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검절약하는 삶의 자세
구리9기 서경숙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가스불을 켜고 밥을 한다. 그리고 시끄럽게 울려대는 딸랑이 소리가 들릴 때까지 다시 이불 속에서 깨기 싫은 잠을 비몽사몽 붙잡는다. 밥솥 딸랑이 소리는 두 번째 알람 역할까지 한다. 압력밥솥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 집은 예약 같은 건 없다. 가스불 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야 늦지 않게 밥을 먹으니 일찍 일어나야 하는 수고로움이 늘 함께 한다. 가끔 나도 쿠쿠도 하고 쿠첸도 하고 싶은 마음이야 넘치지만 10년 넘게 고장 한 번 없는 튼튼한 밥솥은 새로운 솥으로 바꿀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딸랑이가 울리지 않고 치지직 김 빠지는 소리만 난다.
“뭐야 고장 났나?”
이제 바꿔도 아까울 것 없다는 생각에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든다. 결국 딸랑이는 울리지 않고 처음엔 구수했던 내음이 점점 진하게 올라오더니 아뿔싸 밥이 탔다. 가끔 뜸을 너무 오래 들여서 밥을 태우기도 하지만 그 덕에 누룽지를 얻기도 하고. 그럴 땐 호기롭게 오늘은 누룽지를 만들었다며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새까맣게 타버렸다. 하필 오늘은 아이들 소풍 가는 날인데…. 이왕 만드는 거 많이 싸서 여기저기 나눠 먹을 생각에 욕심껏 밥을 많이 한 게 문제가 된 듯 싶다. 살살 밥 알 한톨 한톨 긁어모아서 아이들 도시락을 겨우 싸고 압력솥 상태를 확인해 보니 별 문제 없어 보인다.
그렇게 새 전기밥솥 구매의 희망은 다음으로 미루고 당장 수북한 김밥 재료와 탄 밥솥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오전 내내 도시락 준비에 정신은 혼미하고 일단 쉬자 싶어 어지럽게 널어진 주방을 뒤로 하고 가만히 둘러보니 내 살림살이가 참 빈곤하다. 그 편안한 소파도 없으니 바닥에 털썩 앉아 있는 내 모습도 우스꽝스럽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바닥에 대자로 누우니 찬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찬바람 불 때마다 생각나는 카페트나 전기장판을 등이 기억하나 보다.
몇 년 전 어머니께서 마련하신 황토매트 사은품으로 딸려오는 작은 매트 하나를 우리에게 주셨고 “와 좋구나” 하며 우리도 거실용 하나 사자 하면서 그 작은 매트를 거실로 안방으로 옮겨 다니며 보낸 겨울이 몇 해 가 지났다 날이 추워지면 네 식구가 그 작은 매트에 옹기종기 붙어 잠도 자고 책도 본다. 아이들은 부스럭부스럭 부대끼며 자는 게 즐거운 놀이라도 되는 듯 신나는 모양이니 그걸 또 다행이라 생각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따뜻하고 넓은 거실용 전기매트는 그렇게 다음해로 넘어가기 일쑤다. 소파가 없는 이유는 처음에는 집이 좁았고 아이들이 생기고 나니 소파 놀 공간을 아이들이 더 넓고 자유롭게 활용 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훌쩍 자랐고 지금도 우리 집 거실은 편하고 따뜻하게 누울 소파도 카페트도 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없는 살림이 너무 많았나?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생긴 일인데 한 참 짐을 내리는 중간에 아래서 큰소리로 외친다.
“아직 가전제품 다 안 내려왔어. 먼저 내려 보내!! 치 냉장고 없나? 에어컨, 텔레비전 큰 거부터 빨리빨리!”
처음부터 없는 것들이라 내려보낼 것도 없는데 한참을 없는 물건을 찾느라 소란스럽다. 그러더니 “와~ 없는 거 많네요.” 한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 사야 하나 싶어 목록에 올려두긴 했으나 어수선한 짐 정리를 다 끝낸 지금에도 그냥 목록에만 고스란히 있을 뿐이다. 신혼살림 장만 이후 딱히 고장이 나서 바꾸거나 혹은 그것도 불필요하다 생각되어 바꾸지 않으면서 산 세월이 긴 탓이기도 하고 아둥바둥 조금씩 집 늘리는 재미에 자린고비 정신이 생긴 탓일지도 모르겠다.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고 보니 없는 살림살이 자랑질만 했구나. 다들 “들여 놓을 때가 없어서 못 산다.” 하면 어이없어 하지만 뭔가 채워지고 좁아지는 게 참 익숙치 않다. 그 흔한 커튼도 달지 않으니 우리집은 참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지난 여름 방학에는 전기절약 노트와 우리집 전기, 가스 요금을 조사해 가는 과제가 있었는데 우리집 에너지 소비량은 같은 평수 다른 세대와 비교해서 평균 50프로도 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은 신기해 하고 우리 부부는 의기양양 다 같이 아끼고 아껴서 불필요한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게 노력하자는 말로 단번에 근검절약 하는 엄마아빠의 모범적인 모습까지 남겼다. 편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게을러진다. 좀 불편해도 좀 더 몸을 쓰는 일을 많이 하자. 이렇게 빈곤한 살림살이를 무마시키면서 써질 듯 말듯 말이 되는 듯 안 되는 듯 이번에도 쉽지 않았던 이게 수필인건지 뭔지 제목도 정하지 못하고 갸우뚱 하며 과제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