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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번역과 번역 비판 이덕하 님의 꽃가루 님의 『괴델, 에셔, 바흐』번역 비판에 관한 언급 비판
consciousmind 추천 0 조회 509 13.02.06 20:5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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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2.06 21:10

    첫댓글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90 의 댓글에 제 답변이 있습니다.

  • 작성자 13.03.26 15:28

    우리가 어떤 토론/논쟁을 할 때, 상대방의 반론/반박에 (일절)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상대방의 반론/반박에 대응하지 않고 토론/논쟁을 중단하는 경우는 대략 3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 13.03.26 15:53

    즉 다음과 같습니다.

    ① 상대방과의 토론/논쟁이 완결됐다고 생각하는 경우 (자기 자신이 상대방을 완전히 논파해 완결됐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포함됨)

    ② 상대방과 토론/논쟁을 계속하는 것은 더이상 “긍정적 · 건설적” 의미가 없는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감정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③ 상대방의 반론/반박이 너무나 빈틈없고 강력해 재반론/재반박할 수 없어 무응답 형식으로 (비겁하게) 후퇴하는 경우

    이렇게 대충 3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거의 모든 논객들은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치르면서 위와 같은 경우를 한두 번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 작성자 13.03.26 16:18

    원천적으로 토론과 논쟁의 본질 속에는 저러한 요소들이 내재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것들이 긍정적 속성이든 부정적 속성이든 토론/논쟁의 일부로서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토론/논쟁 개념이 (한국/한국인에게는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념 얘기는 여기선 이 정도 말해두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덕하 선생을 비판했더니, 이덕하 선생이 반론이랄까, 해명이랄까, 여하튼 《번역 비판》 게시판에 반박성 댓글을 두 개 올렸더군요. 벌써 한 달 하고도 20여일 전입니다. 즉 2013년 02월 06일의 일이죠.

  • 작성자 13.03.26 16:44

    그런데 이덕하 님의 반박성 댓글에 여지껏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제가, 뒤늦게 뜬금없이 댓글을 올리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위에서 무대응/무응답의 3가지 경우를 약술해놨는데요. 그러나 제가 이덕하 선생한테 무대응/무응답한 까닭은 위 3가지 경우 가운데 그 어느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애초에 이덕하 선생에 대한 일전의 제 비판글은 토론과 논쟁을 염두에 두고 써올린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토론과 논쟁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므로 이덕하 님의 해명성 (혹은 반론성) 댓글에 재반론/재반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죠.

  • 작성자 13.03.26 17:06

    그러나 이런 형태의 제 무대응/무응답이 이덕하 선생(의 반론)을 무시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시 말해 위 3가지 경우 어느것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덕하 선생이 《괴델, 에셔, 바흐》 국역본에 대한 “꽃가루” 님의 번역 비판 활동을 놓고 만류성 조언을 담은 글을 올렸었는데요. 그 글을 읽고 일종의 섭섭함 혹은 유감스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그런 “상기시킴”과 “경각심 고취”가 비판글의 주요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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