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7장
9. 갈등의 방어
1
우리는 앞에서
투사(projection) 없이는
<분노>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사 없이는
<사랑>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도 똑같이 진리이다.
<투사>는
<마음의 근본법칙>이며
따라서
<항상 작동하는 법칙>이다.
그 법칙으로 그대가 창조하며,
또한 그대가 창조되었다.
그것은
왕국을 통일시켜
신의 마음 안에
간직하는 법이다.
에고에게 이 법칙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없애버리는
수단으로 지각된다.
성령에게 이 법칙은
그대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그대 자신의
마음 안에 간직하기 위해,
다른 이에게 주는
<공유의 근본법칙>이다.
2
성령에게 투사는
확장의 법칙이다.
에고에게 투사는
박탈의 법칙이다.
따라서 투사는,
그대가 투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선택하는 데 따라,
풍요를 낳기도 하고
결핍을 낳기도 한다.
이런 선택은 실로
그대에게 달려있지만,
투사를 사용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대에게 달려있지 않다.
모든 마음은
반드시 <투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모든 마음이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마음>은 실로 <생명>이다.
에고는
필연적으로
투사와 분노를
관련시키는데,
이것이 마침내
무효화될 수 있으려면
먼저
투사에 대한 에고의 용도가,
충분히 이해되어야 한다.
3
에고는 언제나
갈등을 유지하려 한다.
에고는
갈등을 감소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데서,
아주 독창적
(ingenious)이다.
왜냐하면
에고는, 그대가 갈등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갈등을 포기하겠다고
주장하게 되는 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에고를 포기하고
그대 자신을
해방시키지 않도록,
에고는 자신이
그대를 갈등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신의 법칙에 대한
자신만의 뒤틀린 버전을
사용하는 에고는,
오직
마음의 진정한 목적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만
마음의
권능을 사용한다.
에고는 그대가
갈등을 없애버렸다고
설득하기 위해,
갈등을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다른 마음들로 투사한다.
이것은 겉으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몇 가지 오류>를 갖고 있다.
4
엄밀히 말하자면,
갈등은 투사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갈등은
완전히 공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갈등의 일부는
그대로 남겨두고,
일부만
제거하려는 시도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갈등하는 교사는,
서투른 교사이자,
서투른 학생임을 기억하라.
그의 레슨은 혼란스러우며,
그 레슨의 전달되는 가치도
그의 혼란 때문에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
두 번째 오류는,
그대는 원하지 않는 것을
주어버림으로써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이다.
원하지 않는 것을 주는 것은,
그대가
그것을 간직하는 방법이다.
그대가 그것을
밖으로 주어버림으로써
안에서 제거했다는
믿음이야말로,
확장의 힘에 대한
완전한 왜곡이다.
5
바로 이것이
에고로부터 투사하는 자들이
늘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고
바짝 경계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자신이
투사한 것들이 되돌아와,
그들 자신을 해칠까봐
정말로 두려워한다.
그들은
그것들을 자신의 마음에서
지워버렸다고 정말로 믿지만,
한편으로
그것들이 슬며시 그들에게
기어들어오려 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어서 그들로 하여금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않기 위해
강박적인 행동을
하도록 압박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에 대한 환상을
영속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환상을
영속시킬 수는 없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마음을 조각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
조각내는 것은
조각들로 부수는 것인데,
마음은 공격하거나
공격받을 수 없다.
마음이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은
에고가 항상
저지르는 잘못으로서,
투사에 대한
에고의 용도 전체의
바탕에 깔려있다.
에고는
마음이 참으로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대가 참으로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에고의 생존은
그대의 마음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에고는 정녕
<그대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고는
전혀 일관된 모델도 없이
결코 일관성 없이 발달한,
일종의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러므로 에고는,
자신의 권능을
오용(誤用)하는
왜곡된 마음들이,
신의 법칙을
잘못 적용하여 생겨난,
왜곡된 생산물이다.
7
에고를 두려워하지 말라.
에고는 정녕
그대의 마음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대가
에고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에고를 만들었듯이,
에고에게서
믿음을 철회함으로써
에고를
쫓아버릴 수 있다.
에고의 존재를 믿는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투사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는 오히려
그 믿음을 보존할 것이다.
그대 스스로
에고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할 때,
그대는
모든 분노와 공격을
내려놓게 된다.
왜냐하면,
<분노와 공격>은
그대 자신의
<잘못들에 대한 책임>을
<투사>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잘못들을
그대의 것으로 받아들인 후에는,
그것들을 간직하고 있지 말라.
그것들을
재빨리 <성령>에게 넘겨주어
<완전히 무효화>되게 하라.
그럼으로써
그 잘못들의 모든 결과가
너희의 마음과
온아들에게서
전체적으로 사라진다.
8
성령은
믿음 너머를 지각하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진리는 정녕
믿음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지각은 진리이다.
에고는 언제라도
완전히 잊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에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하나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대가 에고에 대해
더 많이 배우게 될수록,
에고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많이 깨닫게 된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은
정녕 믿을 수 없기에,
이해될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지각의
철저한 무의미함은
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무의미함은
믿음 너머에
있는 것이라고는
인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9
<이 수업의 전체 목적>은 그대에게
<에고>는 믿을 수 없으며, 정녕 영원히
믿을 수 없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써, 에고를
만들어낸 그대는
이런 판단을
홀로 내릴 수 없다.
그대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대는
혼자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에
반대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분리라는 아이디어를 몰아내며,
왕국 전체가
문자 그대로 그대의 일부라는
그대의
참된 정체를 확언하는 것이다.
이런 동일시는
믿음 너머에 있듯이
또한 의심 너머에 있다.
그대의 온전성은 한계가 없으니,
존재는 무한함 안에 있기 때문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7장 ㅡ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