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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큭!"
적무강은 눈앞에서 두 동강이 나며 물속으로 곤두박질친 적을 무
심히 바라보았다. 벌써 그의 손에 죽어 간 자가 몇 명째인지 몰랐
다. 그가 태호를 건너는 순간부터 시작된 암습은 시간이 갈수록 더
욱 집요해지고 은밀해졌다. 천하의 적무강조차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아직 진짜배기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적무강은 차가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수십에 이르는 암습자들이 죽었지만 이것이 끝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다. 천왕성의 관문을 통과할 때 그를 습격한 수귀들은 이
들처럼 집요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
다. 하지만 지금 적무강을 공격하는 자들은 그들과 달랐다. 이들은
결코 여러 명이서 공격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명이나 둘이서 공
격했다. 그들의 목적은 적무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입히고
발걸음을 늦추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제까지 적무강을 공
격한 살수들은 별 볼일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진짜 실력자들은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은밀한 곳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겠지.'
곳곳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적무강의 능력으
로도 완벽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은신술은 절묘했
다.
'문수영, 끝까지 방해를 하는군!'
적무강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서천은 원래 십자성에 존재하지 않던 조직이었다. 패도적인 힘을
가진 십자성에 암살을 하는 조직 따위는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면 승부로 당할 문파가 없는데 굳이 암살 조직을 만들어 망신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선대 십자성주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
대의 성주 마영백이 성주직에 오르고 문수영이 문상의 자리에 오르
면서 상황이 변했다.
총명한 머리 덕에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로 십자성이라는 거대
세력의 문상 자리에 오른 문수영은 무공이 빈약했다. 하늘을 공평해
서 머리가 좋은 대신 그녀의 근골은 형편없었다. 한때 무공에도 심
취해 봤으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직접 익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결국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지는 대신 다른 방
법을 이용해 힘을 갖기로 계획했다. 그것이 바로 동천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우선 믿을 수 있는 측근들을 동천에 배치시키고 인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서천을 이용해 영약을 수집하고 암살자들에게 적
당한 무공을 모았다. 또한 사사지옥관을 바탕으로 또 다른 기관지학
을 만들었다. 그리고 천하 각지의 고아들이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을 끌어 모아 암살자로서의 훈련을 시켰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열일곱이었다.
그 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일단 아이들이 모이자 모든 것이 순조
롭게 진행됐다. 아이들을 분발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생존경쟁(生存競爭).
아이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들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아이들은 살기 위해 동기들을 죽이고 성장해 갔다.
인간이 아닌 살모사를 만드는 처절한 관문. 그렇게 천하의 살수들이
만들어졌다.
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서천의 살수들이 모든 훈련 과정을 마쳤을
때, 문수영은 마침내 독자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고 자축했다.
영문도 모르고 살수로 키워진 이백오십에 이르는 아이들, 처음 그
들의 문수영에 대한 증오는 지독할 정도로 뿌리 깊었다. 하지만 문
수영이 그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고아 출신의 남자들에겐 여인을 만나게 해서 가정을 갖게 만들고,
원래 가정이 있던 살수들에게는 매달 소정의 은자를 보냈다. 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아 출신은 자신들의 가정을 위해 검을 들었
고, 본래 가정이 있던 살수들은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검을 들었다. 자신들이 검을 들지 않으면 그 모든 행복
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들이 임무를 수행하다 죽으며 가족들에겐 매달
얼마간의 은자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그들은 죽는 것을 알면서도 싸
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문수영이 서천을 통제하는 방법이었다. 가족이란 인질이
있었기에 그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천의 천주(天主) 역할을 맡고 있는 도천(刀天)은 갈대숲에 몸을
숨긴 채 적무강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자신의 부하들이 죽어 나
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상위 서열 십위
를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이 죽어 줌으로
써 자신이 도마란 자를 죽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어차피 자신
이 살아돌아가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자신이 죽더라도 저자를 죽
일수만 있다면 자신의 식구들은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갈대숲에 몸을 숨긴 것은 도천뿐만이 아니었다. 서열 이위인 검
천(劍天)과 삼위인 창천(槍天), 그리고 천(天)이란 명호를 받은 십
위까지의 살수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곳에 오지 않
은 자는 십자성에 남아 있는 암천(暗天)과 살천(殺天)뿐이었다.
