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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 댁에서 내려와 큰 길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군내 버스가 내려오는군요.
운 좋게 하동 ~ 악양 ~ 화개장터 행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화개장터에 내립니다.
아직 철이 이릅니까?
장터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용하군요.
지리산(智異山)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洗耳岩)의 화개협 시오 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 전라 양 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火田民)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 들이 또한 구렛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자반 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인근(隣近)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뛰는 물고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恨) 많고 멋들어진 춘향가 판소리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 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協律) 창극 광대들이 마지막 연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으례 재주와 신명을 떨고서야 경상도로 넘어간다는 한갓 관습과 전례(傳例)가 「화개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 김동리 역마 중에서
예전에는 영화든 드라마든 혹은 다큐멘터리든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보더라도 그 스토리에 관심이 갔었는데 요새는 그런 것보다는 배경을 더 중시하게 됩니다.
내용의 흐름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 가는 장면 혹은 들이나 산을 걷는 장면이 나오면 그 배역의 움직임보다는 그 뒤로 펼쳐지는 산이나 봉우리, 강줄기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소설이나 수필을 읽어도 그 배경이 궁금해 집니다.
여기서 배경背景은 사건이나 생각의 이면에 숨겨진 사정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공간적 배경인 장소를 의미합니다.
이런 병적인 현상은 옛날에 한 번쯤은 읽었을 근대소설을 읽을 때면 그런 도度가 더해 짐을 느낍니다.
당구나 바둑을 처음 배울 때보다 중독성이 더 강한 거 같습니다.
그러니 지리산 둘레길을 예습을 하던 중에 만난 '화개장터'는 바로 김동리의 역마驛馬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어쩔 수 없는 증상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정도에 읽었을 '역마'.
대강의 흐름만 기억나지 정확한 내용을 몰랐던 '역마'.
지금 다시 읽어보니 쌍계사가 나오고 귀이암이 나오고 불일암이 나오는군요.
최치원이니 '쌍계 석문'에 대한 얘기나 '불일암'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아도 글자 속에서 그 내용을 찾다보니 벌써 마지막 장입니다.
이 나이에도 센티sentimental한 구석이 남아 있다니.....
'옥화네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왕 '화개' 얘기가나왔으니 한 마디 더하고 넘어가죠,
이름도 예쁜 '花開'이니 다른 곳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릴 꽃들이 연상됩니다.
벚꽃일 수도 있고 매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산수유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그저 이름을 보고 한자로 그렇게 쓴 것일 뿐 원래 지명 유래와는 별반 관계없는 이름입니다.
글자의 뜻보다는 지형의 생김새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말의 호미곶이나 간절곶의 '곶'은 땅의 생김새가 바다나 강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자로는 '串'이나 혹은 '岬'으로 쓸 수도 있는데 이 '곶'이 현대어의 '코'나 '꽃'의 뿌리인 셈입니다.
중세어의 '고ㅎ'에서 '코'가 나왔으니 인체 부위 '코'도 삐죽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며, 꽃 또한 줄기에서 돋보이게 튀어 나와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송곳이나 곶감, 꼬치 등도 다 이런 부류라는 게 언어학자들의 설명입니다.
그러니 이 '곶'을 기왕이면 같은 발음에 조금 더 예쁜 이름으로 쓰기 위해서 '곶花'로 썼을 수도 있고, 곶串을 곶花으로 착각을 해서 썼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화개의 경우 지형을 살펴보면 화개천이 섬진강을 만나는 곳이 강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串'의 형태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고 그래서 이를 같은 발음의 '곶花'으로 받아 화개가 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쓰인 '開'의 경우는 별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쓰고 보니 괜찮은 거 같아 그렇게 썼다고 보는 것이고....
주의할 것은 인위적으로 '화花'를 쓴 경우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인천의 선화동이나 대전의 선화동 같은 경우는 몸을 파는 여인이나 술집이 밀집한 지역이라 '花'를 붙였다고 하니 이 케이스는 근래 '여자'를 '꽃花'에 비유해 쓴 것이어서 국어학적으로 따져본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할 것입니다.
화개장터에서 남도대교를 건너가면서 섬진강을 봅니다.
지난 번 얘기했었죠?
이 섬진강은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고....
저 섬진강을 남원에서는 순자강鶉子江, 곡성에서는 압록강鴨綠江, 구례에서는 잔수강潺水江, 광양에서는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리는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저 끝 능선의 왕시루봉1240.2m이 큰 모습으로 서 있고....
노고단에서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줄기죠?
