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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발목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걷는 것이 조금 불편한 정도로 시작해서 며칠 쉬면 낫겠지 했습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도 낫질 않아서 동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기 시작했지만 차도가 없어 동네 정형외과를 돌기 시작하며 1년도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도수치료며 물리치료까지 수많은 치료 방식을 섭렵? 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방식도 낫질 않았고 저는 2015년 가을 결국 종합병원에서 수술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1인 기업가 6년차였던 2014년부터 7년차인 15년까지, 전 다리가 불편한 가운데에도 외부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추기는커녕 1인회사 연구소 활동은 물론이고 이미 시작한 공저에 외부 강의까지 일정 모두를 그대로 소화하였습니다. 거기다 국내 에니어그램 연구소에서 지도자 과정을 들으면서 해소되지 않던 궁금증과 공저를 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간의 관계적 부대낌이 만나 급기야 에니어그램 해외 사이트를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원서로 본 에니어그램은 분명 제가 번역서나 국내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것보다 훨씬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대 에니어그램을 현대화한 나란죠 박사님께서 아직 생존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그 분이 직접 유럽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기까지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제 머리 속에선 언젠가 꼭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처음 에니어그램 공부를 시작할 때도 나란죠 박사님께서 창시자인 것은 알았지만, 창시자란 어감이 주는 무게상 당연히? 돌아가셨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분이 살아계시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워크숍까지 진행한다니. 어린 날 시드니에서 힘겹게 영어를 터득한 것이 마치 이 순간을 위한 것 같았습니다. 그 분께 다녀오면 이미 저와 같이 에니어그램에 관심이 많은 연구원들에게 유럽 정통 에니어그램을 전하여 함께 에니어그램 연구소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희미한 희망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이 2015년 당시 이미 85살 고령이셨습니다…!
‘음… 한시가 급하군…’
자세히 살펴보니 한 사이클이 2년에 한번씩 돕니다. 그러니까 2015년 가을에 시작하는 1단계를 놓치면 2017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때는 박사님께서 87살이 되십니다. 아무리 고령사회라고는 하지만 불안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15년 사이클에 합류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발목이 너무 심하게 돌아 정상으로 걷지 못하는 상태로 수술 판정을 받은 때였습니다.
‘어쩌지…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데 어쩌지…’
제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수술을 해야 한다면 몇 달 늦춘다고 크게 문제될 거 없다는 아주 무식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신 그냥은 걸을 수가 없으니 반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가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서 짐을 끌고 양손에 목발을 짚을 수 없으니 한쪽 목발은 엄마한테 건네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합니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기왕 다녀오기로 결정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다녀와”
목발 하나를 거두고 대신 가방을 손에 쥐어주는 엄마 말씀입니다. 혼자 시드니에서 공부할 때 제가 약해질까봐 절대 제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던 엄마다운 배웅입니다. 그렇게 한 손엔 목발을 짚고, 한 손으로 가방을 끌며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도착하여 1박을 하고 다음날 뮌헨까지 고속 열차로 이동하여 다시 기차 타고 펜츠버그 역에 내렸습니다. 그런데 워낙 남부의 작은 역이라 그런지 독일 도착 후 처음으로 영어가 통하지 않는데 택시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동네 상업용 택시는 총 6대만 운영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건 그 중 1 대는 개인 택시이고, 나머지는 각각 2대, 3대씩 회사에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스몰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뮌헨까지보다 마지막 펜츠버그에서 더 진땀을 빼고 가까스로 택시를 타고 한…….참을 산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눈 앞에 숲 속의 나무집 같은 곳이 나옵니다. 지스트 센터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유럽 에니어그램 공부는 제 인생에서 또 하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선 프로그램자체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기 전 온 몸의 세포를 일깨우는 “무브먼트”를 진행합니다. 아직 잠이 덜 깨서 부스스한 모습들이긴 하지만 음악에 맞춰 때론 신나게 때론 조용히 몸을 일깨우면 아침 식사는 정말이지 꿀맛 같습니다! 아침 먹고는 대강당에 모여 명상을 시작합니다. 대강당 바닥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숲 내음과 함께 들어오는 한가운데 앉아 명상을 하노라면 그 동안 마음 부대끼며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저절로 제 안에서 떠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명상 또한 단계에 따라 위빠사나, 티벳 그리고 젠 마스터까지 동양의 다양한 명상을 소개해줍니다. 명상복까지 갖춰 입고 저보다 허리가 더 꼿꼿한 유럽 친구들을 보며 확실히 명상이 유럽에서 열풍인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명상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에니어그램 이론 공부를 합니다. 명상 때보다 조금 더 선명해진 햇살과 함께 바닥이던 의자던 편한 곳에 앉아 원하면 언제든 질문을 던지는 아주 화기애애한 공부시간입니다.
