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실명(陋室銘) - 劉禹錫(유우석 772~842 中唐)
山不在高(산부재고) 有仙則名(유선즉명)
水不在深(수부재심) 有龍則靈(유룡즉령)
斯是陋室(사시누실) 惟吾德馨(유오덕형)
苔痕上階綠(태흔상계록) 草色入簾靑(초색입렴청)
談笑有鴻儒(담소유홍유) 往來無白丁(왕래무백정)
可以調素琴(가이조소금) 閱金經(열금경)
無絲竹之亂耳(무사죽지란이) 無案牘之勞形(무안독지노형)
南陽諸葛廬(남양제갈려) 西蜀子雲亭(서촉자운정)
孔子云(공자운) 何陋之有(하루지유)
산은 높아야만 명산이 아니라 신선이 살아야 그 이름이 나며
물은 깊어야만 신령한 게 아니라 용이 살아야 신비롭다
이 방이 비록 작고 누추해도 그 안에 사는 나의 덕이 향기롭다
이끼는 점점이 계단에 기어올라 푸르고 풀빛은 발 안으로 비쳐 들어 푸르다
웃으며 이야기 나눌 큰 선비 있고 함부로 오가는 백정들은 없다
장식없는 거문고 줄을 고르고 선현의 귀한 서책 펼칠 만하다
요란한 가락에 귀 어지러울 일 없고 잡다한 공문서로 신경 쓸 일도 없다
남양 땅 공명의 갈대로 지은 집과 서촉 구석 땅 자운의 정자로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라고.
누실명(陋室銘) - 許筠(허균 1569~1618)/성소부부고14권
房闊十笏(방활십홀) 南開二戶(남개이호)
午日來烘(오일래홍) 旣明且煦(기명차후)
家雖立壁(가수립벽) 書則四部(서칙사부)
餘一犢鼻(여일독비) 唯文君伍(유문군오)
酌茶半甌(작다반구) 燒香一炷(소향일주)
偃仰棲遲(언앙서지) 乾坤今古(건곤금고)
人謂陋室(인위루실) 陋不可處(누불가처)
我則視之(아칙시지) 淸都玉府(청도옥부)
心安身便(심안신편) 孰謂之陋(숙위지루)
吾所陋者(오소루자) 身名竝朽(신명병후)
廬也編蓬(려야편봉) 潛亦環堵(잠역환도)
君子居之(군자거지) 何陋之有(하루지유)
넓어야 십홀쯤 방에 남으로 두개의 문이 열렸네
한낮 볕이 들이 쪼여 밝고도 따뜻하네
집이라야 벽만 섰지만 사부서(四部書)를 갖추었네
쇠코잠방이로 넉넉하니 탁문군(卓文君)의 짝이라네
차 반 사발 따르고 향 한 심지 피우네
마음대로 편안히 지내며 천지 고금을 살피네
남들은 누추해서 살 수 없다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청도(淸都)와 옥부(玉府)라네
마음 편하고 몸 편하니 누가 누추하다 말하는가
내가 누추하다 여기는 것은 몸과 이름이 함께 썩음이네
집이래야 쑥대로 엮었지만 도연명도 담만 둘렀다네
군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註: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부호인 탁왕손(卓王孫)의 딸 탁문군(卓文君)과 결혼하여 살면서 함께 술집을 차리고 술장사를 할 적에 탁문군은 술을 팔고 사마상여는 쇠코잠뱅이를 입고서 술심부름을 하였다. 원헌(原憲)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공자(孔子)의 제자인데 워낙 청빈(淸貧)하여 지게문을 쑥대로 엮어서 달고 지붕을 생초(生草)로 이어 놓고 살았다. 도연명(陶潛)은 워낙 청빈하여 집안이 아무 것도 없어 쓸쓸하였고 그의 초막집은 허술하여 바람과 햇살을 가리지 못했다. (끝)
첫댓글 두 '누실명'의 끝 구절 "(군자의 거처함에) 무슨 누추함이 있을까"에서 선비의 청렴함과 고매한 인품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