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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신'을 하나님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면 큰 코 다친다.
기독교가 창조주신에게 하나님아버지나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고 이름을 부여해주고 자기종교만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 이름의 신이 성경에 나오는 하늘의 신(창조주신)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하려면 창세기부터 시작된 온갖
부족 신들의 이름도 같은 분이라고 주장해줘야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각 부족들의 신들의 이름=그들의 창조주신의 이름
*여호와= 유대인이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나님=기독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느님=천주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알라=이스람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늘의신=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라, 예레미야
등의 인물이 기도드렸던 대상
옛날에는 '유대인'만 사랑했을 것 같고,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인'만 사랑할 것 같이
착각하면 정말 큰 코 다친다.
'성경'을 자신들이 썼다는 우월감과, 창조주 신을
여호와, 야훼, 엘로힘 등으로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고 떵떵거렸다가 큰 코 다친게 유대인이다.
성경은 사람이 쓴 것으로 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고,
성경 그때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건
이라고 생각하고, 현대에 와서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말고 다른 나라들은 적용이 안 된다고 떵떵거렸다가는
큰 코 다친다.
'창조주 신'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과 전 인류의
창조주 신이시며, '성경'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
특히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앞으로 태어나 죽을 전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창조주 신의 법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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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요한계시록이라 할지라도
지금부터라든지 나중에 죽어서의 상황은 없다.
성경은 믿든지 말든지 육의세계에서
살고 있는 자들, 죽기 직전까지의
인생들의 삶에 관해서이다.
딱 거기까지이다.
죽으면 육의세계의 법은 끝이고,
영의세계로 들어가면
창조주 신과 같이 존재하면서
영의세계의 법이 따로 있다.
완전 죽어서의 상황은 누구든지
(사람으로 태어난 예수라 할지라도)
비밀에 부쳐있고, 과거 현재 미래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육의세계와 영의세계가
맞물려 가는 것을 말씀하신다.
특히 계시록은 인생들의 복과 징계의
값을 상계시키는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성경을 들먹거리면서
우리 종교나 우리 단체에 들어와야만
나중에 죽어서 14만4천 숫자에 들어갈수
있다라든지,
우리 종교나 우리 단체에 들어와야만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라든지가
죽었다 깨나도 없다. Never.
종교들은 종교들일 뿐이고
성경은 성경일 뿐이다.
요한계시록 …'헌법재판소/대법원/고등법원'
성립된 후 '인생'이라는 것이 시작됐다.
이로인해 '죄의법세계'가 등장을 했다.
이때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믿든지 말든지 창조주신의 뜻일뿐이다.
(롬 7:22~23) "내 속사람으로는 창조주신의 법(선)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악)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아멘.
창조주신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기 전 모든
시스템을 설정해놓으셨지, 사건이 생기고 나서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신 것이 아니다.
항상 '두 길'을 설정하셨다. 창세기 초에는
"선악과를 먹을 것이냐!" "먹지 않을 것이냐!"
(예레미야 21:8)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으니" 아멘.
(창 1:4) "빛이 창조주신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조주신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 1:5) "창조주신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아멘.
이 때의 '빛'과 '어둠'은 태양과 달 별들의 빛이
아니라 '선의법세계'와 '죄의법세계'이다.
아예 모든 것이 전부 창조 되어있었다.
(마태복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아멘.
영의세계에서 '죄의법세계'로 계산되어
그 어두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경력 40년동안 창세기를 읽으면서
항상 궁금했었다. 낮과 밤을 제일 먼저 창조
하셨는데, 조금 후에 또 낮과 밤을 창조하신다.
그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지금은 창조주신께서 알려주시고 쓰게하시니
알겠지, 그냥 가만있으면 도저히 모르겠다.
창세기 2장까지는 '선의법세계'의 삶이었고,
창세기 3장부터 '죄의법세계'가 등장하게 되어
'선의법세계'와 '죄의법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창 1:16) "창조주신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 1:17) "창조주신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 1: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창조주신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아멘.
이 부분은 그야말로 지금 하늘의 천체들이다.
태양, 달, 수많은 별들, 끝없이 펼쳐진 은하계.
이 천체는 환한 '낮'과 어두운 '밤'을 말한다.
'선 악'을 알게 된 이들이게 생긴 현상은
선으로 악을 이겨야되는 것인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잘 모른다.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선' 인 것 같으면서
'악' 이고 '악' 인 것 같으면서 '선' 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 선' '완전 악' 없다.
육의세계의 인생 값으로 인해 영의세계에서는
'선의법세계'와 '죄의법세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육의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가끔 누군가 지옥을 보고 왔다 천국을 보고왔다
해가면서 영의세계를 보는 경우도 있다.
창조주께서 보여주시고 싶은 자에게 보여주신다.
'욥'이나 '예레미야'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선의법세계'와 '죄의법세계'를 보고
왔는데 사도요한은 개인적이고 지역적이고
나라적이고 세계적인 영의세계를 보고 기록했다.
요한계시록은 '영의세계 재판소'의 모습을
말씀하신다.
그것도 죽어서 재판이 아니라 현시대, 지금,
실시간 이루어지는 나와 너와 우리의 선과
악의 재판의 모습이다.
욥이 현실에서 종기로 죽을만큼 아플 때
영의세계의 모습을 자기입으로 증언하는데
이런 모습이 자기의 지옥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욥이 죽은 후에 지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에서 지옥을 보는
것이다.
현재도 지옥을 봤다, 지옥은 있다 외치는 사람들은
이런 영의모습을 보고 어마무시한 마귀가 나를
때린다는 등 간증하는 것이다.
그것은 루시퍼 사탄과 그의 졸개 마귀들과 귀신들이
나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신께서 주신
절대적인 권세하에 '나의 죄값자체'들이 나를
때리는 시스템일 뿐이다.
(욥 16:8)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욥 16: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욥 16:10)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욥 16:11) 창조주신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욥 16:12)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욥 16:13)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욥 16:14)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욥 16:15)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욥 16:16)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라고 시작하는 전도서는
'인생'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는데,
인생에서 볼 때는 헛된 것이 아닌 것 같아
목숨 걸고 치고 박고 싸우고 전쟁까지 치루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영의 세계 원본의 입장에서 볼 때는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죽음 앞에 서면 그 동안의 모든 일이
헛되다 하게 된다. 예쁘면 뭐할 것이며
높은 자이면 뭐할 것이며, 외국어에 능통하면
뭐할 것이며, 부자면 뭐할 것인가 죽음앞에서.
'원본 세계'가 창조주신의 자동세계라고 한다면
'사본의 세계'는 인생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실행하면서 만들어가면서 쫓아가는 세계라서
그렇다.
창세기 2장까지의 자동적으로 모든 것을 알게
해주셨던 아담과 하와의 삶에선 성경책이라는
것이 필요 없었다.
'성경책'은 인생들에게 필요한 법전이다.
창세기 3장부터 불순종의 죄값으로 펼쳐진
인생이라는 삶에서는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배워가고 살아가야 했기에 시청각 교육이
필요했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들은 무엇이 정말
불순종의 죄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주께서도
정확하게 말씀하시지 않고 그냥 선악과를
먹었다고만 하신다. 성경을 기독교식으로
풀면 오히려 간단하다. 하지만 주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면 뇌에 부화가
걸린다. 지금의 종교적으로 해석하는것과는
너무 다르고 방대하다.
우주적으로 무한적으로 방대하다.
그래서 창조도 한줄로 말씀하신다.
"태초에 창조주신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넷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 일곱째날 하시면서.
시청각 교육을 인생이라는 것을 통해 시키신후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 '성경책'이라는 것을
쓰게 하셨다.
현 시대도 감옥 밖의 사회생활과 감옥 안의
죄인들의 생활이 다르다. 인생들은 지금
감옥 안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생활의
법전이 '성경책' 이다.
물론 수동으로 사는 저주를 받았을지라도
중간중간 누군가에게 지혜와 슬기를 주시면서
이끌어 가시기도 하신다.
"수탉에게 슬기를 주신 자가 누구냐?" 하시면서.
하지만 보통은 선배들의 것을 배우고 따라하게
하신다. 속담, 격언, 경우, 도리, 관습, 에티켓,
풍습 등은.
요한계시록을 종교책으로 안다든지,
내가 먼저 맡았다든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내 것이나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유대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누구든 안 된다.
전 인류가 대상이고 온 우주가 대상이다.
성경을 종교적으로 보면 종교책 같지만
역사적, 세계사적으로 읽어야 한다.
“어느 정도 줄거리를 알겠느냐?
그러면 올바른 삶을 실천하면서 살아라,
그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창조주신께서는 인간들의 은밀하게 지어지는
선과 악의 모든 것을 계산하신다”라고
전도서에 말씀하신다.
(전도서 12: 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창조주신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창조주 신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아멘.
창조주신께서 인간들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함'과 '악함'간에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것을
왜 종교생활을 잘하냐, 못하냐로
풀었을까? 마음 속을 살피신다는데.
(신명기 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아멘.
생로병사, 흥망성쇠, 빈부귀천, 길흉화복, 명당자리,
운명(사주팔자, 관상, 손금, 별자리 등), 위가 있으면
아래도 있고, 아래가 있으면 위도 있고, 인생은 돌고
도는 것, 금상첨화, 설상가상, 세상만사 새옹지마 등
인생의 모든 권세는 창조주신의 것이다.
어느 부분까지는 창조주신의 영역이고,
어는 부분까지는 사탄의 영역 그런거 없다.
전부 몽땅 창조주 신의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왔다?" "마귀가 왔다?"
"귀신이 왔다?" … 그것은 창조주신께서
보내신 것이다. 극과 극의 두 존재 아니다.
창조주 신께서는 또 창세기 3장부터 인생으로
들어선 아담과 하와에게 두 길을 제시하시는데
"선을 잡을 것이냐!" "화를 잡을 것이냐!" 하신다.
(예레미야 21:8)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으니" 아멘.
불신자로 살 것이냐, 종교자로 살 것이냐가 아니다.
불신자가 '악'이고 종교자가 '선' 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창조주 신이 아니라 그냥 종교의신이다.
타종파가 '악'이고, 기독교가 '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창조주 신이 아니라 그냥 기독교의신이다.
(신명기 30:19)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선함)을 택하고" 아멘.
이 말씀을 가지고 생명을 종교라고 풀어서
종교를 택하라고 설교하면 안 된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창조주 신'이나 '예수'는
본체를 말씀하시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거의
'선의 법 세계'의 대명사격으로 쓰인다.
기독교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불순종 죄로
인해 아담과 하와가 죽기 위해 흙에서 태어나, 흑에서
살고, 흙에서 죽고,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펼쳐졌다고
써 있어도 안 믿고,
창조주 신이 원래부터 인간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제도를 만들고, 성관계를 즐겁게 아름답게 하고,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외치며 자녀를 낳아
알콩달콩 살라고 한 줄 알고 있다.
그 인생이 흘러 문명이 발달되어 이렇게 살기좋은
세상이 되어 있어도 원래는 죽기 위해 태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을 그토록, 거기다 기독교인들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창조주 신이 인생들의 삶을
죽어야 하기 때문에 미주알 고주알 다 디테일하게
계산해야 한다고 알려주면 콧등으로도 안 듣는다.
무조건 자기들을 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한댄다.
요한계시록이 그 미주알 고주알 디테일하게 삶을
계산해서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라적으로 세계적으로 경제가 바닥을
치고 물가가 오르고 태산이 무너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일반인이나 낮은자나 높은자나 죽고 살아지고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영의세계법으로 써서 그렇지.
악을 발휘하지 말라
창조주 신은 종교의 신이 아니다.
물론 종교를 통해서 신을 알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런 종교들이 없더라도 창조주신의 일방적인
알림으로 인해 누구든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창조주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그의 종교의 힘이 아니라 그냥 신의 뜻이었다.
창조주께서 야곱을 선택하시는 것은 그의
종교의 힘이 아니라 그냥 신의 뜻이었다.
그냥 신의 뜻으로 선택이 된다.
나의 잘람과 의로운 덕이 아니다.
이때는 다 무속의 신을 섬기는 때다.
창조주 신을 기독교의 신으로 앉혀놓지 말라.
무속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예수가 인생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실 때
어떤 인생은 열어주고 어떤 인생은 안 열어주고,
열어주면 들어가실 수 있고, 안 열어주면
못들어가고 하는 줄 알면 큰 오산이다.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은 문을 열어준 자들로
'의인'이라고 자랑한다. 큰 착각이다.
창조주 신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인생들의
눈치를 보고, 문을 열어 줄 때까지 밖에서 덜덜
기다리시고 하시는 분이 절대적으로 아니시다.
창조주 신은 "내거 가지고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너는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라고 하시는 분으로
인간들이 지혜롭던 똑똑하던 아무 상관 안하신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 라는 것도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께서 주시고 싶은 인간에게
주시고 싶은 것을, 그 인간의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입으로 시인하게 하시고, 주시고 싶은 때에, 주시고
싶은 만큼 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달란다고 주시고,
울고 불고 떼쓴다고 주시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혈서를 쓰면서 졸라도 아무 소용 없다.
엘리야와 바알선지자들의 기도 싸움에서
바알 선지자들이 칼로 몸에 상처를 입혀가면서
아무리 떼 쓴들 주께서 엘리야의 기도에 손을
들어주시기로 작정을 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피의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바알선지자의 신과 엘리야의 신과의 싸움이
절대로 아니다.
반대로 모세나 요나나 예수처럼 싫다고 떼쓴다고
안 주시거나 뜻을 거두시는 분도 아니시다.
인간의 뜻은 없다.