그러나 즐거움은 여기까지입니다. 점심을 먹으면 이윽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포의 시간이 돌아옵니다. 이 때부터는 영어, 불어, 독일어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스몰 워크숍과 둘씩 짝을 지어 테라피스트 훈련을 하는 1:1 테라피스트 트레이닝 시간이 있습니다. 나란죠 박사님께서 좋은 테라피스트는 어떤 이들인지에 대해 해주신 수많은 주옥 같은 이야기들 중 가장 인상에 남은 두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테라피스트는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모든 상담 심리 작업이 그러하겠지만 에니어그램 작업 역시 외부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 자신의 고착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내담자들은 강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형에 따라 그 거부 반응은 상담자를 향해 공격성을 띠거나 정서적 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니어그램 테라피스트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거울을 비춰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 거울은 화장 곱게 한 예쁜 얼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민낯 때론 지금까지 혼자는 볼 수 없던 내면의 얼굴까지도 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거나 때론 정서적 공격에 노출되더라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진심으로 성장의 길로 안내자가 되겠다는 굳은 각오가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라는 박사님 말씀, 한국에 돌아와 현장에서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자주 떠오르고 더 깊이 되새기게 되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테라피스트는 자기 작업이 가능한 바닥까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테라피스트는 절대적으로 자기 작업이 바닥까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 인이 불순물로 가득 차 뿌연 상태에선 절대 내담자에게 맑은 거울을 보여줄 수 없다고요. 자칫 내담자를 가르치려 들거나 반대로 내담자에게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무엇보다 테라피스트 스스로 내담자와의 작업을 견뎌내지 못하고 내면이 무너질 수 있기에 테라피스트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작업이 바닥까지 철저히 되어야 한다는 사실, 현장에서 작업을 진행해보면 무슨 의미인지 뼈 속 깊이 이해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럽에서 만난 워크숍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나란죠 박사님은 에니어그램을 현대화하기 전에, 정신과 의사이자 펄스 박사님을 도와 게슈탈트 심리 치료법을 고안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그분의 워크숍은 게슈탈트 심리 치료법과 에니어그램이 복합되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스몰 그룹 워크숍은 그야말로 도망갈 구멍 하나 없이 내담자를 무의식 깊은 바다로 밀어 넣습니다. 주제는 원 가족 문제부터 시작해서 배우자 / 파트너 문제까지 다루고 재탄생의 의식을 치루는데 정말이지 독일의 외딴 숲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도망쳤을지도 모를 정도로 힘겨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다행히 거기 모인 사람들은 대게 저와 같이 이미 에니어그램 혹은 다른 심리학적 테라피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박사님 워크숍을 통해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작업을 하러 모인 만큼, 각 스몰 그룹을 이끄는 전문 코치들은 물론이고 워크숍을 행하는 저희들 또한 내면으로 들어가는 에너지 강도는 초 절정 몰입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의식 세계는 모두 잊고 완전한 무의식의 또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3차례에 걸쳐 유럽을 오가며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전 비로소 제 안에 아주 오랜 기간 케케묵은 형태로 꼬여있던 그림자와 아니무스를 통과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분석심리학의 대가인 칼 융이 말한 무의식 세계의 그림자와 아니마/아니무스는 실제로 존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절대 의식으로 해결되거나 의지로만 주도할 수 없는 세계임을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내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그래서 가장 귀한 일이 바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일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인드라망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곳이기에, 나 하나를 바로 세우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변할 수 있음을 내면 깊이 내려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3단계까지 마친 저는 제가 경험한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부모님도 완벽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어릴 때 부모님은 생존권을 지니고 있는 절대자입니다. 절대자이기에 자식들은 그분들께 완전한 사랑을 기대합니다. 그러니까 부모, 자식간은 출발부터 괴리감이 있는 관계입니다. 다만 그걸 부모님도 모르고 자식들은 더욱 모르기에 우린 사랑하면서, 아니 사랑하기에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조금만 인간과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면 충분히 치유 가능한 상처들을 너무 오래, 심지어는 인생 전반에 걸쳐 무거운 짐처럼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둡니다. 그러다 오히려 짐에 끌려가며 어른이 되어 만든 나만의 가정에서 배우자나 아이들과 이런저런 문제를 양산하는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고리를 끊으려면 우선 나부터 시작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마치 구슬이 꿰어지듯 저절로 연결이 되는 것을 너무 오랜 시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선 먼저 1인회사 연구원들과 나눔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분들과는 1인 기업가로서 협업을 도모할 관계인만큼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인회사 연구원들만 대상으로 하는 유로 에니어그램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은 아직 일반인들께는 오픈 하지 않았습니다). 이분들과는 협업이 제 오랜 소망이자 목표였던 만큼, 1인회사 연구원들을 자체 트레이닝 하여 이분들과 함께 유로 에니어그램 연구소를 만들면 멋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1인 기업가 6~7년차 목발을 짚고 유럽을 다녀오며 공부하여 시작한 유로 에니어그램 과정에서 드디어 몇몇의 강사진을 배출하였습니다. 그리고 10년차 올해, 그 분들과 함께 에니어그램 공저를 진행하며 유로 에니어그램 연구소 런칭을 준비 중입니다. 바야흐로 1인회사 연구소 첫 시작 목표가 가시적인 성과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도 어려움이 없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1인 지식기업가 10년차쯤 되니, 이젠 어려움이 와도 이번엔 또 무엇을 배울지를 살피며 어느 정도 여유로워진 것이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럼 1인 지식기업가 9~10년차, 저의 두 번째 콘텐츠이자 연구원들과 첫 협업인 유로 에니어그램 연구소 런칭 준비 이야기와 함께 다음주 금욜 찾아뵙겠습니다.
내일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날이네요.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여러분들도 멋진 순간 함께하시고 편한 주말 보내세요. 다음주부턴 한반도 공기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다음 한 주 산뜻한 마음으로 아자 홧팅입니다!
수희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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