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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25. 02. 08(토) 22:00~02. 09(일)
□ 곳 : 백복령~생계령~삼각점~고뱅이재~석병산(1055m-‘푯돌’)~두리봉(1033m-‘푯돌’)~삽당령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3명(회장 포함)
□ 날씨 : 햇볕
□ 길 : 눈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5. 02. 09(일) 03:17~13:29(10시간 12분, 쉰 시간 포함)
□ 일러두기
1.. 나온 데[출처]
○ 푯돌에 적힌 산 높이⇒‘푯돌’로 적음
○ 푯말에 적힌 산 높이⇒‘푯말’로 적음
○ 실전 백두대간 종주, 조선일보 ??? ⇒‘실전 백두’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3:17 백복령(780m-‘길 푯말’)에서 길 나섬.
○ 05:15 생계령[산계령](640m)
○ 07:20 해돋이[해뜨기, 일출]
○ 07:35 삼각점. 922m 봉우리로 추정됨.
○ 08:04~08:26 아침밥
○ 08:28 고뱅이재
○ 09:54~09:57 석병산(1055m-‘푯돌’), 머묾.
○ 10:00~10:04 일월문, 머묾.
○ 11:08~11:15 두리봉(1033m-‘푯말’)
○ 13:29 삽당령. 산행 마침.
석병산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이번 구간은 고치령~도래기재 구간에 이어 피재~댓재, 댓재~삽당령 두 구간을 건너뛰어 걷게 되었다.
백복령은 “복령이라는 약초과 있는데, 이 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백복령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1937년 42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로로서 옛 조상들의 애환과 숨결이 묻어 있는 길이다.”
“원래 백두대간은 백복령을 거쳐 자병산으로 향해야 하나 현재는 석회석 광산 개발로 자병산이 훼손되면서 백두대간이 단절되었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백복령 높이는 780m(‘길 푯말“)이다.
백복령은 “색깔이 흰색인 복령. 오줌이 잘 나오게 하고 담병, 부종(浮腫), 습증 따위를 다스리거나 몸을 보하는 데 쓰인다.”《여기까지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따옴》
귀한 한약재가 많은 지역인 것 같다.
약초를 모르는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환경 보존과 자원 개발과 채취.
둘 사이 조화와 공존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백복령~석병산~삽당령 구간을 걸을 때는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백복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자병산(872.5m-‘실전 백두’)이 시멘트 따위로 쓰는 석회석[석회암]을 캐기 위해 산봉우리부터 산 일대가 파헤쳐져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석회석[석회암]을 캐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필 백두대간 허리를 잘라내야 하겠는가?
백두대간 길 고개를 넓히면서 산을 무참히 깎아낸 곳 가운데 몇 곳은 백두대간 길을 잇는다면서 ‘동물 이동 통로’를 만들고 복원하는 판인데, 한쪽에서는 백두대간 길이 잘려 나가고...
앞으로 백두대간, 9정맥 산등성(이)만이라도 온전히 보존할 수는 없을까?
백복령을 나서(03:17) 3분쯤 뒤 넓은 길을 가로질러 건넜다.(03:20)
백복령에서 거의 2시간쯤 뒤 생계령에 닿았다.(05:15)
생계령에서 2시간쯤 걸었을 때 동쪽에서 해가 돋기 위해 붉은 기운이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퍼지기 시작했다.
해뜨기 전이 하루 가운데 가장 추운 법이다.
손이 몹시 시려 몇 번인가 두툼한 겉 장갑을 벗고 웃옷 주머니에 넣어둔 ‘따끈이’[핫팩]에 손을 녹였다.
드디어 07:20쯤 찬란한 해가 솟았다. 눈이 부셨다.
끊임없이 기체를 공급받아 수십만(?) 도(度) 이상으로 불타면서 우주를 뜨겁게 달구고,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해[태양]...
태양이라는 존재를 잊고 지내다가 아침에 해가 돋을 때 그 위대하고, 고마운 존재를 생각한다.
경외감과 감사함...따위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해가 솟는 걸 보고 나서 잠깐 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07:35)
922m 봉우리로 추정되는 봉우리다.
여기서 대간 길은 오른쪽[북쪽]으로 거의 90도쯤 굽어진다.