내가 쓰겠다 델구와라 하시면 끝이다.
그냥 모든 것을 창조주 신의 뜻대로 하신다.
(출애굽기 33:19) "창조주신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창조주 신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아멘.
(마태복음 20)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아멘.
"내가 높은 자리에 있다? 내가 똑똑하다?"
창조주신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교만하고,
큰 소리치면 땅바닥으로 꼬나박히는 것이다.
"흑수저로 태어났다?" 창조주신의 뜻이 바뀌면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창조주 신의 뜻과
인간의 기도 시간과 맞딱뜨려져서 우연적으로
내가 기도 했더니 됐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다
신의 뜻일 뿐이다.
그래서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창조주신도
꼼짝 못하신다. 기도 안 하면 창조주신도 일을
못하신다. 내가 마음 문을 안 열면 창조주신도
못 들어오신다" 라고 가르치면 안 된다.
그 인간이 창조주신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구름 위에 자리를 펴고 창조주신과 같아지려고
한다는 값으로 계산된다. 오히려 땅에 꼬나박힌다.
창조주 신은 그냥 열고 일방적으로 들어가신다.
누구에게 들어가실 것이냐가 관건인 것이다.
내가 문을 열어준 줄 알고 잘난척하면 큰코다친다.
창조주 신이 손을 내밀었는데 내가 잡은 줄 알면
정말 큰 오산이다.
주는 전 우주적으로 전 인류적으로 영의세계의
존재들이나 육의세계 인생들의 'GOD'이시다.
창조주 신은 종교로 들어갈수록 작아진다.
(신명기 5: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아멘.
종교자들은 돌이든, 십자가든, 얼굴그림이든, 의자든,
물건이든, 생각이든 무엇이든 자기 종교들의 '형상'에
창조주 신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가둬놓고 자기들의
기도나 응답하라고 울며 불며 떼쓰고들 있다.
요술램프 지니처럼 보통은 램프 안에 가둬놨다가
자기가 필요하면 기도라는 도구로 문지르고
빨리 나와서 내 기도나 응답하고 다시 들어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창조주 신은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아갈수록 커지신다.
태양보다 더 큰 은하계가 수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창조하신 신은 너무
크셔서 생각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욥기 38장~41장.
인간도 생각은 엄청 크게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한하신 창조주신의 영역은 생각할 수가 없다.
인간의 입으로 "대단하십니다!!" 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창 3:22) "창조주 신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아멘.
"창조주 신의 명령을 지켜라" 라는 말씀은
종교의 행위를 잘 하라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신의 대표적인 성품인 '선'과 '악' 중에서
공의와 정직 바름 등 ‘선한 행실’을 잘 실행하라는
말씀이시다.
‘악’을 발휘하지 말아라.
대표적으로 '욥'의 인생을 통해 신에게 굽신거리고
아부 떨고 두려워하는 제사를 금쪽 같이 많이 지낸들
가장으로서의,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개떡 같을 때
죽을 만큼 혼나고, 개과천선 후 두 배의 복을 받고
자기가 살만큼 살다가 잘 죽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어느 권사님의 죽음을 모델로 삼아 기도중에 있다.
90살까지 그닥 큰 병으로 병원신세를 지신 것도
아니고, 생일을 지내고 바로 주무시듯이 돌아가셨다.
인간이라면 이런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이 분의 특징은 험한 말이나, 욕이나, 사나운 말이나,
남의 말을 하지 않으며 불평 불만의 소리를 몇십년간
소문으로라도 들어보질 못했다.
'창조주의 명령'이 성경에 써 있는 것들은
기본적인 베이스이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라적으로 세계적으로
지켜야 할 명령들이 너무 방대해 성경에 다
기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역마다 나라마다의 속담 격언 규례
구전 관습 전통 가르침 책 등을 통해 알려주신다.
창조주 신도 가정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법이
‘남자의 주권법’이고 '아버지의 주권법'이다.
학교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이 ‘학교법’이고,
사업장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이 ‘사업장법’이다.
지역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법이 ‘지역법’이다.
관습이나 전통 등이 해당된다.
바다 건너 있는 나라법들이 다름을 인정하는
법이 '자기 나라법'이다.
세계적으로 다름을 하나로 잘 맞춰서 가자는
법이 ‘국제법’이다.
하늘신을 믿고 따라야 하는 종교라도 다 똑같이
적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시대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다.
(신 30: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신 30: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신 30: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신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아멘.
기본 베이스 '성경법'
■ 가정은 부모에게 효도하냐, 부모의 말씀을
잘 듣냐, 부모는 자녀교육을 시킬 때 내 맘대로
하냐, 내 화풀이로 하냐, 쓸데없이 노엽게 하냐,
자녀를 '노예의채찍'으로 체벌하면서 교육하냐
(심하게 상처가 나고 죽기도 한다)
"출발, 스톱, 이리로 저리로" 정도의 채찍으로
교육하냐(상처가 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주권을 잘 지키냐, 남편의 주권을
잘 지키냐, 남편을 주 같이 잘 섬기고 따르냐,
아내를 내 몸 같이 사랑하냐 등이 있다.
■ 직장은 종들은 자기 상전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눈가림만 하지 말고, 두려워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상전은 내게 목숨과 같은 '돈이라는 대가'를 주는
자로서 종들은 그들을 창조주 신께 순종하듯이
해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나, 친척이나, 종교에 속한 자들이
직장 구성원일 때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겨야 한다.
상전들은 직원들을 가족같이 생각하고 대해야하며,
쓸데없는 협박을 하지 말아야 하고, 남에게 협박하여
재물을 받거나 불법으로 이익을 얻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하고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한다.
이 상전의 상전인 창조주 신께서 다 보시고
계산하시기 때문이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고,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의 법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 사회는 나이 많은 자들 앞에서는 일어나며
공경해야 하고, 나이 어린 자라고 해서 무시하지
말아야 하며, 부자에겐 손을 비비면서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내 발 밑에
앉든지 말든지 하라고 하면 안 된다.
■ 나라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 권세를 창조주 신께서 주신
것이라서 그렇다.
인간들이 만든 모든 제도를 창조주 신께
순종하듯이 순종하되 왕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나를 징계도 할 수 있고 포상도 할 수 있는
권세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창조주 신께서 그들의 법대로 치리하도록
창조주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겼다.
(겔 23:24~26)
■ 식민지는 창조주 신께서 계산하신 값대로
이 나라를 저 나라에 붙이시고, 저 나라를 이
나라에 붙이신다.(렘 32:28) (겔 23:28)
(스가랴 14:1~3)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아멘.
(호세아 13:15)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 근원이 마르며 그 샘이
마르고 그 적축한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
되리로다. 사마리아가 그 창조주 신을 배반
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아멘.
아브라함도 창조주 신의 계산을 당했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창세기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멘.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아멘.
(창 15: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아멘.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멘.
창조주 신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땅을 주시겠다고
일방적으로 이동하게 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자손이
400년 동안 어느나라의 식민지가 되겠다고 하신다.
무엇을 잘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4대 만에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인데
그것은 아모리 족속의 '죄의법세계'가 가득 차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신다.
만약 제사를 지낼 때 산비둘기인지 집비둘기를 반으로
자르지 않아서 자꾸 솔개가 날아와서 먹으려고 했던
것을 잘못이라고 해서 그런다면 신으로 섬기지를 말자.
사람이 뭘 어쩔수 있다는 말인가.
창조주 신의 일방적인 계산법 앞에서.
아브라함의 조상 죄값이나, 아브라함 당대의
죄값이나 그의 자손들의 죄값을 합산하신 것이
타국에서 400년동안 식민지 생활로 터시겠다는
것인지.
조선이 뭘 어쩔 수 있다는 말인가.
창조주 신의 일방적인 계산법 앞에서.
일본에 36년동안 식민지로 넘겨버리시고
일방적으로 광복도 시켜 주시고,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시고, 일방적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관리토록 하시고
북쪽은 공산주의로 살게 하시고,
남쪽은 민주주의로 살게 하셨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 앞에 펼쳐진 대로 잘 사는 수밖에.
항복하면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고,
거절하면 그 성을 불사를 것이다.(렘 38:18)
점령한 나라를 쑥대밭이 되도록 하실 것인지,
(삼상 15:3) (렘 44:11~12)
여전히 살만한 곳이 될 것인지도 정하신다.
(렘 46:26)
점령된 법을 순종하며 사는 자들은 그 땅에서
밭을 갈고 먹을 것을 주시고 살게 하신다.
(렘 27:11)
점령된 법에 순종하지 않고 대적할 때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는다.(렘 27:13)
'악'의 용도
‘악’ 이라는 것도 인간들 입장에서 악한 일을 행하는
‘악’을 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한테 잘해주면 '선'이고, 나한테 못해주면 '악'이
아니다. 선인 것 같으면서 악이고 악인 것 같으면서
선이다.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는 의인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악인일 수도 있다.
나도 저 사람에게 의인일 수 있지만
이 사람에게는 악인일 수도 있다.
인간은 모두 다 양면성을 가지고 산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나한테 나쁘게 적용된 법이
'악법'이라는 것인데, 이 '악법'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선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인간들의 징계용으로 사용하시는
'함정'과 '올무'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도 인간 편에서
볼 때는 '악'의 모습이다.
물질이나 욕망이나 외모나 현재의 값이 창조주신의
재판의 모습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감사치 않고,
쓸데없이 욕심을 갖고 추구하거나 실행에 옮기게
되면 함정과 올무에 빠질 수 있다.
사기꾼이 달려들어 털린다든지 사업으로 망할 수도 있고,
상석인줄 알았더니 말석으로 떨어뜨림을 당하게 되고,
외모가 더 흉물스럽게 바뀌거나 거식증 걸려 죽을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우울증에 빠진다.
많은 성형수술로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주사바늘로
얼굴에 콩기름, 파라핀 등을 주입하는 현상까지 발생
하는 것은, 첫번째는 창조주 신의 너는 거기까지다의
명령을 어긴 것이고, 두번째는 영의세계에 있는 나 조차
"그만하자" "그만하면 됐다" "더 이상 하지 말자"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육의세계의 나는 욕심으로 계속
밀어부칠때 영의세계의 내가 "그래 니가 알아서 해라.
나는 모르겠다" 그러면서 이것 저것 주문을 하게 되는데
거의 미쳤다고 보면 된다.
미친 내 영체의 주문이지 귀신의 소리가 아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다.
창조주신은 종교자든 비종교자든 '내 발에 등불'처럼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시는데 '한걸음 이후'의 상황을
알고 싶어 '선지자'를 찾아가면 함정과 올무에 빠질 수
있다. 이럴 때 신께서 '악'을 사용하신다.
육의세계에서 사람답게 사는 도덕적인 행실 외에
삶의 종류 등은 남을 따라 하면 안 된다.
'나의 길'은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나의 마음속에서
길이 인도된다. 창조주께서 인간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상관없이 주변 환경이 나를 인도할 수도 있다.
재판소-법원
육의세계는 천국 원본 세계의 ‘그림자’이며,
육의세계의 삶의 ‘그림자’로 인한 영의세계
(선 값과, 죄 값)가 펼쳐지는데, 이것을
설명한 성경이 요한계시록이다.
육의세계로 말하면 재판장의 모습으로써 검사격과
변호사격의 변론이 있으며 부장판사의 형이 떨어지고,
그 형벌의 실행으로 인해 유치장으로 가서 몇 년 형을
살던지, 보석으로 풀려나든지, 집행유예를 당하든지
하게 된다.
옛날 같으면 곤장을 맞는다든지, 벌금을 낸다든지,
국문을 당하다 죽는다든지, 능지처참을 당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런 재판장의 모습을 영의세계
법으로 설명해놓으셨다.
영의세계의 재판 결과에 따라 육의세계에서는
개인부터 시작해서 가정적·지역적·나라적·
세계적으로, 미세하고 작은 부분부터 거대한
‘복’의 사건이나 ‘징계’의 사건들이 펼쳐진다.
육의세계로 볼 때는 누군 이런 복을 받고
누군 저런 복을 받고, 누군 오래 동안 이런
생활을 하고 누군 오래 동안 저런 생활을 하고
그러다 누군 좋은 생활로 승격하고, 누군 나쁜
생활로 전락하고, 이리 이사하고, 저리 이사하고,
이리 이직 하고, 저리 이직하고, 잘 살고 못 살고,
비슷하기도 하고,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기도
하고 하면서 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복과 징계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그냥 뜬금없이
재수있게 재수없게 우연히 밤새안녕으로 펼쳐진다.
이런 요한계시록 조차도 예수를 믿는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종교믿음 하나로 구원을 받아
이런 징계를 받지 않고 건너뛴다고 안다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이 땅에서는 이런 징계가 하나도 없이 대충
그냥 그냥 살다가 죽어서 심판대 앞에서
계시록에 나와 있는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알아도 안 된다. 낭패를 당하게 된다.
징계가 없는 줄 알고 막 살게 된다.
인생의 목숨이 붙어있는
이 땅에서의 사건들이다.
영의세계법으로 썻을 뿐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형상들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은 인생의 모습이 영의세계에서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써,
영의세계에 가서 직접 보면 ‘복의 값’들과 ‘징계거리 값’
들이 서로 자기들이 주체인양 쫓아가고, 도망가고,
숨어있고, 죽었다가 살아나지고, 하늘로 들려올라가고,
상층으로 자리를 차지했다가 하층으로 쫓겨 내려왔다가
하면서 전쟁을 한다.
미가엘-복의 값과, 용-징계의 값과 상계되고 남은 것이
무엇이냐로 복을 받든 환난을 당하든 한다.
