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黃芝雨, 1952.1.25-)
한국의 시인
1. 솔섬에서 서울에 이르는 길
황지우는 1952년 전남 해남군 북평면 배다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기서 빈농의 3남으로 출생했다고 되어 있다. 시인이 그리는 마음의 고향은 완도군에 부속된 조그만 '솔섬'이다. 조상들이 대대로 묻혀 있는 솔섬은 그의 정신적 .육체적인 뿌리리기도 하다. '일흔 가호 앞뒷 섬사람들이 一當六七의 전식구를 몰고 와 4박5일 장을 지내는'(旅程)섬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공동체의 장점이 남아 있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빚과 가난에 쪼들리은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겪은 양대공포: 그것은 굶주림과 고문이었다.는 발언은 이러한 성장 환경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고향에 대한 그의 기억은「沿革」, 「旅程」에 잘 나타나 있다. 네살 때 광주로 이사한 그는 1959년 광주 중앙국민학교에 입학하고,2학년이던 1960년, 학교 가는 길에 우연히 4.19혁명 시위대를 만나서 그 대열을 따르게 된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이에 겪은 혁명의 체험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데 그것을 시로 쓴것이「1960년 4월 19일.20일.21일,광주」이다. 1965년 광주서중에 입학하고, 1968년에 광주일고에 입학한다. 1971년 재수를 하기 위해서 광주를 떠나 서울에 올라온 그는, 다음 해인 1972년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에 입학한다. 「활엽수림에서」라는 시를 보면, 그는 대학 시절에 이성복,김도연,김정환,진형준 등과 교유한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학 2학년인 1973년 박정희 정권의 폭압에 항거하는 학내 시위 건으로 구속되었다가 군에 입대한다. 1976년 제대후「歸巢의 새」를 썼고, 복학과 제적,재입학 등을 반복하여 서울대 미학과와 서강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한다. 1977년에 결혼, 1980년에「연혁」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면서 등단했고,『문학과 지성』에「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등을 발표했다.
1980년 광주항쟁에 연루 고문을 받은 그는 이를 바탕으로 1983년 첫시집「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발표하고, 이 시집으로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아놀드 하우저의「예술사의 철학」을 번역하고 동인지「시와 경제」에 참여하던 시절이 이때이다. 1985년 제2시집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1986년 산문지「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1987년 제3시집인 「나는 너다」를 연이어 출간 한다.
그러나 1988년대선 직후 정치에 환멸을 느낀 그는 홀연히 광주로 내려가서, 담양에 있는 한 집에 기거하며 조각에 몰두한다. 1990년 제4시집인「게 눈 속의 연꽃」을 발간했고, 1995년에는 조각으로 개인전을 열고, 조각과 시를 한데 묶어 펴낸 시집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를 발간했다. 1998년 제5시집인「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2000년에는 광주의 상처와 해원을 주제로 한 시극「오월의 신부」를 쓰고 이를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수영 문학상,현대문학상,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 기존의 평가와 의미
황지우의 시에 대한 연구는 시의 전개과정을 따라 대략 세 가지 주제로 나우어진다. 첫 시집부터 제3시집까지는 주로 형식 파괴를 통해 시적 의미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4시집인「게 눈 속의 연꽃」은 禪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으 시집인「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는 낭만주의 혹은 허무주의적인 경향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첫번째 주제 해당하는 연구들은 대부분 황지우 시의 실험성과 정치성 혹은 사회성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장석주는 형태 파괴의 시들이 시라는 기성의 관념에 길들여진 독자의 의식을 낯설게 하고 그럼으로써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의 모든 것들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새로운 효과를 창출한다고 해석한다. 이광호는 황지우의 시적인 실험을 1980년대 해체시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해석하면서 해체가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재래적인 서정시의 문법이 파편화된 현실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콜라주와 패러디,시각적 활자 구성,몽타주,다큐멘터리 등 거의 모든 실험적 양식을 시에 끌어들이는 것은 자동화된 일상적 의식에 충격을 주는 일이다. 이때의 시는 일상 속의 은폐된 체제의 억압적 구조를 발가벗기면서 서정시의 재래적 이데올로기를 탈신비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으로 중개된 무작위 기법, 인쇄구성을 통한 양식 해체, 다큐메터리적 속성등이 유형의 구체적인 예이다. 그러나 황지우 시에 대한 평가가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황지우의 시는 당시 유행했던 민중시에 비해 현실도피적이고,일회적이며,지식인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시적 형식의 파괴가 소극적인고 간접적이며 국외자적인 냉소성을 드러내는 것이며,현실 변혁 의지가 결핍되어 있고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는 공허한 현실 인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같은 맥락이다. 김현은 황지우의 등단작인 「연혁」을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황지우의 시세계의 원형을 밝히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 시는 '바다'와 '내지'라는 서로 다른 지향점 속에 있는 시적 자아 갈등을 보여 준다. '바다'가 존재론적이고 탈사회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면,'내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는 시적 자아는 서로 다른 두 지향점 사이에서 어느 한 곳으로도 떠나지 못하고 출발점인 '연안'에 남아있다.
