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를 보다 문득 붓을 드는 것처럼
창고의 각파이프를 보다 불현 용접봉을 들었습니다.
요걸 어디다 쓸까 궁리하는데, 폴리카보네이트를 두른 온실을 만들까?
그냥 짬짜미로 생각하는 일에 요 폴리카보 소잰 값이 넘 비싸서 안 되겠고
대문을 새로 하나 만들까? 싶다가도 이 공산 너무 크고 복잡해!
...하여 요걸로 후딱 해치웠죠.
저 뒤의 파고라정자는 내 첫 제자 둘이 와서 지어주었는데
고 때 남았던 각파이프가 창고에 쌓여 있었던 것.
이 친구들도 어언 나이가 들어 건망증이 생겼는지
사놓았던 5cm짜리 각파이프를 잊고 또 사왔지 뭡니까.
"선생님, 용접할 줄 아시죠?" 하며 놓고 간 그 '캔버스'예요.
그 제자에 그 선생인가요?
제법이죠?^^!
남겨 준 파이프는 두 개가 남았고, 2.5cm * 6m짜리 가는 파이프는 셋 사고,
방부목은 두 개 추가하고, 페인트 작은 통 하나, 오일스테인은 튜브형으로 더 작은 거 하나를
남김 없이 비우고 나니 딱 10만원이 들었답니다.
페인트와 오일스테인의 양을 잘 맞춰서 통을 깨끗이 비우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그림쟁이의 베이스가 그것을 썩 잘 맞추는 것도 있겠지만
페인트 가게를 잘 찾아가서야, 오라~ 이런 물건도 있었던 게로구나!!
그렇게 해서 남은 똥가리들로 차탁도 한나, 벤치도 한나 만들었더니
색깔이 같아 연못 가로 모두 한 세트가 되었어요.
색상이사 더 맘에 들게 고르고 싶었으나
나무에 바를 양이 고작 저 몇 개 안 되는 나무 면적이라
수성스테인으로 나온 작은 상품을 쓸 수밖에 없었으니 그저 만족할밖에요.
이로써 내 시간의 부피와 내 정서의 질량과 내 노력의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하게나마 파고라형 벤치를 마감하였습니다.
원래 이깟 손바닥만한 시설물일지라도 데모도(てもと) 없이는 내키지 않는 작업이 용접입죠.
지지면 지진 쪽 반대 편으로 뒤틀리기 때문이고 또 용접부위가 매끄럽지 않게 되어 애를 먹어요.
내 고급의 시간이며 내 명품의 허리며 내 화가의 눈고생이 여간 아닌 짓이라
아틀리에에서 붓을 드는 흥과 창고에서 용접봉을 드는 흥은 사실 차이가 많이 납니다.
아내는 절대 잡아주지 않습니다.
전에 마지 못해 한 번 잡아주는데 붙잡고 서서 이를 앙다물고
지가 쇠토막처럼 굳어버리는거에요글쎄!
전기도 안 통하는 것을 붙들고 저절로 감전사하는 뇨자가 화순에 살더라니까요?
단 한번도 그래 본 사례가 없지만 난 또 아내가 "와우!"하며 환호해주지 않을까 환청을 들으며
오늘도 열심히 아조 열심히 만들고 짓고 세워놓습니다.
내가 뒤안에 있을 때 한 번 앉아 보았을 겁니다만 정작 다가가 내가 어쩌냐고 묻자
삐그시 고개만 끄덕이더니 파고라를 꿰어 그냥 통과해버립니다.
ㅎ..
어젯밤엔 시집 간 딸이 왔는데 가만 듣자니 파고라가 어쩌고 벤치가 저쩌고 하면서
비가 와서 앉아보지 못하겠다, 잘 만들었지이, 멋지네 하면서
뒷담화가 제법 달콤하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가을 깊으라고 비가 내리니 겨울이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뒷터에 아직 남은 몇 나무를 베어 와야 선녀와 나뭇꾼의 우화가 완성이 될텐데 ...!
숲지붕에 동참하는 서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들은 바지잠방이의 소나무와 편백나무를 가리고 있어
솎아주기로 하는데 어찌나 단단한지 벌목꾼들도 은근 피해갈만큼 내 톱날을 무시하죠.
그 앵앵거리는 소리는 내 여린 귀의 정서며 내 세심한 손마디며 내 착한 목덜미를 몹시 괴롭힙니다.
엄마파고라 아래 새끼파고라를 짓고는 또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은 늘 저 쉼터들이 잘 바라보이는 거실에 앉아서 하죠.
그리고 또 이 집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내 벗들과 내 빛나던 청춘과 내 그리움의 실체는 다 무엇일까?
내 꽃들은 내 화실은 내 책은 내 약은 내 나이는 다 무엇인가?
이 성성한 겨울의 문턱에 서서 지극히 적적하게 혼자가 되어
안으로 본디로 하냥 캐어 묻곤 합니다...
첫댓글 오늘도 생강나무샘과 모임에서 만나 언제 뵈러가나... 그러고만 왔어요
제가 주말에 이래저래 가야하는 데가 많아서.... 그래도 올가을 가기전엔 갈 수 있겠지요
생강나무님을 뫼시러 가야할까봐요.^^ 가을 요참에 바쁜 일이 많죠? 도담마을도 칡넝쿨 좀 걷우는 울력을 못해요. 꼭 항꾸네 해야할 일인데 맞추기가 어려워서... 꽃은 시들어 허전해도 생강나무님 더불어 꼭 한 번 오세요~~!
그러고싶어요 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