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
연필
이 연필 안에는
한 번도 씌어지지 않은 단어들이
웅크리고 있다
한 번도 말해진 적 없고
한 번도 가르쳐진 적 없는 단어들이.
그것들은 숨어있다.
그곳 까만 어둠 속에 깨어 있으면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사랑을 위해서도, 시간을 위해서도, 불을 위해서도.
연필심의 어둠이 다 닳아 없어져도
그 단어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공기 중에 숨어서.
앞으로 많은 사람이 그 단어들을 연습하고
그 단어들을 호흡하겠지만
누구도 더 지혜로워지지는 않는다.
무슨 문자이길래 그토록 꺼내기 어려울까.
무슨 언어일까.
내가 그 언어를 알아차리고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것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기 위해.
어쩌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이름을 위한 단어는
오직 한 단어일지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일지도.
그것이 여기 이 연필 안에 있다.
세상의 모든 연필이 이와 같다.
W.S. 뭐윈
이 시의 원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것>
W.S. 머윈
1927~2019.생태시인으로 명성 높은, 퓰리처 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계관시인. 앨런 긴즈버그 등과 함께 베트남 전쟁을 규탄하고 불교 철학의 영향이 글에 스몄다. 말년에는 하와이 마우이 섬에 살며 열대우림 보호에 앞장섰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메시지를 던지면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노트에 시를 썼다.
출처: 마음 챙김의 시 류 시화 엮음 120~121쪽 수오서재
필사하며 떠오는 마음: 이 봄에 꽃나무와 초화속에도 어떻게 형형색색 씨앗에서 품고 있다가 꽃을 피울꼬?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첫댓글 아~ 연필 안에만 숨어있는 것이 아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