두번째 주제인 선에 관한 글은 대부분 「게 눈 속의 연꽃」에 대한 서평이나 해설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시집에는 3시집인「나는 너다」에까지 일관되는,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이 사라진 대신 선적인 것에 대한 지향은 은자적인 태도가 나타나 있다. 이영준은 선에 대한 관심이「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에서부터 이미 나타나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경호는「산경」에 등장하는 광주의 '무등산경'과 서울의'남산경'을 각각 마음의 욕망과 몸의 욕망의 상징으로 읽어내고, 시집에 실려 있는 나머지 시들이 몸과 마음의 욕망 사이에 있는 울타리를 허무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에 반해 이윤택은「산경」이 현실 응전력을 가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마음을 비운 상태도 못 된다고 비판한다. 그는 오히려「화엄 광주」에서 살아있는 화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세번째 주제이며 가장 최근의 시집인 「어느날 나는 흐린주점에 앉아있을 거다」에 대한 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수이는 이 시집을 "세계의 변혁을 꿈꾸었던 한 지식인이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겪은 절망의 기록이자 자신의 생에 대한 뼈아픈 기록"이라고 규정한다. 그녀는 1990년대 이후 황지 시의 중심테마를 절망과 자성이라고 보고,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시들은 조롱과 희화적인 어투,위악의 포즈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한다.
오생근은 황지우의 시가 풍자와 야유,빈정거림을 보여주던 초기 시와는 달리,꿈이 좌절되고 배반당하는 현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겉으로 좌절과 상실감이 크게 보이지만 이면에는 좌절의 삶을 껴안고 신생의 희망을 키우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시에 대한 글들이 전체적인 시인론이나 세밀한 작품론이라기 보다는 단편적인 시집 서평이나 해설의 성격에 가까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황지우의 초기시와 그 이후 시들 사이에 질적.양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단계의 시집을 총괄하는 연구가 요구된다. 서로 다른 경향들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경향들이 도출되게된 근본적인 원인과 변모 과정을 밝혀야 할 것이다. 황지우라는 한 시인의 전체적인 시 세계를 조망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3. 저항으로서의 형식 파괴에서 자기 부정에 이르기까지
황지우가 등단한 것이 1980년이라는 사실은 두 가지 면에서 상당이 시사적이다. 하나는 그의 시의 출발점이 정치적인 격변기와 맞물려 있다는 면에서 그렇고 다른 하나는 그 와중에 그가 선택한 것이 시라는 점에서 그렇다. 초기 시에서 황지우는 실험적인 형식을 빌려 폭압적인 정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광주의 상흔이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복권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시는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느슨해진다. 이는 광주가 그의 트라우마인 동시에 시를 지탱하는 긴장력이었다는 아이러리를 증명한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상처와 해빙무드의 외부 현실 속에서 그의 시는 방향성을 상실한다.
