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셨습니까 ?
저는 고향 광성 출신으로 제 17대 회장(2011년 5월 29일 - 2013년 5월 26일)과 명예회장(2013년 5월 26일 - 2015년 5월 31일)을
순조롭게 업무수행을 역임한후 평회원으로 내려온 이영식입니다.
이렇게 직분을 이행한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인격 수양과 학문적 깊이도 없고 경험과 경륜이 부족한 소생을 믿고서 중차대한 직함을 맡기신 향우님들에게
송구스러웠고 가슴이 미어오고 어깨가 짓눌러 졌으나 훈수를 잘해 주셨고 배려를 아끼지 않은 향우님들에게
더 더욱 고개가 숙여지고 진땀이 흘렸습니다.
1984년인가 1985년 초여름으로 기억 합니다.고향 선배님 한분의 소개로 처음 우이동 사슴목장을 찾았습니다.향우회 회의장은 야외 무대였으나 좀 초라(?)하였습니다, 도화지 8절지 용지 하나에 한글자씩 붓글씨로 (재경 가조면 향우회 정기 총회)라는 글자를 나열하였고 대형종이에는 식순표가 붙여있는 것이 단상이었습니다.
(재경 가조면 향우회 정기 총회)를 읽는 순간 가슴이 찡한 전율을 지금도 잊을수 없었습니다.
당시 인식면이 있는 향우는 몇분 뿐이었으나 선배 향우님들의 얼굴은 비록 삶에 찌들고 타향살이의 고통 속에서도 인내력을 읽을수 있었고 어떤 고난과시련도 단칼에 헤집고 나갈수 있는 힘 솟는 의지력을 보았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정담과 술잔 부딪치는 소리에 정이 넘쳐나고(고향사랑) 사명감이 불타오르고 향수에 굶주린 억센 고향사투리는
가조 장날을 연상케 하였고 형, 아우들이 어우러진 노래자랑 때의 서투른 트위스트 춤은 향우인들 만이 만끽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땅바닥에 거적을 깔고 준비한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였지만 정으로 맺어진 축제 한마당 이었습니다.
1987년 향우회 행사부터는 부총무로서 향우회의 온갖 잔무를 보필하였습니다.
그때가 37살 이었나 봅니다.
집행부 모임, 간담회를 비록한 모금운동, 선거철이면 고향 후보자들 지원, 각종 길, 흉사들의 참석으로 인해 고향 출신 향우들과의 교류가 폭이 넓어졌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모여 축하와 함께 축배의 잔을 높이 들었고 궂은일이 있을때 서로 무릎을 맞대고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좌절하지 말자고 용기를 북돋으며 위로의 말을 나누면서 우의 증진에 한 몫을 하였습니다.
1990년도가 저물어 가자 하루에 고향 향우들과 통화는 10여 차례 만남은 3 - 5인 이었습니다.
소생의 직업도 중고 자동차 매매와 손해보험이 한몫을 차지하여 살림살이와 향우회 업무가 동반 성장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찍이 산악회를 창립하자는 선배 향우님들의 주장에 큰 호응이 있겠냐고 회의적이었으나 선배님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 의식에 불이 붙어 이제는 시베리아의 어떤 삭풍도, 태평양의 어떤 파도도 가소산악회를 파괴하지 못 할 것입니다.
향우 상호간의 우의 증진과 유대강화와 체력증진과 소통의 장을 마련에 큰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재정적인 금액도 수북히 정립되어 내실이 다져진 알찬 산악회입니다.
장학사업을 해 보고 싶었으므로 건의도 해 보고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숙제로 남게 됩니다.모금사업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향우회에 재직하면서 저로 인한 개인적 감정이나 오해가 계셨으면 설명 필요없이 저의 잘못임을 인식함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군 향우회와 각 읍면 향우회와도 교류 확대에 힘을 쏟아 유대강화를 돈독히 하였으면 군 향우회에서 고향 가조의 실력을
과시 하면서 선두 주자로서의 위상 확립에 증진 하였습니다.
매년 실시되는 체육행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과시 한것은 가조향우회원들의 정열이 넘치는 참여력과 평소 갈고 닦은 실력이 원천이었습니다.
고향 가조를 위한 경로잔치, 고향사랑, 벚꽃길 조성등은 지금은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모금과정에서 솔직히 죽는줄 알았습니다.
