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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강. 절대긍정 절대희망
반갑습니다.
교재 다라니수행 82쪽입니다.
밑에서 다섯번째 줄이죠. 함께 읽겠습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대대비심다라니경>>>
제 7분.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중생이 이 대비신주를 지송한다면 그 사람이
임종할 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오시어서 손을 주시며 어느 불국토에
나고자 하는가 물으실 것이오니 원을 따라 모두 왕생하게 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이 대비신주를 지송하는 자로서 만약 삼악도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면 저는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않으오리다.
이 대비신주를 지송하는 자로서 만약 불국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저는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않으오리다.
이 대비신주를 지송하는 자로서 만약 무량삼매와 변재를 얻지 못한다면 저는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않으오리다.
이 대비신주를 지송하는 사람 중에 만약 현생에서 일체 모든 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제가 설한 바 신주는 곧 허망하다 할 것이오니 대비심다라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착하지 아니한 자와 지성으로 외우지 않는 자를 제외하옵니다.
이 대비신주를 지송하는 사람 중에 만약 현생 중에서 일체 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관세음보살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거죠. 제가 설한바 신주는 곧 허망하다 할 것이오니 대비심다라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다만 제외되는 사람이 있는데 착하지 아니한 자와 지성으로 외우지 않는 자를 제외하옵니다. 이렇게 설하고 계십니다.
일체구하는 바를 현생 중에서 이룰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대답은? ( 대중들" 예스") 예스 , 예. 관세음보살님의 대답을 들어보겠습니다. 일체구하는 바를 현생 중에서 이룰 수 있다.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비주 수행을 자비심으로 지극정성으로 하면 현생 중에서 일체 모든 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관세음보살님께서 설하고 계시죠. '탐진치', 중생심이라고 그랬죠. 이 아상을 놓아버릴 때에 드러나는 것이 참나인 자성불이다. 지난시간에 이렇게 공부했습니다. 이 천수다라니경 17분에서는 자성불을 묘법장 또 신통장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가능성의 씨앗을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대자대비, 갖추어져 있다 . 그래서 자비장이라고도 설하고 계십니다. 발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한능력과 지혜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 관세음보살님이 가지고 계시는 대자대비와 천수천안 무한능력과 무한한 통찰력이 우리에게도 갖추어져 있다는 희소식중의 희소식입니다. 그렇다면 대비주 수행으로 이 자성불이 본래 갖추어져 있는 대자대비와 무한능력과 지혜를 발휘해서 현생 중에서 일체 모든 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수행해야 우선 자성불을 드러내고 자성불의 권능을 발휘해서 일체 모든 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이 대목, 지극 정성으로 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지극정성으로. 가난의 뿌리를 뽑고 싶습니까? 관세음보살님의 말씀은 지극정성으로 대비주 수행을 하라 이렇게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악연의 뿌리를 뽑고자 하는가? 지극정성으로 대비주수행을 하라. 어리석음의 뿌리를 뽑고자 하는가? 지극정성으로 대비주수행을 하라. 대비주 수행을 지극정성으로 할 때에 일체의 병고와 재앙의 뿌리를 뽑을수 있다고 관세음보살님께서 이렇게 간곡하게 이르고 계시는 것이죠. 자성불의 대자대비 무한능력 지혜를 발휘해서 현생 중에서 일체 모든 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지극정성으로 대비주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었습니다.
자 그 다음 대목입니다.
만약 어떤 여인이 있어 여자의 몸을 천히 여기고 싫어하여 남자의 몸을 얻고자 하여 이 대비심다라니장구를 외우는 자로서 만약 여자 몸을 바꾸어 남자 몸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않겠사옵니다. 그러하오나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자는 반드시 이루지 못할것이옵니다.