이곳에서 뒤쪽[남쪽]으로 높은 봉우리가 보였다. 그 봉우리들은 맨 남쪽에서부터
①938.7m[938.9m](민둥산,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② 940m 봉우리
③ 964m 봉우리
④ 922m 봉우리로 우리가 걷지 않은 백두대간 길이다.
백복령에서 922m 봉우리에 이르는 대간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첫째, 42번 국도에 근접한 길[남쪽 길]로 생계령을 거치지 않는 길이고,
둘째, 다른 길은 42번 국도에서 남쪽 길보다 북쪽에 있는 길로 이 길로 가면 생계령을 거쳐 가는 길이다.
아마 무쏘 꿈 님이 이야기한 것 같다.
“백두대간 상 민둥산이 있는데, 우리는 왜 민둥산으로 가지 않지?...”
그 말을 듣고 내가 “백두대간 상에는 민둥산이 없어요. 억새 따위로 유명한 민둥산은 따로 있어요...” 뭐 이런 요지로 말했다.
집에 와서 백두대간 지도를 자세히 보았다.
이번에 우리가 걷지 않은 구간, 위 첫째 길을 걸었으면 지나쳤을 938.9m 봉우리가 민둥산이었다.
민둥산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에 속하는 백두대간 길이다.
내가 지레짐작으로 백두대간이 아니라고 말했던, 억새로 유명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민둥산(1118.8m)은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에 있다.
무쏘 꿈 님에게 헛 정보를 말해서 미안하다.
922m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섰더니 밍키, 산이랑 님이 아침밥을 먹고 나서면서 우리에게 그곳, 비탈진 곳에서 “밥 먹으세요...” 했다.
그곳은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런데 비탈진 곳에서 밥을 먹기에는 부적당할 것 같아 그대로 내려섰다.
200~300 미터쯤 앞쪽에 풀밭[초원] 같이 보이는 편평해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요기할 생각으로 그대로 걸었다.
요기할 적당한 곳이 없었다.
세찬 바람을 조금 피한 곳-최상의 곳은 아니었다-을 잡아 빵과 과자를 먹었다.
맛있는 빵과 과자를 내준 무쏘 꿈, 승승장구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시린 손을 녹여가며 요기했다.
내가 가져간 빵은 푸석푸석 잘게 깨어져 먹기 불편하여 한 조각만 떼어 먹었다.
아침밥을 치르고 길을 나서(08:26) 바로 고뱅이재에 닿았다.(08:28)
고뱅이재는 고개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편평한 곳이다.
우리가 고뱅이재 바로 옆에서 아침밥을 먹었던 것이다.
고뱅이재에서 1시간 24분쯤 뒤 석병산 앞[거의 남쪽] 바위 봉우리에 올라섰다.(09:52)
곧 석병산(1055m-‘푯돌’)에 이르렀다.(09:54)
3분쯤 머물다 석병산을 내려서(09:57) 눈 많고, 가파른 비탈을 조심스레 내려서 일월문에 닿았다.(10:00)
전에 여름에 갔을 때는 뻥 뚫린 구멍 사이로 아래쪽을 한참 내려다보았으나, 이번에는 눈이 많고(?) 위험하여 사진만 찍었다.
몇 사람이 한꺼번에 내려서 적당한 위치를 잡지 못해 사진도 시원치 않았다.
석병산 일월문은 바깥[북쪽]이 수십 미터 낭떠러지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다.
일월문은 작은 바위 구멍을 통해 건너편 저 아래로 보이는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 덮인 산을 볼 수 있다.
구멍 바깥쪽은 아찔한 낭떠러지이므로 사진 찍을 때 조심해야 한다.
일월문 아래에는 돌기둥이 서 있다. 언젠가 낙동산악회에서 백두대간 길 걸을 때 김동섭 대장과 같이 올라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바위가 여러 갈래로 금이 가 있고, 금방이라도 갈래갈래 떨어져 나갈 것 같이 불안정해 보였던 기억이 있다.
