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시 : 2011.11.06(일)
쯔진청 [紫禁城, Imperial Palace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in Beijing and Shenyang]
명·청 500년을 통치한 24명 황제의 거처
'그는 또 수많은 뜰을 건너가야 한다. 그 많은 뜰을 다 지났다 해도 새로운 계단을 만나게 되고, 다시 뜰을 지나고 또 다시 다른 궁전을 만나게 된다. 끝없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황제가 파견한 사절은 결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권력의 고독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에 나오는 ‘그곳’은 바로 쯔진청이다. 8백 여 개의 건축물과 9천 여 개의 방이 있는 곳. 10m에 이르는 높은 성벽과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에워 싸인 그곳은 카프카의 말 그대로 드넓은 뜰과 수많은 건물로 지어져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다.
쯔진청은 명·청 때 500여 년간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다.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는 권좌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1406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만리장성 이후 중국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쯔진청 쌓기에 나섰다. 이후 14년간 100만 명의 인부가 이 공사에 동원됐다. 사용된 건축 자재의 양도 상상을 초월해 벽돌 1억만 개와 기와 2억만 개가 사용됐다.
기둥에 쓰일 나무는 사천지방에서 조달된 것으로 운송에만 4년이 걸렸다. 전각의 받침대와 부조에 쓰인 돌은 5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날랐다. 돌은 하나의 무게가 200톤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당시 부역자들은 겨울철 길에 물을 뿌려 빙판을 만든 뒤 돌들을 날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쯔진청에는 황제 일가를 위해서 9천 명의 시녀와 1천 명의 내시도 함께 살았다.
하늘의 아들, 황제를 위한 자색
쯔진청을 가득 메운 자색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빛깔이며,
동시에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한다. 북극성은 하늘의 궁전이 있는 곳. 하늘의 아들 즉 천자인 황제가 사는 궁전 역시 그 하늘을 상징하는 자색으로 지었다. 남과 북의 긴 축 위에 놓인 쯔진청의 건축물들은 모두 남향이다. 이는 남쪽의 양기를 받고 북쪽의 바람과 음기로부터 황궁을 보호하려는 의도다.
성 내부는 정무 처리를 위한 구역(외조)과 황제의 주거 구역(내정)으로 크게 나뉜다. 남쪽에 있는 외조는 쯔진청의 정문인 오문에서 시작된다. 북쪽 방향으로 태화문·태화전·중화전·보화전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무영전 등의 전각(殿閣)이 있다. 높이 35m, 면적 2377㎡의 웅장한 태화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당나라 때에는 주요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다. 태화전의 앞마당에는 병사 9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뜰이 있다. 외조의 북쪽으로 내정이 펼쳐진다. 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교태전·곤녕궁 등이 있다.
쯔진청은 철통 같은 보안으로 황제를 지켰다. 바닥에는 걸을 때 경쾌한 발소리를 내는 특별한 벽돌이 갈려 있다. 이 벽돌의 효과는 음향만은 아니었다. 땅 밑에서 뚫고 올라올지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 40여 장의 벽돌을 겹쳐 쌓았다. 성 내에는 후원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전혀 없다. 암살자가 나무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자의 거처지만 어쩌면 금으로 둘러 싸인 감옥이었는지도 모른다.
쯔진청은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과거의 궁전이라는 뜻에서 공식 명칭은 ‘고궁’이 되었다. 왕조는 사라졌지만 해마다 600~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쯔진청은 여전히 중국 문화의 중심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오문(午门)
자금성의 대문으로 자오(子午 : 남과 북)방향으로 건설되었다하여 오문(午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성대(城臺)에는 다섯 개의 높은 누각이 있어 오봉루(五鳳樓)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명, 청 시대 대장군의 출정이나 개선, 전쟁포로를 종묘에 바치는 의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오문의 다섯 개 출입문 중 중앙의 것이 황제 전용문이다.
황제 외에는 결혼식을 위해 입궁하는 황후나 당시의 최고시험인 전시(殿試)의 장원, 방안(榜眼 : 차석) 그리고 탐화(探花 : 3등)만이 딱 한 번씩 사용할 수 있었다.
좌우의 문은 문무대신과 황족들이 출입하였으며 양끝의 두 문은 전시를 치르는 수험생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자금성 안쪽에서 본 오문
자금성(紫禁城)으로 더욱 친숙한 고궁(故宮)은 명(明, 1368 ~ 1644), 청(淸, 1644 ~ 1911)
양 대의 황궁이다.
자금성은 고궁의 옛 이름으로 황제의 별자리인 자미성(紫微星)과 금지(禁地)란 의미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자(紫)색은 동양에서 가장 길(吉)한 색으로 부처님의 몸이 자색이라고 한다.
인간은 일생에 한번 가장 기쁠 때 얼굴이 잠시 자색을 띤다고 하는데 자금성은 이런 자색으로 건축되었다. 자금성은 명 영락(永樂)18년(1420년) 3년의 공정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1421년 베이징 천도와 함께 정식 황궁이 되었다. 북경성(北京城)의 남북 중앙선상에 위치하였으며 황가금원(皇家禁苑)의 1/3을 차지하였다.
자금성의 모든 건축물은 중앙 축선을 중심으로 배치되었으며 좌우대칭관계와 주종관계가 뚜렷하여 질서정연한 황궁을 이루었다. 자금성의 궁정구(宮廷區)에는 전(殿), 당(堂), 관(館), 사(舍)의 명칭을 가진 건축이 9,999칸(소위 칸이라는 단위는 間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둥 네 개가 지탱하는 넓이를 말한다)반이나 있었으며 건축면적이 15만 평방미터, 대지가 72만 평방미터에 달했다.
물론 지금은 9,000여 칸으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으나 “성중의 성” 자금성의 모습은 여전히 대단한 것이다. 자금성의 건축은 크게 전조(前朝)와 내정(內廷)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조는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의 세 대전으로 구성되는데 이곳에서는 황제가 권력을 행사하는 한편 각종 중요행사가 거행되었다.
내정(內廷)은 전조의 뒤에 위치한 소궁(小宮)으로 황제가 일상생활과 함께 정무(政務)를 보았던 곳이다. 이밖에 여자들의 거처였던 동서육궁(東西六宮)과 태상황(太上皇)을 위한 외동궁(外東宮)이 있다.