이 우측의 다리 건너 내려오는 능선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도계가 되는 능선이니 지리 주릉의 날라리봉1501m 그러니까 삼도봉에서 불무장등을 거쳐 통꼭지봉 ~ 황장산 ~ 촛대봉으로 내려오는 능선이겠고....
센티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센티.
산을 보자 금방 본업으로 돌아옵니다.
아까 진행했던 고소산성 ~ 신선봉 ~ 형제봉 라인의 뒷모습입니다.
10:30이 조금 못 되서 해밀 차량이 들어오는군요.
버스를 타고 오늘의 들머리 관동마을로 갑니다.
10:46
관동마을입니다.
무슨 얘긴가 그랬습니다.
그냥 지금 다압면 고사리에 속하는 관동마을이라는 얘깁니다.
나무 몇 그루 있고.....
섬진강 건너 중앙이 횡천지맥의 구재봉773.7m, 우측 앞이 500.6봉, 그 뒤가 분지봉624.8m이군요.
그러니 좌측 골짜기로 들어가는 마을이 흥룡리이고 그 안에 먹점마을이 있을 겁니다.
구재봉에서 내려오는 능선 사이로 먹점재가 있어 둘레길은 거길 넘어 대축마을로 진행하게 되겠고....
마음은 벌써 둘레길에 있습니다.
10:57
간단하게 몸을 풀고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마을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니 힘들 것도 없습니다.
강 건너 구재봉 오르는 길이 아주 가파르게 보이는군요.
그 꼭대기까지 민가가 있고....
먹점마을입니다.
멀리 희미하게 왕시루봉이 보이고....
정맥 안부를 오르기 위해 땀좀 흘립니다.
아침 일찍 좀 걸었더니 다리가 훨씬 가볍군요.
11:40
관동마을 삼거리입니다.
게밭골?
비로소 호남정맥에 올라섰습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호남정맥이 아니라 신산경표에서 얘기하는 신호남정맥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산경표에는 백운산에서 정맥이 끝나는 걸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광양의 망덕포구까지 끌어낸 것은 순전히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님의 공功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도솔산을 지나 백운산에 이른 다음 별 생각 없이 쫓비산을 향해 진행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 순간부터 산경표에서 제시한 호남정맥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산경표가 '등산 가이드 책자'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박성태 선생님은 산줄기 산행을 하는 '꾼'들을 위해 산줄기를 더 연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거기에 산경표의 정신에 스며 있는 한 가지 원칙을 가미합니다.
바로 산자분수령 즉 모든 산줄기는 바다와 강 혹은 강과 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여야 한다는 산경표의 기본적인 원리이죠.
그리하여 호남정맥의 경우 섬진강과 남해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 즉 망덕포구까지 연장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원리를 이미 몸으로 체득한 우리들은 별 생각없이 진행하여 망덕포구까지 간 다음 호남정맥을 졸업하게 되는 것인데 여기에는 이런 깊은 사연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12:04
조망이 별로 없는,
갈미봉618.5m으로 올라섭니다.
삼각점을 봅니다.
이 시설물은 국토지리정보원이 아닌 국토건설연구소에서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북정맥에서 가지를 친 왕숙(수락)지맥을 할 때 많이 보던 것입니다.
팔각정도 있는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죠.
다른 팀들 밥먹는데 먼지를 날릴 필요 없고...
우리 갈 길을 갑니다.
반재 방향에서 오는 분들과 산인사도 나누고....
이 분도 성이 '산山'이군요.
아무래도 산에 다니는 분들의 '닉'이다 보니 '山'이란 성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지난 주 162지맥을 완주한 '산으로'님과 나누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뿌연 미세 먼지 속에서 구재봉과 우측의 분지봉을 봅니다.
저 구재봉이 재미있습니다.
악양면에서는 비줄기 모양의 산이라 하여 鳩在峰이라 하는데 적량면에서는 거북 모양이라고 하여 龜在峰이라 표기합니다.
그래서 정상에 가면 두 개의 정상석이 있고 그 표기 또한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악양면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적량면에서 설치한 정상석입니다.
그런데 이 정상석보다는 더 중요한 얘기거리가 있습니다.
백두대간, 박성태 선생의 신백두대간 그리고 북한의 백두대산줄기와 관련이 있어서 입니다.
박성태의 신산경표와 신백두대간
누구든 쉽게 의심을 품고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명색이 백두대간인데 남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그래서 산경표의 이런 오류를 해결하고자 박성태 선생은 고민 끝에 신산경표를 발표한다. 신산경표는 천왕봉으로 가는 대간 줄기를 이 영신봉에 이르러 우측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그 줄기를 남해안 노량까지 진행하게 한다. 그렇게 하고 보니 백두산 ~ 노고단 ~ 영신봉 ~ 노량으로 진행하는 줄기가 만들어진다. 박성태 선생은 그 줄기를 ‘신백두대간’이라 이름을 붙인다.
