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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국문화재단 2013년 정기 회원전 Review>
연차의 향기가 있는 미술 전시회
불교에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이 있다. 차를 마시는 것과 선을 닦는 것은 같은 맛이라는 의미로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곧 수행이라는 뜻이다. 물론 어떤 종류의 차를 마시는가 보다는 차를 대하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함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연차를 한번이라도 마셔 본 사람이라면 이 ‘다선일미’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타벅스의 Tea들은 자극적인 맛과 색으로 마시는 사람의 눈과 혀를 유혹한다. 하지만 연차는 은은한 향기와 부드러운 감촉으로 마시는 사람의 마음무게를 훔쳐간다. 그리고 그 온화한 맛의 온도는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차를 마시는 사람의 마음온도까지 훈훈하게 지켜준다. 연차는 연꾳으로 만든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물 위로 맑고 향기로운 꾳을 피워내는 연꽃은 그 향기가 멀어질수록 더욱 맑으며, 아름답고 깨끗하게 자란다고 한다. 또한 가까이 두고 감상할 수 없고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연꽃의 품성은 군자의 꽃,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상징되며 예로부터 불교뿐만아니라 동양의 선비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의 국화는 무궁화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흠모해왔던 꽃은 바로 이 연차를 만드는 연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월 4일 뉴욕시 플러싱 타운홀에는 이 연차의 향기로 가득했다. 뉴욕 한국문화재단 주최로 열렸던 2013년 ‘뉴욕한국문화재단’정기 회원전이 바로 그 향기의 진원지였다. 리셉션 시작 10분전, 플러싱 타운홀 1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따끈한 연차가 조용히 내려지고 있었다. 그룹전 형식으로 열렸던 이번 미술 전시회는 김미정, 김봉준, 김진홍, 김순남, 김현석, 권영길, 남희조, 이아론,남효정,승인영, 전석환등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한국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미국 이민사회라는 특수한 상황안에서 우리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속에서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감상 할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보통의 미술 전시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목마름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한국 커뮤니티안의 많은 미술 애호가들과 한국을 배우고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자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전시장은 어느새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업과정을 메디테이션에 비유한다. 그림을 그리는 필자 또한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것 또한 필자는 메디테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림이 제공해 주는 자유로운 공간을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화두를 직접 대입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번뇌나 인생이라는 무게를 잠시 내려 놓고 그림과 조용히 마주 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유를 따지지 않고 그냥 그림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Go as a River_ 우리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예술인들입니다.
김미정 작가 Heart or Hurt
전시장 앞문으로 들어서는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건 바로 김미정 작가의 작품들이다. 유화에 차용예술이라는 쟝르를 접목시킨 김미정 작가의 작품은 그녀가 연출하는 화려한 색채미학의 세계를 통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화려함 뒤로 흐르고 있는 작품속 여인의 슬픔이 아련하게 밀려옴을 느낄 수 있다. ‘여성’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작가의 주제 의식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와 세대의 차이를 넘어 많은 여성 관람객들과 친밀하게 소통하고 있는듯 했다. 락워디아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엘마라는 학생은 김미정의 작품을 통해 그녀 자신 뿐만아니라 그녀의 어머니, 할머니를 떠올리며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틀 속에 갖혀있는 작업보다는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우연의 효과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김미정 작가는 보여지는 것은 구상작품이지만 그 프로세스는 추상화를 작업하듯 즉흥성과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남희조 작가 Circle of Nature
다양한 쟝르의 작품들이 선보였던 이번 전시회에는 마르셀 듸샹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조형작품이 있어 눈에 띄었다. 바로 남희조 작가의 작품 ‘Circle of Nature’ 이었다. 수레바퀴 그리고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가 사용했던 가마솥 뚜껑을 이용해 작업했다는 그녀의 작품은 주제면에서는 지극히 동양적인 철학을 담고 있었지만,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서양의 정서를 많이 닮아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작가는 뉴욕에 위치한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예술학교Pratt 미술대학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고 한다. 동양이라는 그녀의 유전자적 아이덴티티와 서양이라는 그녀의 예술적 아이덴티티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작품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가지 화두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는 그녀의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만나고 있는 남희조. 그녀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항상 질문하고 고민한다는 작가남희조는 불자로서 명상과 수행을 통해 그녀의 작가적 해답을 찾고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김순남 작가
김순남 작가의 작품은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재미라는 에너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마력이 이었다. 반복적인 컴포지션과 절제된 색채의 사용으로 단조로운 듯 보이는 그녀의 캔버스는 여러겹의 한지를 이용한 레이어 작업을 통해 수직적인 깊이를 얻고 있었다. 과거 복잡하고 완벽한 컴포지션에 메달렸다는 그녀의 작품은 불교공부를 시작하면서 절제되고 정제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이전의 작품이 채우고 모으는 작업이었다면 지금 그녀가 추구하는 작품은 비우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번 작품 또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말하는 김순남 작가는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한 작가로서의 새로운 챕터를 열고 있는 듯 보였다. 새로운 작업에 강한 열정을 보이는 작가 김순남의 목소리는 삶의 에너지가 충만했고, 기대와 흥분으로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새롭게 다가올 그녀의 자유로운 작품세계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현석 작가 ‘데쟈뷰’
자신을 Storyteller라고 소개하는 작가 김현석의 작품은 설치미술, 행위예술 그리고 사진이라는 쟝르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어떤 하나의 카타고리로는 규정할 수 없는 미술작품이었다. 1000개 이상의 작은 육면체를 이용해 커다란 육면체를 재구성하고 있는 김현석이 작품은 풀이라는 인위적인 물질이 아닌 중력이라는 자연의 에너지를 통해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육면체라는 가장 우주적이고 완벽한 형태의 오브젝에 외부의 힘을 가해 무너뜨렸고 그 과정은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다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데자뷰라는 컨셉에서 작품의 영감을 끌어냈다는 그의 작업은 행위예술이라는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미디엄과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사진이라는 기록의 미디엄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는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낯설음이 첨가되며 다른 이야기로 보여질 수 있다는 동시성과 독립성의 이원적인 메세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기존의 미술작품이 갖고 있던 고정적이고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난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과 호흥이 집중되었다.
