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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
154. 뽕 장사가 최고야
칼날 길이가 30센티나 되는 회칼 든 놈에게 잭나이프 꼬나들고 덤비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다.
순발력이 있어 몸놀림이 가벼운 녀석이라면, 일단 찔리면서 같이 찌르겠다는 각오로 덤빌 수는 있겠지만, 그 찌른 깊이가 엄청 다르다.
잭나이프에 찔려 1주일 입원한다면, 회칼에 찔린 놈은 한 달? 자칫하면 병원에 실려 가기 전에 이 세상을 하직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심장의 조폭이라도 오금이 저려서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다.
“야, 네 놈이 모라파 안해달이야? 보스쯤 됐으면 손에 연장 들고 그러면 안 되지, 인마! 애들 앞에 창피하지도 않아?”
장진국이 일단 큰 소리로 기선을 제압하고 나섰다.
시간을 조금만 끌고 있으면 연락받은 다른 나이트클럽에 있는 나머지 대원 40여 명이 우르르 달려올 것이다.
“그래, 나 안해달이다. 그까짓 잭나이프로 덤비겠단 말이야? 그만 웃기고 그냥 꿇어라! 흐흐.”
안해달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장진국에게 다가섰다.
손에 든 회칼이 다른 두 놈 것보다 더 번쩍거리고 커 보인다. 움메, 겁나버린 거!
그런데,
-삐뽀, 삐뽀~
가까운 골목 어귀에서 경찰 패트롤카의 경고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서면파로서는 구원의 수호천사가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로 들린다.
“으이~씨, 재수 없어!”
막 회칼을 빼 들고 서면파 제2행동대장 장진국을 공격하려던 모라파 두목 안해달이 인상을 긁었다.
서면파 행동대장 전국수까지 요절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이다.
안해달의 뒤쪽에 서서 재미있는 구경거리 감상하려던, 부전동파 행동대장 강물범도 더러운 면상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린다.
-삐뽀, 삐보
SB 게임랜드 앞쪽까지 다가온 경찰 패트롤카의 사이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골목길을 가득 메우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양쪽으로 길을 비켜서는 모습도 보인다.
“안 보스! 일단 철수합시다!”
강물범이 보라파 두목 안해달을 큰 소리로 부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아까 나왔던 사잇골목을 향했다.
사잇골목으로 빠져나가면 큰 대로변에 있는 자기들 ‘VR플러스’ 게임방 앞에 주차한 차량으로 도망칠 수 있다.
“야 이, 새끼들! 어디로 도망쳐? 다 잡아 죽여라~!”
위기에서 벗어난 서면파 꼬봉들 6명이 잭나이프를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이 새끼들이, 죽고 싶어?”
모라파 안해달과 수하 두 명은 회칼을 휘젓고 수비 자세를 취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야, 멈춰!”
강물범에게 옆구리를 차여 금이 간 갈비뼈를 부여잡고 끙끙대던 서면파 행동대장 전국수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얼굴을 아는 서면지구대 경찰들이 들이닥쳐 입장이 난처해진다.
“야, 모두 돌아와! 우리도 퇴각한다!”
제2행동대장 장진국이 부하들을 부르며 얼른 전국수를 부축했다.
몰려가던 서면파 대원들이 멈춰 서고, 모라파와 부전동파 패거리들 6명은 잽싸게 사잇골목으로 달아났다.
서면파 패거리 8명은 경찰 백차가 도착하기 전에 급히 SB 게임랜드로 숨어들었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서둘러 도망쳤다.
**
서면 1번가 유흥 음식점 거리 뒷골목, 빨간 벽돌 3층 건물 ‘부영 모텔’ 1층에 있는 ‘노블 바’ 밀실.
서면파 두목 서면발의 아지트 사무실에 행동대장 전국수와 제2행동대장 장진국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옆구리는 많이 다쳤냐?”
“아닙니다, 형님. 약간 금이 갔는데 사나흘 통원 치료하면 금세 나을 겁니다.”