날씨가 좋은 경우라도 오르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일월문을 되돌아 올라서(10:04) 1시간 4분쯤 뒤 두리봉(1033m-‘푯말’)에 닿았다.(11:03)
두리봉에 머물며 과자, 과일 따위를 먹었다. 과자, 과일 따위를 내어준 hong, 승승장구, 배미정 님을 비롯한 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7분쯤 머문 뒤 두리봉을 나서 삽당령까지 4.4km 거리를 야트막한(?) 산등성(이)을 지루할 만큼 오르내렸다.
그 길은 때로는 이 길이 백두대간 길이 맞나 싶을 만큼 옆에 있는 산등성(이)이 더 높은 곳도 있었다.
대간 길에는 드물기는 하나 정맥, 기맥, 지맥 길을 걸을 때면 마주하는 일이다.
때로는 지름길로 걸었다.
눈이 없고, 추운 겨울이 아닐 때는 지름길로 걷기 싫을 때가 많다.
백두대간 길을 엉터리로 걷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조릿대와 눈이 뒤엉킨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중간에 물과 과자도 먹으면서 두어 번 쉬었다.
두리봉에서 2시간 14분쯤 뒤 삽당령에 내려서(13:29) 산행을 마쳤다.
삽당령은 “북쪽으로 강원도 강릉시 묵계리 쪽으로, 남쪽으로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쪽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끝까지 발을 맞춰 준 무쏘 꿈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이번 구간은 ‘카르스트 지형’ 이라는 독특한 지질 구조를 갖고 있다.
카르스트 지형이란 “고생대의 조선계 지층에 분포하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
이 빗물과 지하수(이산화탄소를 함유한 물)의 작용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물에 용
해됨(용식, 溶蝕)에 따라 암석이나 지층이 침식(浸蝕)되는 일종의 화학적 풍화 작용”
“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은 지하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며, 때때로 대규모의 석
회암 동굴(예 : 종유동, 鐘乳洞)과 표면에 돌리네라고 불리는 원형의 와지(窪地, 움푹
패어 웅덩이가 된 땅)가 형성된다는 것이다.“《여기까지 푯말에서 요약하여 따옴》
‘돌리네’라 불리는 움푹 팬 웅덩이 같은 곳이 있었으나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대원들 맨 앞에서 길을 찾고, 수북이 쌓인 눈을 헤치느라 고생 많이 한 네오 대장 님과 대원들, 그리고 뒤에서 대원들 잘 챙긴 권재구 대장 님 수고하셨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백두대간 산행을 진행하는 김정호 회장에게 역시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정선 시장에서 밥을 산 무쏘 꿈 님, 막걸리를 산 냉정 님, 란선 님! 고맙습니다.
당초 내가 밥값 계산하려 했으나 다른 분들이 완강히 고집하여 계산하지 못해 미안했다.
그리고 이번 구간에서 백두대간 졸업한다는 냉정 님 축하합니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길 없는 길을 가는 어려움
길 없는 길을 가는 것은 두려움과 함께 어려움이 따른다.
원래 있던 길이 눈이 많이 와서 흐릿하거나 구분이 잘 안 될 때 길 찾기가 어렵다.
길을 찾아도 눈을 헤치는 일이 힘이 많이 든다.
전에 나도 다른 산악회에서 백두대간 길을 걸으면서 서너 번 눈이 많이 쌓인 길을 앞장서 헤쳐 나가 보았다.
그래서 무리 지어 산행하는 길이라도 눈을 헤치며 길을 내면서 걷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그것은 오로지 발과 다리를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몸을 곧추세우고, 중심을 잡으면서 나가는 길이다.
산등성(이) 눈이 수북이 쌓인 곳은 눈이 쌓인 반대편,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곳으로 일부러 걸어야 한다.
바람보다 눈 헤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네오 대장 님과 앞장선 대원들 눈 헤치느라 수고가 많았다.
고마움과 찬사를 함께 보낸다.
2. 길 위의 흔적은 없고, 나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
내가 몇 번을 걸었던 길.
그 길에 내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내가 흘린 땀방울도 땅속에 스며 있으련만...
흔적 대신 내 앞을 가로막는 하얀 눈 세상과 불현듯 밀려오는 아득함.
내 작은 발이 딛고 넘어야 할 거대한 성으로 다가오는 눈밭.
나는 허우적대듯 작은 발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나뭇가지와 눕거나 넘어진 나무와 나무 둥치가 얼굴에 부딪히기도 한다.
