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리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1-33)
7월은 1년의 전반부 6개월을 보내고 후반부를 새롭게 시작하는 달입니다. 한 해의 하프타임에 해당하는 시점으로 연초에 세운 계획들을 중간 점검해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올해의 7월은 남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정확하게 30년 전 7월에 이스라엘 유학의 길을 떠났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의 흐름이 너무도 빠름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때 유학을 떠난 것이 제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7월을 시작하는 첫 날 유학과 관련된 저의 이야기를 말씀 묵상의 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난 것이 1981년 7월이고 보면 지금부터 정확하게 3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외국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게 여겼던 때였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로 유학을 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여길 만큼 새롭고도 과감한 도전이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신학대학원 5학기에 재학 중이었고, 그 학기에 미루고 있던 기초 히브리어를 배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를 담당하셨던 교수님께서 그 학기에 안식년을 보내시기 위하여 미국으로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히브리어 과목도 수강과목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과과정에 따라 헬라어 수강은 필수였지만, 히브리어는 선택과목이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어려운 히브리어를 배우지 않는 것이 잘 된 일 아니냐고 했지만, 저는 히브리어를 배울 수 없게 된 것이 몹시도 서운했었습니다. 앞으로 강단에서 설교를 해야 할 목회자로서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히브리어를 배우지 못하게 되었다는 서운함이 생각에만 그쳤다면, 더 이상 다른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운하다는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어디에서 히브리어를 배울 수 있을까?’로 발전한 것입니다. 서울신대 말고도 서울의 다른 신학대학에서 히브리어를 배울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생각은 그런 쪽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이스라엘에 가면 히브리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것으로 모아졌습니다. 그때에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여 이스라엘 관련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었던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이스라엘을 소개하는 여행관련 서적을 접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의 국교관계가 열려 있었긴 했지만, 중동 아랍국가와의 갈등 관계 때문에 이스라엘은 한국 주재 대사관을 철수시켰고, 그 대신에 일본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이 한국 관련 영사업무를 대행하고 있었던 때였었습니다.
이스라엘 유학과 관련하여 어떠한 정보도 갖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분도 제대로 없는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저와 제 아내는 이스라엘 유학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저의 아내는 조치원 여중에서 가정과 교사로 교편으로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아내가 이스라엘에 취업이 된 것입니다.
내막은 이러했습니다. 한국 독일대사관에서 부대사로 계셨던 분이 임지를 이스라엘로 옮기셨습니다. 그 분은 나이가 많은 직업 외교관으로 혼자 지내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현지에서 가정사를 돌볼 사람을 고용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는 그 일이 쉽지가 않았었던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쓰자니 독일인에 대한 감정이 문제가 되고, 아랍사람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가운데 이스라엘에 와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그것이 두세 통로를 거쳐 저희들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그분이 한국에서 근무할 때 자신의 가정사를 도와주었던 한국인 부부가 보여주었던 흡족한 서비스가 크게 작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유학의 길이 쉽게 풀렸습니다. 히브리어를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조그만 생각 하나가 제 생애를 바꾼 큰 전환점을 만든 셈입니다. 그것은 제 생각이기 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였기에 그렇게 빠른 기도 응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전체 6학기 과정 가운데 5학기까지 모든 학점을 비롯하여 졸업과 관련된 여러 과정들을 이수해 놓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요구하는 시간에 맞추어 출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을 한 학기 앞둔 7월에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의 역사가 작용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마지막 남겨놓은 졸업 논문은 이스라엘에 머물면서 작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빌 2:13). 그런 점에서 히브리어를 배우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히브리어를 배워야 되겠다는 열정을 마음의 소원으로 심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고 확신합니다. 복음성가의 가사 내용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소원을 아뢸 수 있는 기력조차 없어 신음소리만 내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의 기도로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마 6:31-33). 아마도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저의 작은 소망과 열정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이스라엘의 유학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전체 가족과 함께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마련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자하시고 신실하십니다. 금년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7월의 첫 날부터 그런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서울신대 권혁승 교수>
첫댓글 예배 설교말씀을 들은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이끄심..... 한치의 빈틈도 없이 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감동이 물밀듯^^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멋진 하나님 하반기를 시작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목사님의 메시지가 저의 마음을 울립니다
섬세한 계획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넘치는 은혜와 복이 풍성합니다
2011년 하반기 시작하는 월삭에 이같은 은혜가 시온에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양목사님께 들은 말씀을 다시들어도 감동입니다 주님이 동행하시고 역사하심이...
권목사님께서는 좋은 동역자를 두셨네요 두고 두고 봐도 사랑스런 동역자 그렇죠!
하나님께서 두분 목사님을 크게 쓰시기 위하여 예비하셨네요..언제나 두분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