전국수가 죄인처럼 울상을 짓고 더듬거렸다.
“그 새끼들이 연장 들고 설쳤다며? 그만하기 다행이다. 몸조리 잘하고 얼른 낫도록 해라!”
“예, 형님. 죄송합니다.”
“부전동 애들은 단도 들고 나왔고, 모라파 새끼들은 회칼 빼 들고 설쳤습니다. 그래도 백차만 안 왔으면, 우리 애들이 몰려와서 그 자식들 다 잡을 수 있었는데, 좀 아깝습니다.”
장진국이 아쉬운 듯 변명했다. 실상은 정반대로 경찰 패트롤카가 안 왔으면 서면파가 크게 다칠 뻔했었다.
“짭새들 피해서 퇴각하기 잘했어. 계속 붙었으면 우리 애들도 크게 다쳤을 거 아니야?”
“그래도 강물범이와 안해달이를 잡았으면 황금 피시방 밀고한 거 자백받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장진국은 전국수가 퇴각 명령을 내려서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다.
부전동파 행동대장과 그들의 우호 세력인 모라파 두목을 잡았으면, 뭔가 큼직한 전리품을 받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범이나 해달이가 잡혔다고 고분고분 불 놈들도 아니잖아? 그 자식들 중상 입혀봐야 부전동파 굴복시켜 접수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물개하고 전쟁밖에 더 하겠어?”
물개는 부전동파 두목인 윤물개를 이르는 말이다.
부전동파는 원래 서면 북쪽 범전동 북쪽에 인접한 연지동을 근거지로 놀던 물개파였는데, 서면으로 진출하면서 이름을 서면의 행정구역인 부전동을 따서 부전동파로 바꿨다.
그들의 목표가 지금 서면을 장악하고 있는, 원래 서면 서쪽 범천동 출신 조직인, 서면파를 몰아내고 자기들이 사실상의 서면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부전동파 46명과 초읍동의 모라파 10명을 합하면 모두 56명이나 되어 서면파 50명보다 6명이나 많다.
조직 간에 전투를 치르려면 아예 작정하고 대규모 전쟁을 벌여서 승복을 받아내야 접수가 되는 것이다. 엉성하게 자잘한 싸움을 붙어봤자 소득도 없이 서로 손실만 입게 마련이다.
“그런데요, 형님! 부전동 새끼들은 몰라도, 모라파 피라미까지 들어와서 활개치고 다니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국수가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래. 서면역 남쪽까지 버젓이 내려와서 칼 들고 설쳤으니까, 전쟁의 명분은 선다. 그렇다고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되잖아?”
“유태파 40명이 합세하면 우리 통합서면파는 90명이나 됩니다, 형님!”
조직원이 90명이면 부산 시내에서 조폭 서열 3위에 속하는 제법 큰 조직이 된다.
“그렇기는 해도 유태파한테 함께 전쟁 치르자고 요청하려면, 뭔가 보상으로 던져줄 게 있어야 되잖냐?”
“부전동파하고 모라파 접수해서 그 자식들 나와바리 중 일부를 유태파한테 넘겨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2행동대장 장진국이 거들고 나섰다.
“연지동이나 초읍동 촌구석에 우리가 뜯어먹을 게 뭐 있어?”
서면발이 눈살을 찌푸렸다.
부전동파나 모라파 녀석들도 자기들 구역에서 별로 수익 될 거리가 없으니까 영양가 있는 서면을 넘보는 것이다.
괜히 대책 없이 그런 조직을 접수했다가는, 56명이나 되는 조직원 먹여 살리느라 되레 서면파의 등골이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저기요, 형님! 뭐니 뭐니 해도 앞으로 짭짤한 수입원은 약 장사 아닙니까? 그놈들 접수해서 지네들 구역에 한번 팔아보라고 하면 안 될까요?”