매서운 바람이 볼을 때린다.
처음 나설 때 입었던 웃옷, 재킷을 벗었더니 땀이 안 난다.
얼마를 걸었을까.
세찬 바람에 목덜미가 시리다.
내가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갑자기 떨어진 것일까?
어깨를 덮는 러닝셔츠, 내의, 겨울 윗옷[셔츠], (재킷) 내피까지 입었는데...
아! 그렇구나.
땀이 날 것 같아 미리 재킷을 벗었더니 목덜미가 시렸던 것이다.
얼굴 두건[바라클라바]와 털모자를 썼건만 재킷을 벗어 머리 덮개가 없어 “바늘 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오듯 찬 바람이 목덜미를 타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가는 길이 바빴으나 발을 멈추었다.
두꺼운 내피를 벗고, 웃옷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재킷에 달린 머리 덮개를 덮어썼다.
이내 찬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현상을 막아 한결 따뜻함을 느꼈다.
장비는 무겁게 지고 다니면서, 순간 판단을 잘못해 ‘사서 고생’을 했구나...
목덜미를 파고드는 세찬 바람을 막고 난 뒤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3. 길을 나선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대원들
새벽 한적한 대간 길. 영하 15도 안팎을 넘나들던 추위를 뚫고 용감하게 걸었던 대원들.
반 이상의 대원들은 길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적토마를 탄 여포가 적진을 종횡무진 달렸던 기운을 온전히 받았을까?
어찌 그리도 날랜 걸음이었는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원들.
힘찬 걸음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4. 조릿대
우리나라 산에는 조릿대가 많다.
조릿대가 없는 산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백복령~삽당령 구간 눈길에도 조릿대가 많이 보였다.
조릿대를 ‘산죽’(山竹) 이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산죽’은 산에서 나는 대(나무)로 조릿대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보는 대나무가 산에서 나서 자라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조릿대가 많은 지방에서는 쌀을 이는 데 쓰는 기구인 ‘조리(笊籬)’를 만든다 한다.
조리(笊籬)를 만드는 대나무라는 뜻으로 조릿대라 한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집 뒤에 신우대[시누대]와 대나무 밭이 있어 대나무나 신우대[시누대]로 조리를 만들어 썼다.
지금은 정미소에서 쌀을 찧을 때 돌 같은 불순물을 잘 걸러내기도 하려니와 식구가 단출하고, 밥을 많이 먹지 않는 경향 따위로 말미암아 밥 지을 때 따로 조리(笊籬)를 쓰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혹시 조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플라스틱 제품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더러 조리(笊籬)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이 조리는 밥 지을 때 쌀을 이는 데 쓰는 것은 아니고, 복을 불러오는 물품이라 하여 집에 장식용 겸 걸어두는 것이다.
몇 년 전 제주도 한라산 산철쭉을 보러 간 일이 있었다.
산철쭉 밭은 온통 조릿대가 점령하여 산철쭉 서식지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그때 처음에는 산을 뒤덮다시피 한 조릿대에 질리고, 다음에는 조릿대 사이에 신음하는 산철쭉을 보고 마음 아팠던 기억이 뚜렷하다.
장식용 조리(笊籬)라도 많이 팔려 전국 산을 뒤덮다시피 한 조릿대 개체수 줄이는 데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
5. 나무 토막 쉼터
나무 토막 몇 개를 세워 만든 쉼터가 여러 곳 있었다.
아주 어려운 구간이 아님에도 이런 쉼터를 만들어 놓은 것은 쉬면서 자연을 감상하고, 깊은 생각을 하라는 뜻인지 모르겠다.
6. 동고서저(東高西低)
백두대간 길은 여러 군데서 서쪽은 대체로 산세 기울기가 완만하고, 동쪽은 가파른 벼랑을 이룬다.
이미 지나온 하늘재~포암산~대미산~작은차갓재 구간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건너뛴, 다음에 걷게 될 피재~덕항산~댓재, 댓재~두타산~고적대~백복령 구간
따위에서 동고서저 현상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 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7. 복수초를 기다린다
눈길을 걸으면서 봄을 생각했다.
