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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치매가 좋다
윤성식
삐삐삑, 삐삐삑!
현관문 도어락의 신경질적인 파열음. 뒤이어 현관문이 거칠게 여닫힌다. 역시 아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파마 머리가 성난 듯 헝클어져 있다. 위아래가 어울리지 않는, 갈색 추리닝 바지에 낡은 꽃무늬 블라우스. 사흘째 같은 차림이다. 아내는 신발을 내팽개치듯 벗고 거실에 들어선다. 얼굴에는 서릿발이 잔뜩 어려 있다. 오늘도 장사가 뜻대로 되지 않았거나, 시장 사람들과 언쟁이라도 벌이고 온 걸까. 아니면 대호의 존재 자체에 대한 짜증 때문일까.
대호가 반사적으로 아내 얼굴을 살피며 바짝 긴장한다. 등줄기에 차가운 소름마저 돋는다. 죄지은 사람처럼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엉거주춤 소파에서 일어서려 한다. 하지만 무릎과 고관절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는다. 무릎이 힘없이 꺾이며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쯧, 또 그 추리닝, 꼬락서니하고는… 아주 소파랑 살림 차리지 그래?! 하루 종일 소파에 파묻혀서 전기세만 축내고… 티브이를 박살내 버려야지. 에이, 꼴도 보기 싫은…”
아내는 여느 때처럼 시퍼렇게 날이 선 말투로 속사포처럼 쪼아댄다. 굶주린 독수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내리찍는 듯한 소리. 늘 그렇지만 듣는 순간 가슴과 정수리가 송곳 끝에 찍힌 듯 아린다. 뼈마디가 얼어붙고 오금도 저려온다. 아내의 폭언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든다. 그럴 때마다 대호의 가슴은 속절없이 무너지곤 한다.
“아직 걷기가 많이 불편해서 밖에 나다니기 힘들어.”
대호의 기어드는 목소리엔 깊은 무력감이 묻어난다. 그 대꾸에 아내의 눈빛이 더욱 차갑고 매섭게 일그러진다.
회사 정년퇴직 후, 어느 비 오는 날. 대호는 경비 자리라도 알아보려 나섰다가, 육교 계단에서 미끄러져 굴러떨어졌다. 고관절과 무릎뼈, 갈비뼈와 허리뼈가 바스러지고 척추 신경이 눌렸다. 다섯 차례에 걸친 대수술 끝에 겨우 휠체어 신세는 면했지만, 다리 한쪽을 심하게 절게 되었다. 그것은 곧 경제적 사망 선고였다. 그 순간부터 집안의 공기는 빙하처럼 얼어붙었다. 퇴직금과 아이들 결혼 준비금은 병원비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다리 장애 가장.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자식들의 출발선마저 지워버린 아비. 가족들에게 대호는 그저 산소만 축내는 짐짝이었다. 쥐꼬리만 한 대호의 연금과 변변찮은 아내의 만둣가게 수입이 아내를 매일같이 신경질로 몰아붙였다.
“어휴, 이 등신 같은… 저런 게 서방이라고…”
눈매를 날카롭게 일그러뜨린 아내가 한 차례 더 쪼아대며 주방으로 향한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아내의 언어 폭력과 표정 폭력. 또다시 살점을 후벼 파는 듯한 모멸감이 몰려온다. 남자와 남편과 가장의 자존감은 붕괴된 지 오래.
몇 달 전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느 자영업 부부의 일화가 떠오른다. 농산물 공판장에서 장사가 안 되자, 아내가 짜증을 내며 남편에게, “이 뒤질 놈아! 여기서 바로 죽어버려!”라고 독설을 퍼부었단다. 그러자 남편이 그 자리에 뇌출혈로 쓰러져 결국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남편의 뇌혈관을 터뜨린 것은 아내가 퍼부은 폭언의 독소가 아니었을까. 대호 역시 아내가 거듭 쪼아대면 자신의 장기마다 치명적인 독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 피를 토하며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호가 견뎌야 할 어쩔 수 없는 몫으로 남아 있었다.