승인영 작가의 ‘씨앗’
씨앗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 작가 승인영은 일기를 쓰듯 때론 낙서를 하듯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을 통해 손이 자유로운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손이 살아있는 마음의 무중력 상태를 유지하기위해 캔버스라는 전통적인 작업틀도 배재한 그녀는 장지라는 한국의 종이에 여러겹의 아크릴 물감을 입힌 자신만의 플레이 그라운드를 만들었다. 그 위에 자신의 내면에 내재되어있는 마음의 씨앗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어 마치 수를 놓듯 표현한 그녀의 씨앗들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또다른 형태를 만들었고 그 새로운 형태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독립성을 가지며 또다른 형태의 생명체로서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통해 변화해 나갔다. 머리카락이나 부드러운 헝겊과 같이 지극히 섬세하고 여성적인 재료를 이용한 세밀한 작업을 해오고 있는 승인영의 작품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순화시켜주는 평가를 통해 그녀만의 클라이언트 층을 가지고 있었다.
권영길 작가
권영길 작가의 작품은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작품중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었다. 얼핏보면 마크 로소코의 색과 면이라는 단순한 형태를 통해 표현되는 추상적인 캔버스와도 흡사한 영권작가의 캔버스는 그 프로세스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듯 했다. 제소 작업을 하지않은 캔버스에 작업을 한다는 그는 화선지에 먹이 번지는 것과 같은 한국적인 표현기법을 서양의 물감과 캔버스라는 재료를 통해 재창조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붓 역시 동양화에서 쓰이는 큰 붓을 이용한 대담한 작업을 한다는 권영길 작가는 화려한 색보다는 한국의 전통 수묵화처럼 간결하면서도 깊이있는 모노톤의 색을 통해 물질만능주의로 인간의 깊이가 사리지고 잡음만이 무성해지는 세상에 침묵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많은 사색과 바라봄의 시간을 통해 축적한 에네지를 일필휘지의 순간성에 모두 쏟아낸다는 그의 캔버스는 오랜시간 작업을 해 온 권영길 작가. 그 만의 삶의 철학과 미학이 담겨있었다.
전석환 작가
전자공학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비디오 작가 전석환은 비디오 영상을 이용한 인스톨레이션 작품을 선보였다. Xbox의 Kinect Sensor를 통해 자신의 움직임을 담고 그 움직임을 3D영상 데이타로 분석한 후 그 비디오 영상을 3차원 공간에 다시 프로젝트 한 그의 작품은 Electronics나 컴퓨터 하드웨어가 작업의 주된 도구로 이용되었다. 게임회사의 엔지니어, 단편영화 작업등을 통해 비디오 아트의 발판을 견고히 다져온 작가 전석환은 대학원에서 비디오 아트 프로덕션을 전공하며 비디오 작가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비디오 아트라는 진보적이고도 독창적인 예술양식을 창출한 백남준이 있는 한국은 어쩌면 비디오 아트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작가 전석환의 작업은 결코 낯설지 않다. 그가 앞으로 선보일 새로운 시도와 실험정신이 담길 작품들이 기대된다.
김봉준 작가
작가 김봉준의 작품은 진솔함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30년의 은둔 후 3년전부터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소개하기 시작했다는 작가 김봉준은 기교와 색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이 있었다.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이민생활의 빡빡함 속에서 그림을 통해 그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쇄신해 왔다는 그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1시간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힘과 삶의 희망을 얻었다고 한다. 일류 미술대를 나오고도 생활과 작품활동이라는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단 1%만이 전문작가로 살아남는 미술계의 현실 속에서 30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준비해 온 김봉준 작가.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흙이나 나무와 같이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재료로 사용하는 그는 작품을 통해 떠나보냄의 미학적 철학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많은 것을 보내 주었지만 그림만은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봉김작가는 기존의 모노톤의 작업에서 색을 이용한 작업을 실험중이라고 했다. 두려움이 없이 한길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는 그의 다음 작업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우리의 모두 한송이의 연꾳들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연꽃을 만드는 사람들. 각자가 처하고 있는 상황안에서 우리는 우리들만의 연꽃을 피우기 위해 일터에서 때론 작업실에서 우리의 영혼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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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