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무침회
“ 친구야, 가오리무침회 묵고 싶다.”
“ 그래,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서 가오리무침회에다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노래도 한 곡 땡겨야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입에 물고 산제비 넘나들던 달빗골 길에
창꽃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울 친구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중환자실 입원한 친구 만나 끊길 듯 이어가며 부른 노래. 일주일 후, 가오리무침회를 먹자고 한 친구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일월이 오면 가오리무침회를 찾는 이유는 옛 시절의 연정을 찾기 위함 만은 아니리라.
무엇이 그리 풀리지 않던지, 밤새 술을 마시고 탄 새벽 동대구역 비둘기호 열차는 포항역에 도착했다. 깨지 않은 술 탓인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바다 탓인지, 백사장에 가서 고함을 질렀다. 다소 속이 풀려 죽도시장 위판장에 들렀다. 저마다 아침을 알리는 생의 악다구니가 치열한데 나는 흡사 실패자의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막 경매 끝난 바다 고기를 입맛대로 샀다. 그중에 단연 제일은 가오리였다. 아이스박스에 넣고 대구행 시외버스를 탔다. 도착하기 무섭게 친구들을 불렀다. 친구들은 ‘저놈이 또 속이 뒤집혀서 바다에 갔다 왔구나.’라며 득달같이 모였다.
가오리는 뼈째 먹는 맛이 최고다. 연골조직이라 입에 들어 오도독거리는 소리는 뇌 속에 가득 차 있던 걱정거리를 부수고도 남았다. 껍질 벗긴 육질을 한입 크기의 토막으로 썰었다. 이때 크기가 작으면 먹는 이들의 눈싸움이 벌어질 게 뻔하다. 큼직큼직하게 썬 후, 막걸리로 치댄다. 그 이유는 아마 식중독 걸리지 않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였으리라.
겨울 무를 채 썰어 식초와 삼성당을 조금 넣은 뒤 버무린다. 큼직한 바다 덩어리와 새초롬한 육지 뿌리가 만나 조화를 이루면 그야말로 최상의 레시피가 된다. 이건 여자의 손보다는 투박한 사내의 손으로 만들면 더욱 정감이 가는 음식이다. 거기다 친구들이 저마다 들고 온 막걸리, 잔을 나누면 이건 내 속내 평정하려고 간 바닷길이 온 친구들 속을 훨훨 털어내는 자리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우정은 혈기가 넘쳤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 누구는 먼 길 가고, 병원에도 있다. 또 누구는 아직도 생활전선에서 ‘아, 옛날이여!’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내일이라도 가오리무침회 한번 먹자고 연락하면 과연 몇 명이나 모일까. 우선 술 끊고 자극적인 음식 못 먹는 나부터 마음뿐이다. 아, 다시 불러보는 '앗싸, 가오리' 무침회여!
첫댓글 가오리무침회가 우정의 상징이었네요. 우정을 함께할 친구가 점점 흩어져 가니 짠해집니다~~
우리의 인생 후반기란 이 또한 가오리무침회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우북하게 모인 친구들 중앙에 벌건 가오리무침회가 한번이라도 턱하니 놓여지길 빌어봅니다.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 ' 앗싸 가오리'처럼 말이죠. 김귀선 샘, 감사합니다.
오오,
가오리 무침회는 여자의 손보다는
투박한 사내의 손으로 만들면 더욱 정감이 가는 음식이군요.
군침 돕니다.
네, 회장님
한 볼때기 가득 넣고
뽀드득뽀드득 씹다가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입술 쓰윽 닦을 때 나오는 그 소리,
'앗싸, 가오리' 처럼요.
글을 읽다 보니 저절로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언제 우선생님 고령 댁에서 가오리 파티 한번 합시다요~. ^^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손 번쩍!
저도 끼워 주세요!
@小 珍 (박기옥) 이크, 두 분 회장님 죄송합니다.
괜히 입맛 돋우는 이야기를 올렸군요. 하필이면 오늘 텔레비전 '한국인의 밥상'에서 진도아리랑과 더불어 간재미무침회(전라도식)가 나왔네요. 뱃일하는 이들, 밭일하는 이들 우리 어르신들이 노동요로 부르기도 한 진도아리랑과 더불어 한 볼때기 먹는 음식. 우리들 조상들은 생의 애환을 이렇게 음식과 아리랑으로 풀었네요. 음식 하나에도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연결되니 괜히 한 소절 부르고 싶습니다. '시아버지 줄라고 명태국을 끓였더니 아이고야 어쩔거나 빗자루 몽댕이 삶았네.' '시어머니 죽으라고 충원충수 했더니 친정어매 죽었다고 기별이 왔네.' 아리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