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에 그린 팔경을 읊다〔詠屛畫八景〕
···························································· 서하 이민서 선생
1
눈 녹아 봄물 맑고 / 雪消春水淥
버들가지에 산들바람 이누나 / 楊柳生微風
고깃배가 안개 섬에 머물렀으니 / 漁舟泊煙渚
그 위에 술 받아 온 노인 있구려 / 上有沽酒翁
2
향긋한 풀 파릇파릇 자라나고 / 芳草綠萋萋
푸른 숲이 초가집을 둘렀구려 / 靑林繞茅屋
노인은 소 몰고 돌아오고 / 老翁驅牛歸
아이는 처마 아래 기다리네 / 童子候簷隙
3
초가집 처마에 여름 볕은 더딘데 / 茅簷夏景遲
논 두둑에 흐르는 샘물 가득하구려 / 稻畦流泉滿
농부가 짐을 지고 돌아오니 / 田夫負來還
주린 소는 해 지는 걸 두려워하누나 / 飢牛畏日晩
4
더운 여름은 보내기 어려운데 / 畏景不可度
높은 누각이 물 가운데 솟았구나 / 高閣水中央
고깃배는 앞 포구로 내려오고 / 漁舟下前浦
저녁 비에 강 하늘만 길어라 / 暮雨江天長
5
올벼 벌써 벨 만하기에 / 早稻已堪獲
집 안에 사람 드무나니 / 居人在舍稀
고목 아래 초가에 / 茅茨古樹下
늙은 삽살개만 빈집 지키네 / 老尨狵守空扉
6
한가한 사람이 높은 누각 사랑하여 / 閑人愛高閣
난간 기대 가을 물에 낚시하다가 / 倚檻釣秋水
술에 취해 돌아가는 구름 바라보니 / 醉後望歸雲
기러기 우는 소리 하늘가에 들려오네 / 雁聲天際起
7
산중이라 인가 드물고 / 山中罕人居
흰 눈만 계곡에 가득한데 / 白雪滿溪谷
멧돼지가 말 앞에서 놀라니 / 豪猪馬前驚
소년들 좋아라 달려가 쫓네 / 少年喜馳逐
8
절름발이 나귀가 눈길에 비척거리는데 / 蹇驢困積雪
술 싣고 매화를 찾아가니 / 載酒尋寒梅
초가집은 한낮이라 적막하고 / 茅茨晝寂寞
외로운 학만 부질없이 배회하누나 / 獨鶴空徘徊
[주-1] 더운 여름 :
원문의 ‘외경(畏景)’은 두렵도록 뜨거운 여름 햇빛이라는 뜻이다.
[주-2] 절름발이 …… 찾아가니 :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눈 내리는 날 절름발이 나귀를 타고 장안(長安)의 동쪽에 있는 패교(霸橋)에 가서 매화를 구경한 일이 있었으므로, 송나라 소식(蘇軾)의 〈초상화 그리는 수재 하충에게 주다[贈寫眞何充秀才]〉에 “또한 보지 못했는가, 눈 속에서 나귀를 탄 맹호연이 이마 잔뜩 찌푸린 채 시 지으며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는 구절이 있다. 후대에는 이 시경(詩景)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 많이 나왔다.
[주-3] 외로운 …… 배회하누나 :
북송의 임포(林逋)는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일컬어지는데,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매화를 심고 두 마리 학을 길렀다. 그는 거룻배를 띄워서 서호의 여러 절에 노닐면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반드시 배를 저어 돌아오곤 하였다. 이는 동자가 손님을 맞이한 뒤에 우리를 열어 학을 날게 하면 임포가 이를 보고 손님이 온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출처 : 서하집(西河集) 제2권 / 오언절구(五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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