즉 좌측 지도의 백두산에서 내려와 노고단 ~ 영신봉 ~ 천왕봉으로 가던 줄기를 영신봉에서 우회전시켜 삼신봉을 거쳐 금오산 ~ 연대봉 ~ 노량으로 이어지게끔 마루금(빨간선)을 그렸다. 그렇게 한 신산경표에서는 이를 산경표의 백두대간에 대응하여 ‘신백두대간’으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신산경표에서 신백두대간을 고안해 낸 이유는 무엇일까? 괜히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산경표는 그 취지를 “대간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이므로 그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 말을,
⓵정맥도 10대강이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는데 하물며 아버지 격인 대간이 바다도 아닌 산에서 맥을 다한다는 게 사리에 맞지 않다는 점.
⓶대간이 바다로 가야 백두대간이 온전하게 동서를 양분한다는 기본정신에 합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
등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신산경표에서는 대간의 끝을 ‘영신봉 ~ 천왕봉’에서 남해 방향으로 틀어 ‘영신봉 ~ 노량’으로 향하게 했고, 그 이름을 ‘신백두대간’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럼 끝난 것일까?
“그게 신백두대간이야? 그 방향으로 걸어보려는 사람들도 많겠네. 신선하군.”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
첫째, 산경표 교도(?)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어. 신성불가침으로 여기고 있던 산경표에 감히 손을 댔다는 거지.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고 정 필요하면 다른 이름을 붙이든지 해야지 왜 대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만들고 또 산경표의 정맥들을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냐는 거야.
둘째, 그러면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지. 신산경표에서는 천왕봉 ~ 웅석봉 ~ 백운산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웅석지맥’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 분기점을 영신봉이 아닌 천왕봉으로 그대로 놔둔 것을 보고 하는 얘기인 거야. 이 점이 오히려 신산경표의 약점이 된 거지. 즉 이는 신산경표가 북한의 청북정맥이나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이나 임진북예성남정맥에서 중간의 겹침줄기를 없애면서 이를 정맥에 포함시켰던 과감한 시도를 무색케 하는 결과가 돼 버렸어. 곧 천왕봉에 와서는 꼬리를 내렸고 이는 일관성의 결여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돼 버린 것이지.”
처음 듣는 용어에 정맥까지 동원되니 이해가 갈 리 만무할 것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지도를 펴가며 열심히 찾아본다.
“어려운 대목이야. 나중에 다시 살펴 볼 기회가 있을 거야.”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은데... 하지만 형. 이른바 신산경표의 태도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대간이 동서를 구분한다는 얘기는 맞고 산자분수령에 충실하자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사실 문제는 있네. 영신봉 ~ 천왕봉 ~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지맥(枝脈)의 한 구간으로 봐야 한다면 결국 ‘천왕봉’이 지맥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걸 동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욱이 백두대간에서 천왕봉을 빼놓고 얘기한다는 것도 용서하지 못할 거 같은데. 신산경표는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했어?”
“그렇지. 어려운 얘기야. 어쨌든 신산경표는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어. 사실 산경표에서도 그런 애매한 구간이 있을 때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었거든.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그랬던 거지. 그런데 그런 걸 해소하겠다고 한 신산경표가 다시 이런 애매한 구간을 ‘무명줄기’로 놔두겠다고 했으니 자승자박(自繩自縛) 모양새가 된 거야.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반적인 신산경표의 편제에 따른다면 이 웅석지맥은 천왕지맥으로 그 이름도 바뀌어야 해. 그렇게 되면 지리산 = 천왕봉이라는 인식도 변해야 할 것이고. 그게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거 아니겠어? 그 점이 신산경표는 싫었던 거야.
나아가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이 뭐야?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큰 줄기라는 것 아니야? 신백두대간이 굳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점을 강조하여 영신봉 ~ 삼신봉 ~ 노량 코스로 맥을 돌리겠다면 그 이름에서 ‘백두’라는 말을 빼라는 거지. ‘신(新)’자도 넣을 필요 없이 그냥 백노(白露)대간 혹은 백지(白智)대간‘으로 부르라는 것이지. 그리고 그러지도 못하면서 왜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빈 공간으로 놔뒀냐고 비난을 퍼붓는 거야.”