그리고 육의세계의 값에 대한 처리사건이 일어나는데
선의 값에서 인치는 시간이 있고, 죄의 값인 짐승이
인치는 시간도 있다.
예수가 말 타고 나와서 입의 검으로 죄의 값을 처리하는
시간도 있다. 그리고 선의 값들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되고, 죄의 값들은 불 못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가엘형상이 나오고 예수의 형상이 나올 정도면
나라적으로 대단히 거대한 사건이다.
여러종류의 영의세계
영의세계라는 것은 여러 가지다.
창조주 신께서 원본들과 계시는 ‘원본 영의세계'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가 있고,
인간들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가지의 영의세계가 있다.
이런 영의세계는 인간들이 죽으면서 그대로 불못으로
들어가든지 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실시간으로 상계되면서 없어지기도 한다.
불순종의 죄로 인해 드러나게 된 죄의 성품들이
인간이 죽으면서는 필요없게 되었으므로 불못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고, 창세기 2장에 있었던 대로
돌아가게 된다. 창세기 2장시절에는 죄성성품이
없었다.
육의세계에서 살면서 복의 값들과 죄의 값들이
형성되는데 이것들이 상계될 때 형성됐던 형상들은
없어지게 된다.
복의 값이든 죄의 값이든 생겼다 없어졌다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누군가 환상으로 자기 집이 지어졌다 허물어졌다
지어졌다 허물어졌다 하는 것을 보고 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환상으로 무언가를 보고 왔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영화를 보듯이 화면으로 보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육체로 육의세계에서
존재함을 느끼듯이 영의세계에서도 내가 직접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진짜 같다.
하지만 환상에서 깨어나 다시 육의세계로 돌아
왔다는 것은 그냥 영화같은 장면이었는데 직접
배우가 되어 경험해 본 것 뿐이다.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에서도 알수 있는데
스크루지는 돈 외에는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없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 날의
자선냄비 종소리.
크리스마스 이브 날 스크루지는 악몽을
꾸게 되고 4명의 저승사자를 만나면서
결국은 삶의 행복이 함께 나누고 베푸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꿈이었지만 꿈 속에서 얼마나 현실같이
시달렸는지 꿈을 깨고 나서 개과천선하게
된다.
*욥도 같은 경험을 했다.(욥기 16:9~16)
자신의 지옥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런 것을 보고 자신은 천국을 보았고 지옥을
보았다고 외치지만 그것은 자기와 관련된 영
의세계값의 모습이지 창조주 신 본체가 계시는
곳은 절대로 아니다. 이곳은 절대 비밀이다.
never. 그 어느 누구도 본 자가 없다.
계시록 나오시는 예수도 그의 천사이지
예수 본체는 아니다. 그렇지만 위엄은 똑같다.
(요한계시록 1:1)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아멘.
인간이 죽을 때도 '그의 죽음'의 형상이 생기는데
이 형상은 오래 존재하기도 하고 무슨 이유로
없어지기도 하고 한을 품고 있으면 드러나기도
하는데 무속인들이 보는 것은 이런 형상들이다.
죽은 사람의 형상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 그의 영 자체가 아니다.
하지만 형상이라해도 그 영의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행동할 수도 있다.
창조주의 세계 형상들은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인다. 주의 명령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
일단 죽으면 영체는 창조주와 같이 사는
곳을 의식하게 된다.
인간의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좋은 느낌이든 나쁜느낌이든
무엇이든 일단 형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누구를 미워하게 되면 미움의 형상이 생기는데
계속 미워하면 형상이 더 커지는 것이고,
용서하게 되면 형상이 작아지든 없어지든 하는
것이다.
원본과 사본
원본은 창조주와 함께 같이 있다.
육신으로 태어나 죽는 것도 사본이고,
육신을 관리하기 위한 모든 것들도 사본들이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인 ‘원본’을 없애시는
창조주 신이 아니시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육신이 창조물의 원본인준 알고
"조물주가 인간을 잘 못만들었어" "완성품이 아니야"
"무슨 창조주가 만들었다는데 암도 걸리고 병도 걸려"
"고장도 나고 션챦아" 라고 떠들기도 한다.
퍼펙트한 창조주 신이 아담을 창조했을 때는
창조주 만큼 완벽했다. 그래서 창조주 신과
다른 '그 한가지'가 너무 궁금했다.
창조주의 원본들은 창세기 2장에 있고,
불순종 대가의 맛을 봐야 하는 인생들은
창세기 3장부터 흘러간다.
인생들은 시청작 자료들이다.
창조주신은 항상 '두 길'을 제시하신다.
창세기 1장 때는 선악과를 먹을 것이냐
먹지 않을 것이냐의 길을 제시하셨다.
지금 인생세계에서의 두 길은
악을 발휘 할 것이냐, 하지 않을 것이냐이다.
신경계의 고통
요한계시록은
아담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예수 이전 과거 사람들은 다 필요 없고,
예수가 죽고 나서 사도요한의 때부터 시작해서
지구 종말이 온다든지나 내가 죽어서 백 보좌 심판대
가서 그동안 살았던 것을 다시 리플레이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너는 천국으로 가라 너는 지옥으로 가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죽고 나서 일어날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현재나 미래의 인간들이 살아왔던 삶에
대하여 복의 값과 징계의 값을 계산해서 이렇게
저렇게 복과 징계를 받았었고, 받고,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성경은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경제를 돌리시는 창조주 신께서 복의 값으로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며, 징계 값으로
불에 태우고, 물로 쓸어버리고, 태풍으로 치시고,
우박으로 치시고, 사고로 혼내시고, 물가를 오르게
하시고, 세계가 공황에 빠지고, 파산하게 하시고,
건강이 나빠지게 하시고, 사기도 당하고, 죽게 하시는
등 가지각색의 사건들을 만들어 가시면서 물질의
이익을 보든지 손해를 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 중에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 육체 원본 훼손의 고통이다.
온 몸에 세밀하게 신경으로 퍼져있는 이 ‘신경의 고통’
이야 말로 죽는다고 소리칠 정도이고 그야말로 죽어버릴
정도의 고통이다.
지옥의 고통을 느끼고 싶거든 치과에서 24시간
신경치료를 마취 없이 생으로 받아보면 잘 알게
될 것이다.
수술대에서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아보면
잘 알게 될 것이다.
다양한 계산법
다양하심이 무한하신 창조주 신께서는 인간들에게 똑 같은
값을 매기지 않으시고 아주 다양하게 복과 징계를 내리신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인간들 삶이 다 다른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문명이 발달되게 해주셔서
편안하게들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천년가까이 땅 파면서 전쟁하면서
해산하면서 사는 고통을 겪었다. 물론 지금 현재도
지역적으로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자들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계산에서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라적으로
세계적으로의 계산까지 다양한 장면이 펼쳐지는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경제공황과 환란과
전쟁과 자연재해 등의 모습이 영의세계 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환란의 모습은 땅에서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것이다.
복과 징계의 결정체
'여인' '두 증인' '아들' '예수와 혼인' 등 이 부분은
'복의 값'들이다.
'포도' '음녀' '바벨론' 등은 '징계 값'들이다.
이 복의 값들과 징계의 값들이 상계되는 장면이
영의세계에서 보면 자기들 스스로 전쟁하는 모습으로
펼쳐진다.
쫓아간다든지 잡아먹으려고 한다든지 하는데
그런 것은 다 이 땅의 삶에 의한 현상일 뿐이다.
그렇게 상층으로 갔다가 하층으로 갔다가 한다.
그런 영의세계 값으로 자동적으로 창조주신의
복과 징계가 내려지는데 그 표현되는 단어들이
무섭다.
불을 쏟아 붇고, 우박이 내리고, 번개를 치고,
삼분의 일씩 태워죽이고, 창조주께서 인을 치시고
살리시고, 짐승이 인을 치고 죽이고,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고,
낫을 휘둘러 포도를 거두고,
징계천사, 징계막대기 '황충이' 전쟁의 '마병대'
'무저갱' '짐승''음녀' 등이 동원되는 영의모습을 본다.
삼분의 일씩
우리가 살아보니 복이 하루아침에 왔다가
하루 아침에 떠나고, 징계가 하루아침에 왔다가
하루아침에 떠나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상계시간이 한참 걸리는 것 같다.
짜잘하게 복과 징계가 오고 가지만 그런 것은
그냥 삶이려니 하지 그런 것이 영의세계에서
계산 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들은 무조건 창조주 신의 뜻과
어떤 계산에 의해 산다
삼분의 일씩 태워지고, 안 태워지고,
삼분의 일씩 혼나고 등은 거의 비슷
비슷한 값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것은 하늘의 복을 받았네,
누가 봐도 그것은 하늘의 저주를 받았네 하는
것이 있다.
이 정도가 예수와 혼인하고 성 안에 들어간
복을 받은 것이고, 불 못에 들어간 징계를
받는 것이다.
육의세계에서 발휘되었던 죄성형상들은
죽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 못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
인간이 죽으면 이런 모든 영의세계 법으로
형성되었던 형상들이 필요 없게 된다.
인간들을 다스리기 위해 쓰였던 막대기
종류들도 다 불 못으로 들어간다.
통계를 내보라
계시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재 인간들 삶의
복의 값과 징계의 값을 영의세계에서 창조주께서
계산하는 사건이다.
창조주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이 땅에서는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세밀하게 모른다.
개인적인 사건들을 서로 대화를 통해 알 수가 있고,
그런 것들이 모여진 통계를 통해 알 수가 있고,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알 수가 있고, 나라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대략 알 수 있을 뿐이다.
어떻게들 혼나고 있는지, 어떻게들 복을 받고
있는지는 개인별로 다르다.
지역별 사회별 나라별로도 다르다.
통계를 내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육의세계도 인간들 하나 하나 통계내고
관리하기 어려워서, 별자리, 혈액형, 체질별,
이렇게 했더니 복을 받았고 저렇게 했더니
벌을 받았고 해가면서 어느 정도 통계만 내고 있다.
인간들이 살아본 바에 의하면 이럴 때 복을 받았고,
저럴 때 천벌을 받았고 등을 오랜 세월 경험하고
누군가 지혜로운 자가 통계를 낸 것이다.
후배들은 참고하라고.
믿음
예수제물이 태어나셨다가 자기 할 몫을 다하고
하늘로 들리워 가셨다. 믿거나 말거나.
그냥 허공으로 계속 쭉 가셨다거나, 어디쯤에서
천국 문을 열고 가셨다거나 했다고 해도 못 본
사람으로서 할 말은 없지만,
혹시 에스겔 1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영광의 모습인
'단쇠생물'이 모셔갔다고 하면 그것은 과학적으로도
믿을 수 있는 사건이겠다.
구약에서 하늘의 신을 섬기던 다니엘이 세계전쟁에
관한 환상과,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면,
신약에서는 예수의 제자로 있었던 사도요한이
세계적인 영의세계의 복과 징계의 계산법에 대해
환상을 보았다.
이스라엘 촌구석에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난 예수를
창조주신의 아들이라든지, 창조주 본인이라든지로
믿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창조주께서 그렇게 설정하셨다.
인간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 자들은 거짓말 하는
자들이든지, 교육되어진 것을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든, 아니면 진짜 미친 자들이다.
신의 도움 없이도 믿을 수 있다고 떠드는 자들은
창조주 신 보다 더 위에 있는 자들이다.
영의세계법으로 계산될 때는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창조주 신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법에 걸릴 수
있다.
인간은 누구든지 절대적으로 창조주신께서 주신
만큼 어떤 믿음을 발휘하는 것 뿐이다.
이런 것은 종교로 나타날 수 도 있고,
개인적인 삶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일반적인 믿음'이라는 것은 인생들이 살면서
삶에 대해 발휘하는 믿음이고,
'신적인 믿음'이라는 것은 창조주 신께서 아무
것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믿음을 직접 주실 수도
있으시고,
그 누군가 먼저 믿는 자에 의하여 전달 받아
알 수도 있다.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해서 억지로 믿을 수도 있고,
그런 협박을 못 들었어도 믿을 수도 있다.
'일반적인 믿음'은 내가 발휘하는 것이고,
'신적인 믿음'은 오직 신께서 주시는 것이다.
예수
예수가 육신으로 왔을 때는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 촌구석으로 오셨다.
하지만 예수는 유다 자손으로서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오셨다. 왕손이다. 로마 식민지로 넘어간 상태지만.
썩어도 준치다.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가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보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아멘.
예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가 자꾸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과거의 선지자들 보다 더한 기적을
일으키니까 안 믿을 수도 없다.
나라를 어떻게 독립 정도 해줄 줄 알았는데 ‘참람죄’로
걸려 39대 태형을 맞고 십자가에 달려 그냥 죽어버렸다.
창조주신의 아들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천군천사를 보내서 로마군을 무찌르고 독립을
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허무하게 죽었다.
엘리사 때도 천군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6일전쟁 때도 천군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아들인 본인이 39대 태형을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는 천군을 보여주실 수
없어서일까? 안 하신 것 뿐이다.
제자들도 예수를 하늘의 신 정도가 아니라
독립투사 정도로 따랐던 것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제물로서의 의무'를 완성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냥
갑자기 죽어버리셨다.
이스라엘은 하늘의 신 외에 사람이 신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참람죄에 걸려 죽어 마땅하다.
이 성품이, 이 특징이 사용되어 진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예수가 여기있다. 내가 하나님이다 하는
곳에 우 몰려다니고 절하고 하는 그런 백성들이 아니다.
이들은 하늘의 신을 믿는 백성으로서 예수를 하늘의 신과
대등한 존재로 믿는 것이 아닌 영성이 뛰어난 선지자
정도로 믿고 있고, 거기다 독립군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랬었다.
