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0장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넘김, 하나님의 보호하심
(찬송 4장)
2024-1-23, 화
맥락과 의미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죄악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면서도 의인 롯은 구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20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여서 그랄 왕에게 후궁으로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사라를 구출하셨습니다.
성경 모든 부분처럼 20장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죄인입니다. 믿음이 약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죄 용서해주시고 인도하십니다.
1. 아브라함이 사라를 아비멜렉에게 줌,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책망(1-7절)
2.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 보냈고 아브라함은 그를 위해 기도(8-18절)
1. 아브라함이 사라를 아비멜렉에게 줌,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책망(1-7절)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주했습니다. 헤브론으로부터 남쪽으로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살았습니다. 가데스는 나중에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앞서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남쪽 이집트로 갔을 때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예쁘니까 이집트 사람들이 나로부터 당신을 뺏을지 모릅니다. 나를 죽일지 모릅니다. 당신은 나의 아내라 하지 말고 여동생이라 합시다.” 그때 사라는 파라오의 후궁으로 들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출했습니다.
이번에도 사라를 여동생이라 했습니다. 그곳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데려가 버렸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장 행동하셨습니다.
사라의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가문의 모든 여성들이 아기를 낳지 못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18절) 사라는 몇 개월은 아비멜렉의 궁궐에 후궁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밤”이라는 것은 아마 아비멜렉이 사라와 잠자리를 하려고 한 그날 밤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3절). “네가 취한 이 여자 때문에 너는 죽을 것이다. 이 여자는 남의 아내다.” 아비멜렉은 꿈 속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합니다. “주여 의로운 백성도 멸하십니까? 아브라함이 그녀를 자기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순수한 마음을 가졌고 사라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변호합니다.
“주께서 의로운 백성을 멸하려 하시나이까?” 의롭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문제가 된 일에서 자신이 잘못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18:23에서 아브라함이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도록 간청할 때 쓴 말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에게 어떻게 행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6-7절).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을 나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너를 막아 범죄하지 않게 했다. 이제 그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아브라함은 선지자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녀를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네가 죽을 것이다.” 아비멜렉은 아마도 소름이 돋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무기도 별로 없고 그는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가 기도하면 아비멜렉은 살 것이고 기도하지 않으면 아비멜렉은 죽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은 세속 사회에서 “하나님의 선지자”요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2.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 보냈고 아브라함은 그를 위해 기도(8-18절)
1) 아브라함의 변명(8-13절)
아비멜렉은 다음 날 아침 모든 신하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항의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무슨 나쁜 감정이 있어서 이렇게 했습니까? 내가 죄에 빠질 뻔하게 만들었습니까?”
아브라함이 말합니다(12절).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에 내 아내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죽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거기도 계셨고 거기서 일하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곳 사람들은 여호와를 심히 두려워했습니다(8절).
아브라함은 말을 계속합니다(13절). “하나님이 나로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은 나의 여동생이라고 말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가 그의 이복누이(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여동생) 라는 말은 여기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말도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의 여동생이라고 해도 일단 결혼했으면 아내라는 신분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렇게 다른 나라에 살게 했으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 아닙니까? 그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더라도 그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그 나라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공격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더 가까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비겁한 아브라함입니다.
시편 3:3,4처럼 고백했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당신은 나의 방패이십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싸 진친다 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큰 일 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선 그를 보호해 주면서 믿음을 증진시켜 줍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게 해서 아브라함을 보호하게 합니다.
우리도 믿음이 없어서 변명거리를 만들지 맙시다. “내가 이번 사업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고객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다니는 학교 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변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가운데 계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계시면서 그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감당할 사람이 없으리라”(신명기 11:25).
대한민국 사람도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들이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른다. 그 때문에 우리를 강하게 공격하게 하면 우리 인생은 너무 불행할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망상에 빠지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 이렇게 확신합시다. 하나님 백성으로 삶의 스타일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2) 아비멜렉이 사라를 보상, 아브라함은 그를 위해 기도(14-18절)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 보냈습니다. 사라가 당한 수모에 대한 보상으로 아브라함에게 많은 양떼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에게 말했습니다(16절). “내가 은 천 개를 당신의 오빠에게 주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때는 아브라함이 그녀의 남편인 것을 알았지만 그냥 “오빠”라고만 말합니다. 자기는 그렇게 오해했고 그래서 결백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 그는 아브라함에게 자기 땅 어느 곳에든지 살라고 허락합니다.
아브라함은 비겁했고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해서 오히려 안정되게 살 곳을 주시고 돈도 풍성히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비겁하게 처신했어야 복을 주셨을까요? 꼭 거짓말을 해야 주셨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더 좋은 것을 주셨을 것입니다. 괜히 자기 품위만 망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맙시다. 품위있게 행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갑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17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온 집의 그 아내와 여종의 태를 다시 여셨습니다. 참으로 아브라함은 세상에 복의 근원이 됩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내린 벌을 아브라함을 통해 치유하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약한 아브라함이 선지자라는 것을 세속 사회에 알려 주셨습니다(7절).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시며 그가 선지자임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아브라함은 죽을 위험이 있어도 자기를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괜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비겁하게 행해서 품위만 망가뜨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속 사회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언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을 통해 세상에 복을 주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아브라함은 그토록 하나님의 큰 은혜와 능력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사람은 이토록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믿는 자도 “의롭게 된 죄인”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보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내 주위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계십니다. 일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두려운 분으로 계십니다. 그들은 알지 못해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아는 그 하나님을 순간 순간 의지하며 세속 사회 속에 살아갑시다.
세상의 세력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맙시다. 비겁하게 살지 맙시다. 우리가 믿음대로 살아가면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지 맙시다. 믿지 않는 사람과 비슷해짐으로써 안정을 누리지 맙시다. 우리가 침묵해서 우리 사회가 큰 재앙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때 불신자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항의할지 모듭니다. “왜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렇게 행했소?”
우리 주님께서 왕으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우리 안에 일하십니다. 우리도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들입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증거합시다. 불신자와 우리 사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기 때문에 당할 수 있는 손해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믿음이 훨씬 약한 사람이니까 더 겸손히 하나님 은혜를 의지합시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이렇게 격려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복음 16:33).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복음 28:20).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