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주의의 옹호
철학과 박고봉
우선 동양철학적 측면에서 결과를 강조한 학자로는 순자를 들 수 있다. 순자는 맹자와 달리 패도의 평가에 상당히 긍정적이다. 순자에 의하면, '예로 다스리고 어진이를 등용하는 통치자'가 곧 왕이고, '법을 중시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통치자'가 바로 패이며, '이익을 좋아하고 속임수가 많은 통치자'를 위라 한다. 또 순자는 "예의를 쌓은 군자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면 패를 이룰 수 있으며, 모략과 음모에 뛰어난 사람에게 맡겨 통치케 하면 망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순자는 비록 전통적인 구분법에 따라 왕/패를 구분하고 있으나, 패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맹자와 달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순자에 의하면, 왕도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통치 형태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할 때는 패도에 의한 통치 또한 무방하다고 보는 것이다. 맹자는 패도정치를 인을 가장하여 무력으로 기층민을 쥐어짜는 통치형태로 보았지만, 순자는 패도정치를 '백성에 대한 사랑','성실성'과 '신뢰성' 등이 골고루 갖추어진 왕도에 버금가는 차선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남송의 주희와 동기주의와 결과주의에 대해 논쟁을 펼친 진량 역시 결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진량은 주희의 '의리지학'이 현실문제의 해결에는 이흠함을 지적하고, 의리지학대신 의리쌍행, 왕도정치 대신 왕패병용을 내세운다. 진량에 따르면, 행위의 판단문제에 있어서 도덕적 동기 뿐 아니라 객관적 결과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따라서 정치행태의 평가 문제에 있어서도 통치자의 내면적 덕성 뿐 아니라 객관적 결과의 성/패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진량은, '심성'과 '의리' 만을 따지고 현실문제의 해결에는 적극적이지 못한 당시의 도학작들을 '썩어빠진 유학자' 또는 '중풍에 걸렸어도 아픈 줄 모르는 사람'이라 비판한다. 또한 진량은 자신의 결과주의적 노선이 옳다는 근거를 한, 당의 역사적 해석을 통해 입증하려 시도한다. 진량은 먼저 한고조와 당태종의 통치는 객관적 결과로 볼 때 성공적이었음을 강조하고 들어간다. 주희의 입장에서 이들은 실패작이다. 도가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량은 '객관적 결과'의 측면에 주목한다. 이들은 객관적으로 분명한 업적을 성취했고 이렇게 뛰어난 업적을 성취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러한 통치자들이 뛰어난 '본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업적은 인욕과 야심만이 아닌 도덕과 이익을 동시에 고련된 왕패병용의 통치를 시행한 것으로 여긴다.
서양의 결과주의는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가 있다. 그러나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에는 차이가 있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 할 수 있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에 입각하여 쾌락을 얻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행위하며, 나아가 자기 자신의 쾌락을 바라며 고통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인간을 정의한다. 또한 인간 행동의 근본 동기가 되는 것 역시 쾌락과 고통으로 본다. 이 두 요인은 인간을 소박하여 인간들의 행위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정사의 판단까지도 예외없이 쾌락과 고통에 의해 이루러짐을 주장한다. 또한 벤담은 어느 누구도 자기에게는 이익이 없는데 남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남에게 봉사하는 일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얻는 방법이 되는 상황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위자가 행위하도록 하는 것은 언제나 행위자 자신의 이익때문이라는 것이다. 벤담은 개인의 쾌락 추구가 사회적 공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제시한다. 신중, 성실, 자선이 그것이다. 신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로서 자신의 쾌락 증진과 고통 감소를 말한다. 성실은 타인에 대한 의무로 타인의 쾌락 감소를 안 하게 하고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소극적 의무이다. 자선은 타인에 대한 의무로 자선의 적극적인 의무 형태이다.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가 아닌 질적 공리주의의 주장한다. 밀의 공리주의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어떤 행위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그 행위가 쾌락 또는 고통을 어느 정도 결과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밀은 '쾌락주의적 결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밀은 쾌락의 의미를 행복의 개념까지 확장시켜 벤담이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넓은 뜻을 지녔다고 믿는다. 또한 밀은 쾌락을 양적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구분된다는 질적인 쾌락주의를 제기한다. 즉 질적으로 높은 쾌락은 적은 양이라도 질적으로 낮은 많은 양의 쾌락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쾌락을 선택하는 인간의 존재 양식을 부각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데 있다.
결과주의는 동기주의와의 논쟁을 통해서 성장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결과를 중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동기주의가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을 바라지만 너무 이상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결과를 최대로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위해 결과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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