그렇게 3년 동안 공생애라는 것을 치룬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못 믿어 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가난하고
못 배운 자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렇다.
예수가 죽은 후에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 주셨기
때문에 그들도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주 신께서는 항상 '본부'에 계시며
예수로 이 땅에 태어나신 것도 본체는 아니시며
창조주의 말씀이 육신화 되어 태어나신 것이며,
사도요한에게도 천사를 보내셨지 본체가 직접
가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천사는 주의 모습이다.
(계시록 1: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아멘.
(계시록 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아멘.
(에스겔 1장의 창조주의 영광의 모습)
(계시록 1:18)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아멘.
(예수 생존의 모습)
진짜 예수의 본체는 아니다. 본체는 항상 본부에 계신다.
그 곳은 인간이 죽어야 알 수 있는 곳이다. 죽었다 깨나고
환상으로 보고 오는 영의세계는 본부가 아니라 자기들의
‘죄의법 세계’와 ‘선의법 세계’의 모습일 뿐이다.
지금으로 본다면 홀로그램이나 영상통화 같은 것으로
그와 나는 서로 보면서 대화하지만 나는 거기 없고
여기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자기법 영의세계는 욥도 보았었고,
예레미야도 보았었다. 이들은 자기 것만 본 것이고,
사도요한은 전인류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본 것이다.
개나 소나
성경은 전 인류를 상대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숫자를 말씀하실 때 개인적인 숫자보다 싸잡아서
말씀하신다.
계시록에도 푸른나무가 태워지고 안 태워지고,
'이마에 인 맞은 자들' '삼분의 일씩' '이만만' '14만4천명'
'천천' '만만' '수를 셀 수 없는 무리' 해가면서 무더기로
싸잡아서 말씀하시지 개인적인 숫자로 몇명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계속적으로 인간세계의 값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더 그렇다.
영의세계로 올라오는 '상값'과 '죄값'은
한 사람당 한개가 아니다.
한 사람앞에 무수히 많은 수의 '상값'과 '죄값'이
한없이 계속 쉬지않고 올라오고 있다.
이 '14만4천'이라고 정한 숫자는 큰 환난을 당하고
살아남은 자들로서 정확한 숫자일 수도 있다.
'욥'처럼 환란 후 개관천선하고 새삶을 산 자들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을 얼마나 먼지 한 개 만큼이라도
다르게 다양하게 만드시고, 삶도 얼마나 다양하게 이끌어
가시는지 비슷한 것은 있어도 똑 같은 것은 없다.
쌍둥이도 똑 같은 것 같아도 조금은 다르다.
그만큼 ‘많이’ 라고만 하신다.
우리가 벼를 거둘 때 낱알을 세지 않는 것과 같다.
'다발'로 말하고 '되'로 말하고 '가마'로 말한다.
요한계시록
1장 -일곱 가지 유형
계시록 처음부분은
①에베소교회 ②서머나교회 ③버가모교회에
④두아디라교회 ⑤사데교회 ⑥빌라델비아교회
⑦라오디게아교회 라고 명명한 일곱 교회 이름으로
일곱 종류 삶의 값을 대표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칭찬과 꾸중을 하셨다.
성경은 유대교를 향한, 천주교를 향한, 기독교를 향한,
교회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창세기 3장부터 시작된
과거 현재 미래를 통 털어서 전 인류적이고 온 인류적인
말씀이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것을 보지 못했어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승리하신 것을 보지
못했어도 그것을 배워서 아느냐 배우지 못해서
모르느냐일 뿐이지, 그것을 믿어야 되고 안 믿어야
되고 문제가 아닌 것과 같다.
성경은 지금 현재의 기독교를 위해, 교회를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사도요한 당시 이 일곱 교회만 있었던 것인지,
사도요한이 일곱 교회만 알았던 것인지는 모른다.
교회를 지금 기독교의 교회로 풀면 안 되는 것이
이때 당시 교회를 세운 목적은 로마 식민지에서
가난하게 고통당하며 사는 이스라엘 자국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세운 단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나라=하늘의신 믿음' 이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단일종교로서 정치와 신앙이
하나로 맞물려 갔다.
이것도 지금의 유대교나 천주교나 기독교가
아닌 그 나라 민족종교이다.
구제와 더불어 창조주 신께서 원하시는 선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교육을 잘 시키라는 것을 조상들로부터
계속 철저하게 교육되어저 왔다.
잘 못살면 창조주께 자동으로 매를 맞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민으로서 어떤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복과 징계가 하늘의 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철저하게 교육 받은 것이다. 안 다는 것 정도다.
율법 교육. 하지만 이 율법도 유대인이 정해놓은
수백 가지의 종교성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나라로서의 헌법 같은 것이다.
모델 이스라엘
야곱의 12아들 이름이나, 24장로나, 예루살렘 성이나,
성전이나 등이 계시록에 나온다고 해서 이스라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모델로 쓰셨기 때문에 그런 이름은
대표 격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사도요한이 알고 있는 처지에서 쓴 것이다.
지금 현재 권혁미에게 계시록을 쓰라고 하신다면
내 나라 입장에서, 내 가족 입장에서, 우리나라
법 입장에서, 내 주변인물들을 거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희 그들만 대상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스라엘만
대상이라면, 이스라엘만 믿고 적용하고 이스라엘만
천국 가든 지옥 가든 하면 될 뿐인데, 굳이 기독교가
가지고 가서 자기네들도 해당된다고 하면 안 된다.
게다가 이스라엘 유대인은 이제는 천국사건에서
빠지라고 하면 안 된다. 어불성설로 유대교나
이스라엘이 기독교의 선배라고 우기면 안 된다.
기독교가 자기네들 마음대로
종교가 딱히 없었던 무속인 아담 하와 노아
아브라함 다니엘 예레미야 느헤미야 에스더
다윗 등 예수가 태어나기 전 인간들은
지옥사건이나 끼고 천국사건에선 빠지라고
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이나 유대인들에게도 지옥사건은
껴도 천국사건에선 빠지라고 하면 안 된다.
이순신 장군이나, 논개나,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조상들의 고통과 환란과 자결과
죽음의 공로로 지금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고 있는 것인데 그들은 지옥사건만 끼고
천국사건에선 빠지라고 하면 안 된다
구약과 신약
막말로 기독교도 끼고 싶으면 성경을 사도바울
시대 이전과 이후부터 잘라서 구약은 유대교가
갖고 가고, 신약은 기독교가 갖고 가고,
바울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울처럼 직업을 갖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계시록도 구약 인물이 나오는 곳은 유대교가
갖고 가고, 교회나 성도가 나오는 곳은 기독교가
갖고 가자. 신약도 기독교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 ‘구약’은 세계사가 시작된 시점을 말씀하시고,
인생들의 삶을 살게 된 동기와 과정을 말씀하시고,
창조주께서 개인을 선택하시고 부족을 만드시고
전쟁을 통해 나라를 만드시는 과정을 쓰신 글이며,
이스라엘 나라를 모델로 삼아 쓰셨기 때문에
다른 세계사는 부분부분 첨가되어 기록된 글이며,
인생들과 나라 관리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가 태어나고 죽고
사도바울이 등장하는 곳은 종교로 넘어간 것일까?
예수 당시는 로마에게 점령된 상태로, 우리나라가
일본에 점령되어 식민지처럼 살던 때와 비슷하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수없이 많은 상태에서
구제하기 위해 세워진 단체가 교회인데 이곳이
지금의 기독교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힘들고 어렵던 그때 당시 그들은 같이 모여서 먹고
살기 위해 하늘의 신께 기도를 드리며 애를 쓴 것이다.
예수를 전하면서 살았던 사도바울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교회라는 것을 세운 것은 종교단체를
만든 것이 아니다. 이들은 지금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도산 안창호 선생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식민지 시절 여러 지역으로 돌아다녔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일제식민지 시절 여러나라로
돌아다녔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만난 예수를 같이
전한 것이고.
안창호 선생도 나라 독립을 위해 영국, 독일, 치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르크추크, 블라디보스토크,
칭다오, 상하이, 필리핀, 시드니, 센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벤쿠버, 시애틀, 유타, 뉴욕, 멕시코,
하와이 등 배타고 걸어서 다녔다.
가서 한 일은 한국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서로
이권을 위한 다툼을 없애고 조직을 만들고 가르쳤다.
"피가 같고 살이 같고 뼈가 같은 우리 전체 민족이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서로서로 용서하고 따뜻한
공기를 빚어내야만 우리 일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나 공화국이 생겨났다.
미국의 교민사회도 멕시코의 한인노동자사회도
자치와 협동의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안창호가 멕시코에서 활동한 결과 멕시코 정부도
한인노동자들을 우대했고 농장에서도 한인의
임금을 올려주었다.
"안창호라는 지도자가 오더니 한국 사람들은
면목이 일신하여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농장에
큰 이익을 올리게 하였다"라고 평했다.
조선은 그 후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1945년 8월 15일 일제식민지 36만에 창조주신의
뜻에 의해 해방이 된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떠돌이세월 1878년
만에 창조주 신의 뜻에 의해 독립된다.
사도바울이 다니면서 헌금을 받았다고 했다.
교회헌금? 이것은 독립자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멕시코에 온 한인들은 10여년간 지도자 없이
자기들끼리 지내다 미국에서 한인들의 대사관
역할까지 한 대한인국민회의 회장이 와서는
에네켄 농장에서 함께 일하고 저녁에는 강연을
하며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당시 멕시코에서 모은 독립운동 자금은 사실상
안창호 선생을 보고 모아준 것이다.
"우리집에 저녁을 먹으러 와서 아버지에게 독입운동
자금으로 쓸 현금 300~400달러를 내놓은 한인
이주노동자들이 많았다".
낮이면 사탕 밭에서 살고 밤이면 농막에 들어가 밤을
지낼 때 피곤한 몸의 사지가 아프고 걸려서 눕거나
앉았거나 편치 않아서 전전불매하던 것이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형편으로 매일 10시간씩 일하고 69전을 받아
그날 그날을 지냈으며 그같이 한숨과 눈물에 젖은
노력이 재미한인사회 건설과 조국광복 해외운동의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김구 선생도 "시카고에 있는 김경 애국장은 그곳
공동회에서 모은 것이라고 하면서 집세(임시정부)나
하라고 미화 이백불(현재 가치 5000만원)을 보내어
왔다. 당시 임시정부의 형편으로는 이것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동포들의 정성이 고마웠다.
김경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이렇게 피눈물 나는 시절에 애국적인 것이고
나라적인 것이지 지금같이 종교행위만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는 레위기나 신명기를 통해 구약식의 율법을
말씀하셨다면 ‘신약’은 현대적으로 율법을 설명해 주셨다.
부부법, 가정법, 직장법, 사회법, 나라법 등.
신실한 구제단체냐
지금의 기독교 교회가 아닌 성경시대의 교회는
로마식민지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쳤던
구제단체로써 이런 단체들이 여러 지역에 많았었는데
(신의 섬김도 같이 있었다) 그 관리자들이 얼마나
신실했는지 신실하지 않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보면 볼 수록 욕심도 많이 생긴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구제단체들이 있다.
자국 안에서도 있다.
기아대책본부, 유니세프, 희망이음 등
(우리 집이 현재 후원하는 곳이다)
TV광고에서나 PC팝업창에서도 후원해달라고
하는 곳이 참 많다. 그 일로 인해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후원으로 인해 돈이 많아져도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 치료비가 모자라는 사람,
후원금을 받는다는 광고들이 많이 있다.
정말 제대로 구제하고 있는지, 검은 손들이 있는지
신께서만이 아실 일이다. 우리는 그냥 스폰만 할
뿐이다.
일곱교회의 말씀에서 '칭찬'이라는 것은 복을 받는
부분이고 '꾸중'이라는 것은 징계를 받는 것일 뿐이다.
계시록이 사도요한 때에 썼다고 해서 사도요한
이후부터 적용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성경은 언제 기록이 되었다 해도 창세기나 아예
그 이전부터 다 창조주신의 계획에 전부 있었던
것이다.
'글'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성경을 썼을 뿐이고,
'사건'이 펼쳐진 다음에 썼을 뿐이다.
'눈'과 '우박'들이나 ‘전쟁무기’들이 창조 때 아예
창조주의 창고에 들어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노아
홍수 사건 이후부터 사용되어졌다.
(욥기 38:22~23)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아멘.
앞으로 지구의 종말이 오던지 했다고 쳤을 때,
그때까지 사용되는 언어나 환경이나 문명이나 등은
이제부터나 그때부터 창조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발명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아예 창세기 전부터 창조주의 창고 안에 다 창조
되었던 것들이 인간들 삶의 때에 맞게 사용되어질
뿐으로 인간은 그것을 '문명' '발명'이라고 한다.
문명을 발달시키고 발명이라는 것을 하게 하실 때도
어떤 인간에게 시키실 것인지도 신께서 정하신다.
인간편에서는 내가 똑똑해서 발명한 것 같아도
영의세계에서는 그냥 선택되어진 것일 뿐이므로
굳이 자랑하고 떠들지 않는 것이 좋다. 겸손.
이런 신비적인 것을 믿는다고 칭찬 받고 안 믿는다고
꾸중 듣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창조주께서는 신경도 안 쓰신다.
4장 - 재판소
'영의세계의 재판소 모습'이 펼쳐진다.
육의세계의 재판소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지금의 부장판사의 모습이다.
이 말씀으로는 어떤 모습인지 도무지 모른다.
보석같이 번쩍번쩍 하는 것 같다.
그 보좌 주위에 24보좌들이 있고, 24장로가 있다.