자신의 시적 뿌리이자 힘의 근원이었던 주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면서 내부의 지탱 축과 외부의 적을 동시에 잃어버린 것이다. 이후 황지우의 시는 현실 비판력을 상실하고 선적인 세계와 낭만적인 허무주의 사이에서 왕복 운동을 하게 된다.
특징적인 것은 현실과의 긴장력을 상실한 후에도 간헐적이지만 그의 시 쓰기가 계속되고 있다.
먼저 첫 시집부터 제3시집에 이르기까지 황지우의 시에 일관되는 것은 정치적인 폭압에 대한 저항과 그 방법으로 선택된 시 형식의 파괴이다. 그가 체감한 현실은 감시와 폭력, 살율이 자행되는 어둡고 절망적인 것이다.'나'는 이러한 현실 앞에 자진해서 나의 눈과 귀와 입을 봉해버린다. 내가 나 스스로를 봉하는 이유는 증거를 인멸함으로써 살아 남기 위해서이다.
내가 나의 육체를 부정하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만큼 철저하게 통제되고 감시당하는 시대적인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두절 11월 3일 입대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심인」전문
'심인'은 여러가지 이유들로 헤어진 사람들을 찾는 신문 광고란이다. 한정된 몇줄 안에 찾고자 하는 사람과 헤어진 이유가 간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가 세가지 심인 광고 중에서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물론 첫번째 광고이다. 80년 5월 이후에 가출한 것으로 미루어 볼때 김종수의 가출은 광주와 연관이 있고, 입대영장이 나왔다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는 대학생 정도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화장실에 본 신문의 한면을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나는 너다」에 실린 시들은 좀더 직접적이고 적나라하다. 의미없는 숫자들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 시들에서는 광주의 상처가 비명처럼 그대로 살아난다.
...생략...
-「527」전문
필자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부분인데 책에 언급되어 기재하지만, 이 시는 덧붙이지 않아도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진압군이 시민들을 진압하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이 시는 오직 동사들만을 이용해서 끔찍하고 처참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두들겨 맞고 피가 흐르고 얼굴이 이그러지고 팔다리가 잘리고 피가 튀는 아비규환의 상황은 '손 올린다. 묶인다. 간다. 끌려간다'로 일단락된다.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끌려가서 황토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된다. 황지우의 초기 시에는 '광주'로 상징되는 정치적인 폭압을 고발하는 이외에도 자본주의 시장이 되어 버린 현실과 그 이면의 정치와 자본을 결탁 물질만능주의와 왜곡된 성 그안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무비판성 등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나타난다.
형식은 단순히 형식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에 대응하는 정치적 무기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인 '황지우'는 개인이 아니라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코드이다. 그의 상흔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두의 상흔이며 그의 시는 이러한 상흔을 치유하고 보상하는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하나의 시대적 전형이며 또한 한 시대의 영웅이다.
이러한 공격성과 저항성은 제4시집인「게 눈 속의 연꽃」으로 들어서면서 현저히 약화된다. 물론 이 시집에도 광주를 직접적인 소재로 한 "화엄광주"라는 시가 있기 하지만 대부분의 시들은 현실을 벗어난 신비에 싸인 세계를 향하고 있다.
내가 여름 나무 아래 당도하니
息影亭온 채가
저 아래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노인들이 큰 나무 수령 아래에서
배꼽을 내놓고
손으로 부채질한다
멀리 무등산 동쪽 산록이
군용담요를 뒤집어 씌워놓은듯
한낮 햇살 받아 더욱더 연연하다
모든 길은 노인만이 안다
금곡으로 들어가는 버스 이정표
코카콜라 간판 아래
아따만한 웬 누렁개 한 마리가
심뜩하게 홀로 앉아 있다
너 이노오옴!
헛것이 수작을 부리다니1
돌멩이가 한여름의 으스스한 정물을
께겡껭, 깨드려 놓는다
녹은 아스팔트에 발자국 남기며
헛것이 쩔뚝쩔뚝 사라진다
-「쉬어 가는 곳」전문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와 큰 나무아래 배꼽을 내놓고 부채질 하는 노인들의 풍경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모든 길은 노인만이 안다'는 구절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시에서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부분은 '무등산 동쪽 산록'과 금곡으로 들어가는 버스 이정표 코카콜라 간판'이다.
