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모닥불 피워 보았는가? 후~ 입 바람으로도 활활 일어나는 불꽃, 불쏘시개로 바람길 열어주면 활활 타오르는. 이글이글 타올라야 아름다운 불꽃!
문정리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조문 가는 길 난생 처음으로 삼형제가 함께 갔다. 나이차가 많이 나서 같이 논 기억이 없다. 다다음주면 우리 집 일곱 남매가운데 맏인 큰형은 일흔이고, 넷째인 작은형은 예순이다. 서울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천 사는 큰 매형은 큰형보다 한 살 아래. 다녀오는 길, 머무는 자리 내내 추억이 일어난다.
엊그제 토요일 서울 가는 길은 정체다. 반절도 못 갔는데 정안 못 미쳐서 밀린다.
네비게이션navigation에 남은 거리가 아직 100km도 더 남았는데, 해가 진다.
꽉 막힌 길, 불쏘시개로 휘젓는 모닥불이 확 일어나는 것 마냥 확! 확! 차들이 멈춰 서고 붉은 불들이 일어난다.
한 추운 겨울 달아오르는 붉은 모닥불은 언 마음을 녹이는데, 길을 막는 빨간 불은 마음까지 막는다.
10km단위로 줄어드는 게 고맙다가 나중에 1km단위로 거리가 줄어드는 것도 참 고마워하며 네비게이션navigation 경로안내 도착예정시간에 세 시간을 넘겨 갔다.
큰 매형은 옛날 추석·설에 인천서 전주를 거쳐 관촌면 방수리까지 26시간이 걸린 일도 있단다. 큰 누나가 먹고 마실 것을 세 끼 만큼 챙겨 다니셨다고, 언제는 전주 들러 저녁 먹고 관촌으로 가렸는데, 자정을 넘어 너무 늦게 와 문 앞에 나와 기다리시던 어머니 아버지께 인사만 드리고 간 적도 있단다.
큰형이 옛날에 전주서 서울 가는 신영여객이 있었는데, 한 여덟 시간을 달려 내리면 서울사람인지 아닌지 바로 안다고. 비포장 길을 달린 차 먼지를 온몸으로 뒤집어쓰고 내린다고. 내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무 살 가까이 차이나는 큰형과 나는 강산도 바뀐다는 십 년이 두 번 쯤 바꾼 날을 산다. 큰형은 운암에서 나고 자라 옥정호를 헤엄쳐 건너며 놀았고, 전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겨우 한벽당이나 평평바위, 각시바위, 큰 방죽(작은 방죽은 어둑해서 누구도 물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다), 우전시내로 멱도 감고 족대, 낚시로 고기도 잡으러 다녔다.
우전시내 가는 길에 네거리(평화동 네거리다. 오늘이야 온통 네거리 천지지만 그땐 오거리 하나에 네거리, 삼거리 드물었다.)지나 과수원이 줄 지어 있는데, 여름이면 복숭아 한두 개 따가서 멱 감으며 냇물에 씻어 먹는 게 참 맛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작은 형 돌팔매질 전설을 다시 들었다. 형들도 우전시내 가는 길에 복숭아를 따가서 먹는데(우리 동네 놀이 전통인가?), 하루는 복숭아를 지키는 네거리 아이들에게 들켜 튀다가 아무개형이 잡혀 형이 나서서 구출했단다. 그러면서 서로 돌팔매질을 하는데 그때 형이 남중학교에서 핸드볼을 했거든, 네거리패들 돌은 미치지 못하고 작은 형이 던진 돌은 멀리 날아가 싸움을 끝냈단다. 뒤에 같은 학교 다니는 네거리 사는 동무에게 들으니 돌에 맞아 머리 깨진 아이도 있었단다. 군대 다녀오면서 불어난 몸을 오늘까지 유지하는 작은형이 한창 때 마라톤 맨으로 불리고 동네 형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고 산 까닭가운데 하나다. 잊고 지냈던 동네 형들, 동무들 이름을 하나씩 꺼내보며 서울로 갔다.
한 추운 겨울 모닥불이 확 일어날 때면 언 몸도 녹고 굳은 마음도 풀리지만,
정체된 길에 늘어선 차들 멈추는 브레이크 등 빨간불은 참 답답하다.