지극정성으로 수행하면 탐진치 삼독심 진심도 사라져서 자비심이 솟아납니다. 지극정성으로 수행하면 탐진치 삼독심중에 의심이 사라지고 신심이 솟아납니다. 따라서 신심으로 대비주를 외우는 여인이 있는데 이 여인이 여자몸을 싫어해서 남자 몸으로 바꾸고 싶다면 남자 몸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분 계십니까? 여자이면서 남자 몸으로 바꾸고 싶은 분 계십니까? 아무도 안계시네요.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도 요즘은 당연히 가능하게 되버린 것이 많습니다.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날아서 외국으로 가는 일은 옛날에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이죠. 요즘은 누구나 당연히 여깁니다. 또 저 지구 반대편 쪽에 있는 사람하고 얼굴을 서로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옛날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는데 요즘은 당연하다는 일이 되버렸죠. 여자의 몸을 바꾸어서 남자 몸으로 바꾸는 것도 나중에는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자, 그런데 잘 보십시다. 중생들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상식 우리의 탐진치 삼독심으로 물들어 있는 이 아상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 탐진치 삼독심을 내려놓고 자성불의 천수천안이 이미 구족되어 있는 입장에서는 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음지가 양지로 바뀔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불평만 하는 삶에서 감사하는 삶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삶에서 부유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번뇌를 보리로 바꿀 수 있고 중생의 삶을 보살의 삶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수행자가 있었는데 이 수행자는 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바라기만하고 살아왔습니다. 부모님한테도 바라기만 하고 살아왔고 형제자매들한테도 의지하고 기대면서 요구하기만 하면서 살아왔고 불보살님께도 기도하면서 수행하면서 늘 바라기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구하기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 수행자가 지극정성으로 대비주 수행을 한 끝에 탐진치 중생심을 놓아버렸습니다. 그 때 하는 말이 "지금까지는 불보살님 덕 볼 생각만 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앞으로는 불보살님들이 내 덕 보시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불보살님들이 내 덕 보시게 하겠다" 바로 이 때가 중생의 삶에서 보살의 삶으로 출발하는 시점이요 환경과 운명과 혹은 남들에게 종속된 삶 종노릇하던 삶에서 이제는 운명의 주인으로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중생의 삶에서 보살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야 말로 바로 여자의 몸에서 남자 몸으로 바뀐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여자 몸이 남자 몸으로 직접 바뀌어 지는 것도 해당되는 말이고 또 여기서 함축되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 것이죠.
삼십대 초반의 미래가 촉망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첫 출산을 하고 나서 산후풍이 왔어요. 통증이 얼마나 심했는가 온 몸의 뼈를 무언가가 계속해서 쪼오는 것처럼 통증이 심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가 했는데 더 심해지기를 숨쉬기가 어렵게 되었고 말하기조차도 버거운 상태로 악화가 되었습니다. 일어서 서 있는 것은 당연히 힘들고 앉아 있기도 힘들고 그래서 집에서는 온 종일 누워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서 움직일 때는 기어서 다니고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병원에서는 진단이 혈액순환장애 라고 진단을 내렸다네요. 한방에서는 '화병' 이라고 했답니다. 병원치료 한방치료 가지가지 치료를 오랫동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차도가 없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말이, 혹시 무병 신병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는 그때까지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무속인이 되더라도 이렇게 끈질기고 이렇게 괴로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용하다는 곳을 찾아가서 물어봤는데 한결같이 꾀병이라고 한답니다. 본인은 괴롭고 힘들고 일분일초도 견디기 어려운데 꾀병이라니. 이러면서 다시 종합병원 또 한방치료 가지 가지 방법을 찾아다니면서 끝도 없이 다니면서 치료를 했는데 차도가 없었습니다. 괴로움도 많고 돈도 많이 들어서 어느 날에는 치료비가 2000만원 이상이 들어갈 때도 있었답니다. 