현재의 모습으로 보면 부장 판사 주위에 판사들이
있는 것이다. 교회 장로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계 1: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아멘.
(계 1:1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아멘.
(에스겔 1장의 모습)
(단 7: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아멘.
(겔 1: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아멘.
(겔 1:24)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아멘.
보좌 앞에 눈들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다.
지금의 말로 하면 수많은 모니터들이 있는 것인지.
눈이 많이 달린 괴물이 아니다.
초과학적인 모습이다.
(겔 1:18)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아멘.
창조주의 일곱 영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다.
지금도 cctv를 통해서 살피고 있지만 영의세계의
완벽함에 비하면 먼지 한개 정도다.
네 생물의 모습은 에스겔 1장에 말씀하시는
창조주 신의 영광의 모습하고 비슷하다.
(계시록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아멘.
(에스겔 1: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아멘.
'에스겔'에 나오시는 창조주 신의 영광의 모습과
'다니엘'에 나오는 천사의 모습과 '계시록'에 나오는
부장판사의 모습들이 서로 비슷하다.
사람이 서로 비슷하듯이 영의세계의 존재들도
서로 비슷비슷하다.
24장로들의 모습을 육의모습으로 비유한다면
부장판사가 등장하기 전 재판장의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부장판사가 들어 올 때 전부 기립해 맞는다.
성경 속 '장로'
'장로'라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수사권이 있고,
재판권이 있고, 그 나라를 움직이는 주요 관직이었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기 위해 '기업무름'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했을 때 장로들을 모아놓고 절차를
밟는다.
그들은 그 것을 합법화 할 수 있는 증인들이었다.
자기 아들이 술을 너무 먹는 폐륜아라고 장로들에게
고발하면 그들은 그 아들을 죽일 수 있었다.
성서시대의 이스라엘 장로들은 재판권이 있다.
교회의 장로들이 아니다. 나라적인 것이다.
(신명기 19:12)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아멘.
(신명기 21: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아멘.
(신명기 21:20~21)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서업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아멘.
5장 - 복 받을 기도들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
들이라" 아멘.
성도들이 살면서 게속적으로 복의 값고 징계값이
계산되어 올라오고 있다.
부장판사가 오른손에 글씨가 안팎으로 써 있고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판결문이 벌써 다 준비된 상태다.
인간세계처럼 이렇고 저렇고 물어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죄 값과 상 값이 벌써 다 계산된
상태다.
이것은 인간들 삶 실시간으로 계산된다.
이 재판의 모습이 영의 세계 법으로 써서 무섭게
보이고 해서 그렇지 이 땅의 재판장의 모습인 것이다.
인간세계 재판장도 무섭다. 떠들면 법정모욕죄나
법정 소란 죄로 걸린다. 재판에 불복하려면 상소는
할 수 있지만 재판장 앞에서 덤비면 안 된다.
더 곤란해진다.
여기는 옳은 성도들의 기도에 의한 값도 있다.
(계시록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아멘.
성도는 교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대상이다.
영의세계에서 재판장 앞에 판결을 받기 위한 인간존재들을
‘성도’라고 말한다.
‘기도’라는 것은 인간들이 뜻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해당된다.
말, 느낌, 생각, 눈길, 마음, 사심, 험담, 이간질, 떠듬,
분냄, 화, 미움, 용서 못함, ~척, 손짓, 발짓, 뜻, 동기,
과정, 목적, 행동 등 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
한 것이다.
호흡 있는 자의 모든 것. 모든 것이 계산된다.
이 '성도의 기도들'은 복을 받을만한 행위 값들을 말한다.
'선의 법 세계'로 계산된 값들이다.
이번 재판은 끝났다. 복은 인간 개인의 복 대로이기 때문에
구체적이진 않다. 본인이 살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대체적으로 잘 되는 것이다.
(계시록 5: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아멘.
"마땅하십니다!" 하면서 재판이 끝났다.
6장 -징계의 판결문
이제는 징계의 재판이 펼쳐진다.
다섯째 인까지 떼시면서 징계의 사건이 펼쳐진다.
흰말과 붉은 말과 검은 말과, 청황색 말이 등장한다.
이것은 진짜 말이 아니라 재판장의 판결 말씀의 형상이다.
(시편 147:18)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아멘.
심판의 말씀이 내려지면 이 명령의 형상이 땅으로
달리는데 이 때 당시 빨리 달리는 짐승의 대표가
'말'이다.
(욥기 39:34) "땅을 삼킬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아멘.
그래서 '흰말' '검은말' '백마탄 예수' 하면서 말이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 표현하면 '제트기' '로켓'
이라고 기록할 수 있겠다.
이들은 세상에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이고 한다.
죽인다는 것은 진짜 칼로도 죽일 수 있지만 말로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물가가 오르는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흉년으로 인해 많이 죽는다.
높은 자들이나 일반인들이 징계를 당한다.
어떻게들 징계를 받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7장 -14만4천
아직도 징계의 장면이다.
환난이 잠시 멈춘다.
이마에 인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 인치는 장면은 계시록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있었다.
(출애굽기 13:16)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찌니라" 아멘.
(에스겔 9: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아멘.
(에스겔 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아멘.
12지파가 대표이름으로 등장을 하면서 1만2천명씩
인침을 받게 된다. 다 합해서 14만4천명이라고 한다.
영의세계는 퍼펙트한 곳인데 14만4천명을 셀 줄을 몰라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숫자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14만4천이라는 숫자를
안다고 해서 내가 그 숫자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해서 그 숫자에 못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창조주 신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모른다.
스크루지나 욥 같은 삶
이것은 세계적으로 골라진 숫자로 엄청나게 많은 숫자인
것이다. 게다가 인침을 받은 자들은 하나도 혼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죽지 않게 혼난 자들로 얼마나들 혼난 것인지는
본인들이 알 수 있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로 용서를 받은
크기만큼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 7:14)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아멘.
(계시록 7: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아멘.
그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 다시는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않고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정도의
복을 받을 정도면 '개과천선' 정도해야 한다.
'욥'이 큰 환난을 지나고 개과천선 후 선한 사람이 되고
복을 두 배로 받고 장수도 한다. 욥 정도의 삶이다.
욥은 실질적으로 육체가 죽을만큼 혼난 상태이지만,
동화속 스크루지 할아버지는 자기의 '죄의법세계'를
체험하고 나서 개과천선하게 된다.
스크루지의 삶이 욥 보다 훨씬 나은 삶이다.
8장 - 징계 받을 기도들
여전히 징계의 장면이다. 하지만 점점 더 강도가 세진다.
또 다시 성도들의 기도의 향이 제단으로 올려진다.
이번에는 징계 기도들이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난다.
(계시록 8:3~5)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아멘.
이때부터 일곱 천사에 의해 일곱 나팔이 불려지는데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린다.
수목이나 푸른 풀은 좋은 것 같은데 다 타버린다.
푸른 나무가 불에 태워지기도 하고 푸른 수목은
태워지지 않기도 하고, 이마에 표를 맞은 자들은
피해를 면하기도 해가면서 무더기로 피해를
입기도 하고 무더기로 피해를 입지 않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본인들이 알 부분이다.
2020년 전염병 코로나19로 온세계 백성들이
고통 중에 있다.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 죽고, 누군 망하고, 누군 힘들고, 누군 덜
힘들고, 누군 괜찮고, 누군 사업이 더 잘되고
아주 다양하다.
수목이나 푸른 풀을 태워버려라
인생은 불에 그슬린 나무들이다.
창조주께서 여호수아를 빚대어 말씀하신다.
(스가랴 3:2)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아멘.
수목이나 푸른 풀을 태워라, 태우지마라
하신다.
사람의 '이마'가 중요한 부분인가 보다.
이마에 표를 하는데 창주조(선의법)도
하시고 짐승(죄의법)도 한다.
(대하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아멘.
(대하 26: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아멘.
(겔 9: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아멘.
(겔 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아멘.
(계 7: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아멘.
(계 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아멘.
(계 13:16) "그(짐승이)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아멘.
(계 14: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아멘.
(계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아멘.
해 달 별 삼분의 일씩 혼난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도 삼분의 일이 깨져버린다.
그것이 자세히 무엇인지는 모를지라도 엄청나게
나쁜 재앙이라는 것은 알겠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물이 쓰게 되고 많은 사람이 죽는다.
(예레미야 9: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창조주 신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아멘.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는다.
해가 하나인데 삼분의 일 일수가 없다.
영의세계법으로 계산된 인간들의 높고
낮은 지위들을 말한다.
이렇게까지 혼났는데 아직도 화가 남아 있다고 한다.
9장 -무저갱(징계도구창고)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이때는 무저갱(영의세계
징계도구들의 창고)의 문이 열리게 된다.
아직도 징계의 시간이다. 하지만 강도가 점점 쎄진다.
이제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혼내신다.
무저갱의 대장은 ‘아볼루온’으로 창조주신의 명령에
의해 도구를 내보낸다.
육의세계에서는 그냥 도구들이 들어있는 창고와 같다.
영의세계에서는 이런 창고나 도구들이 창조주의 명령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고 내어주고 한다. 형상이라 그렇다.
전갈의 권세를 받은 ‘황충이’가 나온다.
이런 징계의 도구들은 명령자가 있었기 때문에 실행되는
것이다. 심판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영의세계는 징계도구들이 창조주 신의 명령의
크기대로 스스로 움직인다.
우리로 말하면 체벌자가 막대기로 팔을 직접 휘두르지 않아도
막대기가 스스로 체벌자의 생각만큼 체벌의 크기만큼 움직여서
때린다는 것과 같다. 몽둥이가 직접 움직인다.
푸른 풀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라
전에는 수목과 푸른 풀이 다 타버리는 징계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이마에 창조주 신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만 해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죽이지는 말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신다.
인간세계도 재판에서 몇 개월, 몇 년 형의 선고를 받을 수 있다.
사형은 면했다.
고생만 할 바엔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데 죽지는 말라신다.
욥도 사형은 면해지고 몸이 죽을 만큼 괴로움을 당하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사형이 면해진 자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고, 죽을려고 해도 살림을 당한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놓임을 받는데,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천사들이다. 어떤 큰 징계에 사용되고 대기중에 있다.
마병대 수가 ‘이만만’이란다.
사도요한이 셀 수가 없었을 것이다.
수를 셀 수 있는 단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창조주께서 숫자를 몰라서 안쓰신 것이 아니다.
그런 숫자는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많다는 것만 알아라.
전쟁의 마병대에 의해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한다.
죽는 것이 좋은 것인지 산 것이 좋은 것인지 몰라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죽을 것 같은데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회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환란풍파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진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고, 자기의 잘못들을 모르는 것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10장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주는 두루마리를 사도요한이 먹어버린다.
사도요한에게 계속적으로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할 수 있게
하신다.
11장 -성전 측량
창조주 신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 하시는데, 성전 바깥 마당은 내버려 두라 하신다.
이방인에 의하여 42달 동안 짓밟힘을 당한다고.
성전은 지금의 교회가 아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부였다.
여기에서 정치도 이뤄졌고 전쟁도 대비했으며,
재판도 이뤄졌고, 노래하는 자들의 찬양도 있었고,
제사장의 제사도 있었다.
여기에서 노래하는 자들이란 교회의 성가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국립합창단 정도다.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시는데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한다.
두 증인은 이 땅의 창조주 신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한다.
감람나무는 ‘복’과 ‘평화’를 상징한다.
두 촛대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모를지라도
촛대는 ‘빛’을 발하는데 쓰임을 받는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생산하는 중요한 존재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누구든지 그(감람나무와 촛대 같은 삶을 산 자)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감람나무와 촛대 같은 삶의 값과 징계의 값들이
서로 상계시켜지는 장면이다.
두 증인이 죽었다 살아나면서 하늘로 올라간다.
그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성 삼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나 되었는데 살아남은 자
(감람나무와 촛대 같은 삶을 산 자들)들이 영광을
창조주 신께 돌린다.
"하늘이 도와서 살았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구제와 선행)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아멘.
12장-여자 vs 용
여자(복의 값)와 용(징계의 값)이 나온다.
복과 징계의 수준이 두 증인’ 때보다 더 커진 상태다.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된다.
복의 값이 크게 형성되려고 한다.
한쪽에서는 복의 값이 형성되고 있고,
한쪽에서는 징계 값이 형성되고 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이며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까지 쓴 큰 용이 형성됐다.
더 상황이 커지면 ‘미가엘 천사장’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과 싸우는 장면까지 연출 된다.
복의 값과 징계의 값
용이 별 삼분의 일을 땅바닥에 꼬나박히게 한다.
용의 값이 커서 선의 법세계를 크게 계산하고도 남았다.
그리고도 힘이 남아 여자가 해산하면 그 아이까지
삼키려고 한다. 거대한 복과 징계의 계산 장면이다.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영의세계를 볼 땐 어마무시한
거대한 상황인 것인데, 이런 영의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비유하자면,
내가 정자 중 한 세포가 되어 자궁 속으로 들어가 크고
어둡고 기나긴 터널 속으로 계속 죽어라고 헤엄치고
(난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죽는다는 커다란
두려움을 알고 가는 것이다) 가서 난자를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면 좋겠지만(어짜피 같은 놈이지만),
나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다른 정자가 들어가서 난자 문이
닫혀버리고 나는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무서움을 경험한다면
이런 것이 영의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일 것이다.
자궁이야 인간적으로 볼 때는 주먹만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정자세포가 되어서 자궁을 만나는 것은
아주 거대한 사건이 된다.
상층으로 갔다 하층으로 갔다
여자가 아들을 낳아 아들은 하늘로 올림을 받는다.
결국엔 선의 값이 이겨 아들의 결정체로 형성됐다.