사고로 몸이 망가진 후, 처음 아내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을 때, 대호는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믿었다. 시간이 지나 다리가 회복되면 아내의 눈빛도 다시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하지만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시간은 오히려 아내의 경멸을 더 단단하고 뾰족하게 굳혀갔다. 이제 아내의 눈에 대호는 동반자가 아니었다. 그저 집안의 미관을 해치고 돈만 축내는, 하루라도 빨리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 같은 무엇이었다.
대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소파 등받이에 천천히 등을 기댄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하얀 천장이 오늘따라 유독 황량해 보인다.
“그릇 정리가 이게 뭐야?! 이 인간아,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 해?!”
주방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아내의 천둥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온다. 대호는 가슴 밑바닥에서 움트는 뜨거운 싹을 누르며 침묵으로 응수한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나름대로 설거지와 그릇 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개수대의 물기까지 깨끗이 닦았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일부러 설거지를 빌미로 억지 트집을 잡고 있는지도.
"이게 깨끗한 거야? 기름때가 그대로 남아 있잖아! 눈깔과 손모가지는 폼으로 달고 있냐?!”
아내는 속된 말로 대호를 들입다 쪼아댄다. 그래도 명색이 남편인데 ‘눈깔’과 ‘손모가지’라니. 하지만 대호는 어쩔 도리 없이 무슨 말이든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아내는 갑자기 싱크대에서 몸을 돌리더니 플라스틱 물컵 하나를 대호의 발 밑으로 와락 내던진다. 대호가 크게 움찔한다. 컵이 억울하다는 듯 대호의 발 밑에서 좌우로 비틀거린다. 아내가 주방을 떠나 안방으로 거칠게 들어간다. 죄 없는 안방문이 꽝, 하고 심한 고통을 뱉는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컵과 안방문이 벌벌 떨며 대호에게 말한다. 어서 이 지옥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라고.
대호는 지옥을 떠나는 방법이 생각난 듯,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 절룩거리며 베란다로 나간다. 베란다 창문에 붉은 노을이 참담하게 걸려 있다. 오늘은 유난히 진한 핏빛 노을. 대호는 주름진 얼굴에 핏빛 노을을 머금고,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조용히 연다. 차가운 바람이 훅 밀려와 얼굴에 와닿는다. 아득한 창 아래 가로등 불빛이 희뿌옇게 번지고 있다. 창문 밖으로 좀더 고개를 내민다. 바람이 대호의 옷자락을 살짝 흔든다. 눈가에 고인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창틀을 꽉 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변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 거기서 멈춘다. 여전히 지옥 떠나는 방법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초라한 삶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 억울한 것인지, 대호 스스로도 종잡을 수가 없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도로 조용히 닫는다. 핏빛 노을이 천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길 건너 베란다 맞은편의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은은한 붉은 조명이 켜진 5층 창문턱마다 노인들이 빨래처럼 널려 있다. 요양원이다. 주로 치매 노인들이 요양하는 곳. 예전에 대호의 어머니가 입소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 어머니가 입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에 도착하자 6인 생활실 한쪽에 어머니의 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침상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대호를 바라보셨다. 그 메마르고 쓸쓸한 눈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때 잠깐 정신이 돌아왔는지, 이제 그만 가라는 듯 손을 내저으셨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살면서 그렇게 순식간에 눈물이 터져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알량한 남자의 체면 때문이었을까. 대호는 얼른 생활실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엉엉 울음마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어머니는 결국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훗날 자신이 치매를 앓는다면 자식들이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 줄지 알 수가 없다. 기대하지 않지만.
맞은편 요양원의 창문에 매달린 노인들이 한둘 사라진다. 아마 취침 시간이 된 모양이다. 숨을 쉬고 있어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치매 노인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린다. 어머니를 면회하던 어느 날, 파리하게 시든 한 치매 노인은 집에 데려다 달라며 내내 고함을 치다 실신한 적이 있었다. 또 다른 노인은 입마개를 한 채 침상에 사지가 묶여 지내기도 했다. 폭력성이 심해져 다른 입소자나 요양보호사를 물리적으로 공격한다는 이유로.