집 한 채 값을 치료비로 써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서 삶을 마감할 준비를 했었는데 그 때에 대비주를 만났습니다. 집에서 절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두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집에서 절에 기도하러 올 때 전철을 타고 오는데 자리만 나기만 하면은 앉아서 오는 것이 아니고 드러누워서 오는 것이 일쑤였다고 합니다. 전철에서 내려서 절까지 오는데 5분 밖에 안걸립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밴취가 있을 때 그 밴취에 누웠다가 오는 것이 이분의 오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절에 다니면서 지극정성으로 대비주 수행을 했었는데, 점차 이제 안 아픈 순간이 있기 시작을 했다네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힘들었죠. 10만 독을 목표로 계속해서 수행을 해 나가는데 대비주를 외우는 것도 힘이 들어서 삼독하는데 한 시간 걸릴 때도 있었답니다. 하루 종일 지극정성을 다해서 올인을 하는데 평균 하루에 500여독을 해서 결국 7개월 즈음에 걸려서 10만 독 성취를 해냈습니다. "별 감응이 없는가 보네, 10만 독 성취했다고 해도". 자, 그러면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보살님. 그 이후에 요즘 근황을 물어봅니다. "전철타고 다닐 때 어떻게 다니십니까?" 이 분도 자리가 없을 때는 서서 다닙니다. 자리가 있을 땐 앉아서 다닙니다. 또 전철에서 내려서 절에는 곧장 옵니다. 그리고 전에는 안 아픈 데가 없었고 안 아픈 때도 없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아플 때가 있답니다. 가끔씩 아픈데도 있다고 합니다. 이분이 요즘요, 우리 도반들하고 백록담에도 다녀오고 또 백두산 천지도 다녀왔잖아요. 그런데 이분도 백록담에 다녀왔습니다. 이분도 백두산 천지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여쭤봤더니 일을 한다네요. 돈도 번다네요. 집도 샀다네요. 불과 3~4년만의 일입니다. 이렇게 아파서 죽을 것만 같은 그 아픈 몸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건강 미인으로 변했습니다. 마이너스 인생에서 플러스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여자의 몸을 천히 여기고 싫어하여 남자의 몸을 얻고자 하여 이 대비심다라니장구를 외우는 자는 여자 몸을 바꿔 남자 몸을 이루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거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한 일로 바뀌게 된다는 소식입니다.
자, 다음대목입니다. 만약 모든 중생이 삼보의 물건이나 음식이나 재물을 침노하거나 훼손하였다면 천불이 출세하도록 참회하여도 그 죄가 멸하지 아니하오나 만약 대비신주를 외우는 사람이면 곧 죄가 소멸되옵니다. 만약 삼보의 음식이나 재물을 침식하면 시방의 큰 스승 앞에 참회하여야 비로소 죄가 소멸하는 것이오나 대비심다라니를 외우게 되면 시방의 스승님이 곧 오시어서 증명을 지으시므로 일체의 죄장이 모두 소멸되옵니다. 또 일체의 십악죄나 오역죄나 사람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여 재를 파하고 계를 파하며 탑을 파하고 절을 허물며 삼보의 물건을 훔치며 범행을 더럽히는 등 이러한 일체 악한 업과 중한 죄가 모두 소멸되옵니다
소멸하기 어려운 죄업을 주욱 말씀을 하셨죠. 삼보의 물건이나 음식이나 재물을 훼손하면 어떤 과보가 따를까요? 처절한 고통이 따릅니다. 그와 반대로 삼보에 귀의하고 공양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두고두고 즐거움과 복을 누리게 됩니다. 십악죄나 오역죄 또 비방이 나오는데요. 삼보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며 재계를 피하고 절을 허물며 범행을 더럽히는 등..이런 일체 악업을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처절한 고통이 따릅니다. 살아서는 심신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겠습니까? 법에 따라서 감옥살이를 해야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죽어서는 지옥 아귀 축생계의 삼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계속해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지은 사람은 또 어떻게 될까요. 이분은 두고두고 즐거움과 복을 누리게 됩니다. 살아서도 즐겁고 복을 누리게 되고 죽어서도 이 복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누리게 됩니다. 선업을 짓지 않은 사람은 이런 즐거움과 복을 누릴 수가 없죠. 선업을 지은 사람만이 이런 즐거움과 복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즐거움과 복을 누리는 체험은 선업을 지은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악업을 지은 사람이 또 체험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절한 고통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선업만 지은 사람은 악업을 지은 사람이 체험하는 극심한 고통과 지옥 아귀 축생계의 고생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악업을 지은 사람만이 이런 체험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말이 좀 이상합니까?
