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아빠 오늘 돼지 한 마리 잡으실 모양이다!
마음의 여유로움을 몸으로도 지긋이 느끼려는 듯 한참을 자리에서 뒤척인다.
여느 때처럼 토요일 아침을 느긋함으로 만끽하고 천천히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동창이 밝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조용하다.
물을 틀어 손을 씻는다.
시렁에 있는 네모난 쟁반을 뽑아 들고 식탁 위에 둔다.
주방 한 켠 에 놓여있는 칼집에서 칼들을 꺼내 쟁반위에 올려놓는다.
대접에 물을 삼부 가량 붓고 식탁에 올려놓는다.
마지막으로 주방 한 켠 구석에 넣어 세워 두었던 두 개의 숫돌을 가져와
식탁위의 쟁반에 포개어 두고 의자에 앉는다.
이제 칼 갈 준비는 다 된 모양이다.
숫돌 이라기보다는 연마봉이 정확한 표현일 게다.
몇 해 전 쯤 일까? 나는 숫돌 이외에 집에서 칼을 가는 모든 현대적인(?) 도구들을 치워 버렸다.
플라스틱 손잡이와 함께 둥근 금속이 돌아가면서 칼을 간편하게 갈 수 있는 그런 도구들과
어린 시절 접정 정육점에서 보았던 둥근 막대 형태의 금속 칼갈이등을 말한다.
그 녀석들을 사용해서 몇 번 칼을 갈아 보았지만 당최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바쁜 우리 현대인들의 일상사라지만 칼을 가는 방법이 너무 촐랑 거려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내 마음에 드는 형태로 칼을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녀석들이 해 주는 대로 대충 갈린 칼을 사용한다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결국 숫돌을 구하러 나섰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보았던 숫돌은 끝내 발견 하지 못했고,
대신 지금 가지고 있는 두 종류의 연마 봉을 안산의 어느 시장에서 구 할 수 있었다.
숫돌 두 개를 포개어 놓고서 오른손으로 물 주걱을 만들어서 숫돌위에 물을 끼얹는다.
작은 접시나 물뿌리개를 사용해도 될 법 하지만
굳이 내가 오른 손으로 물을 퍼서 칼등에 떨어뜨리는 것은
아스라한 옛날의 추억을 몸소 재현 해 보고자 함이다.
숫돌위에 떨어진 물들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돌 속으로 스며든다.
물이 스며든 돌은 언제 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감쪽같다. 몇 번을 더 숫돌 위에 물을 끼얹었을까...
그제서야 연마 봉 위에도 물기가 조금 베어난다.
그래 이제 부턴 칼을 갈 수 있겠지...
제일 큰 칼을 집어 든다.
몇 해 전인가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준비 했던 칼 셋트다.
크기가 다른 칼 네 자루와 칼을 갈수 있는 둥근 막대 형태의 금속 칼 연마봉도 포함되어 있다.
칼을 사온 날 칼을 처음 잡고 얼마나 잘 드는지 무에 그리 궁금하였었던가? 입 가에 웃음이 묻어난다.
냉장고를 뒤져서 큰 무 하나를 찾아내고 그것을 삭둑삭둑 잘랐던 기억이 새롭다.
잘 든 칼로 무를 베어 낼 때 손에서 느껴졌던 상쾌함을 지금도 기억 한다.
더운 때에 냉장고에서 갓 나온 수박을 썰어서 먹는 그 시원함은 다른데서는 느낄 수 없는 색 다른 맛이다.
퇴근길에 가락시장을 지나면서 수박을 사오곤 한다.
통 수박을 썰 때 손으로 전해오는 칼의 느낌은 칼의 상태에 따라서 많이 다르다.
잘 든 칼의 느낌은 섬뜩하면서 상쾌함이다. 나는 이 느낌이 좋다.
무딘 칼의 느낌은 힘들고 무거움이다.
어젯밤 수박을 썰면서 느꼈었다.
'아, 칼 갈 때가 됐구나...'
오른 손으로 칼 손잡이를 잡는다.
무지를 제외한 왼손의 네 손가락을 함께 모아 칼끝 등위에 올려 놓는다.
칼날을 앞으로 한 채 조심스레 칼을 민다.
'슥~.' 숫돌에 칼이 빗기며 소리를 낸다.
다시 칼을 잡아당긴다. '삭~.
' 슥삭, 슥삭... 소리를 내면서 칼에, 숫돌에 검정 물이 베어 나온다.
몇 번 밀다 보면 숫돌위의 물이 금세 말라 버린다.
칼 갈기도 조금 뻑뻑해진다. 다시 물을 뿌려준다.
칼날의 각도를 숫돌과 얼마나 유지 하는가가 칼을 갈 때의 요령 이다.
각도가 너무 크면 칼날이 쉬 무너지며 각도가 작으면 날을 세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조금은 작은 각으로 천천히 날을 세우는 방법을 난 좋아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는 하지만 칼 가는 재미를 길고, 깊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잡이 안쪽부터 시작 했건만 벌써 칼끝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다른 것을 생각 하지 않는다.