과연 요양원은 편안한 장소에서 쉬면서 심신을 보살핀다는 ‘요양’의 의미에 충실한 곳인지, 그저 의문스럽기만 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처럼 웃던 어느 치매 노인의 천진한 모습으로 볼 때, 치매의 세계 안에서만큼은 스스로 행복할 것 같다는 점이다. 그래, 치매에 걸리면 날마다 야근수당 몇 푼에 목을 매던 지난 세월도, 사장의 부당한 지시에 비굴하게 고개 숙이던 치욕의 시간도, 가족들의 차가운 외면의 눈길도, 쉼 없이 쪼아대는 아내의 악마 같은 구박도, 자식들의 따가운 원망도, 개인적인 지난 허물도 모두 기억에서 깨끗하게 지워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뇌리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완벽한 구원일지도 모른다. 다만, 직접 치매 노인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대호는 베란다 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는다. 파자마로 갈아입은 아내가 안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향한다. 식탁 위의 가방에서 팔다 남은 만두를 꺼내 접시에 담는다. 대호에게 가져가, “이거나 처먹어!” 하며 응접탁자 위에 탁 내려놓는다. 마치 개나 돼지에게 잔반을 내던지듯이. 대호는 ‘처먹어’라는 멸시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도 들어서 이제는 귀에 딱지가 얹힐 만큼 익숙해졌으니까. 그렇지만 익숙해졌다는 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모멸감과 수치심은 여전하니까. 대호는 허기를 느끼며 차갑게 식은 만두를 입에 넣는다. 목구멍으로 차마 넘어가지 않아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기도 한다. 동시에 서러운 눈물을 왈칵 쏟는다.
밤이 깊어 갈 무렵. 현관문이 열리며 회색 정장 차림의 아들 민준이 들어온다. 훤칠한 키가 대호를 닮았다. 손에는 드링크제 한 상자를 들고 있다. 불콰한 얼굴과 게슴츠레한 눈을 보니 퇴근 후 한잔한 모양이다. 구두를 벗으며 소파에 앉아 있는 대호 쪽을 흘끔 본다. 그게 인사의 전부다. 눈빛은 아내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여전히 냉랭하다. 작년에 돈이 없어 결혼이 깨진 이후 더욱 냉담해져 있다. 소파 한켠에 백팩을 벗어 던지고 주방 식탁으로 간다. 상자를 뜯어 병 하나를 꺼내 단숨에 마신다. 아직 아홉 병이 남아 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대호에게 한 병도 건네지 않는다. 대호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상자 뚜껑을 닫아 버린다. 대호는 아들에게 의례적으로 “민준아, 밥 먹었어?” 하고 말을 걸어보려다 그냥 입을 닫아버린다. 어차피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아니면 대꾸조차 없을 것이다. 말을 삼키는 것이 점점 습관이 되어간다.
아들은 대호를 흘끗 보며 안방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엄마, 거실에 냄새 많이 나요, 방향제 좀 뿌려요.”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꽝 닫는다. 원통형 손잡이의 잠금 단추가 딸깍, 소리를 토해낸다. 대호의 가슴 한복판이 서늘해진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솟구친다. 아들이 뱉은 ‘냄새’라는 단어가 대호의 뇌리를 잔인하게 유린하며 떠나지 않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손에 쥔 리모컨만 무심코 만지작거린다. 결국 대호는 아들의 무례한 행동에 반응하지 않고 티브이에만 눈을 박는다. 반응하는 법을 잊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잠시 후, “엄마, 나 왔어!” 하며 딸 수진도 귀가한다. 날씬한 몸매가 드러나는 노란색 원피스 차림의 예쁜 모습이다. 귀 옆으로 흘러내린 잔머리와 높이 묶은 포니테일이 경쾌하게 흔들린다. 콜센터에서의 감정 노동 때문인지 퇴근 후의 얼굴은 늘 피곤에 절어 있고 가시가 돋쳐 있다. 그래도 딸바보 소리를 듣던 대호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수진, 우리 딸 왔어? 고생 많았구나!” 하며 미소를 머금고 반색한다. 그러나 딸은 뭔가에 토라진 사람처럼 대꾸는커녕 대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기 방으로 직행한다.