그래서 이런 처절한 체험을 하기를 원한다면은 악업을 부지런히 지으시면 됩니다. 일부러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서 악업을 짓는 사람은 없겠죠. 그런데 이렇게 결국 살아서도 괴롭고 죽어서도 삼악도의 고통을 겪는 그 과보를 부르는 소멸하기 어려운 일체의 죄업도 소멸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대비주를 외우라는 거요. 대비주수행으로 소멸된다는 이야깁니다. 처절한 고통이 몰려올 때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기 쉽습니다. 좌절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암담해합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님께서 대자비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처절한 고통이 몰려올 때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처절한 고통보다도 더욱 처절하게 대비주수행을 하라 이렇게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통을 당해서 좌절하고 방황하고 혹은 원망 속에 빠져 있으면 그 고통은 계속해서 지속됩니다. 어떨 때는 더 심한 고통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고통을 당했을 때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처절한 고통보다도 더욱더 지극정성으로 대비주수행을 한다면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깨달음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고통이 큰 만큼 깨달음이 큽니다. 깨달음이 큰 만큼 성취력이 큽니다. 깨달음이 큰 만큼 자비행 실천의 위신력도 커지게 됩니다. 번뇌가 보리가 되고 불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도립니다. 이 대목이야 말로 관세음보살님께서 간곡하게 일러주시는 절대긍정의 메시지 입니다. 절대 희망의 메시지 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좌절하지 말고 과거를 핑계대지 말고 더 큰 힘을 내어서 대비주 수행을 하라는 메세지입니다. 과거에는 어떤 여유로 해서 앞으로 삼악도에 떨어질 중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죄의식이나 또 자기 비하에 빠져서 좌절하거나 방황하지 말고 더 큰 힘을 내어서 대비주 수행을 하라. 한 명을 해롭게 했다면 100명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라, 한 개의 악업을 지었다면 100개의 선업을 짓겠다고 원을 세워서 힘차게 대비주 수행을 내 나가라는 소식입니다. 끝내 죄업을 소멸하고 성불한다는 관세음 보살님의 메세지 절대긍정 절대희망입니다.
우리 참나는 자성불은 불생불멸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 참나는 죄업과 즐거움과 고통을 초월해있습니다. 아무리 죄업이 중하더라도 참나보다는 다 작습니다. 아무리 마음의 짐이 무겁더라도 참나의 힘보다는 다 약합니다. 아무리 과제가 산더미 만큼 크게 보여도 우리 참나의 크기보다는 작고 작습니다. 일체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더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참나 보다도 위대한 것은 없다. 참나가 이기지 못할 고난은 없다. 참나가 소멸시키지 못할 죄업은 처음부터 없다는 소식이예요. 이렇게 큰 말씀을 이 대목에서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고통이 몰려올 때라도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방황하지 말고 그 고통의 크기 보다도 더욱 큰 힘을 내어서 지극정성으로 대비주수행을 해나갈 때에 죄업을 소멸하고 현생 중에서 원을 이루고 끝내 성불 한다는 소식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를 독송하면서 알게 된 돌아가신 분 영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떻게 과거의 이 악업을 소멸할 수 있는지 교훈이 될 만해서 말씀드립니다. 1940년도 그 무렵에 살았던 이름이 '막동이' 었답니다. 그 한 마을에서 착하게 살았는데 그 마을에 함께 살고 있던 '오씨' 라고 제가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이 오씨 라는 사람이 어느 날 큰 돈을 잃어버렸어요. 누구가 훔쳐갔는지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이 추측하기를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이 막동이가 훔쳐간 것이 틀림이 없다. 이렇게 의심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을 잃어버린 당사자인 이 오씨도 틀림없이 막동이가 그 짓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누명을 씌워버렸습니다. 누명이라고는 모르죠.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동이로 봐서는 아주 억울한 누명이잖아요. 억울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마을 사람들은 또 오시 당사자도 믿어주지 않아요.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겠습니까, 이런 일을 겪을 때. 그래서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으니까 서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이 벌어져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막동이 힘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크게 다쳤어요.