무뎌진 칼을 갈아서 날을 세운다는 것은 몸을 닦아서 마음을 세운다는 것이다.
일상사에 채이면서 무뎌진 몸과 마음을 칼을 갈면서 다시 세워보는 것이다.
칼 끝 부분에 이르면 꼭 선친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칼을 갈 때는 그 끝을 잘 갈아야 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흉내 내어 칼을 갈라치면 꼭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많이 쓰이는 부분은 몸통 부분인데 그 끝을 잘 갈아야 한다니...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칼을 갈 땐 칼끝도 잘 들도록 신경을 쓰게 되었다.
칼을 가는 중간 중간에 왼손 무지를 날 위에 올려놓고 살짝 누른 후 손 바닥 쪽으로 당겨본다.
날의 예리함을 직접 점검해 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무지와 날이 빗기며 날의 섬뜩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날의 예리함이 클수록 무지 바닥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의 크기도 커진다.
눈으로 날을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날이 잘 보이지 않을수록 예리한 것이다.
혹여 날이 많이 보일라 치면 다시 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갈아 낸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꼭 옥에만 국한된 말은 아닐 터이다.
칼에 있어서는 그 날을 예리하게 세우는 작업일 게다.
예리하게 갈아진 날일 수록 잘 보이지 않음은 무엇을 암시 하는 걸까?
나를 갈고 닦을 수 록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함을 의미 하는 건 아닐까?
잘 보이지 않되 필요 할 땐 그 어떤 것 보다 더 예리하게 자를 수 있는 칼의 처신 그것을 배워야 할까?
슥삭, 슥삭... 소리가 깊어짐에 이마에도 땀이 맺힌다.
밖으로 스미어 나온 온 검회색 물이 쟁반에 흥건함으로 꽤 시간이 흘렀나보다.
이제 과도로 사용되는 이 작은 칼만 마무리되면 오늘 아침 일은 끝이다.
오늘 아침 잠깐의 수고로움으로 이제 한 동안은 칼날의 상쾌함을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집 사람이 안방에서 나온다. 칼 가는 소리가 아침잠을 방해했나 보다.
칼을 갈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윗방의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얘들아, 아빠 오늘 돼지 한 마리 잡으실 모양이다! 빨리 일어나라!"
그래 이 말도 어린 시절 칼을 갈 적 꼭 함께 따라 다니던 어르신들 말씀 이셨다.
.......
이제서야 퍼뜩 돼지 잡을 적엔 잘 든 앞 칼날이 특히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그 끝없이 길고 가는 돼지 창자를 잘 든 칼날이 아니고선 어찌 마지막까지 자를 수 있었을 것인가?
허나 우리 아이들이 이 말의 의미를 짐작인들 할 수나 있을까?
첫댓글 우리 아부지 생각난다. 주방에 칼을 열심히 갈아서 시험에 보시고 흐뭇해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네 ```` 참 자상하고 멋진 신랑일세 ㅋㅋ
결혼해 살면서 칼을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갈아본듯해물론 신랑의 힘을 빌은적도 많지만... 대충대충..그날의 상황에 따라서.....울시엄마는 항아리에 삭삭 해주신적도 있었고15년전쯤엔 특허를 냈다던가 (몇년전에 버렸음) 전기 콘센트를 꽂고 칼을 올려두면 갈아지는...지금은 싱크대 서랍안에 칼과 같이보관되어있는(친구 글에서도 나온)정육점에서 이쪽저쪽 번갈아가며 슥삭 슥삭하면 갈아지는 ...그 여러방법중 가장 간단한것은 다급할때 은박지호일 몇번접어 칼을 들고 왔다갔다 몇번해줌....옛날엔 주방에 칼이 안들면 남편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머 내가 가장편한 방법을 선택했어그러나 ..
그러나....칼을 그케 잘들게 하여 음식을 할만큼 내가 집에서 음식을 잘 해먹지 않는다는거지....냐리며칠전 울 아들이 집에서 엄마가 싸주는 김밥이 먹고프다하여 김밥을 싼적있는데...음김밥자르는데 칼이 안들더라자고로 칼이 잘들어야 김밥이 이뿐 모양으로 잘 썰어지는데 말이쥐....제식아우리집 칼 들고 니네집 방문을 좀 해얄듯싶은데....
토요일 집에서 칼갈이 좌판 별여야 겠다. 택배도 환영~ , 방문도 환영~ .
선옥이 신랑은 칼도 갈아주나 보네.. 요즘 세상에 집에서 칼을 갈아 쓴다는 얘긴 첨들어본다.. 그것도 숫돌에다.. 선옥신랑은 그 칼가는걸 아주 즐기는거 같애~~ 인격까지 수양해 가면서.. 부럽다~ㅇ 담에 우리 칼도 부탁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