그리고도 계속적으로 계산되는 장면이 펼쳐진다.
왜냐하면 계속적으로 이 땅에서는 축복의 값과
징계의 값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 축복의 값이 창조주 신의 도움을 받아
피할 곳에 가 있다.
이제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과 싸운다.
이것도 복과 징계의 값이 계산되는 장면인데 단위가
나라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용의 팀이 지고 하늘에 있을 곳이 없어 땅으로 내쫓긴다.
영의세계에서의 하층을 말한다.
10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아멘.
복의 값이 컸다.
11절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아니하였도다” 아멘.
이들은 선의 값이 큰 자들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독교 전도라든지, 설교라든지
순교라든지로 해석하면 안 된다.
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창조주신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아멘.
여자 형상까지 계산되고 남은 복거리들과
싸우려고 징계거리들이 준비하고 있다.
용(죄의법세계)이 여자(선의법세계)와 상계되고 있는
중이다. '창조주 신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라는 말을
종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선의법 세계'와 싸우려고
'죄의법세계'가 서 있는 것이다.
나의 죄 '참소마귀'
여기에서 ‘참소하던 자’라는 것은 어떤 사탄이나 마귀나
귀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 불순종의 죄로 육의세계를 살게 된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죄성 성격마귀를 다스려야 했다.
이 때 나의 죄를 실시간으로 계속 찾아내 ‘죄 값’이
쌓이도록 했던 마귀가 ‘참소하던 자’로서,
나의 죄가 나를 때리는 시스템일 뿐이다.
또한 내가 복 받을 짓을 하면 그 것도 실시간
‘선의 값’으로 쌓여 서로 상계되는 시간이 있었고
그 상계된 나머지로 복을 받던 징계를 받던 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런 복의 값과 징계의 값으로 계산되는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하다. 먼지하나도 계산될
만큼.
참소마귀
이 죄성은 인간으로 살아 있을 때만 해당되고,
완전 죽어서 창조주께로 갔을 때는 참소가
필요없게 된다.
인간적인 죽음으로 속량이 되었기 때문에
영의세계로까지 가서 참소당할 일이 없다.
그래서 창조주 신 앞에서 밤낮으로 참소하던
자가 쫓겨난다. 필요없게 됐다는 것이지 참조
마귀가 잘못했기 때문에 쫓아낸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가 잘못했을 때 회초리로 때렸다가
필요없게 되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모가 회초리를 사용한 것이지 회초리가
잘 못한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이들은 영의세계의 존재들이기 때문에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 어딘가로 가서 모인다.
무저갱에 징계 도구들이 있었던 것처럼.
복과 징계 계산의 긴 시간
성경은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
기독교는 성경을 가져가서 만든 종교일 뿐이고
성경은 창조주 신의 말씀일 뿐이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75
성경은 종교의 길잡이가 아니다.
창조주 신이나 예수가 종교의 길잡이 정도
되는 줄 알면 큰 코 다친다.
창조주 신은 ‘선의 법 세계’로서 정직하고 성실하고
바르고 착하게 공의롭게 구제와 선행을 베풀며 살았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로서 칭찬을 받는 자들의
삶을 말한다.
계속적으로 여자(복)과 용(징계)의 계산 상황들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몇 달'이 걸리는 것은 복과 징계가 상계되는
시간으로 금방 금방 처리되지 않는다.
혼나는 시간이 다 지나가야 복을 받든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복 받았다가 내일은 환란을 당하고,
내일 환란을 당했다가 모레 갑자기 복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다.
14절 "그 여자(복)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아멘.
징계를 받는데도 수년이 걸릴 수 있다.
13장 - 바다 신성모독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고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다.
'용' 외에 '짐승'이 등장한다.
죄의 법 세계가 더 커졌다.
따로 계산된 큰 덩어리이다.
이 짐승덩어리가 ‘신성모독’ 한다고 그랬다고
짐승덩어리 자체가 직접적으로 창조주 신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과 상관없이 그냥 창조주 신과 대항하는
사탄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인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중 거의가 신성모독을
하는 것이며, 창조주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런 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죄 값 덩치이다.
인간들이 쓸데없이 나불대는 모든 말들이 모여
나중에는 이런 짐승이라는 덩어리로 형성된다.
그리고 혼나게 되는 사건이 펼쳐지는데 본인은
잘 모른다. 왜 혼나는지.
(잠언 18: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아멘.
(잠언 18: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아멘.
4절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아멘.
이 권세라는 것은 창조주신께서 내리신 것이다.
사탄이 내린 줄 알면 큰일난다. 신성모독죄.
용(죄의법세계 대표)이 짐승(바다 신성모독)에게
권세를 줬다고 해서 사탄용이 준 것처럼 알면
안 된다.
모든 권세는 창조주신께서 주시는 것으로
창조주신이 계산하시는 과정일 뿐이다.
42개월의 신성모독죄 권한
용의세계가 커지고 짐승의 세계가 커지고 하는 것은
인간들 죄의 값이 더 커지는 것이고, 신성모독죄가
더 커지는 것이다. 권세가 더 커진다.
이 짐승은 마흔두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는다.
그동안 선의 법 세계와 죄의법세계(신성모독죄)
와 상계시키는 시간이 있다.
10절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아멘.
사로잡고 사로잡히고,
칼로 죽이고 저도 칼로 죽고.
16절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아멘.
17절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아멘.
18절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666)이니라" 아멘.
짐슴표 받은 자만 매매당함
"짐승(신성모독죄)에게 표를 받는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라는 것은 반대로 짐승에게
표를 받는자만 매매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의 값세계와 죄의 값세계 상계시간에
상계되는 대상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영의세계는 선의값과 죄의값의
상계모습을 알려준다. 매매라고 해서 이 땅에서
처럼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지혜로워지면서 문명이 계속적으로 발달하게
되고 컴퓨터라는 것이 등장했고 인공지능까지 가고
있다.
그러면서 물건 계산하는 방식도 계속 바뀌면서
편리해졌다.
1. 주판- 중국에서 기원전 2600년 경에 만들어진 계산도구
2. 파스칼 계산기- 톱니바퀴를 이용하여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 기계식 계산기.
3. 라이프니츠 계산기- 파스칼의 계산기를 개량하여
사칙연산을 하는 계산기
4. 해석 기관- 찰스 배비지가 만든 입력·출력·기억
그리고 계산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계산기로
컴퓨터의 5대 장치로 구성(미완성)
5. 마크I- 에이켄이 IBM과 공동으로 개발한 최초의
전기 기계식 계산기
6. 에니악(ENIAC)- 1만8천여개의 진공관을 사용한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
7. 에드삭(EDSAC)- 윌키스가 만듦
8. 에드박(EDVAC)- 에니악의 프로그램 기억방식을 채택.
9. 유니박I- 세계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영의세계 계산 존재 666
지금은 마트를 가면 상품들에 대해 일일이 얼마짜리인지
가격을 적고 두들기고 해가면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바코드'라는 곳에 기계를 대면 저절로 그것이 무슨 상품인지
얼마짜리인지가 자동으로 찍히고 계산된다.
계시록에 나오는 영의세계의 존재들도 상품들처럼
계산되는데 좋은 상품인지 나쁜상품인지 자동으로
갈라지고 서로 계산된다.
육의세계는 '인간이 주체'로써 직접 찍고 계산하지만
영의세계는 '상품들이 주체'로써 자동으로 계산한다.
그래서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인간은 계속 수동으로 창조주신의 세계를 조금씩 쫓아가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문명의 발달이라고 한다.
'666바코드'를 알게 된 현 시점에 와서
육의세계의 상품들이 '666바코드'로 정의되는 것과
영의세계 존재들도 '666바코드로'로 정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곳은 창조주 신 본체가 계시는 영의세계가 아니다.
좋은 상품과 나쁜 상품을 상계시키는 영의세계이다.
'이마의 인침'
하늘에서 '인'을 맞는다는 것은 혼날 것이냐
안 혼날 것이냐를 판가름 하는 시간인 것이지
이 땅에서 물건을 살 수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가
아니다. 매매를 할 수 가 없어서 굶어 죽는다는
것이 아니다.
영의세계의 계산법이다.
'인'을 창조주 신께도 맞고, 신성모독의죄의 형상인
짐승에게도 맞는다. 내가 맞고 싶다고 맞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맞지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맞는 것도
아니다.
육의 세계에 살고 있는 나는 모른다.
나의 삶의 계산으로 인해 자동으로 맞혀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육의세계에서 나의 삶에
어떤 파장이 일어난다.
복을 받을 것이냐,
고통스러울 것이냐,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종교인의 '신성모독죄'
신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은 절대로 신성모독죄에
안 걸리고 있다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들의 죄가 더 크다.
‘신성모독’은 우리도 전혀 모르는 사이에
저지르고 살고들 있다.
창조주 신 혼자이신데도 불구하고 수 많은
이름들의 신들을 섬기고 있다.
물론 인간들이 아무리 많은 신을 만들어서
'나의 신' '우리 신'이라고 '나쁜 신' '좋은 신'
'귀신' '사탄' '마귀' '악마' 라고 외치고
찬양을 하든 욕을 하든 영의세계 값으로
계산하면 전부 '창조주 신'께 하는 것이다.
자기 신이 참신이라고 싸우고 겨루기도 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전쟁도 치루고 사는 것들
자체가 신성모독하는 행위다.
게다가 창조주 신을 상대할 수 있는 루시퍼사탄까지
만들어놓고 예수와 팔씨름을 시키는 행위는 대단한
신성 모독죄이다.
창조주의 막대기를 창조주와 동등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인간이 사탄·마귀·귀신
인간이 알고 있는 사탄과 창조주께서 정하신
사탄의 존재성은 대단히 다르다.
인간은 사탄을 창조주와 맞먹는 존재로 정해놓고
섬기고 무서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창조주께서는 막대기로 사용하실뿐이기 때문이다.
불순종의 죄를 지은 인간이 ‘사탄’이고, 인간 안에 들어있는
죄성 성품들이 ‘사탄’이고, 인간들이 잘못할 때마다 참소하고
다니는 참소마귀가 ‘사탄’이고, 잘못한 인간들을 혼내실 때
쓰시는 징계 담당 천사가 ‘사탄’이고, 징계담당 천사가
사용하는 ‘황충이’나 ‘마병대’ 등 도구들도 ‘사탄’이다.
창조주 신께서 사용하시는 단어일 뿐이다.
이 징계용 도구들이 들어있는 곳이 ‘무저갱’이다.
이 창조주신과 맞먹는 사탄을 만들어놓고,
인간들이 영의세계를 좀 느끼는 것 같으면 마귀 들렸다고
죽이고, 마녀라고 자식까지 죽이는 사태를 만들고 있다.
우리 신이 진짜인데 너희는 가짜 신을 믿는다고 하는 것들,
우리만 천국가고 다른 것들은 다 지옥 간다고 하는 것들도
전부 신성모독 죄이다.
서로 종교전쟁을 하면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죽는
모든 것들도 다 신성 모독 죄이다.
창조주 신에 의해 쓰나미가 일어나고, 태풍이 몰아쳐
오고, 산이 무너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전쟁이 터지고,
땅이 꺼지고 사고가 일어나고 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사탄이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말들이 다 신성모독죄이다.
창조주 신이 없다고 하는 것도 신성모독죄이다.
하지만 신을 느끼게 하시는 것도 창조주 신의
주권이시고, 신을 느끼지 못하게 하시는 것도
창조주 신의 주권이시다.
잘 느꼈다고 상 주시고, 느끼지 못한다고
혼내시는 나쁜 신이 아니시다.
신이 여럿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신성모독죄이며,
창조주 신은 오직 한 분이라고 알고 있는 종교조차도
너희 신을 믿으면 지옥에 가고 우리 신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떠드는 것도 신성모독 죄이다.
그 신성모독과 신을 비방한 것으로 인해 사로잡혀
가기도 하고 칼에 죽기도 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그것이 무슨 죄인지도 모른다.
사람 형상=신의 형상
그래서 종교 자랑 질이 심할수록 더 혼나고 죽는다.
신을 알려주시면 조용히 인간들의 모르고 저지르는
죄를 용서해 달라고, 다니엘이나 느헤미야처럼 조상의
죄와 남의 죄와 나의 죄를 빌면서 조신하게 살아가야지,
자기가 종교 대장을 하고 자기 종교를 크게 확장시키고
종교로 나라를 좌지우지 한다든지 할 때는 함정에 빠지게
되고 올무에 걸리게 되고 더 혼난다.
인간들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신에게 아부떨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에게만
잘하려고 하고, 신만 두려워하고, 사람은 우습게
아는 자들도 혼난다.
사람의 형상이 신의 형상이다.
부부의 화목, 가정의 화목, 직장에서의 화목,
이웃과의 화목, 맡은 위치에서의 성실함이나,
나라에 충성 등 사람답게 사는 것을 뒤로
제껴두고, 신비만을 좇아갈 때는 종교의
올무에 걸리고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똥 묻은 개가 혼난다
형제를 라가라고 하는 자도 지옥 불에 들어간다.
'창조주 신을 비방'하는 죄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아멘.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일까?
형제가 잘못했으면 당연히 혼내야지.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크게 혼낼 자격이 없다.
감방에 모인 '죄수'가 '죄수'를 혼내는 것과 같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똥 묻은 개가 혼난다.
나도 그와 똑 같은 잘못을 늘 저지르고 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형제의
눈에 티만 나무라고 살면 그것은 영의세계에서 창조주
신께 잘못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인간은 인간을 정죄할 권한이 없다. 용서할 의무만 있다.