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으면 속에서 원한이 일어나기를 “자손만대로 내가 두고두고 끝까지 원수를 갚으리라, 꼭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이런 원한을 품으면서 아픈 채로 2~ 3년을 지냈는데, 그 때가 일제시대 말기입니다. 강제징용이 됬습니다. 아파도 젊으니까.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는데 "거기 어디냐?" 질문을 했더니 "이 허허 벌판으로 봐가지고 만주쪽이 아닌가" 짐작을 해요. 그 만주 허허벌판으로 가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 함께 강제노역을 하던 사람들과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함께 도망친 사람들은 아무리 쫓아와도 숨으면서 도망을 잘 가서 탈출에 성공을 한것으로 보이는데 이 막동이는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몸이 부실했기 때문에 제대로 도망을 갈수가 없었고 이렇게 몸이 부실하게 된 것은 오씨가 자기를 누명을 씌워가지고 폭행을 가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죽으면서 원한이 더 깊어졌겠죠. 그래서 그 만주 허허 벌판에서 죽임을 당해서 거기에서 아마 시신이 처리가 됬나봐요.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이 원한을 갚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자기가 오씨 그 오씨의 큰 아들 뒤를 쫓아다니는 영가가 되어 버렸어요. 오씨의 큰 아들을 쫓아다니면서 이 오씨의 큰 아들은 그 무렵부터 망나니로 살게 됩니다. 걸핏하면 동생들을 때리고 또 주색잡기를 하면서 재산을 자꾸 축냅니다. 결국 이 오씨도 돌아가시고 그 부인도 돌아가셨는데 큰 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삽니다. 재산이 없어지니까 동생들 몫까지 자기 몫으로 챙길라고 하고 그래서 형제간에도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 와중에, 이 오씨의 둘째죠, 큰 아들의 동생입니다. 이분은 화병으로 젊어서 죽고 또 막내아들도 정신이상으로 쓸쓸이 죽어갔습니다.
이 막동이 영가가 생각하기를 원수를 갚을 만큼 갚았다, 이 집은 이제 갈 데 까지 갔구나, 이제는 나도 좀 쉬어야겠구나, 이런 마음을 먹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고 춥고 배고프고 외롭습니다. 원수를 아무리 갚을려고 해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아요. 그 집안이 망하고 형제간에 그렇게 파산이 되는 것을 봐도 후련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허허로운 벌판에서 괴로움을 겪으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디선가 아주 따뜻하고 아주 편안하고 아주 밝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답니다. 이 소리가 무슨 소릴까? 어디서 들려오는 소릴까? 그 소리를 따라서 왔는데, ‘대비주수행법회’ 예요. 대비주수행법회에 와서 누군가?, 누구 소리에 내가 이렇게 따뜻하고 밝고 편안한 소리로 다가오는가? 살펴봤더니, 자기의 원수인 오씨의 둘째 며느리 소리입니다. 그래서 스님한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스님 분합니다 억울합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이렇게 하소연을 시작했는데 스님이 이 막동이 영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사연을 들어보고는. “용서하십시오”. 반박을 합니다.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습니까?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죽고 지금까지도 고생을 하는데 억울한 누명을 썼는데?” 스님은 또 “ 참회하라”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참회를 합니까?” 반박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소리를 들으면서 필시 막동이 영가가 이번생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과거에 지었던 원인이 있을 것이다, 원인이 지어진 과거의 모습 과거의 일로 되돌아가봐라",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순간에 과거인연이 알아지는데. 과거생에는 자기가 이 오씨한테 큰 손해를 끼쳤어요. 큰 돈을 이 막동이 때문에 오씨가 손해를 봤고 오씨는 그 일 때문에 줄줄이 다른 사람들한테도 시달리게 되고 결국 홧병으로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과거 인연을 살펴보면서 과거에는 내가 오씨한테 큰 죄를 지었구나, 그러면서 아차 싶으면서, 참회가 일어나고 오히려 용서를 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 용서합니다 또 용서해주십시오 참회합니다" 이렇게 용서를 하고 참회가 일어난거요. 대비주소리를 들으면서 그러면서 한다는 말씀이 "참회하니까 마음이 이렇게 홀가분하네요, 용서 받고 용서하니까 똑같은 햇살이 이렇게 밝고 따뜻하고 아름답군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악연이라고 생각했던 그 오씨의 둘째며느리가 지극정성으로 대비주수행한 그 공덕으로 이 둘째 며느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아버지뿐만 아니라 시아버지와 원한 관계에 있던 돌아가신 분도 해탈하게 된거요.
