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혜경
그녀는 누구인가?
직업: 시낭독인. 시인
출생: 1966.9.19 생.
출생지: 충남 보령시
소속: 한국시낭송공연예술원 원장
미운 아버지
- 허 전 -
배가 남산만한 아버지
간경화증 말기에다
위장까지 걸레가 되어
얼굴이 흙빛으로 죽어가는
미운 아버지
기차무늬가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아무나 보고 살려달라는
미운 아버지
한생을 깡소주를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며
행상하는 어머니를 울리던
미운 아버지
새끼가 남의 집 귀한 딸 데리고 와서
잘살아 보겠다고 집 나설 때
방 한 칸 마련해주지 못한
미운 아버지
내가 몸 다쳐 사경을 헤매일 때
하느님께 내가 무슨 죄가 많아
새끼가 먼저 죽어야 합니까 하며
울부짖던 겉 다르고 속 다른
미운 아버지
이제 베갯잇을 물어뜯으며
너만은 부디 잘살라고 통곡하는
미운 아버지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함박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돌아가신
미운 아버지.
아, 내 심장이 울컥울컥 토해내는
뜨거운 핏속에 숨어 슬피 우는
미운 아버지.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러브호텔
- 문정희 -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를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들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첫댓글 공혜경 낭송가님 대단하십니다.
큰 박수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