“그럼 형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정말 어려운 질문이야. 신산경표의 생각도 참신하고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봐. 하지만 우리가 산경표를 생각할 때에는 우리의 잣대로 산경표를 보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봐. 분명 우리 선조는 산줄기를 생각할 때 등산을 하기 위한 능선 산행의 편의성을 위해서 그어 놓은 것이 아니었거든. 10대강을 위주로 생활권을 크게 구분하고 있는 것. 그걸 파악했던 것이지. 그래서 산줄기의 끝이 강의 크기나 길이 등에 관계없이 부, 목, 군, 현의 치소(治所)로 향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걸 알 수 있어. 그러니 산경표는 그냥 산경표야.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자고. 그대로 둔 다음에 거기에 우리 현대인의 생각을 가미하고 변형시키자고. 이럴 때 분명히 용어의 정립의 필요할 거야. 신산경표에서 정맥을 합치고, 없애고 대간의 무명줄기도 정맥에 편입시키는 등 변형을 줬거든. 난 이런 점이 불만이야.
가령 이 신백두대간만 해도 그래. 굳이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킨 다음 ‘백두산 ~ 노량’이라고 구간을 설정해 놓으면 천왕봉이 애매해지잖아. 물론 영신봉이나 천왕봉이 다 지리산이니 ‘백두산 ~ 지리산 ~ 노량’으로 봐야 하고 지리산 안에 천왕봉이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겠고 우리도 그렇게 인식하고 대간길을 걸을 수도 있어. 하지만 웅석지맥이 문제가 된다니까. 대간 거리의 확정도 문제가 되고. 우리나라 산줄기의 큰 특징이자 자랑이 뭐야? 나라의 산줄기 길이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한편 산줄기에 관한 한 우리보다 일찍 일제의 잔재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북한은 백두대간을 ‘백두대산줄기’라 이름하였다. 그러고는 그 줄기의 끝을 여기서 우측으로 돌려 삼신봉1289m에 이른 다음 거기서 다시 우측으로 돌려 구재봉773.7m에서 마치게 그렸다.
낙남정맥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이 점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는 낙남정맥을 몰랐었다. 아니 이런 문제 때문에 낙남정맥을 억지로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중환이 보통 사람인가!
어쨌든 여기서는 그저 간단하게 이곳이 낙남정맥이 갈리는 영신봉이라는 점과 낙남정맥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인 산경표에 나오는 우리나라 1대간 1정간 13정맥 중 하나의 정맥으로 글자 그대로 낙동강 남쪽을 받쳐주는 정맥이라는 것만 알아두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5쪽 이하
13:40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지금 이곳이 쫓비산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망도 시원찮습니다.
13:48
그래서 그런가요?
한 산악회에서는 여기 535.9봉에 정상석을 세워 놓았습니다.
조망터라고 지도와는 상관 없는 이런 곳에 이렇게 함부로 세워 놓아도 되는 것인지.....
물론 여기 1등급 대삼각점(하동14)도 박혀 있으니 이 봉우리가 주는 무게감은 있다 하겠습니다.
섬진강 건너 분지봉과 구재봉 그리고 오전에 보았던 형제봉 능선도 봅니다.
그러니 저 왼쪽 형제봉 능선이 지리남부능선이며 우측의 구재봉 등이 횡천지맥 그러니까 신산경표의 입장에서는 삼신지맥이 되겠군요.
오전에 악양에서 이곳을 볼때 좌측의 갈미봉 때문에 이 봉우리는 가리기도 했고 희미하게 보여서 제대로 조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
선생님의 산패와 김문암님의 그것을 보고 자리를 뜹니다.
하동을 향해 진행하는 횡천지맥의 힘이 느껴지는군요.
14:09
505.6봉에서 좌틀하면서 정맥길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하산길입니다.
매화마을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매화가 만개하겠고 이 동네는 난리가 날 것 같군요.
2주 후에 산수유 축제 겸 지리 남부 오산을 한 번 더 진행한다고 하니 군침이 돌긴하지만 일정이 워낙 바쁘기만 합니다.
이번 주 대간길에 들 수 있기나 한 걸까?
주차장에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라 뒷풀이 장소인 화개장터로 이동합니다.
화개장터의 옥화주막.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등장 인물 옥화가 운영하던 주막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아들 이름이 '성기'였고 직업이 책장수였으니 서점 하나 차려볼 만도 합니다.
성기와 자신의 이모일 법한 계연과의 이루어 질 수 없었던 사랑도 애처롭기만 하군요.
다시 떠나야겠죠.
그래서 역마살입니다.
첫댓글 매화축제때는 이 구간도 많은 등산겍들이 찾더군요, 오랜만에 정겨운 산들 보고갑니다....
ㅎㅎ 저도 도서관에 가서 역마를 읽어봐야겠습니다.
세세한 설명덕분에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