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렇게 생각한다] 경기도 안산 귀향민경로당 이명희 회장은 말한다
“단체는 단체로서 특성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로 합치라 하는지 이해가 안가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은 중국동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동시에 베트남, 방글라데시, 네팔 등 동남아시아권에서 온 외국인근로자들도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복잡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안산시에는 안산 원곡동에 사는 한국국적을 회복한 중국동포들은 1천여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동포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단체는 3개정도로 파악된다. 하나는 이명희 회장이 이끄는 귀향민경로당과 귀한동포연합총회 안산지회 모임(대표 전화자), 그리고 안산이주민센터에서 지원하는 재한중국동포연합회(대표 박동규) 세 모임이다.
2004년에 한국에 와서 줄곧 이곳 안산에서 생활을 해온 국적회복동포 이명희씨는 현재 원곡1동에 귀향민경로당을 설립하고 회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안산시의 후원을 받은 귀향민경로당은 내년 3월이면 원곡본동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안산 원곡동에 사는 국적회복 동포들의 주요 관심은 안산시에서 지원하는 경로당을 누구 앞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안산시는 동포단체들이 하나로 합쳐 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이명희씨는 “단체는 단체로서 특성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로 합치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동포 노인들 중심의 경로당 모임을 가져 온 것이고, 귀한동포연합총회나 재한중국동포연합회는 동포 노인들이 중심이 아니라 중국동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단체이다.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귀향민경로당은 대한노인회안산지회 산하기관으로 등록되어 활동하고 있다. 안산시는 본동 구동사무소를 경로당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런데 이곳을 처음엔 귀향민경로당으로 활용하도록 하였다가 한국인들이 모이는 경로당이 이곳을 원해, 귀향민경로당은 한국인 노인들이 활용하던 경로당으로 이전한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도 있다. 새로 단장한 곳은 둘째 치고 장소가 좁다는 것이다. 안산시 원곡동에는 인원수를 보더라도 원주민 노인보다 귀한동포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에 이왕이면 넓은 경로당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었다.
이명희 회장이 동포조직을 만드는데 관심을 두기 시작한 때는 2005년이다. 이때부터 노력하여 이명희 회장은 2008년 경기도청에 안산시 귀한동포연합회로 등록을 하였다. 당시 회원은 517명이었다.
2009년에는 안산시 호수공원에서 무궁화 꽃동산 가꾸기, 철도변 해바라기 심기, 풀 뽑기 등 행사에도 참여하고 안산시에서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될 때에도 미화봉사활동으로 참여해 이명희 회장이 이끄는 안산시 귀한동포연합회는 안산시로부터 자원봉사상을 수여받았다.
이런 공로로 2010년 6월 24일 귀향민경로당을 설립해 지원까지 받게 되었다고 이명희 회장은 말한다.
이명희 회장은 1938년 경상북도 성주군 수련면에서 태어나 1943년 경 부모님 따라 만주로 이주했다. 처음 간 곳은 길림성 통화, 그 다음 길림성 휘남, 매화구로 이전했다. 아버지는 금광에서 광부로 활동하다 다리를 다쳐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명희 회장은 9세 때 소학교에 들어갔다가 1953년 소학교를 졸업하고 55년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다. 1958년에 군대에 들어가 3년 군대 생활을 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1978년 개방시기를 맞아 길림성 정툰 시내에서 8년동안 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었다. 그런데 1998년 중국 진출 한국기업에 잘못 투자하여 번돈을 다 까먹고 2004년 한국에 들어와 2005년 5월 한국국적을 회복했다.
이명희 회장이 안산에 거주지를 두게 된 것은 아들이 안산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희씨는 주택공사에서 공급하는 임대아파트에 3년채 거주하고 있다.
@동포세계 제9호(2011.12.10 발행 통번 259호) 2011.12.19 인터넷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