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류에서 핫한 술로… 일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일본産 와인
입력 : 2015.03.05 09:00
제1부. 일본 와인의 성장을 통해 바라본 국산 와인의 가능성
십 수 년 전만해도 자국의 소비자에게 외면 받던 주류가 있었다. 늘 유럽의 아류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이곳의 기후와 토질에서는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고 인식되었던 주류,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의 와인 이야기다. 와인 애호가 대부분이 유럽 와인, 특히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중심으로 즐겼으며, 일본산 와인은 한참 무시를 받던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 상황일까? 지난달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 총 와인 소비량의 30%가 일본산, 27%가 프랑스산, 20%가 칠레산으로 일본산 와인이 1위를 점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양으로 따지면 일본산 와인이 일본 내 1위인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프리미엄 라인도 계속 확충되고 있다. 일본와인 전문 바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일본산 와인시장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일본국산와인 전문점 'JIP'. 일요일에도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국제와인기구에 등록된 일본 고유의 품종 고슈(甲州), 자국와인의 아이덴티티 확립
2010년 일본 와인 업계에 큰 획을 긋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일본에서 재배하는 품종인 고슈포도가 국제와인기구(OIV)에 일본 고유의 품종으로 등록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의 고슈 와인은 유럽에 수출할 때 당당히 그 품종을 기입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늘 유럽의 아류로만 보이던 일본의 와인은 자국 고유의 품종을 통해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소비자 역시 일본 고유의 품종이 알려진 순간 유럽와인의 아류라는 인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유럽의 와인과 다른 점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에 힘입어 2013년도에는 머스캇베일리에(MBA)품종이 등록, 지금도 계속해서 OIV에 다른 일본산 포도 품종을 등록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OIV에 등록된 고유 품종이 없는 상황이다.

화이트 와인 계열인 고슈와인. 사케와 같은 산뜻한 맛을 추구하기도 한다. 출처 고슈와인 홈페이지
일본 와인의 아이덴티티가 보이는 한자 켈리의 와인 레이블
일본의 와인 레이블을 보면 가장 돋보이는 것이 바로 한자. 이른바 한자 켈리로 디자인한 와인 레이블에 자칫 사케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일본 와인의 아이덴티티를 이러한 라벨로 형상화 시켰다. 단순히 유럽 와인을 모방한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 디자인에서도 ‘다름’을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한자로 쓰여진 캘리형태의 와이너리 라벨, 영어나 불어보다는 한자를 지향하는 일본 와인, 지역 캐릭터를 그려낸 일본 와인
자국 내 사케 소비가 약해진 일식 레스토랑, 일본 와인이 대체 상품으로 대두
이렇다 보니 음식 역시 프렌치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에 굳이 매칭을 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와쇼크라 불리는 일식에 잘 맞는다고 표방하고 있다. 레스토랑 업계도 이들과 발맞춰가고 있다. 한국에도 진출한 일본 모스버거 그룹에서 운영하는 도쿄 내 일본요리 전문점 ’아엔’에서는 오직 일본산 와인만 판매한다고 광고하고 있으며, 고급일식레스토랑에서는 계속해서 일본 와인을 와인리스트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사케의 소비가 약해진 만큼 일식레스토랑도 새로운 주류가 필요했고, 일본 와이너리업계도 가장 큰 외식 시장은 서양음식이 아닌 일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한자로 표기된 일본 레이블의 디자인은 일식과 즐기기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분위기로 더욱 그 시장을 넓히고 있다.

일본와인과 일식을 같이 소개하는 일식 레스토랑. 아엔 출처 아엔홈페이지
산지에서 느끼는 신선함과 와이너리 체험으로 품종 극복해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포도 품종에는 고심이 많다. 특히 당도가 쉽게 나오질 않는다. 와인에서의 당도는 알코올 도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유럽이나 신대륙에서 재배하는 포도 품종의 당도는 20브릭스(브릭스*0.58이 알코올도수)가 훌쩍 넘어, 12~14도의 일반적인 와인 도수로 만들기에 적합하지만, 일본 포도의 품종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브릭스가 채 안 되는 것이 많다. 일조량이 많고 강수량이 적고, 일교차가 커야 당도가 높은 포도가 나오는데, 일본 역시 유럽 및 신대륙(칠레, 호주, 남아공 등 )과 비교하면 기후와 토양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다.
와인을 밀기보다는 와이너리로 민 일본
품종에서는 뒤지다 보니 최고급 와인을 만들어 유럽 와인과 경쟁하는 것 보다는 일본 와이너리가 선택한 일은 바로 탐방 프로그램이다. 지역밀착형태로 와이너리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해 왔다. 그것을 통해 산지에서 즐기는 특별함을 표방해왔고, 유럽까지 가서 와이너리를 즐기지 못하는 소비자들에게 낭만을 주며 추억을 선사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 결과 온천여행을 하며 와인을 즐기기도 하고, 그 지역에 가면 꼭 그 와인을 사서 오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동시에 한번 방문한 소비자들의 와인 재구매율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마케팅에 지대적인 역할을 했다. 어딜 가나 판매 되는 유럽와인과의 정면대결보다는 와이너리라는 차별화된 지역문화요소를 통해 소비자에게 색다른 추억을 주며, 그 기억으로 재 구매율을 높인 것이 일본산 와인이었다.