전국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약이라… 그 자식들도 약은 취급해보고 싶겠지? 아직 칠성파에서 약을 구입할 수준이 아니라서 미처 손을 못 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지네들 구역은 작아도, 범전동이 양정동하고 붙어있지 않습니까? 양정동 바로 옆에 있는 연산동까지도 침투할 수 있을 겁니다.”
서면역에서 북쪽으로 불과 2킬로미터 지점의 양정역 주변은 별로이지만, 거기서 북쪽으로 2킬로미터만 더 가면 연산역이 있다.
동쪽 해운대와 북쪽 동래로 연결되어 새롭게 발전한 연산역 육거리 주변은 서면 못지않은 유흥가 거리가 들어서 있다.
“초읍동 서쪽으로 당감동도 있습니다. 가야역 주변은 쏠쏠할 것 같은데요?”
장진국이 덩달아 신나서 모라파가 진출할 수 있는 구역도 알려준다.
“그렇게 해서 수요가 생기면 우리가 유태파한테 참전 보상으로 다량의 뽕을 구입하겠다고 제안하자는 말이지?”
“예, 형님! 어차피 제가 명륜동 ‘재건 동방파’ 친구 만나서 약 공급을 협상하기로 하지 않습니까? 잘 풀리면, 재건동방파에 공급할 물량을 당장 유태파에서 추가로 사주면, 참전 보상이 되는 거고요.”
역시 행동대장인 전국수가 제대로 된 의견을 제시했다.
“음, 그래! 그럼 재건동방파 만나는 것부터 서둘러 봐라. 네 몸이 그래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겠어?”
서면발이 갈비뼈에 금이 간 아우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허리에 복대 차서, 활동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형님!”
전국수가 겸연쩍게 웃었다.
“제가 대장님 모시고 함께 가겠습니다, 큰형님!”
신바람 난 장진국이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며 헤벌쭉거렸다.
“진국이 너는 애들 풀어서 감시나 똑바로 해! 나 혼자 가도 되니까.”
전국수가 장진국을 노려보며 눈총을 쐈다.
“아, 예 형님! 부전동 새끼들 얼씬도 못 하게 잘 지킬 테니까 염려 말고 다녀오십시오.”
혼쭐난 장진국이 군기가 바짝 들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서면파와 유태파가 합세해서 부전동파와 모라파의 연합 세력을 꺾고, 접수된 그들을 앞세워 연산역 주변에 침투해서 약장사로 부려먹자는 얘기다.
전쟁에 승리한 뒤에 유태파에게 참전 보상으로 필로폰을 다량 구입해줘야 하는데, 우선 당장은 명륜동 ‘재건동방파’와 협상해서 상당한 양의 뽕을 공급할 수 있는 루트를 뚫어야 한다.
이제 서면파의 미래는 행동대장인 전국수가 재건동방파 소속 친구를 만나 벌일 협상의 결과에 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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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명륜동, 동래역 앞 명륜로 129번길 주변, 먹자골목 유흥음식점 거리 명륜 1번가.
동쪽 동래구청 사이에 있는 가로세로 300여 미터 구역은 각종 음식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명륜 1번가 북쪽 어느 으슥한 골목 어귀에 위치한 별로 크지 않은 똥집 통마늘구이 가게 ‘똥꼬”.
삼삼오오 들어온 손님들이 옆자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부산 특유의 사투리로 왁자지껄 떠들고 있어, 가게 안은 꽤 소란스럽다.
가게의 구석진 자리에 서면파 행동대장 전국수가 재건동방파 소속의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주방 출입문 앞이고 홀과의 사이에 큰 냉장고가 가리고 있어, 둘이 제법 큰소리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딱 알맞은 탁자다.
달궈진 팬에 깔린 은박지 위에 지글지글 끓어서 담겨있는 통마늘구이 똥집이 입맛을 돋군다.
“건재야, 술 좀 더 마셔라. 대장 됐는데, 근무 시간이라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잖아?”