대호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걷힌다. 딸을 향해 내밀었던 마음이 갈 곳을 잃고 허공에 매달린다. 딸바보 소리를 듣던 시절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고,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가족은 모두 집에 돌아왔는데, 정작 자신만 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 같다. 회사 다니던 시절, 맨날 출장과 야근, 주말 특근과 고객 술 접대로 아이들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가족여행은커녕 아이들 생일조차 함께하지 못한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어쩌다 술에 잔뜩 취해 귀가한 밤이면, 자는 아이들을 억지로 방에서 끌어내 훈계와 호통을 번갈아 퍼붓곤 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오늘의 간격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그런 아빠에게 무슨 애틋한 정이 남아 있겠는가.
문득 딸의 방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전화로 친구와 수다떠는 모양이다.
"응, 말도 마. 우리 아빠 또 소파에 있어. 맨날 저래. 완전 짐이야, 짐! 오빠와 내가 모아놓은 돈까지 다 써버렸잖아. 우리 어릴 땐 주식 하다 완전 말아먹어 큰 빚까지 졌대.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데…. 오빠와 나도 생활비 좀 보태고 있어. 돈이 없어 나도 결혼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귓전을 파고드는 딸의 수다 소리에 대호의 가슴이 찢어진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자신이 주식으로 빚을 남긴 무책임한 아비로 굳어져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인다. 그래도 담배마저 끊어 가며 모은 돈으로 자식들 모두 대학까지 마치게 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 짐”이라니!
대호는 딸의 방을 쳐다보며 무릎 통증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에서 분연히 일어난다. 그러나 예전에 딸을 혼내다 딸이 가출한 사건을 떠올리곤 다시 소파에 주저앉는다. 어찌할 수 없는 체념이 서서히 몸 위에 내려앉는다. 사고가 나기 전, 주식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대호는 리모컨으로 티브이 볼륨을 확 높인다. 딸의 목소리를 묻어버리기 위해서다. 거실 가득 티브이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자 곧바로 딸의 방에서, “아, 진짜 시끄러워!” 하는 날 선 고함이 튀어나온다. 대호는 놀란 듯 멈칫하며 황급히 티브이 소리를 줄인다. 손이 벌벌 떨린다. 리모컨을 소파 위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하얀 리모컨조차 한심하다는 듯 대호를 쳐다본다. 대호는 시선을 천천히 들어 말없이 티브이 화면을 응시한다. 눈은 화면을 향해 있지만, 무슨 장면이 지나가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화면만 번쩍거리는 듯하다. 대호의 눈이 티브이를 벗어나 창밖의 깊고 검은 어둠 속에 내내 꽂힌다.
티브이를 끄자 어둠 속의 거실이 서늘한 적막에 잠긴다. 안방과 아이들 방은 모두 검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마치 대호에게는 그 문턱조차 영영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가족 모두가 변했다. 세상 만물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이치처럼. 그러나 세상에 과오 없는 가족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크고 작은 과오를 안고, 서로 살갗을 맞대고 위로하며 사는 것이 가족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비록 허물과 사고로 주저앉았을망정, 가족을 부양해 온 가장의 세월마저 깡그리 지워버리고, 이토록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호는 쉬 잠들지 못하고 소파에서 연신 뒤척인다. 그때 소파 위의 빛바랜 휴대폰에서 화면이 환하게 켜지며 경보음이 울린다. 대호는 소파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집어 든다. 비상 문자메시지다. 치매를 앓고 있는 여든네 살 할아버지가 실종되었단다. 키 165cm, 상의 갈색 자켓, 하의 검정 트레이닝바지. 목격자는 즉시 신고해 달란다.