일본 토찌기현의 코코와이너리 런치. 1000엔 정도이며 와이너리 분위기는 소박하다.
최고급 와인은 아니지만 스몰 럭셔리 문화를 지향하는 일본산 와인
양조용 포도 품종으로는 유럽을 따라가기에는 힘들기에 일본의 와이너리 역시 최고급 와인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브랜드에서도 밀렸다. 그래서 일본 와이너리가 선택한 와인 가격은 소매점 판매가격으로 1,000엔대. 대기업 중심의 와이너리는 1,000엔 전후로 가격을 잡고, 지역밀착형의 중소 와이너리는 1,500엔~3,000엔대의 스몰 럭셔리문화로 소비자 가격을 맞혔다. 일본의 중소 와이너리는 굳이 가격을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산 와인이 자국 내 가격경쟁을 하게 되면 기존에 쌓아놓은 지역밀착형 와인문화에서 대량생산으로 인식되면 이제까지 쌓아놓은 브랜드마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맥주로 알려진 삿뽀로 맥주 등은 유럽산 품종으로 4,000~5,000엔이 넘는 고급 일본산 와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일본산 와인이 힘을 얻어가자 본격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시장의 반응이다.

일본 코코와이너리의 와인 제품
일본산 전문 와인 바 탄생
이렇게 중소 와이너리 중심으로 프리미엄 제품이 탄생하고 대기업도 따라가는 추세다 보니 일본 와인 전문 바 등이 탄생을 했다. 수백 종류의 일본산 와인을 취급하며, 고슈 와인의 산지인 야마나시 와인를 비롯하여, 독일 기후와 비슷한 리슬링계의 홋카이도, 태양볓이 강렬한 나가노에서 재배한 포도 등의 산지로 구분하며 판매를 하고 있다. 2014년에만 도쿄 내에 수십 곳이 생겨났으며, 도쿄 신주쿠의 한 일본와인 전문점은 주말이면 늘 손님으로 꽉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마시는 와인은 예전에는 국산와인이라 말했지만 이제는 ‘일본와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프랑스 와인, 이탈리아 와인과 지역별 카테고리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산 와인만 취급하는 일본 와인 바 'JIP'
시사점이 많은 일본산 와인, 하지만 당장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걸려
일본의 와인 시장이 우리와 똑같지는 않다. 기린 및 산토리, 아사히, 삿뽀로 등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와인 원액 벌크로 수입하여 국산 와인으로 판매도 많이 된다. 그리고 와인 이란 제품이 우리와 비교하면 좀 더 대중적인 주류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환경을 찾는다면 일본이 가장 가깝다고 할 것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참고할 사항이 많다.
물론 제대로 된 주류문화산업은 성장에 시간이 걸린다. 이유는 술빚기 하나에도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당장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도 포도수확을 기다리고, 발효시키고, 숙성시키면 수년이 훌쩍 지나간다. 파종하고 모내기를 하며 허수아비도 만들고 가을이 되야 겨우 수확을 하듯이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와인 산업이고 전통주 산업이다.
그래도 국내 와인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주류 가운데 가장 부가가치 높은 산업 중 하나이다. 그 주류의 원료가 되는 것은 농산물이고, 농업과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일본의 와인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지만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은 최근 10년 이야기이다. 그전까지는 소비자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산업이었다. 우리도 외국 와인을 답습하기보다는 지역밀착형의 우리만의 와인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면 어떨까? 포도품종 및 시장의 편견, 외국산 대기업 와인과의 가격경쟁력 등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지역의 문화를 나타내는 빚는 이의 철학이 깃든 와인이라면 소비자는 알아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려운 영어나 프랑스어를 활용한 와인 레이블이 아닌 지역의 문화를 표방한 멋진 한글 켈리로 한식과 즐기는 우리 와인 문화를 기대해 보고 싶다. 와인 레이블에 담긴 지역 문화를 들으며 말이다.
*제2부는 일본와이너리의 모범 ‘코코와이너리’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mw0422@chosun.com
출처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