소주잔을 비워 마신 전국수가 자기 잔에 술을 채워 친구인 재건동방파 행동대장 안건재 앞에 놓았다.
“그래도, 니랑 같이 있는 거 우리 애들이 보면 좀 그렇다 아이가?”
마시던 자기 잔을 마저 비우고 술을 채워 건네주며 안건재가 히죽이 웃었다.
두 사람은 양정동에 있는 양정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부산진구 양정동은 동래와 서면의 중간에 있다.
“니 혹시 내가 갑자기 와서 주머니 사정 걱정하는 거 아이가? 오늘 술값은 내가 낼게. 지난번에는 네가 냈으니까.”
전국수가 웃으며 안건재의 속마음을 떠본다.
“뭔 소리 하고 있노? 니가 손님인데, 몇 번이라도 내가 내야지. 이기 얼마나 된다고! 내가 서면에 가면 니가 술값 안 낼 거야?”
안건재가 정색하며 전국수를 흘겨봤다.
부산말로 담치라고 부르는 홍합 국물과 함께 나오는 ‘죽자 세트’가 26,000원이고, 두툼하고 길쭉한 계란말이가 8,000원인데, 한 병에 3,500원인 소주를 둘이 4병 마셔도 전부 48,000원밖에 안 된다.
명색이 동래 재건동방파 행동대장인데 그 정도야 몇 번인들 친구한테 못 사주겠나?
“느그는 요새도 아도사키 하나?”
전국수가 매콤한 똥집을 질겅질겅 씹으며 고추장 묻은 입술 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 재건동방파의 재정 상태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아도사키’는 큰 도박판에서 벌이는 화투 게임의 일종이다. 길쭉하게 자리를 깔고 수십 명이 양쪽에 둘러앉아 베팅하는데, 한 판에 5분도 채 안 돼서 판돈이 천여만 원에 이른다.
도박판을 개장하는 조폭은 고리로 돈을 빌려주는 전주를 비롯한 해결사, 선수, 바람잡이 등을 동원해 산속에 천막을 치고 모여 후딱 판을 벌이고 얼른 철수한다.
주최자인 조폭은 수수료 명목으로 판돈의 10%를 징수하므로, 몇 판만 벌여도 수천만원의 부당이익을 쉽게 챙길 수 있다.
재건동방파 두목 김OO(50세)는 조직을 결성한 초기에 주로 이 ‘아도사키’ 도박판을 벌여서 조직 운영자금을 벌어들였다.
그는 경남 밀양, 경북 청도, 심지어 대전까지 진출해서 도박장을 개설하여 상당한 금액을 벌었고, 지금은 57명에 달하는 조직원을 두고 동래역과 명륜역 일대를 장악한 중급 폭력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이다! 시방은 그런 거 안 한다. 접은 지 꽤 됐다.”
안건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없는 소리 하지도 말라는 듯 웃었다.
“그래? 그러면 뭐 해서 60명 가까운 식구들 먹여 살리노? 여기도 수입이 예전만 못할 거 아니야?”
전국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곡을 찔러 물었다.
“업소 주인들한테 급전 빌려주고 고리 뜯어먹고 살았는데, 문 닫는 데도 많고, 영 힘들어 죽겠다. 니네들처럼 어디서 약이나 구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안건재가 입을 삐죽 내밀며 친구인 전국수를 하소연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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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오는 오후에 읽으니 으스스 합니다.
아무리 조폭들이라도 서면파는 인정있는 듯한데
약장사를 하겠다 하니 ㅜ
샘~ 조폭해 보셨나요?
우찌이리 자알 아시는지.. ㅎㅎㅎ
네, 들고은님. 봄비가 추적거리고 바람도 세게 불어 점심 외식 계획 철회했습니다.
조폭도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마약 장사가 제일 낫다는군요.
하하, 어느 조폭이 저를 조직원으로 뽑겠습니까? 설령 뽑아준대도 문신하기 겁나서 못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