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건 언제나 문득 온다 - 정끝별
오징어와 꼴뚜기 ‘다리’는 열 개, 낙지와 문어와 쭈꾸미 ‘발’은 여덟 개라지요? (18)
춘장대 근처에는 동백정이나 홍원항 말고도 볼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까이로는 해돋이 마을과 해양박물관이 있고, 조금 더 멀리 나가면 금빛의 가을 갈대와 은빛의 겨울 갈대를 감상할 수 있는 신성리 갈대밭과 한산모시박물관, 또 희리산 해송자연휴양림도 있습니다. (21)
‘빈 하늘을 적시는(혹은 채우는) 계곡’ 쯤으로 해석되는, 이름에서 묘한 허무와 비애와 촉촉함과 맑음이 배어 나오는, 함허동천은 마니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계곡입니다. (32)
동막리 바다 지나 선수포구로 이어진 장화리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라는데요. 강화도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랍니다. (38)
김중식 시인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참 좋은 시를 쓴 시인입니다. 한데 스물일곱의 나이에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1993)라는 시집 한 권을 내놓고는 도무지 시를 안 쓰고 있습니다. (43)
그날은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는지 모르지만, 니체는 사창가를 즐겨 찾았고, 스물세 살 적부터 매독치료를 해왔던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흐의 동생 테오가 아를에서 작업을 하는 그의 형에게 보내주는 돈에는, 창녀에게 정기적으로 치를 화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50)
산이 흘러내려 밭에서 고이고, 밭이 물과 만나 뻘에서 고이고, 그 물이 다시 바다로 흘러 옆에 있는 섬에서 고이고 있습니다. 압해도는 그렇게 가파르게 깎이지 않고, 이어지고 고이면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84)
압해도 한가운데 있는 신안군립도서관에는 노향림 시비가 아담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며 들었던 가곡 <압해도>의 가사가 된 원래 시가 새겨져있습니다. (90)
비가 그친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땅에서 배어나던, 금방 울고 난 듯한 비릿한 슬픔의 냄새가 그런 기운을 더했을까요? 연하디 연한, 말간 비애의 질감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98)
그렇게 부침하며 저승까지 굴러가고만 있는 우리의 일상을 쓸쓸히 바라보고 그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100)
그러나 정말 제가 해보고 싶은 여행은 한 달쯤 방 한 칸을 빌리고 자전거 한 대를 빌려, 박물관과 도서관을 자전거로 오락가락하며, 자전거가 가지 못하는 곳은 슬슬 걸으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온갖 기이한 설화의 현장들을 순례하는 일입니다. (109)
여름과 겨울 사이, 하늘과 땅 사이, 바다와 산 사이, 격정과 고요 사이, 삶의 안간힘 끝에 문득 찾아오는 환하고 쓸쓸한 얼굴로 살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128)
세상사 근심거리, 그렇게 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안간힘 끝에, 떨어지는 똥처럼 금방 몸에서 밀려나가고 마는 그런 근심거리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129)
저에게 미황사는, 장마 구름 속 애처롭게 저물어가던 남해의 노을빛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웅전은 그리 크지 않았으되 정갈하고 염결한 풍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청을 들이지 않은 터진 나뭇결을 일월광풍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는 노을빛을 빨아들이며 고졸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131)
강동에 가면 강동화암 주상절리 건너편에 위치한 ‘가고파’에서 참가재미국을 꼭 먹고 와야 한다는 귀띔을 들었던 터라 거기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참가재미국이 아침 해장으로 그만이라는 소문은 헛소문이 아닙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참가재미살은 입에서 살살 녹았고, 국물은 말간데도 파와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어 칼칼하기 그지없습니다. (156)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고래박물관은 포경역사관과 귀신고래관과 고래해체장 복원관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56)
고래회는 소고기 육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159)
바라본다는 것의 지적인 통찰을, 시선 혹은 응시의 현상학적 발견을, 그의 독특한 이미지론이자 사진론의 핵심인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통해 개진합니다. 배르트는 말합니다. 스투디움이란 이성에 의해서 형성되며 주체가 지닌 교양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대상에 대해 열성적이면서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강렬함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감정을 의미한다고. 반면 푼크툼이란 예기치 못하는 황홀한 섬광 속에서 작은 고독의 상처 자국처럼 드러나는 이미지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방식으로 화살처럼 꽂혀오는 어떤 강렬함이라고. (165)
강원도 개발의 힘(!)이 평창에서 주천과 무릉으로 번져오는 중인가 봅니다. (170)
가능한 한 설명으로서의 관념을 배제한 채, 실재의 사물을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드러낼 수 있는 시적 방법론을 모색했던 시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의 시편들은 ‘무엇을 숨기는 게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마치 사진처럼요. (171)
사진은 깊었습니다. 돌돌거리는 계곡 물소리가 적막을 깨우곤 합니다. 커플 등산복 차림의,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부부가 내려옵니다. 불명산 정상 시루봉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라 합니다. 한 시간쯤이면 왕복할 수 있을 거라는, 남편의 말허리를 꾹 찌르며 “우리는 두 시간 걸렸잖아요!”라며 단풍처럼 웃는 오래된 아내, 이십년쯤 후 저들처럼 늙고 싶습니다. (185)
그러니까 두웅 습지에 가면 연꽃이 피어 있다는 거지, 푸른 연꽃과 붉은 연꽃을 볼 수 있다는 거지, 하는 속셈에 두웅 습지가 있는 태안반도 원북면 신두리를 향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구 지대로 아려진 신두리에서 사막도 보고, 연꽃도 보고, 게다가 해수욕도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밖에요. (199)
정화는 중독성을 지녔음이 분명합니다. 겨울만 되면 강원도 행을 도모하게 되니.... (213)
오줌은 얼음장 위에 쌓인 눈을 녹이며, 수묵처럼 번져가다 얼음 밑의 계곡물과 만났습니다. (222)
근원을 알 수 없는 막막한 그리움과 슬픔이 짙게 저무는 겨울 허공에 선뜻거렸습니다. (224)
대청호를 한눈에 관람하기에는 대청댐 앞에 있는 현암사라는 절이 안성맞춤이라 들었습니다. 바위에 까치집이 다람쥐처럼 매달려 있다고 해서, 매달 현縣자를 써서 현암사라 한다지요. 다람쥐에서 따와 달음절, 다람절이라고도 하더군요. (240)
절벽에 위치한 절집들, 이를테면 남해 상주의 보리암, 동해 낙산의 홍련암, 서해 강화의 보문사, 남해 여수의 항일암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들이 겹쳐집니다.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