향우님들에게 전화를 드리면 흔쾌히 승락하시는 분 보다는 호통과 짜증(?)이 앞섰습니다.그러나 마감시간이 임박하면은 흔쾌히 모금에 동참하였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협조하신 향우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주소록 작성으로 향우님들의 소재가 명확하여 졌고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무 자랑을 늘어 놓는것 같습니다.
부총무, 총무, 사무국장, 부회장을 거쳐 2011년 4월 전임 회장님의 회장추대 제의에 하늘이 무너짐을 느꼈습니다.
전혀 준비된 상황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몇일간 잠을 설치고 몇몇 선배 향우님과 상의도 하였으나 빠져 나갈 구멍은 없었습니다.
좋다 !
통큰 봉사를 하자.
우리 향우들은 다른 사람보다 2-3시간 더 자신의 직장에서 일하게 호소하자.
향우들의 다양성 성격을 조화롭게 받들어 하나로 만들자.
고향의 조상들이 일구워 놓은 찬란한 업적을 뒤 따르는 향우가 되자.
선후배간의 유대 강화를 더욱 돈독히 하자.
고향을 지키는 고향의 보모형제 원주민과 교류를 확대하자 등등의 야심찬(?)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임기가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도 해 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몸은 웅크려지고 숨소리도 작아습니다.
향우님들 뵙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세월은 붙잡을 수 없었고 무지랭이 젊은 시절부터 부 총무에서 명예회장까지 28년을 봉사하고 평회원으로 모든것을 내려 놓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왜 통큰 봉사를 못 하였는냐 ?
왜 헌신적이지 않았느냐 ?
후손들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에 무슨 대답을 할 것 인가 ?
존경하는 선배 향우님 !
저는 구시대의 막내둥이로 신세대의 맏형으로서 직분이행을 잘못하였던 것을 큰 아량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어느 향우님이 귀하지 않겠습니까만은 제가 모셨던 전임 회장님들을 불러 봅니다.
이강열, 배기수, 신은성, 김한영, 김영곤, 신이범, 송준기, 변희수, 이형도, 최재달, 전회장님들입니다.벌써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민을식, 배익열, 이영호, 신종성, 정한복, 어윤소, 이자원, 김학수, 신종록, 정연주, 오흥석, 방현복, 오남용, 하계홍, 이영돌, 박희우, 이강주등의선배님도 불러 봅니다.
20년 이상 밑바닥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팔을 걷어 올린 강순경 가소 산악회장님과 그 사모님에게 감사를 드리며
상호간에 목소리만 들어도 자신의 한일이 무엇인지 발굴하여 직분을 다하는 김길성, 이해경, 하용구, 지재선, 최재선, 김태준,
이종택, 변완식,
어정연 어명숙자매, 오병선, 서호찬, 방성애등 아우님들에게 정어린 고마움을 표 합니다.
이종택 회장님이 임기를 다 하였고 2015년 부터 변정희 회장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다년간 국세청에서 옹골찬 실력을 다졌고 지금은 세무사, 대학교수, 경영학 박사학위를 소지한 지성인이자 폭 넓은 활동으로 다져진 참신하고 유능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지요.
앞날에 재경 가조향우회의 영원한 일취 월장을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5년 6 월 초
이 영 식 배 상
첫댓글 대단히 수고많으셨읍니다
명예회장님 그동안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형님 그동안 너무 너무 고생 하셨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 하이소....사랑합니다
호찬이 대필하느라 수고했네 손가락 이상없나?
그의 30년을 오빠의 황무지로부터 긴 역사를 보아왔지요~참 애 많이 쓰셨어요~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조향우회를 위해 너무나 고생하셨는 날들이 스쳐 가는듯 합니다. 부족한 제가 회장님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항상 지도편달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가조인으로서 향우회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영식명예회장님
그동안 수고가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이도와주세요
아이고~이고문님 그동안 모두가 알고있듯이 고생많았소~
여러므로 수고하셨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항상 향우회 발전을 위하여 노력해 주신 덕분으로 현재 향우회가 발전하고 있다고 봄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지도와 함께 보둠아 주시길 바람니다.
고맙습니다.감사 합니다.
회장님 그동안 너무너무 수고하셨습니다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그리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