서천의 상위 서열 열 명 중 여덟 명이 적무강을 노리고 있었다. 그
들은 모두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되든 반드시 적무강을 죽일 것이라
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끼익! 끼익!
노를 젓는소리가 호수에 울려 퍼졌다. 여전히 여유롭게 노를 젓는
적무강, 이제가지 서천의 살수들은 그의 몸에 상처 하나 남가지 못
하고 허무하게 죽었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 이상 반드시 허점이 있
을 것이다. 하위 서열의 살수들은 허점을 만들어 내기 위한 희생양
이었다. 진짜는 그들 서열 십위 권의 살수들이었다.
도천은 적무강을 은밀히 따라가며 그의 허점을 분석했다.
'기감이 완벽한 자이다. 방원 오 장은 그의 영역. 오 장 안에 들
어서면 무조건 발각된다고 봐야 한다. 오 장 밖세어 공격해야 한다.
그것도 그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도천의 분석은 계속됐다. 그는 적무강의 모든 것을 관찰하며 나름
대로 필승의 전략을 짰다.
'혼자라면 필패다. 하지만 둘이라면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고, 셋
이라면 조그만 상처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넷이라면 그를 배에서 끌
어내릴 수 잇고, 다섯이 한꺼번에 공격한다면 몇 군데 정도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덟 명이라면...... 호숫가까지는 삼
백 장, 그 안에 승부를 낸다.'
도천은 모든 계산을 끝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다른 살수들에게 전음으로 알렸다. 몇 번의
전음이 오간 후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그렇
게 적무강을 죽이기 위한 밑바탕이 모두 그려졌을 때 그들은 본격적
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렁~!
배가 크게 요동쳤다.
적무강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는 이제까지와는 현저히 다르게
변한 공기를 느꼈다. 음습하게만 느껴졌던 주변 공기가 급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될 것인가?'
이제까지는 탐색전에 지나지 않았다. 적무강은 그 점을 확실히 알
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적무강으로
서는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이렇게 미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
다도 한 번에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이 그로서는 더욱 효율적인 일
이었다.
"시작해 보자구."
적무강의 목소리가 호수에 울려 퍼졌다.
촤아악!
순간 물속에서 십여 명에 이르는 살수들이 뛰쳐나왔다. 이제까지
와는 다르게 살기를 가득 드러낸 모습.
퓨퓨퓻!
그들이 대롱을 입에 물고 일제히 독침을 쏘았다. 그러나 모두 적
무강이 휘두른 노에 막히고 말았다.
"쓸데없는 짓."
적무강이 차갑게 중얼거리며 휘두르는 노에 경력을 주입했다.
퍼버벙!
순간 물기둥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살수들이 모조리 뒤로 튕
겨 나갔다. 그 순간 밑에서 다섯 개의 칼날이 배 밑창을 뚫고 올라
왔다.
"잔머리를 썼군!"
적무강이 차갑게 중얼거리며 진각으로 배 밑창을 힘차게 굴렀다.
파ㅡ앙!
순간 수면이 출렁이며 사방으로 물결이 일었다. 동시에 적무강이
타고 있던 배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허공으로 뛰어올라 비산하는
나뭇조각들을 발로 쳐내기 시작했다. 그의 발에 맞은 나뭇조각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날아가 일렬로 수면 위에 늘어섰다.
수면에 일렬로 나무 길이 생겼다.
적무강은 자신이 만든 수면 위의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쉬쉬쉭!
그 순간 살수들의 파상공세가 시작됐다. 이제까지 물속에 은신하
고 있던 수십의 살수들이 적무강을 향해 공세를 펼쳤다. 독침과 검
기, 그리고 암기가 난무했다.
마치 허공에 꽃비가 내리는 듯했다.