이 땅에서 용서해야 하늘에서도 용서를 해주신다.
이 땅에서 용서를 안 해주면 하늘에서도 용서가 안 된다.
'1만달란트 탕감받은 자'가 '100데나리온 채무자'를
불쌍히 여기고 탕감해주지 못할 때 혼난다.
(마태복음 18:1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아멘.
물론 용서해줘야 하는 자와 용서 받아야 하는 자가
똑 같이 맞물려 있다. 둘 다 똑 같이 혼나든 용서
안 해 주는 자가 더 혼나든 한다.
불평불만 '비방죄'
형제에게 욕하는 것은 그를 만드신 창조주께 욕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조물주가 참 더럽게 못 만들었다. 조물주가 참 인연을
더럽게 잘 엮으질 못했다. 조물주가 머 저런 남자를
만나게 했냐, 저런 여자를 만나게 했냐, 머 저런 자식을
낳게 했냐, 조물주가 더러운 동네로 나를 보냈네 등으로
계산된다.
이 땅에서 그냥저냥 살다가 죽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실에서다. ‘지옥 값’으로 계산된 형제에게 '욕한 죄'와
그동안 복 받을 짓과 계산했을 때 크게 모자라게 되면 내가
징계를 크게 받는다.
인간들 보면 심심해서 남 욕하는 것도 많고,
나같으면 안그랬을텐데 너는 왜그랬냐고 욕하고,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남 욕하는 것도 많고,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맘에 안 들면 무조건 욕부터
하고 보는 인간들 많다.
입을 벌려 떠들어 봤자 백해무익이며 환란이 닥쳐온다고
잠언에 말씀하셔도 도대체 믿지를 않는다.
(잠언 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아멘.
(잠언 13: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아멘.
(잠언 14: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아멘.
쟤가 맘에 안 들어, 내가 맘에 안 들어, 회사가 맘에 안 들어,
집이 맘에 안 들어, 부모가 맘에 안 들어, 부부가 맘에 안 들어,
자녀가 맘에 안 들어, 선생이 맘에 안 들어, 이 동네가 맘에
안 들어, 이 나라가 맘에 안 들어, 저 정치인이 맘에 안 들어,
저 연예인이 맘에 안 들어, 이 음식이 맘에 안 들어,
내 몸매가 맘에 안 들어, 내 얼굴이 맘에 안 들어,
사회가 맘에 안 들어 등 맘에 안 들어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창조주 신을 비방하는 것들이다.
내가 이렇게 살 인물이냐, 내가 이런 직장에 있을 인물이냐,
내가 이렇게 가난해야 하냐, 내가 이렇게 뚱뚱해야 하냐,
이 얼굴이 이게 뭐냐, 너는 참 못났다, 이새끼 저새끼,
이놈 저놈 등
말을 많이 해봤자 창조주 신을 비방하는 죄에
걸릴 뿐이다. 그러니 패망이 오고 궁핍이 온다.
줄로 재어준 합당한 구역
창조주 신께서 줄로 재어준 구역들로 모여든 것이고
만난 것이고 내가 그 곳에 들어간 것이고, 내 처지가
이런 것이다.
(계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아멘.
(계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창조주 신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아멘.
누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오직 창조주 신의 심판에
의한 것이므로 "무슨 이런 경우가 있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이런 개떡 같은 인생이 있냐?"
해가면서 떠든 모든 것들이 다 창조주 신을
비방하는 것이다.
불평불만으로 떠드는 것은 창조주께서 잘못한
것이라고 떠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혼나고 나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계시록에 말씀하시는
것도 이들은 무엇 때문에 혼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종교를 가진 자나 종교를 갖지 않은 자나
전부 신을 비방하면서 모독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터져서 가족이 죽었든 누가 죽었든,
포로로 잡혀갔든 전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면 함부로 욕을 하고 저주까지 할 수 있는데,
사람한테 했더라도 전부 창조주 신께 한 것으로 계산된다.
아픈 것도, 물가가 오르고 현찰은 없고 하는 경제적인
것도, 삶이 즐거운 것도 힘든 것도 다 창조주신의 뜻에
의한 것인데 욕을 하고 타박을 한들 창조주 신을
비방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신을 비방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렇게 영의세계법으로 크게 혼나든 작게 혼나든
혼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 인간은 죽지는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았을 수도 있다.
"어휴 다행이야" "죽다 살았어" "하늘이 도우셨어"
그런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고 사는지 찾지 못하면
게속적으로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다 죽기도 한다.
"창조주신께서 나(너)를 사랑하셔서 이만큼에서
끝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살려주신 것이 감사하다"
라고 아무리 찬양한들 소용없다. 그런 것을 기쁘게
받으시는 창조주신이 아니시다.
어짜피 교회에서 감사해야 한다고 교육되어져서
감사하다고 떠드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밥상을 앞에 놓고 남 보란듯이 떠드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감사기도 해야 하니까 하는
기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밥상을 앞에 높고 국이 식을 때까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훑으는 기도로 영광을 돌린들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음속 깊은 진실된 감사여야 한다.
"아! 맛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아! 잘 먹었다"
이런 감탄사들이 감사기도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환란이 왔는지 알아야 한다.
밖에서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이 더럽다(죄값).
회칠한 무덤의 죄가 크다. 속 마음의 죄.
눈길. 손짓, 발짓, 동기, 목적, 뜻, 과정, 척 등
남이 눈치 채지 못하는 속의 것을 살펴라.
(계시록 16:6) "짐승이 입을 벌려 창조주를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아멘.
(계시록 16:11)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창조주를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아멘.
14장 - 14만4천명 찬양
14만4천명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다.
5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아멘.
무죄라는 것이 아니다. 죄 값을 치룬 자들이다.
감옥을 갔다 나오면 죄가 없는 것과 같다.
7장에 나온 자들로 12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숫자가
14만4천인데 그들은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이다.
레위인은 하나님을 그들의 기업으로 삼아야 했기
때문에 기업이나 영토를 분배 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 14만4천의 숫자에 들어가 있다.
14만4천에 들어가는 자들은 종교자들이나
비종교자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일반인들이나,
남녀노소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다 똑같이
해당된다. 누구만이 없다.
내가 14만4천에 들어갔는지는 본인도 모르고
살 뿐이다. 인생들은 그냥 받고 당하고 살
뿐이다.
‘짐승에게 표를 받은 자’들은 징계를 받는 자들로
밤낮 쉼을 얻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괴롭힘을
당한다.
짐승에게 표를 받아 징계를 당하는 자들도
종교자들이나 비종교자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일반인들이나, 남녀노소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다 똑같이 해당된다. 누구만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혹시 창조주신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를
입으면 반성하고 뉘우치고 돌이키고 개과천선
할 수는 있다. 철이 들수도 있다.
호상과 참상
죽음에는 고통스럽게 죽는 것과 '호상'이 있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선의법세계)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아멘.
14절에 예리한 낫을 가진 이가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둔다. 고통스럽지 않게 잘 죽는 자들이다.
죽는 자들은 전세계적으로 초를 다투면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몇명 몇명 하지 않는다.
벼를 거두듯이다.
17절에 예리한 낫을 가진 이가 또 등장을 하는데
이번에는 '포도'를 거둔다.
포도가 좋은 의미로 기록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창조주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져져 짓밟힘을
당할 자들이다.
죽어도 고통스럽게 죽는 자들이다.
종류별로 다양한 모습으로.
20절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천600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아멘.
15장 -일곱 재앙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내리는데 이것으로
창조주 신의 진노가 마쳐진다.
한편은 일곱 재앙에서 벗어난 자들이 있다.
그들은 즐거워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교회의 찬송가가 아니다.
2절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창조주신의
거문고를 가지고" 아멘.
"휴 살았다" "휴 하늘이 도왔다" "휴 다행이다"
"아~ 잘됐다" "아~ 좋다" 등의 탄성들이다.
영의세계에서는 14만4천, 천천 만만, 이편, 저편
해가면서 영들이 몰려있지만, 육의세계에서는
종류별로 크고 작게 복과 징계를 받는 인간들이
다양하게 전 세계적으로 펼쳐져 있다.
영의세계로 가보면 천국이란 곳에도 내가 있고
지옥이라는 곳에도 내가 있다. 너도 있다.
육의세계에서는 다양한 곳에 펼쳐져 살고 있는
사람들도 영의세계는 같은 값끼리 몰려 있다.
그들의 형상은 나의 값으로 나의 모습과 같다.
낫을 한번 휘둘렀는데 '곡식'이 거둬졌다.
이 땅에서는 여러 지역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수많은 곱게 죽는 죽음이 있다.
절차를 밟는 시간
한편에서는 일곱 재앙이 내려지기 직전의 모습이
펼쳐진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창조주신의 진노를 가득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들에게 준다.
계시록 16장 - 일곱 대접
일곱 대접을 땅에 쏟는 재앙이 내려진다.
첫째 천사의 대접은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는 것이다.
둘째 천사의 대접은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는다.
셋째 천사의 대접은 강의 물 근원이 피가 된다.
넷째 천사의 대접은 불로 사람들을 태운다.
다섯째 천사의 대접은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혀를 깨물 정도로 아파한다.
여섯째 천사의 대접은 전쟁이 터진다.
일곱째 천사의 대접은 성들과 만국의 성들,
바벨론 성이 무너진다.
모세시절 에굽나라에 10가지 재앙이 순차적으로
내려졌듯이 계시록의 징계들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순차적으로 계속 내려진다.
창조주 신이 내리시는 피해 상황을 일일이 다
적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라적으로 살펴볼 일이다.
17장 - 음녀 신성모독
음녀가 받을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다.
3절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창조주 신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니” 아멘.
이 음녀는 신성모독의 대명사이다.
13장 바다에서 나오는 신성모독 짐승도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이고 모습이 비슷하다.
‘신성모독’은 바다에도 있고 광야에도 있다.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이 전부 신성모독죄에 걸려있다.
창조주 신은 한 분이신데, 신이 여럿이 있다고 주장하고,
자기 신을 믿어야만 한다고 싸우고 죽이고 하는 모든
행위들이 다 신성모독 죄다.
내가 믿는 신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나의 믿음을 자랑하는 행위도 신성모독 죄이다.
가장 크게 해당되는 자들이 종교인들이다.
그래서 자기 신이 최고라고 열심이 특심으로 섬겨도
창조주 신께 혼나는 것은 다른 자들과 똑 같던지
더 크던지 하다.
18장 -바벨론의 망함
바벨론 성의 무너짐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땅의 왕들, 상인들, 사치의 세력들에게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과 불에 살라지는 심판이 내려진다.
부한 자들이 망하게 된다.
17절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아멘.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데
4절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아멘.
5절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창조주신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아멘.
설교에서 은혜스럽게 많이 사용하는 구절이다.
정말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인줄 알았다.
그냥 신의 존재를 믿기만 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것이 내 죄인 것을 믿기만 하면 창조주 신의
백성이 되어서 재앙의 자리에 참여하지 않는 줄
알았다. 잡혀갔다가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곧
풀려날줄 알았다. 오해였다.
'선의 값'으로 계산된 자들에게 하시는 영의세계
판결이었다. 그들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겠다.
선의값인 내가 골라잡아 막 뛰어나가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복의 값과 징계의 값으로 갈라진다.
다니엘이나 느헤미야나 에스라나 에스더나
예레미야나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신을 섬기고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청렴결백하게 살아서
적국의 나라에서조차 4대 총리가 되고, 술맡은
관원이 되고, 여왕도 되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목숨을 건지기도 하고 살았는데, 이들은
청렴격백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정도다.
(계시록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기도 했지만 나라
전체적으로 창조주 신을 섬기는 나라였는데
그렇게 혹독한 재앙을 내리셨는가.
(예레미야 애가, 유대인 학살)
창조주 신을 섬기는 믿음이 없어서?
예수를 창조주 신으로 믿지를 않아서?
자기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믿지를 않아서?
종교의 잘난척을 잘한 만큼 혼난다.
하늘의 신 외엔 죽인다
그럴지라도 이스라엘이 신을 믿는 믿음과
기독교가 신을 믿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이제야 전달되어서 믿는 믿음이지만
이스라엘은 모델로 신께 직접 선택되어지고
직접 주어진 믿음이다.
한국 같은 믿음은 여기 저기서 내가 예수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님아버지이고
내가 하나님어머니이다 하면 얼씨구나하고
쫓아갈 믿음이지만,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신' 외에
그 누구든지 사람이 신 이라고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죽여버리는 믿음이다.
이런 것도 창조주신께서 아예 주신 것이다.
그런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니엘이 적국 왕을
죽일 수 없었기에 자신이 풀무불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내가 죽을지언정 사람이 '하늘의 신'이 아니다"
그래서 창조주 신의 제물 용도로 쓰임받을
예수가 이스라엘에 태어나서 십자가에
죽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태어나시면 죽지를 못하신다.
예수는 '제물양' 처럼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예수의 영이 직접
나타나서 예수를 믿게 해줘야 했다.
그래서 죽은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사도요한에게도 예수의 대언의 영이 나타나서
알려주었기에 사도요한도 예수를 창조주신으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19장 -예수와 혼인(복)
'불의'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안 믿는 것이냐 선한행실을 하지 않는
것이냐.
복과 징계의 상계가 다 끝나고
복 받을 값들이 결정됐다.
이들은 인간들의 옳은 행실로 축복의 근원인
'예수결정체'와 혼인을 하게 된다.
합해져서 복의 결정체가 된다는 것이지
인간세계의 남자와 여자의 결혼관계가 아니다.
누구는 이런 복을 받고 누구는 저런 복을 받고
아주 다양하게 결정된다.
