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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2;35
종교지도자들의 공격이 끝나고 예수의 반격이 진행됩니다. 늘 하던 것처럼 그들의 무지와 위선을 지적합니다. 결국, 예수의 지적은 종교인이 아닌, 참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들어야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참 신앙인은 어떤 모습일까?
After the religious leaders' attack is over, Jesus' counterattack proceeds. They point out their ignorance and hypocrisy as usual. After all, Jesus' point is to be a true believer, not a religious person. This is a lesson we must also hear today. So what does a true believer look 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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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던 내 지식이 참 지식이 아니고, 지금껏 존경하던 신앙인이 단지 종교인이었고, 으레 지나쳐온 소자가 성자임을 깨달았을 때, 누구라도 정신이 번쩍 들 것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길만 걷고, 모두가 주목하는 사람만 바라 보다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놓치기 쉽습니다. 출발은 신앙인이었어도 종교인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Anyone will come to their senses when they realize that their knowledge, which they already knew, is not true knowledge, that the believer they have admired so far is just a religious person, and that the child who has passed them is a saint. It is easy to miss the teachings of Jesus if you only walk on the path where people frequently visit and look at those who everyone is paying attention to. Even if you started out as a believer, there is a good chance that you will turn into a religious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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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산책을 해오면서 '하나님 나라와 성전', '부활'이라는 굵직한 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주제들은 으레 것 아는 단어라고 건성으로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개념정리를 해야 우리가 끝까지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위 있는 성전에서 성전의 권위를 무색케 만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As I take a walk through the Gospel of Maga, I come across the great mountains of "God's Kingdom and Temple" and "Resurrection," and I think that we can live as believers until the end only when we organize our concepts and not just because these topics are words that we know. Jesus' teachings, which overshadow the authority of the temple in the authoritative templ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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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시편110:1을 인용하여 메시아의 개념을 다윗의 자손을 뛰어넘는 주, 곧 하나님의 위치로까지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육체적 혈통으로 나신 다윗의 후손이지만, 동시에 다윗이 주라고 고백했던 바로 그 분이십니다. 시간공간을 거스르는 선언이 다소 당황스럽겠지만 '객관적이고 중심적인 구원사'가 이해될 날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The Lord is extending the concept of Messiah to the position of God, the Lord beyond David's descendants, by quoting Psalm 110:1. Christ is the descendant of David, who was born in David's physical lineage, but at the same time, he is the one who confessed that David was the Lord. Although the declaration against time and space may be a little embarrassing, I believe that the day will come when the 'objective and central savior' will be under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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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37,시110:1) “ "Say to David personally, moved by the Holy Spirit, but the LORD says to my Lord, "Sit in my mail until I put your enemies under your feet. You did. You did. When David said, "Give Christ, how can you be his descendant?" (37,시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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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은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38)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39) “고 하셨어요.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하시니라(40)" Jesus then said, "Do not wear long clothes in the Garasa University, do not accept visitors in the market, or those who want the top seat of the synagogue and the top seat of the feast." We eat out and pray for the widow's family, and the judgment will be even more impor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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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돌봄의 대상인 과부를 도리어 착취하였으니 이런 인정머리 없는 몹쓸 인사들이 없습니다. 이제 주님의 시선이 한 여인에게로 향합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거액의 헌금을 투척하는 부자들 사이로 몸을 수그리고 조심스럽게 두 렙 돈을 드리는 여인에게로 말입니다. 울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아 가르칠 정도로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No, you have exploited widows who are the targets of care, and there are no such unkind men. Now the eyes of the Lord turn to a woman. To a woman who bends herself between the rich and throws away a large amount of money with her back upright and carefully gives her two levels of money. Our Lord has given great meaning to this so that he can gather his disciples and teac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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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렙 돈은 하루 품삯의 64분의 일 밖에 안 되는 지극히 적은 돈이란다. 말하자면 노숙자의 겉옷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오늘 하루를 굶더라도 헌신을 마다치 않는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주목하신 것 같아요. 메시아의 나라에 합당한 것은 많은 헌금이 아니라 소유 전체입니다. 처음부터 내 것은 하나도 없고 내 것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 헌금의 핵심 사상입니다.
Two-level money is only one-64th of the daily wage. It's like a homeless man's outer garment. So it seems that the Lord has paid attention to the hearts of the poor widows, who will not refuse to give up their devotion, even if they starve today. What is appropriate for the country of Messiah is not much of a donation, but the whole possession. The point is to admit that from the beginning there is nothing for me and everything for me belongs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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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함이 자랑이 아니듯 가난이 수치가 아닙니다. 이 진리를 깨달기 위해선 무엇보다 나의 익숙한 지식에서 깨어나야 하나님나라와 부활과, 성전의 새 차원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서 헌금하라고 하시는 주군이 아니질 않습니까?
나는 상석에 앉기를 즐거워하지 않았는가?
Poverty is not a shame, as abundance is not a boast. To realize this truth, first of all, I must wake up from my familiar knowledge to see the new dimension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 resurrection and the temple. God is not a sovereign who has no money and asks to donate. Didn't I enjoy sitting at the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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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과 그리스도(35-37)
-a.예수의 질문:35
-b.예수 자신의 대답:36-37
서기관들에 대한 경고(38-40)
-과부의 헌금(41-44)
-a.부자의 헌금:41
-b.과부의 헌금:42
-c.예수의 가르침: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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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쌔(35a)
대답하여 가라사대(35b)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35c)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3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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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36a)
성령에 감동하여(36b)
친히 말하되(36c)
주께서(36d)
내 주께 이르시되(36e)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36e)
내 우편에 앉아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3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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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37a)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37b)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3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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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38a)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38b)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3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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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의 상좌와(39a)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39b)
서기관들을 삼가라(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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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40a)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40b)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4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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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아(41a)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 쌔(41b)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4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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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난한 과부는(42a)
와서(42b)
두 렙 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4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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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43a)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43b)
이 가난한 과부는(43c)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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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44a)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44b)
자기 모든 소유(44c)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4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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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주가 되시는 메시아_ Messiah, the Lord of David.
높음을 추구하는 서기관_ a high-minded jurist
자신의 전부를 드린 과부_ a widow who has given he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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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참 신앙인으로 서려면 온전한 지식과 순수한 헌신을 가지고 위선을 조심 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종교인과 자신을 던진 신앙인의 대조를 통해 참 제자의 길이 드러났나이다. 헌금에 인색하지 않고 모든 것을 드린 과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To be a true believer, O Lord, you must be careful of hypocrisy with full knowledge and pure devotion. The contrast between a religious figure who reveals himself and a religious figure who threw himself revealed the path of a true disciple. Give me a heart of love for God like a widow who has given everything to me without being stingy.
2024.3.18.mon. 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