쉬각!
수많은 공세 속에서 적무강의 도가 처음으로 휘둘러졌다.
"......"
잠시간 침묵이 흐르고 시간마저 멈춘 듯 정적이 호수에 감돌았다.
첨벙, 첨벙!
적무강을 공격했던 살수들이 모두 수면 위로 떨어지며 어지러이
물 때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피ㅡ잉!
첨벙거리는 물소리에 섞여 미세한 바람소리가 파묻혔다. 그러나
적무강의 청력은 극히 미약한 소리조차 놓치지 않았다. 그가 생사도
를 들어 전면을 가렸다.
따다당!
연이어 화살이 생사도의 전면을 때렸다. 조그만 화살에 깃든 힘은
만 근 바위라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적무강의 신형이 뒤
로 밀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물살을 가르며 강철 채찍이 적무
강의 몸을 휘감아 왔다.
"이때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살수 일곱 명의 공세가 시작됐다. 누군가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화살을 쏘고 있었다. 그리고 물속
에서도 공격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적무강의 몸이 강철 채찍에 구속을 당한 사이 절묘하게 이루어진
공격. 천하의 그 누구라도 이런 자세에서는 반격을 할 수 없을 것이
다. 그런 계산 하에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는 훌
륭하게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적무강의 반격이
시작됐다.
파바바박!
적무강은 강철 채찍에 몸을 맡긴 채 근처에 둥둥 떠 있던 나뭇조
각들을 발로 차냈다. 동시에 채찍이 감긴 반대 방향으로 몸을 맹렬
히 회전을 시키면서 생사도를 펼쳐 냈다.
"아아!"
순간 적무강을 공격했던 살수들은 수많은 연꽃이 허공에 피어난
듯한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붉은 연꽃들은 그들의 이마 위에 피어
났다.
첨벙, 첨벙!
일곱 명의 살수가 비가 되어 수면을 때렸다. 그렇게 모든 상황은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일이 늘 그렇듯 누구에게나 비장의 한
수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도천의 비장의 수는 지금 발휘되었다.
푸확!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던 검천의 시신이 적무강의 시야를 아주 잠
시 가린 사이, 그가 검천의 시신을 꿰뚫고 적무강의 목을 향해 쇄도
했다. 그의 공격은 너무나 시기적절하게 이루어져 적무강이 도를 들
어 막이에는 너무 늦었다.
스걱!
도천의 도가 순간적으로 적무강을 베고 지나갔다.
손에서 느껴지는 전율적인 감촉에 도천의 얼굴에 희열의 빛이 피
어 올랐다.
"내 손으로 도마를 잡았다."
그의 얼굴이 웃음으로 물들어 갔다.
거대한 천왕성도 막지 못한 사내, 천하의 문상도 두려워하며 치를
떠는 남자, 그런 남자를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 제아무리 천하에 둘
도 없는 고수라 할지라도 정확한 간격만 잡으면 죽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살수였다. 눈가리개가 되어 죽은 동료들도 분명 저승에서 기뻐
하리라. 도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스륵!
그 순간 한쪽으로 돌아갔던 적무강의 고개가 다시 도천에게 향했
다.
도천이 적무가의 목에 박혔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도는 적무강
의 입에 물려 있었다.
도천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벙긋거렸다.
"젠장!"
서걱!
순간 적무강의 생사도가 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도천의 얼굴에
는 아직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빛이 가득했다. 그러나 적무강에게
그의 의문을 풀어 줄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퉤엑!"
적무강은 이빨로 물었던 도를 뱉어내고 물속에 가라앉는 도천의
시신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내 그의 시선은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을 빼앗겼다. 서둘러야 한다."
그는 태호에 떠 있는 나뭇조각들을 박차며 다시 몸을 날렸다.
'그래도 잘살겠지.'
도천의 흐려지는 시야 속에 고향에서 잃어버린 막내아들을 걱정하
며 눈물로 밤을 지새울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모든 것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서천, 최후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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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천의모든게 아작 났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