려 죽거나 그랬을 겁니다. 조선 후기에 왕들이 다 죽어 나갈 때도 , 예를 들어 남연군은 당시로는 짧지 않은 48세, 남연군의 3남 흥인군 이최응은 67세까지 살았습니다 (영의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미 몸 상태가 확정된 40대 후반에 고종이 왕이 되었으니 그때까지는 별거 아닌 왕

  • 작성자 15.09.10 10:39

    댓글 감사 합니다...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15.09.10 09:18

    족으로 그래도 남들보다는 훨씬 낫게 살았었지요)

    그리고 이최응의 동생인 잘 알려진 이하응은 78세 (서양의학의 도움을 안 받음), 이하응의 장남 이재면은 말년에나 서양의학의 도움을 받앗을 텐데 67세까지 살았지요. 지배계급은 대개 그렇게 살았습니다.

  • 작성자 15.09.10 11:20

    감사 합니다...

  • 15.09.10 17:19

    옛날의 평균수명이 25세 30세라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중명된 사실인지 아니면 기록에 의한것인지 궁금합니다. 전쟁이나 질병으로 일찍 죽은 사람들을 빼면 실제 평균수명이 50세는 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5세라면 언제 애기들을 낳고 키웠을까요? 가령 15세에 애를 낳으면 25세가 평균수명이라면 애기나이가 10살밖에 안되는데 말이 안되지요.

  • 작성자 15.09.11 11:02

    댓글 감사 합니다.실험적 결과로의 과학이 없던 시대라 모두 동서양의 기록에 의한것 이겠지요(승자들의 기록). 평균이니까 아마도 오래 산 부류의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글의 목적은 수명과 연관된 인류의 역사를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를 다룹니다... 어디의 현생 인류든 그 사람들은 평균이상을 산 사람의 후손이나, 평균이상으로 운이 좋았던 인류의 후예로 봄이 타당하지요....시간을 허비 할수없는 평균 이상입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5.09.11 08:51

    댓글 감사 합니다.그런 기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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