대호는 그 문자메시지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이 대호의 푹 꺼진 눈매와 주름진 볼을 기괴하게 비춘다. 실종된 치매 할아버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을 그 노인은 이 추운 밤거리를 헤매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치매의 세계 안에서만큼은 모든 나쁜 기억을 지우고 스스로 홀가분하게 떠돌고 있기를, 대호는 조용히 기도한다.
대호는 까닭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며 휴대폰을 닫으려 한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노래지며 휴대폰을 바닥에 떨군다. 그리고 소파 아래 거실 바닥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마치 불현듯 블랙아웃이 온 사람처럼.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에 아내가 안방에서 나오다가, “꺄악! 미쳤어!” 하며 비명을 지른다. 대호가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거실 구석에 놓인 화분에 오줌을 갈기고 있었던 것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헤벌쭉 웃는 모습이 마치 실성한 사람 같다. 아내가 기겁하며 대호의 등짝을 냅다 후려친다. 대호는 입가에 연신 침을 흘리며, “어, 엄마… 밭에 거름 줘야지… 헤헤, 헤헤헤…”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다.
아내는 “이 미친놈아! 그만 멈춰!” 하고 소리를 지르며 대호의 바지춤을 잡아당긴다. 그러나 요지부동. 오줌을 다 눈 대호는 추스르지 않은 바짓자락을 질질 끌며 주방 냉장고 쪽으로 움직인다. 냉장고 문을 열더니 날계란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껍데기째 입안으로 밀어 넣고 마구 씹기 시작한다. 계란 껍데기가 입안을 찔러 피가 노른자와 섞여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계란 한 개를 삼킨 후 냉장고에서 또 하나의 계란을 꺼내 든다. 아내가 그 꼴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계란을 낚아챈다. 그러자 대호는 피 섞인 계란 침을 흘리며 아내의 멱살을 잡는다. “네가 내 시계 훔쳐 간 년이지! 이 도둑년아! 내 시계 내놔!” 하며 오른손으로 아내의 뺨을 철썩 갈긴다. 평생 남편에게 손찌검 한 번 당해보지 않았던 아내는 사색이 된다.
대호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쏘아본다. 몇 분간 그렇게 있더니 갑자기 주방으로 가서 냄비 뚜껑 두 개를 챙겨 나온다. 거실을 배회하며 뚜껑 두 개를 심벌즈처럼 마주 부딪친다. 입가에는 섬뜩할 만큼 기괴한 미소가 매달려 있다. 집 안에 귀를 찢는 듯한 금속성 소음이 가득 차오른다. 아내가 “이 새끼야! 그만두지 못해?!” 하며 대호에게 달려들어 냄비 뚜껑을 빼앗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관으로 가 신발장에서 아내의 신발을 꺼내 들고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춘다. 그 신발을 화장실로 가져가 변기통에 처박기도 한다. 대호의 이상 행동에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대호는 다시 거실로 나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바닥을 세게 구른다. 쿵쾅, 쿵쾅! 대호의 육중한 몸이 거실 바닥을 내리찍을 때마다 집 전체가 울린다. 현관문 초인종이 날카롭게 울린다. 아내가 문을 연다. 아랫집 남자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항의한다. 아내는 연신 허리를 굽힌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 아내의 얼굴에 분노가 번진다. 아내는 거실 선반에서 대나무 효자손을 꺼내 들고 대호의 여기저기를 마구 때린다. 효자손이 부러질 듯하다. 그러나 대호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오로지 바닥을 세게 구르는 재미에만 몰두하고 있으므로.
대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등줄기는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다. 얼굴에는 여전히 기괴한 미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차츰 헐떡임이 잦아진다. 그러다 갑자기 휘청, 하고 중심을 잃더니 거실 바닥에 둔탁하게 쓰러진다. 그대로 눈을 감는다. 잠시 후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잠이 든 것이다. 아내는 한껏 인상을 찡그린 채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이 쓰레기 같은 산송장이…” 하고 씹어뱉듯 악담을 던지고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회사에 근무 중인 아이들에게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시간이 지나면 정신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도 잊지 않고 일러둔다.