환상과 실재 초월과 현실을 매개하는 것은 '개'이다. 개는 코카콜라 간판 아래 앉은 실제의 개이면서 동시에 헛것을 불러 일으키는 매개치이다. 돌멩이에 맞아 께겡켕거리며 도망치는 것이 실제의 개라면 헛것인 '개'는 섬뜩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정물이다. 시적 자아는 간판 아래 앉아 있는 누렁개 한 마리를 보고 잠시 착시를 일으켰던 것이다. "너 이노오옴!/ 헛것이 수작을 부리다니!" 라고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시적 자아는 마치 신선이나 도사 같은 풍모를 지닌 인간으로 격상된다.
'남산경과 '무등산경'으로 이름 붙인「산경」은 산해경적인 풍자에 도인적인 풍모를 섞어 놓은 시이다. 서울의 남산은 괴이하고 불길한 동물들이 들끓고 황폐한 크고 작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데 반해, 광주의 무등산은 상처를 치유하는 온갖 약초가 자라고 선녀들이 내려오는 신령하고 성스러운 곳으로 표현되어 있다. 피비린재로 뒤덮였던 무등산을 약산으로 설정한 것은 그 자체가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때 황지우가 추구하는 선 혹은 도는, 현실과의 사이에서 긴장력을 상실한 시인이 찾아간 현실 도피적이고 관념적인 세계일 뿐이다.
하머터면 피아니스트가 될 뻔 했던 아내가 출장레슨 나가기 전에
그에게 와서 나를 어루만져줄 때가 아는 좋다
나는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커트해줄 때
낮자 자고 있는 그에게 가만히 다가와 나의 발톱을 잘라줄 때
혹은 그를 자기 무릎에 눕혀놓고 내 귀지를 파줄 때,좋다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중에서
자신 대신 돈을 벌어 오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아내가 자신을 돌봐 주기를 바라는 '나'는 철저하게 무기력하고 게으른 인물이다. 그는 자신으 현실 도피를 '비록 사나이 나이 사십 넘어서 '내가 헛,살았다'는 깨달음이/아무리 비참하고 수치스럽다 할지라도,격조 있게/이 삶을 되물릴 길은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이것 인정하기 조금은 힘들지만/세상에 조금이라도 복수심을 갖고 있는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천함보다야/무위도식배 가 낫지 않겠는가!"라고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한다.
자신의 과거가 후회스럽다는 것이 무위도식을 정당화해 줄 수는 없다. 자신의 삶이 후회스러운지 아닌지를 돌아볼 여유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가장으로써의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생각해 볼때 이러한 발언은 과장이고 자기 과시적인 혐의가 짙다 그러면서도 황지우는 자신의 무위도식이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우러한 것이라고 단언하며 그들을 '어쩔 수 없는 천함'이라고 규정 짓는다. 황지우 다운 우얼감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것은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일지 모르지만 시에는 단지 저물어 가는 모습만이 나타날 뿐이다.
4. 결 말
황지우의 시는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저항적인 것에서 자조적인 것으로 바뀌어 왔다. 그가 이처럼 변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그이 시와 삶을 지탱해 온 광주라는 트라우마가 공개적으로 거론되면서 긴장의 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추정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원인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다.
사회주의의 몰락은 그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사회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라져 버린 미래는 그에게 더할 수 없는 상실감과 절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뼈아픈 후회)라고 탄식한다. '내 삶은 페허다' 라는 탄식은 자신이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는 자책이나 절망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시적인 형식을 파괴하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황지우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시가 가지고 있는 전위성은 암울한 현실에 대응하는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써,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문학 형식을 통한 문학 내의 것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황지우 역시 '양식의 파괴,나아가 파괴의 양식화'가 문학의 어쩔 수 없는 한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 초기 시의 시사적인 의의까지를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시인 황지우가 개인이기에 앞서 1980년대를 지탱해 온 하나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들은 문학이 현실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인의 사회참여의 한 모델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