자 우리 같이 합장하시면서 부처님 말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마침내 원망은 쉬어지지 않는다.
오직 참음으로써 용서로서 원망을 쉬나니 이 법은 변하지 않는다.
신묘장구대다라니수행으로 나와 조상님 후손들의 업장까지도 소멸됩니다.
인연 깊은 영가님들이 해탈됩니다. 나의 수행이 나만의 수행이 아닙니다 .
예, 편안하게 하십시오.
그 다음대목입니다.
다만 한 가지 일만 제하오니 그것은 이 다라니에 의심을 내는 자이옵니다. 의심을 내는 자는 비록 작은 죄나 가벼운 업도 멸하지 아니하옵거든 하물며 중죄이리까. 그러하오나 죄는 비록 멸하지 않사오나 이 신주를 외운 연고로 때달음의 먼 인연은 짓게 되옵니다.
예, 대비주수행으로 누구나 과거의 업장을 소멸하고 현생중의 소원을 이루고 깨달음을 이루고 성불하게 되는데, 제외되는 사람이 세 사람 있습니다. 한 명은 착하지 아니한 자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착하죠. 그 다음에 또 한명은 지성으로 외우지 않는 자입니다. 또 한명은 의심을 내는 자입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지극정성으로 대비주수행을 하면 탐진치 삼독심 진심이 사라져서 자비심이 솟아오릅니다. 지극정성으로 수행하면 삼독심에 해당되는 의심이 사라져서 신심이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지극정성을 수행하면 누구나 다 대비주수행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대비주 수행은 믿는대로 되는 수행 입니다, 믿는대로 되는 수행. 여기에서 의심을 내는 자는 제외하옵니다 그랬는데 의심도 믿음입니다. 어떤 미음입니까 안된다는 믿음 안된다는 부정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믿는대로 돼요. 어떻게 됬습니까? 믿는대로 안된다 이 말입니다. 성취 안된다 이말요. 따라서 안되리라는 믿음조차도 믿는대로 안되는 수행입니다. 그러니까 된다는 믿음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극정성을 다 할 때 우리는 현생중의 구하는 바를 이룰수 있다는 결론이죠. 믿는대로 된다. 믿음에서 원이 나오고 생각이 나오고 말이 나오고 행이 나옵니다. 믿는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거요. 믿는대로 되리라 원대로 되리가 생각대로 되리라 말대로 되리라 행대로 되리라 이것이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자비심 지성심 신심으로 수행할 때 현생 중에서 구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 결국 깨달음을 이루고 성불한다 . 오늘 내용은 절대긍정 또 절대희망이라는 관세음보살님의 간곡한 말씀입니다. 대비주수행은 언제나 최상의 길을 여십니다. 함께 활짝 웃으면서 수행을 열심히 해나가십시다. 감사합니다
(201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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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장보살님 어제 오늘 정말 벽돌 힘들지만 가볍게....^^ 벽돌 얹으셨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합장_()_
스님법문을 다시 읽을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