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이는 첫 만남
글 德田 이응철
요즘 며칠째 날씨가 이무롭지 않다.
절기는 여름이지만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 조석으로 어찌나 날씨가 성깔을 부리는지 조끼 런닝을 벗었다가 입었다 했다. 하루 변화가 변덕심한 여인네 같다. 봄철 한낮 기온이 28도란다. 비가 언제 내렸는지 가는 곳마다 갈수이다.
송사리가 그림처럼 놀던 산책로도 버쩍 말라 물길을 돌리고 산골짝은 아예 물길을 내던지고 음흉한 계곡으로 변해간다.
며칠 전이다. 오후되어 아파트 뒷마당으로 지루함을 달래려 나갔다. 아파트 뒷켠 녹음이 척척 우거진 가운데 편히 자리하고 앉아 저마다 보내온 밀린 문자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종아리 부분이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운 감촉으로 번득이는 것을 느꼈다. 순간이다.
순간이지만 참으로 마른 종아리를 감싼 카펫처럼 부드러운 촉감은 분명했다. 화들짝 놀라 움찔하니 아뿔싸! 전혀 뜻밖의 노란 털이 두 다리를 감싸며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닌가! 생뚱맞다. 고양이었다. 아파트에 몇 마리 들고양이 중 황금색 녀석이아닌가!
경내를 산책하면서 그저 멀리서 바라보던 녀석이 갑자기 곁을 두다니! 내려다 보는 순간 멀찍이 앉아 나를 주시하지만, 이내 와서 아까처럼 정갱이 사이로 장애물 경기라도 하듯 다시 스치는 게 아닌가!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이채로운 현실이었다.
고양이를 미워한다. 언젠가 청마의 글 고양이를 본 후 부터일까? 아니 그보다 훨 이전에 무속인들이 들려준 고양이 재수에 섬뜩 놀라고 부터일게다.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기 전, 가묘를 텃밭에 모시는 장례 관습 전 날이란다. 때 아닌 고양이가 관위를 타넘어 누웠던 시신이 벌떡 솟구쳤다고 어릴 때 숨죽이며 듣던 소름돋던 말이 내 평생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의 지혜로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신비스러운 고양이는 그래서인지 영물(靈物)이라고 한다. 육식동물로 후각과 청각 심지어 긴 수염까지 예민한 감각 투성이로 중무장한 포식성 동물. 호랑이 사자 표범, 치타, 삵 모두 혀 표면에 가시돌기가 있는 고양이과로 분류됨을 보라.
그런 연유에서 항상 내게 고양이는 아무리 최근 57여만 가구가 반려동물로 가까이한다지만 거리감이 있었다. 작은 고양이를 확대해 보라 틀림없는 산중지왕 호선생이 분명하다.
순간 종아리에 닿은 대상이 극 순간인데 느낌이 싫지 않았음을 양심 고백한다. 녀석은 저만치 가서 편히 누워 연실 꼬리를 치며 능청을 떤다. 예전에 전혀 가까이 하지 않던 녀석과 첫 만남인 셈이다. 요망스럽다고 발길로 걷어차기는 커녕, 모처럼 이식된 묘정이 울컥 솟아 다시 불러도 왠일인지 길들여지지 않아서인지 녀석은 멀찍이서 덥썩 정을 주지 않고 동태만 살핀다.
케케묵은 내 고약한 인식을 순간 녀석은 변화시킨 셈이다. 요즘 20대 대통령취임에 유명한 말 "공간은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지금 내게도 충분히 적용한 셈이다. 전혀 공포스럽거나 배타적인 마음은 간곳없고 측은지심이 발로한다. 오죽 인간이 그리우면 황폐한 내게 다가와 몸을 비비며 구애를 하다니 ㅎ
녀석은 햇살에 더욱 눈동자는 가늘어진 채 거묵의 고정관념을 넘어뜨렸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그저 평화롭게 나를 응시하며 능청을 떤다.
영특하다. 농사짓는 시골에선 고양이가 양식을 지켜주는 셈이다. 리비아에서 일찌기 가축으로 야생을 길들였다고 한다.
이집트에선 고양이를 묘신(猫神)으로 모신다고 한다. 사막속에서 신이 내준은 곡창지대에 들끓는 쥐들이 페스트를 옮길 때도 위기로 구해준 것이 누구인가? 오죽하면 이집트에선 고양이를 죽이면 사형까지 처한다고 했겠는가!
성호사설에 보면 우리나라도 숙종 때 노란 금묘를 기르다 왕이 승하하자 녀석도 굶어 죽어 명릉 길가에 묻어주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12신상에도 올라있는 것을 보라.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나는 녀석의 구애를 받아들여 먹이를 준비해 저녁이면 뒷놀이터를 찾아간다. 내 행동이 자신도 신기하다. 끌린다. 달려가니 녀석은 가족이 나와 베트민턴을 치는 옆에 길에 누워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반가워 금동아! 하고 부른다. 녀석은 귀를 쫑긋하며 바라보지만 덥썩 달려오지 않는다. 급한 목마름은 내 쪽이지, 녀석은 고작 하루의 풋사랑이 아닌가! 얼마나 야속한지 멀리서 바라보며 작은 술책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있다. 순간 급히 선회한 자신이 민구스러워진다.
동물사랑-. 개는 바닷가에서 근무할 때 길러 정을 오래 나눈 적이 있다. 새벽에 낚시를 챙기려면 어느새 낡은 탈탈이 앞에 먼저 앉아 기다린다. 낚시를 한창 할 때 대어를 낚았을 때였다. 쏜살같이 달려와 펄떡이는 고기를 낚아채 가는 도둑고양이들과 그 얼마나 갈등이 있었던가! 대조가 되어 더욱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녀석은 포근한 졸음에 겨워 내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증오한 내 속마음을 꿰뚫어보 듯이 -. 참으로 여유만만하다. 아이들이 다가와 좁은 이마를 쓰다듬으며 무더기로 사랑을 얹어준다. 첫사랑 여인이 배신한 느낌 같은 것을 순간 느꼈다. 싸들고 간 먹이를 던지고 길게 쇼파에 누워 앙가슴을 태운다. 아내가 봉지를 열어보더니 갑자기 웃어 제킨다. 우유팩을 보고 이건 고양이 먹이가 아니라고 ㅎ
포식성 동물 사랑이 내 사전에 획을 긋는다. 어제 다시 그 자리에 갔을 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30여센티의 꼬리를 연실 흔드는 금동이에 반응에 다소 위로를 삼긴 했지만 아니다. 그리움에 자꾸 빈자리에 가득 차오른다.
다시 와서 등어리를 내 마른 정강이에 스치기를 몇 번 하며 나를 찾는다면 불러와 깨끗이 목욕시키며 함께 가족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서 요즘 꿈틀거린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우면 서슬퍼런 내게도 다가와 육체적인 접촉까지 불사할까?
내 고정관념을 깨뜨린 금동이가 비록 곁을 두지 않더라도 그를 원망하지 않으리, 낙심하지 않으리라. 오랜기간 터무니없이 미워한 편견이 오히려 죄스러울 뿐이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얄팍한 편견이다. 괜한 미움, 괜한 증오가 자꾸 내 텃밭에 잡초처럼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야행성인 동물도 가까이 다가오는데 저간(這間) 인간인 나 자신은 왜 쓰잘데 없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배척했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그가 좋아하는 생선을 한 마리 튀겨가지고 해질 무렵, 첫사랑 만남의 장소로 나가 보리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