아내의 기대와 달리, 대호의 이상 행동은 그날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밤중에 갑자기 일어나 안방문을 두드리며 괴성을 지르기 일쑤다. 그로 인해 아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가고, 얼굴은 날로 쑥대밭이 되어간다. 지금으로선 만둣가게 운영도 여의치 않다. 그건 대호에게 간헐적으로나마 수면제를 먹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며칠 뒤 주말 저녁, 이번에는 대호가 주방에서 날카로운 식칼을 들고 온다. 식탁에 앉아 있는 아내를 향해 칼끝을 겨눈다. 아내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칼 앞에서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른다. 얼굴에선 극도의 공포가 피어오른다. 그 비명에 아들과 딸이 각자의 방에서 튀어나온다.
아들이 대호의 손목을 비틀어 식칼을 빼앗아 바닥으로 내던지며, “아빠, 미쳤어요?! 진짜 왜 이래요?! 에이, 씨 진짜!” 하고 소리친다. 그 목소리에는 걱정보다 증오가 앞서 있다. 아들은 대호를 이끌고 소파에 강제로 앉힌다. 의외로 대호가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다. 딸은 주저앉은 아내 옆에 붙어 앉아, “엄마, 무서워! 우리 어떡해. 이제 더는 이렇게 못 살겠어!” 하고 오열한다. 대호는 그 모든 소란을 멀리서 바라보는 타인처럼 관조하고 있다. 여전히 초점 풀린 눈으로 끈적한 침을 줄줄 흘리며.
아내의 신청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원이 집을 방문한다. 아내는 "선생님, 아주 중증이에요, 중증! 밤낮 칼을 들고 위협하고 오줌을 마구 싸질러요. 언제 우리를 해칠지 몰라요. 아주 폭력적이니까 조심해야 합니다!"라며 마치 오염 물질을 치우듯 질색하며 조사원에게 대호를 넘긴다. 목에 사원증을 건 조사원이 가방에서 장기요양인정조사표를 꺼내 든다. 신체 기능, 인지 기능, 행동 변화, 영양 상태 등에 대해 아내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호를 체크하기 시작한다.
조사원 앞에 앉은 대호의 초점 풀린 눈이 오늘따라 유난히 흐리멍덩해 보인다. 끈적한 침을 계속 흘리며 이따금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숟가락을 쥐여줘도 밥을 먹지 못한다. 수저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음식 그릇을 뒤엎기도 한다. 바지에 대소변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코를 막는다. 조사원 역시 인상을 찡그린다.
대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사원을 향해 눈을 흘기며 “도둑년, 뒤질 년!” 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마냥 퍼붓는다. “나를 죽이러 왔지?!” 하며 조사원의 머리채를 잡고 비틀기도 한다. 이제는 걷기는커녕 부축 없이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다.
“중증 치매 같은데, 오늘 조사한 내용은 등급판정위원회에서 심의합니다. 결과는 한 달 안에 통지서 갈 겁니다.”
조사원이 조사표를 갈무리하며 일어선다. 아내는 현관문 밖까지 따라 나가 연신 허리를 굽힌다.
몇 주 뒤, 아내가 우편함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봉투를 꺼낸다. 장기요양 2등급. 요양원 입소가 가능하다는 통지서다. 아내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날, 대호가 구급차에 실린다. 아내가 동승한다. 대호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다. 가슴께에 걸린 턱받이는 흘러내린 침으로 흥건하다. 대호의 폭력성과 이상 행동에 대비해, 구급대원들은 대호의 두 팔을 끈으로 묶어 구급차의 내부 손잡이에 매달아 놓는다. 구급차가 덜컹거리며 집에서 멀어진다. 대호 앞에 앉은 아내가 마녀 같은 눈으로 대호를 흘기며, “어휴, 병신 같은…” 하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구급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이따금 대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괴성만이 구급차를 가득 채울 뿐.