올 겨울 내내 촛불이 꺼지지 않고 이 땅을 밝힌다. 겨울 모닥불처럼 따뜻하게 마음을 일으킨다.
큰형과 작은형 그리고 나까지 그리 긴 것같이 아닌 삶에 1950년 남·북 전쟁도 들어있고, 유신, 5·18, 87년 6·10, 6·15, 2014년 4·16,…을 같이 살았다.
나는 60년대 중반에 전주시내에서 나고 자라서 방에 장판 깔리지 않는 삶을 모른다. 그러나 전주시 서서학동 338번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떠올리면 우리 집 뒤로 논이 있고, 동네 곳곳이 밭이다. 돼지를 키우는 집도 있고, 겨우내 텅 빈 밭과 논이 우리 놀이터였다. 완산칠봉을 뒤로 둔 동네, 오늘 어느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길옆 산자락으로 동네가 있고 논과 밭이 있는 것 마냥 우리 동네도 그러했다.
마흔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어느 어른과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옛날에는 애들이 방에서 뛰면 먼지가 올라 방이 뿌옇다고. 어찌 물으니 옛집에 장판이 없었단다. 멍석을 깔고 지내다 없는 집은 나락이든 무엇을 말릴 때면, 그 멍석을 꺼내 말리고 다시 방에 들이고 했단다.
어릴 적에 전기가 나가 촛불을 켜면 어둑하고 침침했지. 그런데 시골에서도 살았던 누나 말은 호롱을 켜다 제사 때 초를 켜면 그리 밝았단다.
우리 삼형제, 함께 하지만 또 많이 다르다. 우리 일곱 남매도 그러하다.
같은 경험을 하고 또 다른 삶을 산다.
아버지 어머니까지 넓히면 우리 삶은 일제강점기에 이르고, 종교·사상·역사로 보면 어느 처음을 바라보고 전주와 남한을 넘어 우주로 옮아간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거든 삼추 또한 일각이겠다. 우리는 이 땅 역사 속에 살았고 우리가 산 것이 역사다.
고속도로가 뚫려서 일일생활권이 되었다고 우리는 후진국이 아니다, 중진국도 아니고 무려 개발도상국이라고 배운 게 5학년 때이던가? 어쩌다 서울이든 먼 길 나섰다가 그날 돌아오는 길이면 일일생활권이 떠오른다.
옛날에 밤이 깊어 차가 끊기면 구이나 운암 쪽에 사는 일가나 옛 이웃사촌들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했다. 그렇게 함께 산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일일생활권이 되어 길이 뚫리고 차가 늘어나면서 자고 가는 이웃이 사라졌다.
차가 없어 못가면 아는 집을 찾기보다 여관을 찾아야 하고 그도 못할 형편이면 찜질방이고, 형편없는 사람은 어둔 밤을 노숙해야겠지.
일일생활권一日生活圈은 일일생활권一一生活圈이 되어 함께 사는 기억을 잃어버렸다.
오늘 이 땅 삶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한단다.
일일생활권一日生活圈은 일일생활권一一生活圈이 되어 일일一一이 따로 따로 제 삶을 꾸려야한다.
한겨울 모닥불을 지펴본 적이 있는가?
불을 꺼본 적이 있는가?
제아무리 활활 타오르던 불도 불붙은 나무를 하나하나 따로 꺼내두면 곧 사그라진다.
불은 모으고 바람을 일으켜야 활활 타오른다.
서울 가는 길, 자동차 꼬리에 붙은 멈춤 불은 길을 막았다.
멈춤 불이 모일수록 켜질수록 길이 막힌다.
우리 역사를 막는 멈춤 불들이 마지막 길을 막는다.
사대주의 종놈들이 나서서, 반공과 유신 비루들이 날뛰며 멈춤 불을 일으킨다.
재벌들이 기름을 대주며 뒤로 멈춤 불 값을 챙긴다.
또 다시 불, 한겨울 추위를 떨치고 나가는 정신들이 일어나 작은 촛불을 들었다.
불은 모이고 일어나 역사를 세운다.
길을 막는 자동차 꼬리 불 말고 역사를 막는 저 빨간, 새빨간 거짓말을 막아야한다.
곧 죽을 듯이, 곧 죽일 듯이 우리를 속이고 옥죄던 저 새빨간 거짓을 드러내고 없애야한다.
날이 춥다. 불들아 모여라! 함께 살자. 함께 사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