여기에서도 창조주 신의 본체는 등장하시지 않으신다.
부장판사까지의 등장과 징계천사들의 등장,
예수의 대언의 영이 등장한다.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신께 경배한다고 해도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창조주가 아니시다.
창조주신께 경배하라고 한다.
11절에는 백말을 탄 예수가 나와 검으로 싸운다고 한다.
예수도 창조주 신으로서 재판장에 나와 싸우고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본체가 계시는 곳에 계신다.
여기는 헌법재판소, 대법원, 구치소 같은 곳이고
창조주께서는 '청와대'에 따로 계시는 것이다.
심판의 모습이다. 심판에는 왕이나 장군이나 장사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해당된다.
개나 소나 다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누구만이 없다.
18절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아멘.
20장 - 죄의법형상 처리
1절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아멘.
2절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아멘.
3절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아멘.
어떤 일반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하늘
(영의세계의 하늘과 땅의 모습이다)에서 내려오더니
뜬금없이 ‘옛 뱀’이라고 하는 사탄 마귀를 잡아
무저갱에 던져버리고 가둔다.
사탄과 대 전쟁을 치루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잡아 가둔다.
옛 뱀 사탄 마귀는 인간들의 죄성성품으로 그냥 잡힌다.
옛 뱀(죄성성품)으로 인해 용(죄의 세계의 값)이
형성된 것이므로 뱀이나 용이나 같은 것이다.
이들은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간세상의 죄 값이 처리되고 나면 영의세계에
형상으로 존재했던 ‘죄의법 세계’의 대명사인
용은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부분이 모세의 10가지 재앙 때 애굽나라
장자들의 장례를 치룰 때 영의세계에서는
그들의 신이 처리되는 시간이다.
(출애굽기 12: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창조주신이시라” 아멘.
나쁜 형상이 만들어지지 않게
이들은 불 못에 다 던져지게 된다.
그런다고 거기서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원래 창세기 2장 시절처럼 되는 것이다.
있던 곳으로 다시 들어가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좋은 일을 할까
막무가내로 할까? 고민할 때는 좋은 형상이
생겼다 없어졌다, 나쁜 형상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다가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하냐에 따라
좋은 형상과 나쁜 형상이 결정되게 된다.
형상으로 완성된 것은 없어지지 않지만,
복과 징계로 상계된 상황에선 없어진다.
4절 “또 내가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내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아멘.
복의 값으로 계산된 자들이다.
예수를 증언함이라고 해서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증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도 창조주 신으로서 선의 법 세계의 대명사이다.
이들은 신성모독의 대명사인 짐승에게서 고통 받기
위해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로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 즐겁게 잘 산다.
(계시록 16: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아멘.
짐승에게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것은 신성모독죄에
크게 걸려들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은 악하고 독한 종기
(욥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종교자들이 신성모독죄에 더 걸려 있다.
신을 느끼게 하지 못하게 하셔서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오히려 신성모독죄에 덜 걸려있을 수 있다.
이들은 육의세계에서 누릴 것 누리고, 먹을 것 먹고,
입을 것 입고, 즐길 것 즐기고 사는 안정된 삶을 사는
자들이다.
상위권 삶을, 먹고 살만한 삶을 사탄이 준줄 알면
안 된다. 이런 자들도 살다가 다시 같은 죄를 짓게
되면 사단이 옥에서 놓여지게 된다.
7절 "천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아멘.
이들이 쳔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데 그 천년 이라는
것이 이 땅에서의 천년과 같은지는 모른다.
영의세계에서의 천년이라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아멘.
사람답게 잘 살아라
천년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천년이 차니 사탄이
옥에서 놓여진다. 창조주신 예수와 싸워서 이겨서
나온 것이 아니다.
쓰여질 때가 되어서 또 나오게 된 것이다.
처절하게 죄성까지 회개했거나 완전 돌이키기까지
한 죄성들은 그나마 다시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자잘한 잘못들은 "안그래야지!" 라고
다짐을 해도 언제 다시 또 드러날지 모른다.
잠시인지, 몇일 후인지 몇달 후인지,
몇년 후인지 본인도 잘 모른다.
본인 스스로 계산해보고 따져보기전에는.
"내가 연약한 사람인지라 안 그럴려고 노력했는데
할 수 없이 넘어졌네요" 라고 변명한다.
"아~ 또 그랬네" "안싸울려고 했는데"
"화를 안내려고 했는데" "욕을 안하려고 했는데"
"안 그럴려고 했는데" "또 넘어졌네"
해가면서 반복하고 산다.
어떻게들 사는지, 어떻게들 혼나고 사는지
이런 것은 창조주신의 심판의 모습이기 때문에
인간입장에서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할 수가
없다.
어느 정도의 모습만 말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짜피 그 징계 내가 당하는 것인데 신나서
설명할 일이 아니다.
정말 종교적으로 아무 것도 몰라도
사람답게 살아서 가족에게 칭찬받고, 친구에게
칭찬받고, 친척에게 칭찬받고, 이웃에게 칭찬받고,
학교에서 칭찬받고, 직장에서 칭찬받고, 지역에서
칭찬받고, 나라에서 칭찬받고 살면서
죽을 때 자는 듯이 죽는 것이 인생 최고의
복된 삶이다.
필요없게 된 영의세계 형상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아멘.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아멘.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아멘.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아멘.
이 정도 되면 인간들은 징계를 다양하게 받고
죽은 자들이다. 인간이 죽고나면 인생을 다스리기
위해 생성됐던 영의세계의 형상들은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불 못에 던져지게 된다.
불에 태워버리는지 그냥 버려지는 것인지는
창조주신의 마음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모른다.
몰라도 된다.
불순종 때부터 생긴 죄의법세계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이 무엇을 하든 그 하는 것으로
인해 영의세계에서는 형상이 생긴다.
그런 것들이 영의세계에서 쌓여서 ‘선의 법 세계’와
‘죄의 법 세계’로 크게 형성된다.
이것은 나 하나 개인적인 것도 있고,
부부 적인 것도 있고, 가정적인 것도 있고,
사업장 적인 것도 있고, 지역적인 것도 있고,
사회적인 것도 있고, 나라적인 것도 있고,
세계적인 것도 있다.
단위가 커질수록 선의 법 세계와 죄의 법
세계의 형상도 커진다.
서로 상계되는 시간이 있는데 자잘하게 상계되는
것도 있고 크게 상계되는 것도 있다.
자잘한 계산도 있고, 칼 싸움도 있고, 전쟁도 있다.
그렇게 상계되고 나면 죄의법 형상이든 선의법
형상이든 털리게 된다. 없어지고 다시 생성된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짓고 쫓겨날 때부터
‘죄의 법 세계’가 형성됐다.
인간의 죽음 후 성경법 적용 끝
인간들은 어디서든 죽으면 그 장소에 그 사람의
죽음 값에 대한 형상이 존재한다.
내가 죽었다고 내가 직접 그 곳에 남아있거나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사고로 죽은 자들이 많은 곳에 사고가 계속
나기도 하고, 빠져 죽은 자들이 많은 곳에
계속 빠져 죽기도 한다고 해서 그 형상들이
끌고 가서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 곳이 그만큼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죽으면 영의세계 본부를 의식하게 된다.
죽은 후 몇날 며칠을 날아서 날아서 그 곳에
가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의식이 없어진다.
창조주세계를 의식하게 된다.
동시에 맞물려 일어난다.
완전 죽었을 때의 이야기다.
‘사망’과 ‘음부’라는 것도 형상으로 존재한다.
내가 죽으면 영의세계에서는 나에게 ‘사망’이라는
형상이 온 것이다.
(예레미야 9:21)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아멘.
내가 땅에서 죽는다는 것이 영의세계에서는
나의 영이 ‘스올’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나’ 라는 사람이 죽고 나면 이 땅의 세계와도 끝이다.
영의세계에서는 ‘참소형상’과 끝이고 ‘사망형상’과도
끝이고 ‘음부형상’과도 끝이다.
성경법의 적용도 끝이다.
그래서 그 형상들은 필요 없기 때문에 불 못이라는
곳으로 던져진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말도 안 듣고
해서 회초리가 필요하다가 다 커서 자기 스스로
처리하게 될 때는 회초리가 필요 없어서 버리게 된다.
그런 맥락과 비슷하다.
인간이 죽었을 때는 회초리가 필요 없다.
21장 -예루살렘성
복의 결정체들이 예루살렘 성까지 들어갔다.
그만큼 큰 복의 결정체인 것이다.
하지만 한번 해병 영원한 해병이 아니다.
이렇게 예수를 만나 혼인까지 하고,
성까지 들어간 복은 큰 사건이지만,
보통은 집이 지어졌다 부셔졌다 하고,
오늘은 지옥에 갔다가 내일은 천국에 갔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럭저럭 사는 모습.
예수를 만나 혼인까지 하는 복을 받는다는 것을
예를 들면 '헤리포터'라는 책을 쓰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 억만장자가 되는 복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로또 같은 무섭도록 큰 복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패망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가정이 파탄 나고 주변 사람들과 결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때는 다시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경제를 돌리시는 창조주 신
창조주신은, 영의세계에서는 창조주로서 말씀으로
말씀하시고, 육의세계에서는 경제를 돌리시는 분으로
‘돈’으로 말씀하신다.
건강을 없애거나, 물질을 없애거나, 즐거움을 없애거나,
돈이 더 들어가게 되거나 하는 것 등이 징계의 길로
가는 것이다.
돈을 주시는 방편과, 돈을 없애시는 방편으로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아멘.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두 달란트 받은 자,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스스로 그렇게 남기고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그렇게 하셨고 누구는 이렇게 하셨다.
“창조주 신과 돈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라는
것은 두 주인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한 주인’이라는
것이다. 창조주 신은 경제를 돌리신다.
(계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아멘.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아멘.
두루마기는 성도의 옳은 행실로 이뤄진 세마포 옷이다.
계속해서 옳은 행실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을 수 있다.
계시록의 의미
예수는 창조주 신으로서 기독교의 신이 아니라
온 우주 전 인류적 신이시다.
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를 기독교에서 알고 부른다고 해서
기독교의 신이라고 착각하면 큰일 난다.
선행의 대명사로 쓰인다.
예수, 창조주 신은 '하나님의 법' '선의세계의 법'
요한계시록은 총체적으로 인간세계에서 인생들의
삶의 종류대로 발생된 '선의 법 세계'와 '죄의 법 세계'가
형성되며, 그들이 스스로 전쟁하는 것처럼 표현됐다.
그리고 상계되고 이긴 선의 법 세계는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예수와 혼인하는
상황까지 가며 '복의 결정체'들이 된다.
자잘한 복과 징계들이 아침 저녁으로 계산되기도
하지만 예루살렘성까지 들어가고 불못으로 들어
가기까지 하는 계산은 아주 큰 것이다.
어느 시간대에 이들이 서로 상계되는데 이 시간은
매일 상계되는 것들도 있겠지만(일이 내 생각대로
되고 안 되고 실시간 필요한 것들이 있다),
(시편 101:8) "아침마다 내가 이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아멘.
(욥기 34:19)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아멘.
(시편 49: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아멘.
복이라고 생각될 만큼과 징계라고 생각될 만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긴 시간이 있다.
1260일이라든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든지,
이런 시간은 영의세계의 시간으로 육의세계의
시간과 같은지 다른지는 모른다.
창조주 신의 영의세계법 시간을 육의시간으로
환산한다든지 하는 건방을 떨 필요가 없다.
인간이 이 정도를 안다고 떠들면 안 된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창조주의
시간을 안다고 떠들면 안 된다.
각 개인적으로 어느 시점에 복을 받고 지속이
됐는지,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환난을 당하고
지속이 됐다가 풀렸는지 살펴보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결혼해서 살면서 자잘하게
복과 징계가 지나갔다고 했을 때 그런 것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2011년 8월 29일 방언을 받으면서
기드온훈련 이라는 것을 6개월에 걸쳐
나도 모르게 받을 때가 있었는데 얼마나
주께 혼났는지 여러가지로 혼났지만
결정적으로 빚도 많아 죽겠는데 1년 3개월을
남편이나 나나 일을 주시지 않고 소득이
거의 없이 보내게 하셨다. 정말 개목줄을
묶고 끌고가시는 것 같았다. 매일 울었다.
어느날 "근신이 끝났다"라는 말씀이 떨어지는
동시에 프리랜서로 일했던 직장에서
딱 전화가 왔다.
그 후로 남편도 일을 하게 되고 나도
직장을 다시 들어가게 됐다.
나라적으로 마찬가지다. 어느 때 환란을 당했는지
어느때 태평세월을 누렸는지 등을 살펴보면 된다.
(베드로후서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아멘.
게다가 인간이 창조주 신의 법전인 성경을 푼다고
하면 안 된다. 인간이 창조주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편 ‘죄의 법 세계’가 이겼을 때는 그 ‘죄의 법 세계’에
합당한 징계거리들이 이 땅에 망함·사고·고통·환란 풍파
·물가 치솟음·전염병·태풍·우박·번개·전쟁으로 펼쳐지게
된다.
개인적인 세세한 부분보다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라 적으로 세계적으로 삼분의 일씩 징계받는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 생성된 선의법세계 죄의법세계
등은 생성됐다 상계된 후 털리고, 생성됐다 상계된 후
털리고 하지만,
사람이 정작 죽었을 때는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했던 막대기 종류들인 죄성성격, 참소마귀,
사망, 음부 등은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
(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아멘.
이런 현상들은 계속적으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인간들이 죽으면 그 죽은 인간들의
계산은 모두 끝난다.
창조주 본체가 계시는 영의세계에서 그들의
할 일을 할 뿐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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