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꽃, 싸리 3형제를 아시나요
김민철 기자
입력 2026.08.01. 03:00
'검이불루 화이불치'에 딱 맞는 꽃
싸리비·사립문 등 선조들 삶에 필수
불 펴도 연기 안나는 나무로도 유명
요즘 산에 가면 어디나 홍자색 꽃이 핀 싸리가 한창입니다. 싸리 종류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잎 모양이나 꽃이 피는 모양 등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주변에 흔한 것으로 싸리, 참싸리, 조록싸리가 대표적이죠.
싸리는 콩과 싸리속(屬)의 낙엽성 관목입니다. 전국 양지바른 산 초입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뚜렷한 중심 줄기 없이 여러 줄기 다발이 2~3m 높이까지 자라며, 줄기 윗부분은 몇 개의 잔가지로 갈라집니다. 싸리는 콩과 식물답게 뿌리를 통해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어서 메마른 토양에서도 잘 자랍니다.
“무엇이든 만들고 어디에나 쓰는 나무”
싸리꽃은 홍자색으로 작은 포도송이같이 모여 핍니다. 싸리꽃은 긴 여름 동안 야산이든 큰 산이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꽃이 드문 ‘꽃궁기’인 한여름에 그나마 싸리꽃이라도 있어서 꽃구경을 하면서 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싸리꽃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홍자색이라고 하는데 분홍빛 또는 연한 보라색의 중간쯤이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튀는 색은 아닙니다. 화려하거나 현란하지 않고 소박하고 서민적입니다. 그래서 싸리꽃을 볼 때마다 한국 전통미의 절제와 균형을 표현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가 떠오릅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에 가장 잘 맞는 꽃 아닌가 싶습니다.
싸리가 흔한 것과 마찬가지로, 싸릿골·싸릿재같이 싸리가 들어간 지명도 많았습니다. 각각 주변에 싸리가 많은 동네, 싸리가 많은 고개라는 의미겠지요. 어릴 적만 해도 싸리로 만든 빗자루, 싸리로 만든 사립문도 흔했습니다. 싸리가 우리 생활에 밀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싸리꽃에는 꿀이 많아 밀원 식물로 중요하다고 합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책 ‘궁궐의 우리 나무’에서 “지금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선조들의 삶에서 싸리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나무였다”며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어디에나 쓸 수 있는 나무였다”고 했습니다.
싸리나무는 수분이 적어 불을 지펴도 연기가 잘 나지 않는 나무로도 유명합니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 정하섭이 벌교 제석산 자락 소화의 집에 숨어들었을 때 소화가 연기가 나지 않도록 싸리나무로 밥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싸리나무는 줄기에 수분이 적어 생나무를 꺾어 불을 지펴도 잘 타는데다 연기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쟁터에서 중요한 군수물자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미래덩굴, 때죽나무, 붉나무도 연기가 적게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땅비싸리·큰낭아초·족제비싸리
싸리 종류를 구분하려면 우선 잎 끝을 봐야 합니다. 잎 끝이 둥글면 싸리 아니면 참싸리, 잎 끝이 뾰족하면 조록싸리입니다. 조록싸리는 잎이 갸름하고 끝이 뾰족한 것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조록싸리는 다른 싸리보다 좀 일찍 6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지금도 한창입니다.
잎끝이 둥근 것은 싸리 아니면 참싸리입니다. 이 둘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싸리는 꽃대가 길고, 참싸리는 꽃이 잎겨드랑이에 1㎝ 이내로 바짝 붙어서 핍니다. 둘다 잎 끝에 바늘 모양의 작은 돌기가 있습니다.
싸리 3형제와 비슷한 식물로 땅비싸리가 있습니다. 땅비싸리는 키는 싸리 종류에 비해 작고 아까시나무 꽃같이 생긴 연한 홍자색 꽃이 핍니다. 또 보통 싸리들은 세 장의 작은 잎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땅비싸리는 아까시나무 잎처럼 작은 타원형 잎들이 7~11장 깃털처럼 달린 형태라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산 입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낭아초도 땅비싸리와 같은 속입니다. 큰낭아초는 중국 원산으로, 키가 2m에 달하고 도로변이나 절개지의 녹화용으로 심은 식물입니다. 주로 땅을 파헤쳤다가 복구한 곳에서 큰낭아초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싸리 비슷한데 꽃대가 위로 뾰족하게 솟아 붉은색 꽃이 피는 나무가 큰낭아초입니다.
낭아초(狼牙草)라는 이름은 ‘이리의 송곳니 풀’이라는 뜻으로, 꽃차례가 끝이 가늘고 날카로워 붙인 이름 같습니다. 이름에 ‘초(草)’ 자가 들어가 있지만 목질이 잘 발달한 나무입니다. 그냥 낭아초는 남부 지방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키가 작고 바닥을 기는 듯 자라는 식물입니다. 보통 30~60㎝ 정도로 비스듬히 누운 듯 자랍니다.
요즘 자주빛 보라색 꽃이 원통 모양으로 달리는 족제비싸리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족제비싸리는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로, 경사지, 헐벗은 산 등을 덮는 나무로 많이 심어 도심 변두리 야산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꽃색이 족제비 색깔과 비슷하고 냄새가 나서 족제비싸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싸리·참싸리·조록싸리 등 싸리 3형제, 같은 콩과로 인상이 비슷한 땅비싸리·큰낭아초·족제비싸리까지 익히면 요즘 주변에 꽃 핀 나무 상당수를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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