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교회 #고신 주일예배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야고보서 5:7~11 2023년 3월 19일 설교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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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 야고보서 5:7~11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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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이상욱 목사)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사람으로부터 내용을 전해 들어 대충 압니다. 학교 폭력을 당한 주인공 동은이 어른이 되어 자기에게 학교 폭력을 가했던 이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더 글로리」의 복수는 피의 복수가 아니라 폭력과 상처 속에서 자기의 존엄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그는 주인공 동은이 자기를 도와주는 여성인 현남의 딸을 가정폭력으로부터 도피시키면서 열심히 유학 생활하며 여행도 다니고 미술관도 가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한 발짝 멀어지는 것. 그리고 현재를 행복하게 채워가는 것. 상처로 뒤엎어진 과거를 적절히 쳐다보고 외면하며 내일을 살아가는 게 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통쾌한 복수란 없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복수는 승리가 아니라 서로 파괴하는 것일 뿐입니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 동은도 복수를 위해 20대, 30대의 시간을 사실상 잃어버린 삶을 산 것이라고 보면 동은도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살다보면 부당한 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 불공평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이 나의 잘못이나 죄 때문이 아닐 때는 더욱 견디기 힘듭니다. 성경에도 보면 옳은 일을 하고도 도리어 고난을 겪은 사람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가 악한 세력에 의해 핍박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할 때, 그 때문에 분노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답게 대응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길이 참으라
야고보 사도는 농부가 열매를 바라보고 인내하듯이 길이 참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 사도는 농부가 길이 참듯이 참으라고 권면합니다. ‘길이 참으라’라고 번역된 헬라어(마크로뒤메사테)는 소망 가운데 기다리라는 의미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각각 가을에 내리는 비와 봄에 내리는 비입니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건기에 굳어버린 땅을 적셔서 땅을 갈기에 알맞게 만들어 줍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농작물이 알차게 결실하도록 도와주는 비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자마자 열매가 맺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나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밭을 가꿉니다. 그 때는 비가 내리는 때입니다. 농부는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리면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 때는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때입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때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림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것처럼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때입니다.
또 하나는 응답의 때입니다. 이른 비가 내리면 파종의 때가 왔음을 알고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늦은 비가 내리면 결실의 때가 온 것을 알고 추수 준비를 하듯이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농부의 인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때를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한탄하느라고, 복수의 칼을 가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은혜의 열매를 소망 가운데 바라보며 더 나은 삶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둘째,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야고보서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마음을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한 군데에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태풍이 불면 배의 닻을 내립니다. 닻이 바다 밑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면 그 배는 태풍이 부는 바다 위에서도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닻이 바다 밑에 고정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 배는 태풍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습니까? 우리 믿음의 닻은 어디에 내려져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시련의 태풍이 불어올 때 우리는 믿음의 닻을 주님에게 내려야 합니다. 내 마음의 닻을 주님에게 단단히 고정시켜야 합니다. 세상이 아니라 주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셋째, 서로 원망하지 말라
야고보서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일이 잘못 되거나 버티기 힘들어졌을 때 원인으로 보이는 대상을 탓하거나 미워하게 됩니다. 원망은 그 미워하고 화를 내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만드는 원인은 따로 있는데 눈 앞에 보이는 사람끼리 서로 말로써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낸 때의 상황은 교회를 핍박하는 악한 세력으로 인해 고난이 심했던 때입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으로 품어주고 격려해야 할 성도들 사이가 갈라졌습니다. 서로 시기하고 정죄하며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본문의 구절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서로 다투지 말라, 분을 내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면했습니다.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야고보서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원수는 교회 밖에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끼리 서로 원수가 되어 시기하고 원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탄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야고보서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원망의 가장 무서운 점은 원망하는 대상에 내가 먹히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혼란과 악한 일은 원망의 원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원망하고 있는 피해자를 향해 돌아오는 부메랑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원망함으로 말미암은 악의 열매가 아니라 서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 의의 열매를 거두라고 권면합니다.
야고보서 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 사도는 이처럼 원망하지 않으며 길이 참아 의의 열매를 거둔 믿음의 사람 욥을 소개합니다.
야고보서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은 하나님께서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 욥의 고통은 정말 억울한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욥은 그 고통 가운데서 인내했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욥은 “내가 빈 몸으로 세상에 왔으니 빈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기 23:9~10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다는 것은 자기의 고난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욥은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기다리며 찾았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시니 이 시련을 통한 연단의 시간이 지나면 은혜의 날이 있음을 믿고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시련에서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주님도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성도가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시련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왜 이 시련을 당해야 하는가?’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올 때 오늘 11절 말씀처럼 욥의 결말을 기억합시다. 서로 원망함이 없이 인내함 가운데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할 때, 길이 참음으로 마음을 굳게 할 때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의 뒷부분을 기억합시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