자금성(중국어: 紫禁城, 병음: zǐjìnchéng 쯔진청[*])은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이다.
자금성의 규모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현재는 1925년 10월 고궁 박물원(중국어: 故宮博物院, 병음: Gùgōng Bówùyùan)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일명 9999 개의 방(실제로는 8707칸이라고 한다.)이 배치되어 있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의 중문인 오문의 가운데 문은 황제만 사용했으며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한다.
자금성이 지어질 당시의 정문은 천안문이었으나, 현재는 오문(午門)으로 바뀌었다.



태화문을 지키는 청동사자



문정(門釘)
전조(前朝) 삼대전의 정문으로 자금성 내 최대의 궁문(宮門)이다.
명대 황제는 때때로 이곳에 보좌를 두고 신하들의 상소를 경청하는 등 정무에 충실한 군주의 모습을 보이곤 하였다.
태화문에는 9행 9열의 도금 문정(門釘 : 대문의 장식용 돌기)이 있다. 9는 ‘극양수(가장 큰 홀수)’라는 길한 숫자로 황실의 건축물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문정들은 복과 장수를 상징하여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설이 있는데 이 때문에 태화문의 문정들은 매년 칠을 다시 해야 하는 형편이다.

자금성의 주체건물 태화전
태화전(太和殿)은 1420년 건축된 중국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금란전(金鑾殿)으로도 불렸으며
명, 청 양대 이곳에서는 황제의 즉위식이나 생일, 황후의 책립, 원단(元旦 : 음력 설)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강희(康熙)황제(1695년)때의 모습이며 황제와 황후가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으로 보존하였다.
전 내 중앙에는 높이 2m의 지평대(地平臺)가 있으며 지평대 위에는 금을 칠하고 용을 깍은 보좌(寶座)가 놓여있다.
황제가 보좌에 오르면 북이 일제히 울렸으며 문무대신들은 품(品)에 따라 단폐(丹陛 : 한백옥으로 만든 삼층의 단)에 서거나 광장을 가득 매웠다. 문무대신들은 삼고구배(三叩九拜 : 3번 머리를 땅에 부딪치고 9번 절하는 것)와 숭호(嵩呼 : 천자의 장수를 빌면서 외치는 “만세, 만세, 만만세”)로 황제의 절대 권력에 경의를 표했다.
명, 청 시대 24명의 황제가 이곳에서 보위에 올랐다.




향을 넣어 피웠던 거북향로


황제의 보좌
1915년 원세개(袁世凱)가 스스로 황제임을 자처하며 가져갔던 것을
1959년 고궁의 한 창고에서 발견, 원래의 위치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황제의 침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