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에 화성시 39번국도변에 있는 기업가를 1시쯤 찾아갔다.
이분은 문래동출신으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주위사람까지 모두 떼부자로 만들어준 분이다.
젊었을때는 밥도 제대로 못먹던 분인데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몇번 만났는데 저하고는 사업상 거래관계는 안되었지만 인간미에 반해서 가르침을 받고자 여러번 찾아뵙고 있다.
그래도 제가 가면 점심도 사주시고 얘기도 한시간씩 해주신다.
이분이 사업상 크게 성공한 이유도 중요하지만 사실 부동산으로도 성공하신것이다.
39번 국도변에 평당 15-20만원주고 산땅이 지금 200만원이 넘어가니 그것도 만평이나 가지고 있으니 어머어마한 금액이죠.
당시 분양할때 평당 15만원짜리는 계약금 20%만 내면 몽땅 융자해주었다고 한다.
문래동 주위분들한테 니들 화성으로 가자고 해서 여러명이 따라왔는데 따라온 사람은 평균 5천평에서 만평정도를 샀기 때문에 모두 거부가 된거다.
안온사람은 화성은 살인사건이 밥먹듯이 일어나는데 죽을려고 환장했냐고 하면서 웃음치던 사람은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10년전에 당시 몇천만원만 있어도 계약이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은 오고 싶어도 평당 200만원이 넘으니 못온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고 어마어마한 상가를 4명이 소유하고 있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도 용접하고 땅파고 있었다.
여름에 새까막게 되도록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노가다가 다름없을 정도였다.
직원들 월급 많이 주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안하고 절약하면서 사는 모습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그분 말씀이 땅값이 평당 20만원에서 40만원오를때는 뛰어들지만 100에서 200으로 오를때는 쉽게 뛰어들지 못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갔지만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가더군요.
문래동출신들이 보통 크게 성공했지만 성공의 요인중에서 공장을 운영할려면 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장부지가 엄청나게 오른 것은 사실이다.
시화공단도 평당 400정도 하지만 4년전에는 250이었고 10년전에는 평당 100미만이었으니 가많이 있어도 4배가 뛴거니 공장땅 몇천평씩 가지고 있던 분들은 기업할 맛이 나는거죠.
그렇다면 지금은 워낙 올라버린 땅값이라 어디 투자할려면 감당못한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5년전과 비교해도 두배로 올랐고 땅이란것이 무식하게 계속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부동산으로 돈벌기 힘들어 진것같다.
10년전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 집값이 2-3배 뛰엇지만 작년부터는 하락세고 이제 목에 찾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땅값이 워낙비싸니 맨손으로 일어나기는 사실상 힘든것이 현실이다.
2005년도에 선부동에 원룸을 지었을때 땅값까지 합해서 원룸 18개와 주인세대방4개짜리 4층건물을 짓는데 5억대였지만 지금은 그돈가지고 지을 수없고 원룸건물의 시세가 8억정도 하니 근 3억가까이 시세차익이 난것이다.
원룸으로 5년간 2억이상 남기고 부동산으로 3억가까이 시세차익이면 배가 남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원룸건물을 시작하는 사람은 힘들다. 원룸도 포화상태가 되었고 건축비가 너무 비싸졌기 때문에 안산에서는 10억정도 한다고 한다. 10억들여서 건물사서 한달에 500뽑으면 사실상 손해인것이다.
물론 원룸도 자기건물이 있는데 서울이라면 자기 땅에 원룸지어서 하면 수요가 넘치기 때문에 건축비만 있으면 해결되니 해도 된다지만 강남에 자기 단독주택있을 정도면 대지 60평은 될테니 땅값만 20억정도의 부동산가치니 하면 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강남사는 친구들을 보면 대치동사는 친구들도 전부 단독주택 허물과 상가건물로 올려서 상가나 사무실로 임대주고 자기들은 아파트에 사는데 4층건물이라도 보통 천만원정도의 임대수입이 있다.
아파트도 3-4채는 되니 보통 이정도가 우리세대사람들인것같다.
내가 서울성동고등학교를 출신인데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은 거의없고 모두 지방출신이다.
우리때는 초등학교부터 상경이 본격화된 시기여서 나는 7살때 서울로 이사해서 조금 빨랐고 고고친구들은 초등학교때 대부분이 상경한 경우인데 벌써 40년이 지나서 보면 부모대가 고생하고 공부가르쳐서 지금은 70대 부모들이나 자식들도 잘 산다.
서울의 프레이엄을 확실히 본것은 사실이다.
강남개발될때는 장충동, 약수동, 신당동, 금호동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80년대가 지나서 90년대 들어가서 장가가면서 또는 집이 강남으로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당시 강남이라고 해도 별 볼 일 없을때였다.
돈이 없으면 주공아파트 들어가고 돈이 좀 있으면 신사동, 논현동에 단독사고 좀 부족하면 대치동이나 삼성동에 집을 사기도 했다.
아파트가 유행하니 아파트한채 더 사고 이런식으로 살다보니 지금은 주변사람들은 강남부자소리를 듣는 것이다.
재주를 부린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집을 사고 아파트를 산것이 전부였다.
친구들 만나서 식사를 해도 순대국먹고 삼겹살먹지 갈비 안먹는다.
서생원이 우글거리는 독산동 우시장에서 육회먹으면서 참 우린 언제 갈비먹냐고 하니 삼원가든 갈비 너무 비싸다고 손사래를 친다. 회먹으러 갈때는 가락동수산시장으로 간다. 거기가 싸고 많이 준다고,,,,,,,,,,,,
부모가 고생하는 걸 바서 그런지 먹는 것은 40년전이나 별반없다.
친구사이에서는 내가 수원산다고 밥값도 면제다. 아마 개털로 각인된 모양이다.
우린 고등학교 다닐때는 등록금내는 것도 벅찼던 집안들이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공무원인 친구들은 등록금을 안내니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랐다.
당시 3개월에 몇만원하는 등록금이 가사에는 큰 부담이었다.
제친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공부를 못해서 국자돌림대학에 많이 갔지만 당시 성동고등학교는 한해 서울대 40명씩 입학하고 연고대 100명씩 입학하던 명문이었다. 재수를 해서라도 4년재대학진학은 100%했다.
지금도 성동고등학교 출신 현역 국회의원만 5명인 명문고이다.
고등학교는 좋은데 나와야 평생 함께 할 좋은 친구들을 사귄다.
밥도 못먹던 친구들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여 판검사가 되었다.
고교시절 성적 뒤에서 가까운지라 3류대출신들이지만 사는 모습은 명문대출신동창들하고 별 차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대학졸업하고는 은행. 대기업등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다 잘려서 지금은 다 사업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문제는 이제는 저축해서는 강남에 입성하기기 힘들어진 것이다.
최소한 8-9억은 있어야지 집을 사는데 이돈을 저축하긴 힘들다.
결론적으로 경제전반의 소득수준은 높아졌는데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빈익빈부익부는 심화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젊은 사람의 경우 무조건 저축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마음 굳게 먹고 저축하면 중산층으로는 올라 설 수있다.
절대 집안을 탓하지 말고 본인자신을 채찍질하면서 10년만 노력하면 중산층으로 살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