혹시 성급한 복수초라도 고운 자태를 드러냈을까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철[계절]을 건너뛰어 내 마음이 벌써 봄을 기다린 나머지 성급했나 보았다.
모르긴 해도 강원도 지방에서 복수초를 보려면 3월 이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노랑색과 고양이 이빨처럼 가느다랗게 촘촘히 벌어진 잎사귀를 어서 보고 싶다.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첫댓글 차가운 겨울 따뜻한글과 푸근하신 마음이 가득 입니다
산행에 활력을 주시어 소중한 흔적 주시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 감동입니다
함께한 시간 큰힘이 되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늘 활기 넘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과자랑 무겁게 지니고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두리봉에서 스키 타고 가신 듯 홀연히 달려 나가 뵙지 못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드디어 07:20쯤 찬란한 해가 솟았다. 눈이 부셨다.
끊임없이 기체를 공급받아 수십만(?) 도(度) 이상으로 불타면서 우주를 뜨겁게 달구고,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해[태양]...
태양이라는 존재를 잊고 지내다가 아침에 해가 돋을 때 그 위대하고, 고마운 존재를 생각한다.
경외감과 감사함...따위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그 새벽의 태양은 최초의 목적성이 아닌 꼭 필요에 의한 태양처럼 느껴져, 처음으로 태양과 나는 지평에 놓인 존재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사유가 있는 블로그 내용 잘 감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겨울 밤에 걷는 것도 쉽지 않지만, 언제나 해 뜰 때 전후가 가장 기온이 낮고,
특히 아침 요기를 하고 나면 손이 몹시 시린 것이 고통입니다.
어둡고 추위가 몰려오는 어둠 뒤에 찬란하게 솟는 해가 헤아릴 수 없이 먼 거리에서 열기를 뿜어
내 작은 몸뚱이에 따스함이 전해질 때 얼마나 고마운지...
태양이 없으면 태양계에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면
한없이 작은 우리가 일상의 테두리에 갇혀 버둥거리지 않았나 되돌아 보게 됩니다.
정선 시장에서 맛있는 음식. 잘 먹었습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추운 날씨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핫팩을 휴대하셔서 손가락 걱정은 덜해도 될 듯하네요. ㅎㅎ
큰형님께서도 여명과 일출에 대한 감동은 여전하신가 봅니다. ㅎㅎ
일출 감동기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함께 해주셔서, 낙동 대간 산행이 더 깊이가 있고,
빛이나는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든든하게 함께 해주시길 기대하면서,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음 산행 때 뵙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둘레가 보이지 않아 내 발만 보고 걷는 어둠 속. 추위는 온몸으로 부딪힙니다.
해가 돋으면 거룩한 태양을 보는 것도 경외스럽고,
테양에서 선을 타고 전해지는 것 같은 따스함에 대한 기대가 불끈 솟습니다.
경험에 따르면 해가 돋는 시기 전후가 가장 기온이 낮고,
특히 아침밥 먹고 나면 손이 아주 시립니다.
추위 속에 허기진 속을 달래기 위해 뭐라도 먹어야 하고, 추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한길님의 후기를 읽으면
짧은 대간 역사기록을 대하는 듯 합니다.
매 구간 쉼없이 참여하시는 자체로도
후배들의 로망으로서 힘이 되는 데
여유롭게 챙겨오시는 먹거리, 입을거리까지~~
쉽지 않은 정성이라는 것을 알기에
따뜻한 목도리 걸친 듯 온기 가득해집니다.
건강 잘 챙기셔서
오래 발걸음 함께 해 주시길 기원드립니다.
알맹이 없고, 허섭스레기 같은 말만 늘어놓은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늘 활기차고, 빠른 걸음에도 걸음마다 감흥을 수놓고, 시린 손을 신경 쓰지 않고 대원들 모습,
나뭇가지에 붙은 눈 하나까지, 저 멀리 펼쳐진 산하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제대로 담는 부지런함과 섬세함. 훌륭합니다.
본받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굼뜬 내 발걸음으로 대원들에게 짐이 되는 일이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블록에서 멋진 사진을
찾았습니다.
꼼꼼함. 세심함의 습관은
그대로 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오래된 사진을 찾았군요.
그때는 겨울이 아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도 찍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