도심의 빌딩 숲이 멀어지고 어느 푸른 산자락에 구급차가 닿는다. 차 문이 열리자, 도심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청량한 산바람이 대호의 흰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입구 정문에 '노란요양원'이라는 금빛 간판이 걸려 있다. 화강암 기둥 아래에는 분홍 제라늄 화분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정문을 지나자 푸른 앞마당이 펼쳐진다. 잔디가 햇살을 받아 싱그럽게 빛난다. 잔디 가장자리에는 수령이 오래된 듯한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의연하게 서 있다. 단아해 보이는 요양원 건물 외벽은 명칭에 걸맞은 연한 노란색이다. 정말 노인들이 지내기 좋은 편안한 풍경이다.
대호는 상냥한 요양보호사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요양원 건물 현관 쪽으로 향한다. 아내는 마지막 손조차 흔들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긋지긋하고 무거운 짐을 털어냈다는 안도의 한숨만을 내쉬고 있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쩌면 만둣가게에서 혼자 버텨온 아내가 대호의 부재를 채워 줄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무죄일 것이다. 굳이 채울 무언가를 꼽는다면,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아닐까. 대호의 식사와 약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것에서의 해방, 소파에서 리모컨을 마음대로 쥐는 시간, 괴성을 듣지 않고 깊이 잠드는 밤, 설거지 트집 없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저녁, 우아한 차림으로 친구 모임에서 수다 떠는 시간,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쇼핑하고 여행 다니는 시간,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공원을 여유롭게 거니는 시간, 그저 혼자 조용히 따뜻한 밥 한 끼를 먹는 일.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오랫동안 빼앗겼다고 느꼈던 일상의 작은 것들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대호가 언젠가 아내에게 진심으로 돌려주고 싶었던 것들이기도 했다.
대호는 요양원 현관 입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아내와 눈이 마주친다. 아내를 향해 나사 풀린 사람처럼 입꼬리만 헤벌레 끌어올려, 세상에서 가장 무구하고 바보 같은 작별의 미소를 건넨다. 하지만 아내는 그 미소를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냉정하게 돌아선다.
대호는 요양보호사의 안내를 받아 생활복으로 갈아입는다. 6인실 침상. 하얀 침대 시트가 깃털처럼 포근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쪽. 창밖으로 요양원 정문을 나서는 아내가 보인다. 아내가 점점 멀어져 간다. 대호의 가슴을 내리찍던 아내의 날 선 독설도 멀어진다. 싸늘하고 매섭게 일그러진 표정도, 따가운 원망과 외면의 눈길도 모두 사라진다. 이제 경멸 섞인 차가운 시선을 견디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내가 대호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대호는 비로소 손등으로 입가의 침을 훔치고 턱받이를 푼다.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은 대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 나간다.
“그래, 치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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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이 고달파서
차라리 세상일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치매가 좋을수도 있겠는데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어찌해야하나
치매의 고통을
잘 그려내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 작가님, 우리 치매 걸리지 말고,
실수해도 아내에게 사랑 받으며 오래 문학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속의 가정 상황은 차라리 치매가 좋겠다는 주인공의 심리적 압박도 있었겠지만
'치매 걸리기 전에 죽어야 할 텐데' 하던 어느 지인이 떠오르네요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을지...
치매는 무서운 것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장 시인님, 안녕하세요.
안 좋은 기억을 지워주는 치매가 차라리 좋은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채움보다는 비움
망각이라는 좋은 선물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치매와 망각은 또다른 탈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치매가 좋아"
허구지만 생생해서 실감납니다.
참 잘 쓰시네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이라서 무섭습니다. 내년 봄날, 농약사 갈 때 치명적인 제초제 한두 병 구입해야겠습니다. 건망증이 지난해부터 부쩍 심해져 보건소 가서 치매 검사해보니, 정상이지만 살짝 불안합니다.
외조모님, 외삼촌, 외사촌, 작은아버지 ᆢ
모두 스스로 삶을 마감했지요.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치매 없는 건강한 심신으로 오래 오래 문학하시길 빕니다.
문학이 옛 나쁜 기억을 털어버릴 또다른 탈출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